2014년 12월 9일 화요일

공룡이 멸종하지 않았다면?





운석 충돌 후 새로운 식물이 많이 자라기 시작했다. 주로 고사리 같이 생기고 매우 질긴 식물들이었다. 옛날의 꽃식물에 비해 영양가가 부족한데다가 추울 때는 시들어서 초식공룡 수가 먼저 줄었다. 육식공룡도 같이 고전했지만 차츰 적응해 나갔다. 식성을 바꾼 것이다.

다행히 육식공룡의 강한 이빨은 코코넛 같은 딱딱한 열매를 깨기에 적합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견과류를 많이 먹었다. 그걸로는 부족해서 초식공룡의 먹이 습성을 따라했다. 질긴 풀을 먹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엔 소화가 잘 되지 않았지만 곧 소화를 돕기 위한 위석, 즉 돌을 위안에 같이 넣고 다니는 공룡들이 생겼다. 위석 덕분에 어쩌다 먹는 고기도 소화가 잘 되고 일석이조였다.

한때 가장 무서운 사냥꾼으로 이름을 날렸던 티라노사우루스의 자손들은 이렇게 잡식이 됐다. 현재 곰을 포함한 많은 육식 포유류도 이 방
법을 택하고 있다.

되돌아보면 육식공룡, 특히 수각류는 이런 변화에 이미 준비돼 있었다. 중생대에도 수각류지만 초식인 공룡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니 랍토르류에 속하는 오르니토미모사우루스류였다. 티라노사우루스의 가까운 친척으로 여겨지지만 이상한 특징이 있다. 대부분 이빨 대신 딱딱한 부리만 있었던 것이다. 이빨 없는 두개골 때문에 처음에는 식성을 놓고 고생물학자들의 의견이 분분했다. 그러던 중 위석이 발견돼 초식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중생대보다 약간 싸늘해진 현재 지구에 가장 널리 퍼진 공룡은 작은 수각류인 마니랍토르류다. 이 공룡은 몸에서 발생하는 열로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는 내온성이다. 더구나 일부는 몸에 깃털이 나서 찬바람을 견딜 수 있었다. 그것도 부족하면 굴을 파고 들어가 있으면 됐다. 대신 몸집은 작게 유지해야 했다. 크기가 같을 경우, 내온성 동물은 외온성 동물보다 10~30배나 더 먹어야하기 때문이다. 한편, 덩치가 큰 브라키오사우루스 등은 일년 내내 따뜻하고 습도도 높은 열대 우림에만 살아남았다. 이들은 주변 온도에 따라 체온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외온성 공룡이었다.

운석 충돌 이후 한반도를 비롯해 지구 전반에 살아남은 것은 이처럼 체온을 쉽게 유지할 수 있는 작은 공룡들이었다. 이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팔을 쓸 일이 많아졌다. 지구가 건조해지면서 한여름에는 키 작은 풀이 말라버리는 바람에 높이 있는 나뭇잎을 뜯어먹어야 했다. 키가 작으니 팔을 뻗어 잡는 수밖에 없어서 자연스럽게 팔이 길어졌다. 덕분에 나뭇가지에 기어 올라가 열매를 따먹기도 쉬워졌다. 나무 열매가 부족하면 땅 속에 숨어 있던 열매를 파내거나 뿌리를 캐먹었다.


길어진 팔은 추운 겨울을 나는 데도 도움이 됐다. 겨울 동안 살 마땅한 굴을 못 찾으면 직접 땅굴을 팠다. 대표적인 땅굴족은 작은 조각류인 오릭토드로메우스의 후예다. 몸이 가늘고 팔 근육이 발달해 딱딱한 땅도 깊이 팔 수 있었다. 이들은 낮은 산처럼 경사진 곳을 선호했다. 바깥바람이 들어오지 않도록 곡선 통로를 1~2m 판 뒤 안쪽에 집을 꾸몄다. 이 아늑한 집을 새끼에게 물려주기도 했다. 미국 몬타나주립대의 데이비드 바라치오 박사는 공룡이 굴 파기 전략을 개발해 사막이나 극지방 등 극단적인 기후에서도 살아남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중생대에도 비슷한 전략을 편 공룡이 실제로 있다. 땅 속으로 들어간 원인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조반류인 드링커 성체와 새끼 2마리가 굴에서 같이 발견됐다.



추운 날씨를 견디는 데 한몫한 깃털은 공룡의 외모를 가꾸는 데도 쓰였다. 깃털 치장의 대표주자는 쥐라기 후기의 수각류 안키오르니스였
다. 날개와 다리의 검은색과 흰색 무늬가 얼룩말과 흡사하고, 머리는 빨간 왕관을 쓴 듯한 모습이었다. 빨간 왕관은 보온 기능을 넘어서 남에게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운석 충돌 후에 공룡의 과시용 깃털은 날이 갈수록 화려해졌다. 특히 수컷에게 중요했다. 깃털이 길고 풍성할수록 암컷에게 인기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수컷은 빨강, 노랑, 파랑 등 시선을 끄는 원색 깃털이 많아졌다. 암컷은 상대적으로 단순한 색깔이 많았다. 오늘날 청둥오리 수컷이나 꿩이 화려한 것과 비슷한 원리다.

짝짓기 기간에는 수컷들이 깃털을 흔들며 춤을 췄다. 우선 높고 짧은 소리로 암컷의 시선을 끌었다. 암컷이 주목하면 머리와 꼬리를 좌우로
열심히 흔들거나 용수철처럼 튀어오르며 사랑을 고백했다. 이들이 춤을 출 때 뽐내는 깃털은 붓처럼 생겼다. 깃대가 길고 끝에 화려한 털이 뭉쳐 있었다. 주로 왕관처럼 정수리에 높이 솟아 있거나, 꼬리 끝에 달려 있었다. 이 때문에 몸이 길어 보였고, 그럴수록 인기가 높아졌다. 공룡의 구애 춤은 지금의 회색관두루미가 번식기에 하는 행동과 비슷했다.

나무에서 생활하는 일부 수각류에게는 새와 같은 깃털도 생겼다. 원래 공룡 깃털은 깃대를 중심으로 좌우대칭인데, 새 깃털은 좌우 비대칭이다. 이 모양은 양력을 일으키기 유리해 나무 사이를 날아다니는 데 도움이 됐다. 결국 이 깃털이 발달해 하늘을 날게 됐다. 이것이 오늘의 새가 살아남은 공룡이라고 하는 이유다.


운석 충돌 전에는 많은 공룡들이 알을 낳고 바로 떠났다. 당시에는 기온도 적당하고 먹을 것이 풍부해 새끼들이 어미 없이 그럭저럭 살아갔다. 그러다가 계절이 바뀌고 환경이 척박해졌다. 어린 새끼들이 굶어 죽는 일이 많아졌다. 방치된 알은 태어나기도 전에 적에게 먹혔다. 라올레스테스의 후손 등 몸집이 쥐만한 포유류에게는 공룡 알이 훌륭한 식사였다. 공룡 중에서도 알을 좋아하는 것들이 있었다.

새끼들의 성비도 불균형해졌다. 공룡은 알의 온도에 따라 성이 결정되는데, 운석 충돌 이후 겨울이 추워져서 거의 다 수컷이 됐다(거북의
알도 주변 온도에 따라 성별이 결정된다). 알을 돌보지 않던 종들은 지구에서 점점 사라졌다. 그래서 조반류인 프시타코사우루스의 자손을 비롯해 몇몇 공룡들이 육아에 나섰다. 알을 낳고 떠나버리던 체질 때문에, 처음에는 알을 20~30개씩 많이 낳았다. 부화한 새끼들은 어미를 꼭 닮았다. 지금의 악어 새끼들이 어미와 똑같이 생긴 것처럼 말이다. 적지 않은 숫자였지만 어미는 새끼들이 스스로 먹이를 찾아 먹을 수 있을 때까지 키웠다. 주로 나무뿌리를 캐는 법, 열매를 잘 찾는 법 등을 가르쳤다.

시간이 흘러 해마다 새끼를 키우러 같은 장소를 찾아오는 공룡도 생겼다. 자연스럽게 여러 가족이 같이 사는 무리가 생겨났다. 몸이 3~4m 정도로 긴 초식공룡이었다. 이들에게는 먹이가 풍부하고 편안하면서도 안전하게 둥지를 틀 수 있는 곳이 적었다. 그래서 알을 품기에 알맞은 환경을 기억해 놨다가 돌아오는 것이었다. 주로 초원 주변에 있는, 절벽 밑을 선호했다.

절벽을 등지고 있으면 육식공룡이 공격해도 둥지를 지키기가 상대적으로 쉽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여러 세대가 같은 장소에서 같은 교육을
받고 자랐다. 행여나 어미가 사고로 죽어도 남은 새끼들을 다른 동료가 같이 키워주었다. 공룡들이 무리지어 새끼를 돌보기 시작하자 생존율이 급격히 늘었다. 그래서 알의 개수가 서서히 줄더니 어느덧 10개 이내가 됐다.


공룡들은 육아라는 공동 목표 아래 집단생활을 하면서 ‘진사회성’을 획득했다. 진사회성이 뭐냐고? 미국의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최근에 펴낸 책 ‘지구의 정복자’에서 “진사회성 동물은 구성원들이 여러 세대로 이루어져 있고 분업의 일부로서 이타적 행동을 하는 경향을 가진 동물”이라고 정의했다. 그러나 개미나 꿀벌을 뛰어넘는 사회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높은 수준의 지능이 필요하다. 서로에게 공감하고, 상대의 의도를 파악하며, 나름의 전략을 짜려면 뇌는 고도의 사회적인 장치가 돼야했다. 이런 지능을 일부 공룡은 감당할 수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백악기에 이미 살았다. 바로 수각류 트로오돈류였다. 트로오돈류는 당시 공룡 중에서 몸에 비해 뇌가 가장 큰 편이었다. 그 외에도 유리한 조건이 많았다. 인간만한 몸집, 육식성, 무리 사냥, 두발 보행, 자유롭게 돌릴 수 있는 앞발이었다. 앞발 길이가 뒷발의 70%에 달했는데 당시로서는 매우 긴 편이었다. 또 눈이 커서 시각 정보를 처리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마침내 이들의 후손은 인간의 조상인 유인원정도의 진사회성을 이룩했다. 동료에게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 각종 시나리오를 구상하고 가
장 합당한 행동을 택할 수 있었다. 다 같이 먹이를 구하고, 집을 가꾸며 새끼를 키웠다. 세대에 걸쳐 경험이 쌓이면서 무리의 세력을 넓히는 법도 터득했다. 사냥은 낮이나 밤 중 언제 나가는 것이 유리한지, 다가오는 적에게 효과적으로 겁을 주려면 어찌해야 하는지 등을 공유했다.

이들이 얼마나 지능적이었는지는 공룡의 후예인 새를 엿보면 알 수 있다. 까치는 며칠 전에 본 사람의 얼굴을 알아보거나, 거울에 비친 자기 자신을 인식할 정도로 똑똑하다. 이는 현생 포유류에서도 극히 일부에게만 있는 고도의 능력이다. 트로오돈의 후손은 까치 버금가는 지능과 함께 자유로운 두 손까지 있었기에 유인원처럼 ‘똑똑한 집단’이 될 수 있었다. 이들이 과연 인간 정도의 지능까지 갈 수 있었을지는 누
구도 모른다. 그래도 시간이 더 지나면 나름의 문명을 이룩하지 않았을까.


대형 공룡은 대부분 열대 지방에 살았다. 다른 지역에는 작은 공룡들만 살았다. 그렇게 공룡이 줄어든 지역에서 포유류가 퍼져나갔다. 공룡이 지구를 지배하던 중생대 때는 쥐만한 크기의 야행성 포유류가 대부분이었다. 공룡을 피해 밤에 몰래 다녀야 했기 때문이다. 운석 충돌 후 포유류는 점점 커져 주변의 작은 공룡들과 비슷해졌다. 지금의 곰이나 소 정도였다. 더 커지기에는 추운 겨울에 먹이가 부족했다. 이제 포유류가 낮에도 활동하면서 곳곳에서 포유류와 공룡의 맞대결이 일어났다.

먼저 포유류도 공룡을 먹기 시작했다. 개만한 포유류인 레페노마무스의 후손은 새끼 공룡을 즐겨 먹었다. 숲속에 공룡 둥지 근처에서 머물면서 어미가 한 눈 팔거나 새끼가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사이를 틈타 공격했다. 어미에게 들키기라도 하면 빠른 발로 잽싸게 도망쳤다.

그 사이에 다른 레페노마무스가 남아있는 새끼를 가로챘다. 공룡이라고 당하기만 했으랴. 안그래도 초식공룡이 줄어 배가 고팠던 육식공룡에게는 몸이 커진 포유류가 반가웠다. 숲속을 혼자 거닐던 포유류가 육식공룡떼의 눈에 띄기라도 하면 그날이 제삿날이 됐다.

포유류가 지구 곳곳에 퍼지면서 살아가는 방법도 다양해졌다. 그 중 하나가 새로운 형태의 임신이었다. 캥거루처럼 주머니에서 새끼를 키우는 종도 생기고, 알을 낳는 종도 있었다. 미국 스토니브룩대 해부학과 마우린 오레이 교수는 백악기에 유대류(주머니)가 등장했고 신생대에 단공류(알)가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각각의 육아 방법이 당시 생태계에서 유리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분화된 생태는 점점 다채로워졌다.

한편, 열대지방에 남은 포유류는 공룡과의 전쟁을 피해 대부분 야행성으로 남았다. 포유류는 서늘한 밤에도 체온을 잘 유지해서 야간 생활이 어렵지 않았다. 사실 커다란 공룡은 포유류의 존재를 잘 알지 못했다. 대부분 쥐만한 크기였고, 낮에는 땅속이나 나무뿌리 틈에 꼭꼭 숨어있었기 때문이다. 포유류는 밤에 열매나 곤충을 먹었다. 가끔 운이 좋은 날에는 둥지에서 떨어진 공룡 알을 주워 먹었다. 이렇게 포유류가
밤을, 공룡이 낮을 지배했다.







댓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