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9일 화요일

핵융합 실현 기술


PART 4-1 핵융합 실현 기술 - 초강력 빛이 잉태한 별 레이저 핵융합 / 글 윤신영 기자


미국 국립점화시설(NIF)의 레이저가 집중되는 곳. 끝에있는 원통형의 금속 용기 안에 좁쌀 만한 중수소-삼중수소 연료가 들어간다. 500테라와트(TW). 미국 전역에서 사용하는 순간 전력량의 무려 1000배에 이르는 에너지다. 이 막대한 에너지가 새끼 손톱만한 한 점에 집중된다. 지구에서 가장 강력한 레이저에 실린 채로다. 화력이 집중되는 지점에 놓인 작은 금속 원통 용기 안에서는 지구에서는 볼 수 없는 물리현상이 나타난다. 벽을 이루는 금 성분이 강력한 엑스선을 방출하기 시작한다. 금속 용기 한가운데는 1억 분의 1초 만에 온도가 4000만K까지 치솟는다. 이 원통의 중심부에 놓인 작은 물질은 순간적으로 폭발을 일으킨다. 폭발의 반작용으로 물질 내부에서는 별의 중심부에서나 만날 수 있는 초고밀도의 압축이 일어난다. 그리고 그 속에서 별의 에너지가 탄생한 다. 핵융합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것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리버모어의 국립점화시설(NIF)에서 하고 있는 독특한 핵융합 실험이다. ‘관성가둠 핵융합’이라고 불리는 이 방식은 한국에서는 낯설지만 이미 미국, 일본, 중국 등 여러 나라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강력한 레이저를 중수소와 삼중수소로 이뤄진 좁쌀만한 크기의 재료 뭉치(일명 ‘펠릿’)에 쏴 폭발을 유도하는 게 원리다. 폭발이 일어나면 중수소-삼중수소 가스가 고체인 납의 20~100배 이상으로 초고밀도 압축을 일으키고 온도도 올라간다. 높은 온도와 밀도는 별의 중심부와 비슷한 환경을 만들어 줘서 핵융합이 일어날 기회를 높여준다. 말 그대로 별이 지상에서 탄생하는 셈이다.


두 가지 방식의 레이저 핵융합

레이저 핵융합에는 크게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앞서 소개한 원통형 금속 용기는 간접 방식이다. 레이저가 중수소-삼중수소 연료 펠릿에 직접 화력을 집중하지 않기 때문이다. 레이저는 핵융합을 단번에 일으키는 게 아니라 엑스선을 발생하기 위한 ‘스위치’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 방식에는 문제가 있다. 나용수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수소폭탄의 원리와 정확히 같다”고 말했다. 수소폭탄은 핵융합이 일어날 수 있는 초고밀도, 초고온 상태를 만들기 위해 1차로 다른 기폭 장치를 작동시키는 2단계 폭발 방식을 취한다. 수소폭탄은 기폭 장치가 원자폭탄이고, 간접 레이저 핵융합에서는 레이저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지상에 별이만들어지는 비결.주변을 둘러싼레이저 발사시설에서일시에 초미세펠릿(핵융합 재료뭉치)을 추적해 쏜다.

두 번째 방식은 직접 방식으로 일본 등 핵무기를 개발할 수 없는 나라와 미국 뉴욕의 로체스터대 등이 개발하고 있다. 이 방식은 펠릿에 직접 레이저를 쏴서 강 한 에너지로 껍질을 녹인다. 이 과정에서 표면이 바깥으로 부풀어 오르는데, 그 반작용으로 가스로 가득찬 펠릿이 중심부를 향해 순식간에 압축해 들어간다. 내부 밀도는 액체 중수소-삼중수소의 1000배 수준으로 크게 높아지고, 온도도 치솟아 핵융합이 일어난다.

레이저만 한번 쏜다고 끝은 아니다. 핵융합로가 계속 가동되려면 이 과정이 연속적으로 일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레이저 핵융합은 신기에 가까운 능력이 필요하다. 나 교수는 “직접 방식의 경우 펠릿을 연속적으로 떨어뜨리며 그 때마다 궤적을 추적해 레이저로 쏴 맞춘다”며 “그 와중에 펠릿의 파편이나 벽과의 상호작용으로 불순물이 발생하는데, 이를 피해가며 정확히 펠릿을 쏘는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고 말했다. 대단히 정밀하고 빠른 추적 기술은 물론, 레이저 급속 충전 기술이 필수다. 나 교수는 “레이저 방식은 과학적으로는 거의 밝혀졌고, 공학적 실현이 남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속셈 있는 미국의 선택일까

하지만 관성가둠 레이저 핵융합은 최근 주춤하다. 올해 2월 미국 로렌스리버모어 국립연구소의 국립점화시설(NIF)에서 이제까지 해왔던 것 중 가장 성과가 좋은 실험 결과를 냈지만, 여전히 투입하는 에너지에 비해 택도 없는 핵융합 에너지가 나왔다. 김영철 KAIST 원자력및양자공학과 교수는 “약속했던 시기에 성과가 나오지 않아 투자가 크게 줄어든 상태”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연구가 완전히 중단되지는 않을 것이다. 적어도 레이저 기술이 남기 때문이다. 고성능 레이저로 빠르고 정확하게 초정밀 목표물을 타격하는 장면은 생각만 해도 무섭다. 기왕이면 이 신묘한 기술을 평화적으로 쓸 순 없을까.



중형 초전도 토카막 장치케이스타(KSTAR)의 플라스마.환하게 빛나는 부위는 사실가장 온도가 낮은 부분이다.
PART 4-2 핵융합 실현 기술 - 거대한 기계 도넛 안에서 빛이 탄생한다 토카막 / 글 윤신영 기자


한국인에게 핵융합은 ‘토카막’이라는 단어와 동일어다. 국가핵융합연구소에서 보유한 핵융합 실험장치 ‘KSTAR(케이스타)’가 토카막 방식이기 때문이다. 토카막은 핵융합 선진국들이 남프랑스에 공동으로 건설하고 있는 대형 핵융합 실험로 ‘이터(ITER)’가 따르고 있는 방식이기도 하다(7파트 참조). 특히 케이스타와 이터가 도입한 초전도 전자석 토카막 방식은 현재 효율적인 핵융합 발전소를 건설하는 데 가장 유력한 방안으로 꼽히고 있다.

토카막은 자석을 이용해 핵융합 원료인 중수소, 삼중수소 원자를 가두는 일종의 그릇이다. 도넛 모양의 용기 안쪽이 터널처럼 비어 있어 이 안에 원자를 가둔다. 그런데 원자를 초고온으로 가열해 원자핵과 전자가 분리된 상태, 즉 플라스마 상태로 가둬야 한다. 플라스마 상태에서 입자는 공간을 초고속으로 날아다닌다. 만약 이 입자들이 좁은 공간에 갇혀 있다면 서로 충돌할 확률이 높아질 것이고, 충돌에 의해 핵융합이 일어날 확률 역시 높아질 것이다.


플라스마 가두기 - 자기장을 걸면, 전하를 띤 입자가 자기장을중심으로 정렬해 움직인다.태양 중심보다 10배뜨거운 플라스마를 가두는 방법

태양보다 뜨겁게 타오르며 제멋대로 여기저기 빠르게 날아다니는 불새를 가정해 보자. 이 새를 새장에 가둘 수 있을까. 어떤 물질로도 1억K의 고온을 견디는 새장을 만들 수 없다. 핵융합에도 마찬가지 문제가 있다. 온도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높아져야 한다. 가장 쉽다는 중수소와 삼중수소 핵융합만 해도 최소 1억~2억K 이상의 온도가 필요하다. 태양 중심부가 약 1500만K니까, 태양의 10배 이상에 해당하는 엄청난 온도로 가열해야 한다. 그래서 물질을 쓰지 않고 플라스마를 가두는 방식이 등장했다. 바로 자기장을 이용하는 방식이다. 플라스마는 원자핵과 전자가 분리된 상태(이온 상태)이므로 입자가 전하를 띠고 있다. 따라서 자기장을 걸어주면 자기력선 주위를 마치 꽈배기처럼 맴돌며 일정한 방향으로 움직이게 된다. 입자 전체로 보면, 운동장에서 무질서하게 놀던 아이들이 운동장에 100m 달리기 트랙을 그려주자 트랙에 정렬해 뛰는 것과 같다.

이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 자기장을 이용하면, 뜨거운 플라스마 불새를 가둘 수 있다. 그런데 문제가 또 있다. 100m 선을 그려서 그 위로 아이들이 달리게 하는 데는 성공했는데, 트랙이 너무 짧다. 효과가 잠깐에 불과한 것이다. 1000m 트랙을 만들어 봤자 소용이 없다. 어차피 초고속으로 움직이는 플라스마는 금세 뚫고 흩어져 버릴 테니 말이다. 그래서 핵융합 과학자들은 원형 트랙을 만들었다. 운동장을 빙글빙글 돌듯, 플라스마도 도넛 안을 끝없이 빙글빙글 돌 수 있게 됐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도넛 모양의 자석 가둠 장치다. 토카막은 이런 장치의 대표주자다.


플라스마 유지 시간 300초가 목표

자기장을 이용해 플라스마를 가두는 것은 이론상으로는 깔끔하지만, 실제로 장치를 통해 실현하기는 쉽지 않다. 관건은 두 가지다. 1억K 이상의 온도를 만들어 최대한 천천히 식게 하는 것과, 플라스마가 오래도록 꺼지지 않게 하는 것이다. 둘 다 매우 어려운 과제다. 케이스타의 경우 온도 유지 시간(가둠시간, 5파트 참조)이 아직 1초가 채 안 된다. 핵융합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려면 4초는 돼야 한다. 이는 이터의 목표치이기도 하다. 플라스마 유지 시간은 케이스타의 경우 300초를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 30초대다.

1억K 이상의 플라스마를 만드는 것도 쉽지는 않다. 현재 케이스타 등 토카막 실험장치에서는 외부에서 에너지를 넣어준다. 토카막 안으로 전자기파를 걸어주면 마치 전자레인지처럼 온도를 높일 수 있다. 또 빠르게 가속시킨 중성입자를 안에 쏴 넣어 플라스마와 충돌시키는 방식도 있다. 김영철 카이스트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는 “망치로 벽을 때리면 열이 나는 것처럼 플라스마의 온도를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외부 에너지 공급을 최소화한 채 플라스마 자체의 움직임으로 핵융합을 해야 궁극의 핵융합 에너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밖에도 토카막은 풀어야 할 과제가 많다. 하지만 핵융합 방식 가운데 가장 연구가 많이 돼 있고 가장 많은 연구자들이 몰입하고 있는 방식이 토카막이다. 그만큼 유망하다는 뜻이다. 상용 핵융합이라는 놀라운 성과를 과연 언제 보여줄지 그 시간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머지 않은 시간이지 않을까.


내년 가동을 시작할 독일의 벤델슈타인7-X(W7-X)의 제작 모습.최첨단 스텔러레이터인 W7-X는 추가코일(헬리컬 코일)을 쓰지 않고 아예 전자석 자체를 3차원 형태로 만들었다.
PART 4-3 핵융합 실현 기술 - 와신상담 끝에 황제에 도전하는 스텔러레이터 / 글 정진일


이란성 쌍둥이 형제가 있었다. 처음에는 형이 주목을 받았지만 곧 동생이 대세가 됐다. 어디 가나 동생 이야기뿐이었다. 그러나 와신상담 끝에 다시 무대에 등장한 형의 이야기가 막 시작되고 있다. 토카막 핵융합 장치의 강력한 경쟁자, 이름도 어려운 ‘스텔러레이터’ 이야기다.

자기장을 이용해 플라스마를 가두는 ‘자기적 가둠’ 방식은 1950년대에 이르러 이란성 쌍둥이를 낳았다. 원래 자기적 가둠 방식은 긴 선형으로 시작됐지만, 선의 양 끝에서 에너지 손실이 일어나는 현상을 피할 수 없었다. 이 문제를 양 끝을 서로 잇는 방법으로 해결한 것이 도넛 모양의 토러스 장치였다. 토러스 장치에는 두 가지 형태가 있었다. 하나는 1951년 미국의 라이먼 슈피처가 고안한 스텔러레이터이고, 다른 하나는 이듬해 러시아의 탐과 사하로프가 제안한 토카막이었다. 생일 이 조금 더 빠른 스텔러레이터는 미국을 중심으로 1960년대까지 큰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구조가 복잡했기 때문에 곧 주도권을 상대적으로 간단한 토카막에 내줘 야 했고, 1990년대까지 긴 침체기를 겪었다. 이제 상황은 달라졌다. 기술 발달에 힘입어 보다 복잡한 장치가 세계 곳곳에 지어지면서, 스텔러레이터는 제2의 르네상 스를 맞고 있다.


토카막 vs. 스텔러레이터 /토카막은 플라스마를 꽈배기 형태로 꼬기 위한자기장을 플라스마의 전류로 자체적으로 만든다.반면 스텔러레이터는 이 자기장을 추가 외부코일(헬리컬 코일)로 만들어 더 안정적이다.비슷하면서 다른 외형, 다르면서 비슷한 원리

도넛 모양의 토러스 장치에서는 전기장과 자기장의 힘에 의해 도넛의 바깥 방향으로 향하는 플라스마 흐름(표류)이 발생한다. 플라스마가 장치 안쪽을 따라가며 빙글빙글 흘러야 하는데, 표류가 이를 방해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기수가 말의 고삐를 당겨서 방향을 틀듯, 바깥으로 나가려는 플라스 마를 잡아채 안쪽으로 당기면 된다. 도넛을 위에서 보면 가운데에 구멍이 뚫린 두꺼운 고리가 보인다. 이 고리를 따라가는 방향을 ‘토로이달’ 방향이라고 한다. 플 라스마는 기본적으로 이 방향으로 돈다. 반면 도넛을 반으로 뚝 쪼개어 옆으로 보면, 작은 원이 보일 것이다. 이 원의 원주 방향을 ‘폴로이달’ 방향이라고 한다. 플라스마에 이 방향으로 추가 자기장을 걸어주면 플라스마는 꽈배기 형태로 꼬이게 된다. 장치 바깥으로 향하는 흐름도 사라진다.

토카막과 스텔러레이터의 차이점은 플라스마를 꽈배기 형태로 만드는 방식이다. 앞서 말한 추가 자기장을 토카막은 플라스마에 전류를 흘려서 간접적으로 유도한다. 즉 플라스마 내부에 수평(토로이달) 방향의 전류를 흘려 수직방향(폴로이달 방향)으로 유도자기장을 만든다. 반면 스텔러레이터는 기계적인 방법을 쓴다. ‘헬리 컬(helical) 코일’이라 불리는 나선형 외부 도체에 전류를 흘려 직접 자기장을 만든다. 두 장치는 구조에서도 차이가 있다. 토카막의 경우, 중심에 원통형 코일이 필요하다(그림 참조). 그러나 스텔러레이터는 원통형 코일은 필요없지만, 토로이달 코일은 여전히 필요하다.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듯, 스텔러레이터는 구조가 꽤 복잡하다. 왜 더 단순한 토카막이 있는데도 스텔러레이터가 아직 건재한 걸까. 토카막에는 난공불락의 단점이 하나 있다. 고용량의 플라스마 전류를 장시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정밀하게 제어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최근 이 분야 연구가 매우 활발하며, 돌파구도 보이고 있다. 5파트 참조). 반면 스텔러레이터는 외부 도체에 전류를 흘리게 되므로 전류를 매우 정밀하게 제어할 수 있고, 장시간 유지하기도 훨씬 쉽다. 스텔러레이터의 단점은 구조가 복잡하다 보니 건설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또 스텔러레이터에서는 토카막과 반대로 플라스마 전류가 0이 돼야 하는데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일본, 독일, 미국… 최고의 기계 선진국이 도전한다

스텔러레이터는 최근 컴퓨터와 기계 기술의 발달 덕분에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특히 1998년에 가동이 시작된 초전도 자석 스텔러레이터인 일본의 LHD(거대나선장치)는 특정 조건에서 고온 플라스마 지속시간이 1시간을 넘을 정도로 성능이 뛰어나다. 아직 어떤 토카막 핵융합 장치도 달성하지 못한 성능이다. 최근에는 아예 토로이달 코일과 헬리컬 코일을 결합한 독특한 3차원 디자인의 스텔러레이터도 탄생해 이목을 끌고 있다. 독일의 벤델슈타인 7-X(W7-X)다. 이 장치는 UFO같은 복잡한 외양에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며 2015년 최초로 가동할 예정이다.

스텔러레이터는 토카막과 쌍둥이처럼 닮았다. 외형만 비슷한 게 아니다. 태동과 기술 발전 역사도 밀접하게 닮아 있다. 신소재, 플라스마 정밀제어, 고출력 가열 및 전원 기술, 고정밀 진단기술 등 주요한 연구 주제 역시 서로 통한다. 두 장치는 상호 보완적이다. 스텔러레이터 연구에 앞장서고 있는 독일, 일본, 미국 등은 토카막 연구도 활발하다. 특히 W7-X를 건설한 독일의 막스플랑크 플라스마물리연구소는 스텔러레이터뿐만 아니라 ASDEX-U라는 토카막 연구 프로그램에서도 세계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모든 길은 하나로 통한다 했던가. 핵융합의 실현을 위해 매진하는 과학자들의 도전이 빛으로 화답하길, 그 과학자의 일원으로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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