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자녀 미국 명문대 보낸 황경애씨의 교육법
함께 하는 시간 많이 갖고
다양한 경험 하도록 도와
함께 하는 시간 많이 갖고
다양한 경험 하도록 도와
200만달러 장학생의 어머니. 황경애(54)씨는 종종 이렇게 불린다. 그의 세 자녀가 대학에 다니면서 받은 장학금을 모두 합치면 200만달러에 이르기 때문. 세 아이는 모두 명문으로 꼽히는 하버드대와 보스턴대 출신이다. 첫째 딸 최은혜(28)씨는 보스턴대학 정치학과 졸업 후, 현재 백악관 소속으로 미 국무부에서 일하고 있다. 누나와 같은 대학을 졸업하고 하버드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성찬(26)씨는 외교관 특별 프로그램에 뽑혀 전 세계를 돌며 외교관 수업을 받았다. 현재는 매사추세츠 주지사 선거캠프에서 일하고 있다. 빌게이츠재단 장학생으로 뽑힌 막내딸 은희(24)씨는 하버드대를 우등으로 졸업했다. 똑 소리 나게 아이들을 키운 황경애씨의 비결은 무엇일까.
◇아이는 엄마의 희생으로 자라… 물질적 희생이 아닌 '노력'
간호사였던 황씨는 미국으로 건너가 언제나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늘 아이들을 1순위에 두고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최대한으로 늘리려 애썼다. 낮에는 불철주야 일하고 퇴근 후에는 오롯이 아이들을 위해 시간을 보냈다. 운동·봉사·학회 등 아이들의 방과 후 활동도 일일이 따라다녔다.
"아이의 시야를 넓혀주고 싶어 다양한 경험을 하도록 도왔죠. 아이들이 배우고 싶다는 것은 다 배우게 해줬어요. 단, 형편이 어려웠기에 무료로 진행되는 학교 프로그램, 해당 기관에서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일일이 쫓아다녔어요. 매일 4시간 이상 운전했습니다."
주말에는 아이들 곁을 잠시도 떠나지 않았다. 특히 여행을 많이 다녔다. 친구들과의 좋은 추억도 남기게 해주고 싶어, 세 아이의 친구들과도 함께 할 때가 잦았다. 매주 10인분이 넘는 김밥과 샌드위치를 준비했다. 장시간 운전하는 것이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니었지만, 아이들을 위해서 수고를 감수했다. 아무리 바빠도 학교 행사는 물론 담임선생님 면담도 거르지 않았다.
"아이가 성인이 되면, 함께 있고 싶어도 제 곁을 떠나 독립하죠. 그러니 아이가 성인이 되기 전까지 대략 20년 동안은 아이한테 최선을 다해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를 위한 개인 시간은 그 뒤에 가져도 되니까요."
◇"남들이 하면, 너도 할 수 있어!"
황씨가 자녀 교육에서 가장 강조한 것은 '자신감 키우기'였다. 동양인으로서 자칫 소외감을 느낄까 걱정해서다. 그는 아이들에게 '할 수 있다' '네가 최고다' '축복받은 아이다'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한번은 초등학교 때 이런 일도 있었다. 백인 아이에게 놀림을 받고 울면서 집에 돌아온 아들을 본 황씨는 그를 데리고 놀린 아이 집으로 무작정 향했다. 그의 부모에게 논리정연하게 따졌다.
"그들에게 '당신도 미국 시민이고, 나도 미국 시민이다. 당신네 조상이 좀 더 일찍 미국에 왔을 뿐이다. 똑같은 미국 시민인데 누가 누굴 놀리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만약, 한 번만 더 우리 아이를 놀린다면 나는 더 참지 않고 교장한테 직접 가서 얘기할 거다'라고 얘기했어요. 결국 그 부모는 사과했고, 그 후 놀림을 당하는 일은 없었어요. 당당하게 따지는 모습을 보고 아들도 자신감을 회복했지요."
그는 아이들에게 공부하라는 말 대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조언을 자주 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저는 아이들에게 '20년 후에는 너희가 대통령이 될 거야'라고 말해줬어요. 불가능한 일도 아니잖아요. 아이들은 '정말 그런가' 하면서도 꿈을 키웠던 것 같아요. 지금 정치를 배우는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요?"
조선일보
- 임영근 기자
◇아이는 엄마의 희생으로 자라… 물질적 희생이 아닌 '노력'
간호사였던 황씨는 미국으로 건너가 언제나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늘 아이들을 1순위에 두고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최대한으로 늘리려 애썼다. 낮에는 불철주야 일하고 퇴근 후에는 오롯이 아이들을 위해 시간을 보냈다. 운동·봉사·학회 등 아이들의 방과 후 활동도 일일이 따라다녔다.
"아이의 시야를 넓혀주고 싶어 다양한 경험을 하도록 도왔죠. 아이들이 배우고 싶다는 것은 다 배우게 해줬어요. 단, 형편이 어려웠기에 무료로 진행되는 학교 프로그램, 해당 기관에서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일일이 쫓아다녔어요. 매일 4시간 이상 운전했습니다."
주말에는 아이들 곁을 잠시도 떠나지 않았다. 특히 여행을 많이 다녔다. 친구들과의 좋은 추억도 남기게 해주고 싶어, 세 아이의 친구들과도 함께 할 때가 잦았다. 매주 10인분이 넘는 김밥과 샌드위치를 준비했다. 장시간 운전하는 것이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니었지만, 아이들을 위해서 수고를 감수했다. 아무리 바빠도 학교 행사는 물론 담임선생님 면담도 거르지 않았다.
"아이가 성인이 되면, 함께 있고 싶어도 제 곁을 떠나 독립하죠. 그러니 아이가 성인이 되기 전까지 대략 20년 동안은 아이한테 최선을 다해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를 위한 개인 시간은 그 뒤에 가져도 되니까요."
◇"남들이 하면, 너도 할 수 있어!"
황씨가 자녀 교육에서 가장 강조한 것은 '자신감 키우기'였다. 동양인으로서 자칫 소외감을 느낄까 걱정해서다. 그는 아이들에게 '할 수 있다' '네가 최고다' '축복받은 아이다'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한번은 초등학교 때 이런 일도 있었다. 백인 아이에게 놀림을 받고 울면서 집에 돌아온 아들을 본 황씨는 그를 데리고 놀린 아이 집으로 무작정 향했다. 그의 부모에게 논리정연하게 따졌다.
"그들에게 '당신도 미국 시민이고, 나도 미국 시민이다. 당신네 조상이 좀 더 일찍 미국에 왔을 뿐이다. 똑같은 미국 시민인데 누가 누굴 놀리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만약, 한 번만 더 우리 아이를 놀린다면 나는 더 참지 않고 교장한테 직접 가서 얘기할 거다'라고 얘기했어요. 결국 그 부모는 사과했고, 그 후 놀림을 당하는 일은 없었어요. 당당하게 따지는 모습을 보고 아들도 자신감을 회복했지요."
그는 아이들에게 공부하라는 말 대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조언을 자주 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저는 아이들에게 '20년 후에는 너희가 대통령이 될 거야'라고 말해줬어요. 불가능한 일도 아니잖아요. 아이들은 '정말 그런가' 하면서도 꿈을 키웠던 것 같아요. 지금 정치를 배우는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요?"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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