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28일 월요일

수학자 출신 억만장자 '제임스 사이먼스'

수학자 출신 중에서 돈을 가장 많이 번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이 사람이 일순위다. 2014년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전세계 부자 순위 88위(순자산 약 13조 3362억 원)에 빛나는 제임스 사이먼스다. 그는 은퇴 직전 한 해 연봉으로 3조 원을 받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수학계에 통 큰 기부를 하는 든든한 후원자로 변신해 다양한 자선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런 그를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직접 만났다.
제임스 사이먼스는 1961년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캠퍼스(UC버클리)에서 미분기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하버드대 수학과 교수를 거쳐 미국 국가안보국(NSA) 암호해독관과, 뉴욕주립대 스토니브룩 수학과 교수를 지냈다. 1982년 펀드 회사인 르네상스 테크놀로지를 설립했다. 2005년부터 3년간 전세계 펀드 매니저 중 가장 많은 연봉을 받았다. 현재는 은퇴 후 자선단체인 사이먼스 재단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수학자들의 문화가 돈 버는 비결
제임스 사이먼스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된 건 2007년이다.
한 해 연봉으로 28억 달러(약 3조 원)을 받으면서 화제가 된 것이다. 이는 미국 금융계뿐만 아니라 전세계 펀드매니저 중에서도 단연 1등이었다. 이뿐만 아니라 하버드대 수학과 교수 출신이라는 독특한 이력도 눈길을 끌었다. 또한 그의 투자 전략이 수학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고 알려지자 금융계에서 수학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이렇게나 많은 돈을 벌 수 있었을까?
“각 분야 최고 과학자들이 모여 서로 협력한 것이 성공의 비결 같아요. 제가 세운 펀드 회사인 르네상스 테크놀로지의 직원들은 일주일에 한 번 모여 서로가 하는 일을 모두 공유해요. 만약 어떤 팀이 투자 성공률이 높은 수학 모델을 만들면 바로 시스템에 적용해요. 누구나 이 모델을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거죠. 연봉도 몇 년 간의 실적을 바탕으로 줘요. 몇 년 동안 잘 해왔는데, 한 해 실적이 안 좋다고 연봉을 깎으면 직원의 사기가 많이 떨어져요. 이건 회사에도 안 좋은 영향을 끼치죠. 또 다른 사람의 성공이 나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회사 이익의 일부를 직원들에게 나눠 줘요. 그래야 서로 협력하기 때문이에요.

마지막으로 컴퓨터의 명령을 무시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우리는 주식 시장의 움직임을 수학 모델로 나타낸 뒤 프로그램화 하고, 이를 근거로 컴퓨터가 직접 투자를 하게 해요. 즉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수학적인 분석만을 토대로 의사결정을 하는 거죠.”

인터뷰는 2014 서울 세계수학자대회 조직위원장이었던 아주대학교 박형주 총장과 함께 했다.
사이먼스가 만든 이런 기업 문화는 수학자들의 문화와 꼭 닮았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학자들이 모여 토론하는 것은 수학계의 오래된 연구 방식이다. 아이디어 교환을 통해 발전하는 수학의 속성 때문이다. 사이먼스는 이런 수학자들의 문화를 업무에 도입해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든 셈이다. 좋은 시스템 덕분인지 사이먼스가 설립한 르네상스 테크놀로지는 최근 15년 간 두 달을 제외하고는 돈을 잃어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승승장구 하고 있다. 대표 펀드인 메달리온 펀드는 1988년 출범 이후 30년 간 연평균 30%에 달하는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다.

촉망받는 수학자, 끊임없이 새로운 일에 도전하다!
사실 제임스 사이먼스는 24살의 어린 나이에 하버드 수학과 교수가 됐을 정도로 촉망받는 수학자였다. 그런데 4년 만에 때려치우고 돌연 암호해독관으로 변신했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싶은 욕구가 샘솟았던 것이다.

그는 1964년부터 4년 간 미국 국가안보국(NSA)에서 일했다. NSA는 우리나라의 국정원과 같은 곳으로, 그는 이곳에서 우연히 금융 관련 암호해독 업무를 하면서 금융계에 쓰이는 수학 모델을 처음 배우게 된다. 이 이전까지는 수학 모델이 뭔지도 몰랐다고 하니, 새로운 일에 대한 도전이 그를 세계 최고 펀드매니저의 길로 인도한 셈이다.
제임스 사이먼스는 1974년에 이론물리학에 널리 쓰이는 '천-사이먼스 이론'을 발표했다.
그는 4년간 암호해독관으로 일한 뒤 다시 뉴욕주립대 스토니브룩 수학 교수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때 중국 출신 미국 수학자 천성선과 함께 연구하며 1974년 ‘천-사이먼스 이론’을 발표한다.
“천-사이먼스 이론이 이론물리학에 널리 쓰이고 있다고 하는데, 연구 당시에는 이렇게 될 줄 전혀 몰랐어요. 전 물리학에 대해 하나도 모르거든요. 사실 이 이론이 발표되고 10년이 흐른 뒤에야 물리학에 적용되기 시작했어요. 더 놀라운 것은 현재 이 이론이 전류를 6배에서 10배나 빠르게 흐르게 하고, 컴퓨터의 속도를 높이는 등 실생활에서도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다는 거예요.”

기하학과 양자역학을 잇는 새로운 이론인 천-사이먼스 이론을 발표하며 승승장구하던 사이먼스는 1978년 또다시 교수직을 버리고 금융계에 진출했다.
“전 대단한 모험가는 아니지만 새로운 일을 시도하는 걸 매우 좋아해요. 사실 38살 때 종신직인 교수직을 버리고 금융인이 된다고 했을 때, 제 아버지는 저한테 미쳤다고 했어요. 금융계에서 나이 마흔이면 은퇴를 고려할 때인데 그때 시작하겠다고 했으니까요. 아마 제 아들이 이런 결정을 한다고 했어도 못하게 말렸을 거예요.”

미니 인터뷰 - 수학동아 독자기자가 물었다!
어린 시절에는 어떤 학생이었나요? 그리고 장래희망은 무엇이었나요?유치원 시절에는 아주 소극적인 어린이였어요. 부끄러움을 많이타서 친구들과 말 한 마디 제대로 나누지 못할 정도였죠. 그때 제 유일한 놀이는 나무에 올라가서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쳐다보는 거였어요. 하지만 다행히 초등학생이 된 이후 친구들도 많이 사귀고 성격도 활발해졌어요.
수학 외에는 좋아하는 것이 별로 없었어요. 그래서 줄곧 수학자가 되기를 꿈꿨죠.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수학과에 진학했던 것 같아요. 이후 미분기하학을 연구한 이유는 대학교 2학년 때 처음 배웠는데, ‘내가 연구해야 할 분야가 바로 이거다!’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에요. 수학의 그 어떤 분야보다도 재미있었거든요
.
 함께~, 찰칵!
삶을 되돌아봤을 때 아쉬운 점이 있나요?
제가 한 일에 대해서는 전혀 후회하지 않아요. 다만 수학공부를 더 열심히 할 걸 그랬다는 아쉬움이 남아요. 2006년 필즈상 수상자 테렌스 타오는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어요. 그는 해석학을 전공했지만 필즈상을 수상한 업적은 정수론이에요. 최근에는 수리물리학 연구도 하고 있는 걸로 알아요. 저도 그처럼 다양한 수학연구를 했으면 좋았을 것 같아요. 지금도 늦지 않았겠죠? 그래서 틈틈이 수학연구를 하고 있답니다.

제임스 사이먼스에게 수학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사실 전 두 아들을 잃고 매우 힘든 시간을 보냈어요. 다섯 명의 자녀를 뒀지만 장남인 폴은 1996년 자동차 사고로 죽었고, 차남인 닉은 2003년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익사했거든요. 밥을 먹을 때도 샤워를 할 때도 아들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어요. 그때 절 치유해 준 것이 수학이에요. 수학을 할 때면 아들 잃은 슬픔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어요.

사이먼스는 현재 수학의 발전을 위해 아낌없는 지원을 하고 있다. 뉴욕주립대 스토니브룩 수학과에 1800억 원이 넘는 돈을 발전기금으로 내놓았고, 개발도상국의 수학자를 돕는 일도 하고 있다.

세계 100대 부자의 사무실이라고 하면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화려할 것 같다. 하지만 직접 찾아가 본 사이먼스의 사무실은 가구라고는 책상과 소파, 수학책이 꽂혀 있는 책꽂이가 전부일 만큼 소박했다. 사이먼스는 부자에 대한 선입견을 단번에 날려버릴 만큼 친절하고 멋진 수학자였다.
수학동아

댓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