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2일 수요일

기숙사 생활의 두 얼굴… 제주 국제학교의 경우

나이 어린 학생들이 공동생활을 하는 기숙 학교가 늘고 있다. 기숙사를 지망하는 학생이 점점 많아지는 이유는 미성숙한 시기에 부모님에게 의지하는 대신 독립적으로 행동하는 법을 배우면 또래 아이들과 차별화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공동체 생활은 각자 다른 배경과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서로 이해하고 배우며 성숙해질 기회를 제공한다. 하지만 그 차이를 극복하는 과정이 익숙지 않은 이에게는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제주도의 서로 다른 국제학교에 다니는 TONG청소년기자 두명이 기숙사 생활의 명암을 들여다 봤다.
브랭섬홀아시아(Branksome Hall Asia) 제주 캐나다의 명문 여자사립학교 브랭섬홀의 해외 자매학교로 제주 서귀포시에 있다. 제주국제자유도시의 특별법에 따라 설립된 국제학교다. 모두 4개의 기숙사가 있다. 학교의 교훈이 ‘Empowered Women(권한 있는 여성)’인 만큼, 기숙사의 이름도 저명한 여성 위인들이다. 에인슬리(Ainslie)와 신사임당(Shin Saimdang)에는 6~9학년 학생들이, 선덕(Sundeock)과 셜본(Sherbourn)에는 10~ 12학년 학생들이 생활한다.
노스런던컬리지에잇스쿨 제주(NLCS Jeju) 영국 명문 사립학교 NLCS의 첫 번째 분교로 총 8개의 기숙사가 있다. 초등학생을 위한 발리(Bali), 12~13학년 식스폼(Sixth Form)을 위한 한라 노스(Halla North)와 한라 이스트(Halla East), 그리고 7~11학년 학생들이 생활하는 물찻(Mulchat), 거문(Geomun), 사라(Sarah), 저지(Jeoji), 노로(Noro). 제주 오름 8개의 이름을 땄다. 한 기숙사에 남학생과 여학생이 다 있으며, 주말 기숙사 활동이나 기숙사 미팅 등의 시간을 함께한다.
기숙사 VS 통학, 무엇이 좋을까
NLCS 7~11학년 남녀 기숙사생 23명에게 기숙사와 통학 중 무엇을 선호하느냐고 물었다. 17명이 기숙사를, 나머지 6명은 통학을 선택했다. 기숙사를 좋아한 학생은 대체로 교우관계가 돈독해지는 데 도움이 되고, 생활하면서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선생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고 학교와 가까워 체계적인 시간 관리를 할 수 있다는 점이 뒤따랐다.
하지만 기숙사 생활은 규제가 많아 자유롭지 못하며 가족이 그립다는 게 문제였다. 친구 사이에 갈등이 생길 때가 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불만은 개인 공간이 없어 프라이버시가 보장되지 않는 점이라고 통학을 선호하는 학생들은 제시했다. 통학 쪽이 공부할 시간이 더 많다는 이유도 꼽았다. 기숙사 선호 학생들도 생활의 자유와 사생활 보호는 조금 더 확보돼야 한다고 밝혔다. 건강한 식단을 제공해 달라는 주장도 있었다. 
타인을 배려하는 법 깨닫게 돼
브랭섬홀아시아 기숙사에서 학생들이 합창 연습을 하고 있다.
브랭섬홀아시아 기숙사에서 학생들이 합창 연습을 하고 있다.
브랭섬홀아시아 9학년 학생들의 기숙사 미술 활동.
브랭섬홀아시아 9학년 학생들의 기숙사 미술 활동.
BHA 9학년 김가연 양은 기숙사 생활 2년차다. 부모님 도움 없이 스스로 인간관계를 형성해 나가야 한다는 게 무척 걱정스러웠지만 이를 극복하는 과정이 큰 배움과 깨달음을 안겨 주었다고 한다.     
“기숙사에서는 정해진 규칙에 맞춰야 해요. 한 사람의 행동으로 타인의 일과까지 망칠 수 있으니까요. 예를 들어 아침에 모든 9학년 학생들이 7시 30분까지 1층으로 내려와야 밥을 먹으러 갈 수 있어요. 내가 늦으면 그 시간만큼 친구들의 일과가 지체돼요. 집에서는 무엇이든 내가 중심이어서 타인을 배려하는 생활이 익숙지 않았잖아요. 저는 이게 공동체 생활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처음엔 불편하지만 익숙해질 즈음엔 자유롭지 못한 울타리 안에서 평화로울 방법을 이미 터득한 셈이니까요. 제가 유치원에 다닐 때만 해도 ‘이웃사촌’이 비 오는 날 김치전을 나눠 먹는 문화가 있었어요. 요즘은 기숙사가 아니라면 그런 공동체 문화를 체험할 기회가 없잖아요. 기숙사에선 친구들과 날씨가 좋으면 좋은 대로, 우중충한 날엔 우울한 대로 기분을 나누며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요.”
기숙사 입소 7개월째인 NLCS 10학년 김재현 군은 대인관계 경험과 규칙적인 생활 등을 기숙사 생활의 최대 장점으로 꼽았다.
“여러 명이 같이 생활한다는 것 자체가 좋아요. 자신만의 사고에서 벗어나 서로 이해하고 존중해 주는 경험을 토대로 대인관계를 더 잘 이해하게 되고요. 나중에 어른이 돼 사회생활을 할 때도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사회생활에 필요한 기술이나 지혜를 미리 접하고 배우는 기회니까요. 규칙적인 생활습관이 잡히는 것도 좋아요. 처음엔 힘들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익숙해지고 편안해지는 걸 느낍니다. 절제하는 방법도 배워요. 내가 하고 싶은 것보다는 중요한 것, 해야 할 것을 우선시하게 되죠. 참을성을 터득하게 됩니다.”
BHA 기숙사를 책임지고 있는 에리카 스위니(Erica Sweeney) 사감 선생님은 다양한 문화를 접하고 선후배가 가족처럼 지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BHA 기숙사에는 한국뿐 아니라 중국, 일본 등 다양한 나라에서 온 친구들이 있어요.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진 사람들과 어우러지는 건  사실 훈련 없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에요. 다른 국적의 친구와 방을 나누어 쓰고, 같은 식탁에서 일과를 이야기하며 공감대를 형성하다 보면 정말 많은 도움이 되죠. 우리 기숙사는 6학년부터 9학년까지 나누어 쓰고 있어요. ‘가족(Family)’이라는 개념을 이용해 선생님 한 분과 각 학년 최대 3명씩 모아 서로 의지하는 구도를 형성해 줍니다. 후배는 선배를 보며 배우고, 선배는 그 배움을 나누는 과정에서 성숙해지죠.”
스케줄 선택권 없고 갈등 해소가 쉽지 않아 
하지만 기숙사 생활의 제약도 만만치 않다. 김가연 양은 독단적으로 뭔가를 선택할 수 없다는 게 가장 아쉽다고 했다.
“하고 싶은 걸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요. ‘해야 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은 아무래도 차이가 커요. 해야 하는 것, 지켜야 할 것투성이 속에서 내가 하고 싶은 걸 못해 불편하다는 생각을 간혹 해요. 예를 들어 오후 5시부터 6시까지 혼자 책을 읽고 싶어도 기숙사에선 그 시간에 무조건 저녁을 먹어야 하죠.”
김재현 군은 기숙사생들 간의 다툼, 공부 시간 부족이 기숙사 생활의 가장 큰 단점이라고 소개했다. 
“같은 친구, 선후배들과 몇 년씩 함께하다 일어난 다툼이나 문제가 때론 오래 갑니다. 공동체 생활이 교우관계에 더 나쁜 경우죠. 사감 선생님들 중에는 권위적인 분도 가끔 계신데 학생들과 보다 눈높이를 맞춰 줬으면 좋겠어요.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 한정돼 있는 것도 아쉬워요. 자기 일정을 스스로 관리할 수 있는 통학생에 비해 공부 시간이 적습니다.”
브랭섬홀아시아의 기숙사 내부.
브랭섬홀아시아의 기숙사 내부.
브랭섬홀아시아의 기숙사 내부.
브랭섬홀아시아의 기숙사 내부.
BHA의 11학년 전소희 양은 지난 2년간의 기숙사 생활을 끝내고 지난해 여름부터 제주도로 내려온 가족과 함께 거주하고 있다. 개인에게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 자기계발을 하고 싶어 통학으로 바꿨다고 설명했다. 
“혼자서 생각하고 생활하는 게 더 편해요. 뭘 할 때 사람이 많으면 더 좋은 아이디어가 생기지만 갈등도 그만큼 빈번히 일어나기 마련이죠. 갈등을 빚고 해소하며 소비하는 시간을 나에게 투자할 수 있어서 좋아요. 물론 기숙사에 살며 긍정적 변화도 많았어요. 원래 자기주장이 강했고 마음에 드는 일만 골라 했는데, 그로인해 갈등이 생기는 걸 경험한 이후 남의 말을 잘 듣고 서로 맞춰가는 이타적이고 끈기 있는 사람이 됐죠.”
스위니 선생님도 갈등을 가장 우려하고 있었다.  
“사실 개인이 무엇을 추구하느냐에 따라 장단점도 다릅니다. 하지만 보편적으로 드러나는 단점은 확실히 ‘갈등’인 것 같아요. 학생과 학생 사이뿐만 아니라 학생과 선생, 선생과 선생의 관계에서도 자주 발생해요. 온종일 붙어 있는 친구와 선생님들에게 혼자 생각할 시간이 많이 주어지지 않아 갈등을 해소하기 힘든 면이 있어요. 이성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게 좋은데 상대방을 계속 마주치니까 감정적으로 자꾸 대처하게 되죠.”
서로 경청하면서 단점을 장점으로 바꿔야
[사진=BHA]
[사진=BHA]
기숙사를 통학보다 선호하는 학생들도 기숙사 생활의 여러 단점에 대해서는 개선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김가연 양은 “무작정 ‘규칙이니까 지켜라’가 아니라 규칙이 생긴 근본적인 이유라든가 지키지 못할 때 발생할 수 있는 결과를 잘 설명해 주셨으면 좋겠다. 기숙사의 제약이 학생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어느 정도 개인의 자유를 허용해 준다면 훨씬 더 좋겠다는 바람을 피력했다. 약간의 자유가 공동체 생활에 익숙지 않은 학생들에게 더 나은 환경을 조성해 준다고 믿는다.
8개월 전 NLCS 물찻 남자 기숙사의 부사감으로 취임한 하키(J. Hockey) 선생님은 자신의 기숙사 생활을 ‘어항 속 금붕어’로 비유한다. “모든 행동이 학생들에게 드러나기 때문에 모범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긴장될 때도 있다”는 것이다. 
“서로를 이해하고 더 행복한 기숙사를 만들기 위해서는 선생님과 학생 모두 서로를 존중하고 경청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이것이 기숙사 생활의 단점을 최소화하고 장점으로 바꾸는 방법입니다.”
글·사진=김경은(브랭섬홀아시아 9)·이승훈(노스런던컬리지에잇스쿨 제주 9) TONG청소년기자 구억리지부

댓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