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9일 화요일

보이지 않는 68%의 수수께끼를 찾아서




우주의 68%를 차지하지만 정체조차 모르는 암흑에너지를 찾는 과학자들의 노력이 본격적인 궤도에 들어섰다.
이제 10여 년 뒤면 암흑에너지가 어떤 존재인지, 혹은 있는지 없는지 알아낼 수 있을 전망이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암흑에너지는 과연 어떤 방법으로 자신의 존재를 우리에게 알리고 있을까.


1998년은 우주론 역사에 남을 만한 해다. 미국 존스홉킨스대 애덤 리스 교수와 호주국립대 브라이언 슈밋 교수가 이끈 연구팀이 우주의 팽창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는 증거를 처음으로 제시했다. 팽창 속도가 점점 느려지고 있다는 당시의 이론과는 정반대인 결과였다. 같은 해, 미국 UC버클리 솔 펄머터 교수팀 역시 똑같은 결과를 내놨다. 더불어 이 현상을 일으키는 존재를 지칭하는 용어인 ‘암흑에너지’도 처음 등장했다. 미국 시카고대 마이클 터너 교수는 ‘초신성 거리 측정을 통한 암흑에너지 조사에 대한 전망’이라는 논문에서 처음으로 이 단어를 썼다.
두 연구를 시작으로 우주론 연구는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다. 후속 연구 결과도 우주의 가속팽창을 뒷받침했다. 결국, 과학자들은 미지의 존재가 팽창을 촉진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암흑에너지라고 부르는 이 미지의 존재는 우주 전체에서 약 68%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역시 정체를 모르고 있는 암흑물질이 약 27%라는 점을 생각하면, 우리는 우주의 95%에 대해 무지하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인류의 무지함을 밝힌 공로(?)로 리스 교수와 슈밋 교수, 펄머터 교수는 2011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노벨상 받은 암흑에너지 탐사 1세대

이들이 노벨상을 받은 연구는 암흑에너지 탐사의 1세대에 해당한다. 연구 대상은 주로 초신성, 그중에서도 표준촛불로 쓰이는 1a형 초신성(SN1a)이었다. 이런 종류의 초신성은 절대밝기가 항상 같다. 따라서 지구에서 볼 때는 멀리 있는 1a형 초신성일수록 어둡다. 이런 원리를 이용해 지구와의 거리를 측정한다.
그런데 관측한 표준촛불 초신성까지의 거리가 예상하고 있던 우주 팽창에 의한 거리보다 더 멀었다. 우주가 예상보다 더 빨리 팽창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후 과학자들은 더 많은 표준촛불 초신성을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암흑에너지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서는 우주의 지도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넓은 범위에서 가능한 많은 수를 관측하는 게 중요하다.
2000년대 들어 암흑에너지 탐사의 차세대 계획이 이뤄졌다.
캐나다-프랑스-하와이 망원경 초신성 유산 조사(CFHT-SNLS), 에센스(ESSENCE), 슬로안 전천 탐사(SDSS) 등이 대표적이다.
과학자들은 1a형 초신성을 이용해 멀리 떨어져 있는 천체의 거리를 측정하고 은하와 퀘이사가 이루는 구조를 관측했다.
암흑에너지 특별위원회(DEFT)는 2006년 현업 과학자들의 의견을 모아 향후 암흑에너지 연구의 추진 방향에 대한 보고서를 출판했다. 이 보고서에서는 미래의 분광광시야 관측의 목표와 세대구분을 명시했다. 이에 따라 2000년 이전의 연구는 1세대, 2000년대 이뤄진 CFHT-SNLS, SDSS-II 등은 2세대로 나뉘었다. 2세대까지는 앞으로 암흑에너지의 정체를 밝히는 데 필요한 데이터를 분석할 수 있는지 가능성을 타진하는 수준이었다. 결과는 긍정적이었다. 암흑에너지 자체에 대한 이야기가 가능해지는 건 2010년대에 시작된 3세대 연구부터다. SDSS에는 우리나라 고등과학원도 10년째 참가하고 있다.







암흑에너지 찾는 네 가지 방법

암흑에너지 특별위원회는 2006년도 보고서에서 암흑에너지의 본질을 조사하기 위한 네 가지 방법을 추천했다. 일단 가속팽창을 확인한 방법인 1a형 초신성이 있다.
1파트에서 언급한, 중입자음향진동(BAO)을 표준자로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원리는 이렇다. 멀리 보이는 두 산봉우리까지의 거리를 알고 싶다고 하자. 두 봉우리 사이의 길이를 미리 알고 있다면(표준자), 관측 지점에서 보이는 두 봉우리 사이의 길이를 측정해서 산봉우리까지의 거리를 계산할 수 있다.
우주에도 그런 표준자가 숨어 있다. 우주 초기에는 물질과 복사에너지가 하나의 플라스마를 이뤘다. 이 상태에서는 물질이 중력에 의해 모일 때는 물질이 동반하고 있는 복사에너지의 압력이 함께 증가한다. 이 압력이 중력보다 커지면 수축을 멈추고 팽창하게 된다. 그런데 멀리 갈수록 압력의 힘이 작아지고, 다시 중력이 우위를 점하면 수축한다. 이 반복되는 주기는 마치 산의 정상이나 계곡과 같은 구조를 만들게 되는데, 이것이 BAO다. 이 정상 사이의 길이는 WMAP이나 플랑크와 같은 실험을 통해서 미리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단순히 지구에서 보이는 이 표준자의 길이만 알면 은하까지의 거리를 알 수 있게 된다.
또 하나는 우주배경복사를 이용해 은하단의 밀도를 관측하는 방법이다. 우주배경복사의 광자가 중간에 은하단의 뜨거운 가스를 만나면 에너지가 상승한다. 그러면 우주배경복사에 왜곡이 생기고, 이를 관측하면 전체 우주의 은하단 분포를 알아낼 수 있다. 이는 그 존재를 예측한 과학자의 이름을 따 선야예프-젤도비치 효과라고 부른다.
그리고 약한 중력렌즈도 있다. 중력렌즈는 관측 대상과 지구사이에 있는 질량이 큰 천체에 의해 관측 대상에서 나오는 빛이 휘어지는 현상을 말한다. 그중에서 약한 중력렌즈는 빛이 휘어 지는 정도가 작아 고리를 만들거나 관측 대상이 여러 개로 보이지는 않는 경우를 말한다. 먼 은하에서 나오는 빛이 중간에 있는 은하단의 중력 때문에 휘어지는 정도를 측정하면 은하단의 분포를 알 수 있다. 이를 이용해 암흑에너지가 우주 팽창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연구한다.
현재 3세대 연구는 진행 중이다. 미국, 영국, 독일, 스페인 등 이 참여한 암흑에너지조사(DES)는 지난 9월부터 지름 4m짜리 망원경을 이용해 5000제곱각(지구에서 본 달의 면적은 약 0.2제곱각)에 달하는 남반구의 하늘을 조사하고 있다. 앞으로 5년 동안 3억 개의 은하와 10만 개의 은하단, 4000개의 새로운 초신성을 관측할 계획이다.
2008년부터 진행 중인 SDSS-III의 일부인 BOSS도 중입자음향진동(BAO)을 관측해 우주가 진화하는 동안 암흑에너지의 역할이 무엇이었는지를 연구한다. 110억 광년까지 떨어져 있는 은하와 퀘이사를 관측해 우주 팽창이 중력에 의해 느려지다가 다시 암흑에너지에 의해 빨라지는 전환기의 모습을 알아볼 계획이다.






4세대 연구가 밝혀낼 암흑에너지의 정체
암흑에너지의 정체가 드러나는 건 현재 계획 중인 4세대 연구가 끝나는 시점으로 과학자들은 2025년경으로 보고 있다. 천문연과 고등과학원이 참여하는 DESI가 바로 4세대에 해당한다. 미국이 주도하는 DESI는 하와이에 있는 4m급 망원경을 이용해 2018년부터 5년 동안 우주를 관측한다. 인류가 관측할 수 있는 밝은 은하의 3분의 1 이상, 전체 하늘의 3분의 1을 탐사할 예정이다. 역시 미국이 주도하는 LSST는 8m급 망원경으로 BAO, 초신성, 약한 중력렌즈 현상을 관측하며 2020년경부터 10년 동안 관측할 계획이다.
암흑에너지 탐사는 우주에서도 이뤄진다. 유럽우주기구(ESA)가 2020년 발사할 예정인 유클리드(EUCLID)는 암흑물질과 은하의 분포를 관측해 우주 팽창의 역사와 거대 구조의 형성을 탐사한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도 암흑에너지 탐사 위성을 우주에 올린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과연 암흑에너지는 어떤 존재로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게 될까. 고작 우주의 5%밖에 모르던 인류가 지식의 범위를 넓혀가게 될까, 아니면 암흑에너지란 애초에 없었고 우리가 알던 과학이 틀렸다고 밝혀지게 될까. 암흑에너지 탐사는 우주의 비밀과 미래에 대한 전망을 우리에게 제시할 것이다. 우주의 한 구석에서 평생을 살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우주는 어떤 경이로운 모습을 보여줄까.


          과학동아

댓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