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25일 일요일

비누막이 제시하는 최적화 해법

PART 3 비누막이 제시하는 최적화 해법

최소 둘레로 최대 면적을 찾는 등주문제
 
정육면체 틀을 만들어 비눗물에 넣었다 꺼내면 사진처럼 가운데 작은 정사각형 막이 생기고 각 모서리에 막이 연결된다. 거품 막의 넓이를 최소화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때 이웃하는 곡선 2개가 109.5° 각도로 만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수학자가 비눗방울을 직접 연구한 것은 최근이다. 하지만 최적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비눗방울과 비누막을 이용한다면 넓게 볼 필요가 있다. 즉 ‘길이가 일정한, 평면 위에 있는 닫힌 곡선 중에서 넓이가 최대인 곡선은 어떤 곡선인가?’라는 질문까지 연장하면 비눗방울의 역사는 기원전까지 거슬러 오른다. 닫힌 곡선은 다각형처럼 시작점과 끝점이 같은 곡선을 말한다.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페니키아의 항구도시 튀로스의 공주 디도는 부유한 시카이오스와 결혼했다. 그런데 튀로스의 왕이자 디도의 오빠인 피그말리온은 재산을 탐내고 시카이오스를 살해했다. 이에 위협을 느낀 디도는 재산을 갖고 자신을 따르는 이들과 함께 아프리카의 북부 해안으로 도망쳤다.

이곳에 정착하려던 디도는 원주민에게 한 마리의 황소 가죽으로 덮을 수 있는 만큼의 땅을 나눠달라고 부탁했다. 원주민이 흔쾌히 승낙하자 디도는 황소 가죽을 최대한 가늘고 긴 띠 모양으로 잘랐다. 그리고 원 모양으로 붙여 가죽 고리를 만들어 원하는 땅의 영역을 표시했다. 이곳이 카르타고다.

그런데 디도 공주는 왜 원 모양으로 가죽 고리를 만들었을까? 수학자들은 총명했던 디도 공주가 같은 둘레로 가장 넓은 면적을 가지는 도형이 원이라는 사실을 알았던 것으로 생각한다. 이 이야기는 등주문제의 기원으로 언급된다. 등주문제는 같은 둘레를 가지는 닫힌 곡선의 면적에 관한 문제다.
 
가장 효율적인 평면분할^면적이 1일 때 도형을 감싸는 길이 가 가장 짧은 도형은 원이다. 하지 만 원은 평면을 빈틈없이 메울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따라서 평면을 같은 면적으로 된 도형으로 나눌 때 길이를 최소화하는 도형은 정육각 형이다. 즉 정육각형 타일을 깔 때 재료가 가장 적게 든다.

구체적으로 보면 2차원 평면에서의 등주문제는 ‘둘레 길이가 L인 평면도형 중 넓이 A가 최대인 것을 구하는 문제’다. 이를 식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L2 ≥4πA(단, 등호는 원일 때 성립) 이 부등식을 등주부등식이라 한다. 식에 따르면 같은 둘레일 때 면적이 최대인 도형은 원이다. 원일 때의 값을 식에 대입해보면 왼쪽은 (2πr)2, 오른쪽은 4π(πr2)이라 서로 같은 걸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등주문제에 대한 엄밀한 증명은 19세기에서야 이뤄졌다. 기하학에 뛰어난 재능을 발휘한 수학자 야코프 슈타이너가 1838년에 원이 정답이라는 것을 대칭성을 이용해 증명했다. 수학자 라그랑주도 변분법이라는 수학 이론으로 같은 문제를 고민했다. 슈타이너 이전에도 증명이 있었으나 모두 해답이 존재한다는 가정에서 시작해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슈타이너는 해답이 존재한다는 것까지 증명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

평면에서 등주문제의 증명이 이뤄지자 수학자들은 등주문제를 곡면으로 확장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비눗방울에 대한 수학적인 연구의 실질적인 시작이다. 슈타이너의 증명법은 2차원 평면뿐만 아니라 모든 차원의 유클리드 공간에도 적용돼, 3차원에서 같은 넓이를 가진 닫힌 곡면 중 가장 부피가 큰 것이 구면이라는 사실도 증명했다. 브룬과 민코프스키는 n차원까지 등주문제를 확장시켰다.

비눗방울이 모여 이룬 거품이 만드는 수학적인 성질은 19세기 물리학자 플라토에 의해서 처음 밝혀졌다. 그는 물과 비누, 글리세린을 이용해 18시간 정도 유지되는 비눗방울과 비누막을 만들고 관찰해 거품의 기하학적 특징을 알아냈다. 바로 ‘거품의 모서리는 세 막으로만 이뤄지며, 이때 세 막 가운데 이웃하는 두 막은 언제나 120° 각도를 이루고, 한 점에서는 네 모서리만 만난다’는 내용이다. 네 모서리가 만날 때의 각도는 109.5°다. 실험에서 나온 이 법칙은 10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잘 맞고 있다.

그런데 비눗방울은 왜 120°와 109.5°로 만날까? 비눗방울이 만날 때 표면적이 최소가 되는 각도이기 때문이다. 120°와 109.5°로 이뤄진 구조는 벌집, 현무암 기둥, 잠자리 날개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비눗방울은 한 점에서 4개가 겹쳐지는 왼쪽과 같은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오른쪽과 같은 모습이 왼쪽보다 더 표면적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정사각형의 네 꼭짓점을 연결하는 선 중에서 가장 짧은 것을 찾는 문제로 설명할 수 있다.

최단 경로 구하는 슈타이너 점

문제 : 한 직선에 있지 않은 세 점 A, B, C가 있다. 점 중에서 이 세 점까지의 거리를 더했을 때 최소가 되는 점 P를 찾아라.

이것은 세 점을 어떻게 연결해야 가장 짧은 경로, 즉 최단 경로가 되는지를 알아내는 문제다.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갈릴레이의 제자로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였던 토리첼리가 17세기에 처음 찾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200여 년이 지난 19세기에 슈타이너가 기하학적으로 증명해냈다. 한편 피에르 페르마는 삼각형으로 같은 문제를 제시했었다.





그럼 육각형의 6점에는 슈타이너 점이 항상 존재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정육각형이 아닌 평범한 육각형 점이라면 존재할 수 있다. 즉 점의 위치에 따라서 슈타이너 점의 존재가 달라질 수 있다. 이처럼 슈타이너 점을 이용하면 도시나 네트워크를 잇는 최단거리를 찾을 수 있다. 물론 비누막을 이용하면 상대적으로 쉽게 찾을 수 있다.

우리나라 도시를 잇는 가장 짧은 경로는?

슈타이너 점을 우리나라 도시에 적용하면 도시를 연결하는 가장 짧은 길을 얻을 수 있다. 즉 우리나라 지 도와 주요 도시를 점으로 표현한 뒤 이 점마다 기둥을 세워 비눗물에 넣으면 도시를 가장 짧은 거리로 연결하는 길이 비누막으로 만들어진다. 단, 이 실험이 평면에서 이뤄지므로, 우리나라 도시가 구면이 아닌평면에 있다는 가정에서 구하는 최단 경로가 된다.

다양한 입체도형 틀을 비눗물에 담그면 어떤 모양이 생길까?

철사로 입체도형을 만든 뒤 비눗물에 담궜다 꺼내면 다양한 비누막 모양을 발견할 수 있다.
 
철사로 입체도형을 만든 뒤 비눗물에 담궜다 꺼내면 다양한 비누막 모양을 발견할 수 있다.

비눗방울 3개의 만남은 증명 못했다
 
2개의 비눗방울이 첫번째 모양처럼 생길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최근에서야 수학적으로 증명됐다. 그 이유는 다른 그림처럼 2개의 비눗방울이 만들어질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이 최근에서야 확인됐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3개로 만들어지는 비눗방울의 모양이 증명되지 못한 이유는 3개의 비눗방울로 만들어질 수 있는 비눗방울의 모든 모양이 아직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학자가 비눗방울을 연구하는 이유는 자연을 이해하기 위해서죠. 자연현상을 관찰하면 대부분 최소작용의 원리를 따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요. 어쩌면 자연은 수학자가 찾으려고 하는 최적화 문제의 해답을 항상 알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비눗방울과 비누막을 연구하는 서검교 숙명여대 수학과 교수의 말이다. 수학자는 가장 논리적인 언어로 주어진 조건 또는 상황에 가장 적합한 해법을 찾으려고 노력하는데, 여기에 비눗방울이 도움을 준다는 설명이다. 수학자가 비눗방울을 연구하는 이유다.

많은 수학자가 매일 비눗방울을 연구하지만 아직까지 비눗방울의 수학적인 성질에 대해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더 많다. 우리는 비눗방울을 보면서 당연히 동그랗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비눗방울이 수학적으로 동그랗게 생길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1950년대에야 러시아 수학자 알렉산드로프가 증명했다. 또 플라토가 100년 전에 실험으로 발견한 비눗방울의 기하학적 성질도 1970년대에 미국 수학자 테일러가 증명했다. 그가 비누거품이 서로 합쳐질 때 플라토가 알려준 대로 세 개의 비눗방울이 만날 때 세 모서리가 정확히 120°로 만나고, 네 모서리가 만날 때는 109.5°로 만난다는 사실 일부를 증명한 것이다.

2개의 비눗방울이 플라토가 발견한 대로 존재한다는 것도 최근에야 수학적으로 증명됐다. 하지만 3개의 비눗방울이 플라토의 관찰대로만 존재하는지는 증명하지 못하고 있다. 왜 이렇게 수학적인 증명이 어려운 것일까? 수학에서는 완벽성을 추구한다. 수학적으로 어떤 모양이 유일한 답이라는 것을 증명하려면 우선 가능한 모든 모양을 제시한 뒤, 각 모양이 수학적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밝히면서 그 수를 줄여 최종적으로 한 가지 모양만이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와야 한다. 그런데 처음에 가능한 모든 모양을 제시하기가 쉽지 않다.

생각지 못한 모양이 있을 수 있어서다. 2개의 비눗방울에 대한 증명에 오랜 기간이 걸린 이유다. 즉 모든 가능성이 검증됐으므로 그만큼 완벽하다고 볼 수 있다.

비눗방울과 비누막은 최적화 문제에서 언제가 가장 효율적인가를 알려주기 때문에 수학자에게 인기가 높다. 최적화 문제는 학교나 직장에서 집으로 갈 때 어떤 경로로 가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지를 알려주고, 휴대전화나 인터넷 같은 네트워크에서도 가장 효율적인 접속 경로를 찾도록 돕는다.철사로 어떤 모양을 만들어 비눗물에 담궜다 꺼내면 ‘최소작용의 원리’에 따라 넓이가 최소가 되는 면적이 생긴다. 즉 비눗물이 만드는 비누막은 아무렇게나 생기는 것 같지만 자연은 면적이 최소가 되는 형태를 만들어 재료를 가장 적게 쓰도록 만든다. 이렇게 비누막이 만드는 곡면을 ‘극소곡면’이라고 한다.

비눗방울이나 비누막을 이용해 만들 수 있는 곡선 중 가장 흔한 것에 헬리코이드 곡선과 카테노이드 곡선이 있다. 줄의 양 끝을 잡고 있으면 중력에 의해 가운데가 밑으로 처지는 곡선이 만들어지는데, 이를 ‘현수선’이라고 한다. 이를 이용해 만든 다리인 현수교에서 볼 수 있는 현수선도 극소곡면이다. 또 현수선을 회전시키면 나타나는 카테노이드 곡선과, DNA의 이중나선, 산을 오를 때 빙 돌아서 올라가는 길 같은 회전식 곡선, 즉 헬리코이드 곡선은 대표적인 극소곡면이다. 이처럼 극소곡면은 균형이 잘 맞고 안정적인 구조여서 실생활에서 자주 볼 수 있다. 뮌헨올림픽 경기장의 비누막 구조가 대표적이다. 비누막 구조를 이용하면 아름다우면서도 재료를 최소화해 경제적이고 구조가 튼튼하다는 장점이 있다.

필즈상도 비눗방울을 좋아해?
 
제시 더글라스(사진)는 비눗방울 연구자다.

1930년 1회 필즈상 수상자 2명 중 1명인 제시 더글라스(사진)는 비눗방울 연구자다. 그는 비누막 연구에서 중요한 업적을 세워 1회 필즈상을 받았는데, 닫혀 있는 철사 구조물을 넣으면 항상 막이 생긴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후에도 2명의 수학자가 비눗방울과 관련한 연구로 필즈상을 수상했다.

부피가 일정할 때 표면적을 최소로 하는 모양은?
 
‘워터 큐브’라는 별명을 가진 수영경기장(사진)이다.

‘일정한 부피의 모양으로 공간을 분할할 때 넓이를 최소화하는 방법은?’ 부피가 일정할 때 표면적이 최소인 모양으로 채우는 문제다. 1887년 과학자 켈빈경은 사각형 6개와 육각형 8개로 이뤄진 십사면체가 정답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비누거품에서 이런 모양이 발견되지 않았다. 1993년 웨이어와 펠란은 컴퓨터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그들이 찾은 웨이어-펠란 구조는 십사면체 3쌍과 십이면체 1쌍이 결합해 기본 형태를 만들고, 이것이 반복되면서 어떤 공간에서도 표면적이 최소가 되는 입체구조가 생긴다. 이 거품구조는 켈빈경이 추측한 십사면체와 0.3% 정도 차이를 보였다. 웨이어-펠란의 거품구조를 응용한 건축물이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처음 선을 보였다. ‘워터 큐브’라는 별명을 가진 수영경기장(사진)이다. 비누거품 모양의 막 634개가 표면 전체를 감싸는 워터 큐브는 비눗방울 연구가 실용화된 대표적인 사례다.



수학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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