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속도가 커질수록 시간은 천천히 가고 길이는 줄어들며
질량은 늘어난다' '중력에 의해 시간과 공간은 찌끄러진다.' 기존의 세계관을 밑바닥부터 뒤흔들고 나아가 새로운 우주론 탄생의 모태가 된
아인슈타인의 상대론의 세계를 알아본다.
'상대적'의 뜻
서울
종로 2가에 있는 A과자점. 그 과자점 왼쪽에 있는 다방에서 친구와 만나기로 했다고 하자. 독자 같으면 (그림1)에서 어느쪽 다방으로 갈까?
다방 B일까 다방 C일까?
(가)의
경우라면 명백히 과자점 A의 왼쪽다방은 B이다. 그러나 (나)의 경우라면 분명히 다방 C가 왼쪽에 있다.
종로
2가는 복쪽에서 볼 때와 남쪽에서 볼 때는 (그림1)의 (가), (나)처럼 좌우의 개념의 서로 달라진다.
(그림1)
A과자점의 왼쪽 다방은 B·C중 어느쪽?
보는
사람의입장에 따라 왼쪽과 오른쪽은 뒤바뀐다. 그래서 누구와 약속을 할 때는 '과자점 A를 향해서 왼쪽' 또는 '과자점 A를 등지고 왼쪽' 과
같이 어느 입장에서 말하는 지를 밝혀주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고 그냥 과자점 A의 왼쪽 다방이라 하면 답은 둘일 수 밖에 없다.
이렇게
입장에 따라 '왼쪽'의 실질적 내용이 바뀔 때 그 개념을 '상대적'이라 부른다. 즉 입장에 따라 그 뜻이나 내용이 달라질 수도 있을 때 그
개념은 상대적 개념이 된다.
이와는
반대로 누가 보아도 틀림 없이 답이 꼭 하나일 때 그 개념은 '절대적'이라 부른다. 예컨대 아버지란 호칭은 상대적 호칭이다. 가령 E는 F의
아버지이고, F는 G의 아버지라 하자. 그러면 F라는 인물은 아버지도 될 수 있고, 아들도 될 수 있으며 또 때에 따라서는 동생도 되고,
아저씨도 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독교에서처럼 '하나님 아버지'라 할 때의 '하나님 아버지'는 절대적 개념이다. 하나님 아버지는 누가 보아도 하나님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통속적인 촌수에 따라 우리 아버지가 '하나님 아버지'라 부르니 나는 '하나님 할아버님' 이라 불러야 된다고 생각한다면 웃음거리가
된디.
사람에 따라 다른 '동시'
이런
이야기를 시작한 것은 수없이 많은 사람이 이런 일 때문에 골탕을 먹기 때문이다. 예컨대 서울의 강남 고속버스 터미날은 한 블록(사방이 큰길로
둘러싸여 있는 거리의 커다란 구역을 뜻함)을 형성한다. 그런데 그 고속버스 터미날 앞쪽에 있는 H다방에서 만나잔다. 터미날 앞쪽은 도대체 어느
쪽을 말할까. 적어도 4군데가 있었던 것이다.
또
'이 사람은 크다'라고 누가 이야기했다고 하자. 무슨 뜻일까? 이 사람이 크다 할 때는 무엇 무엇에 비해서 크다고 기준이 되는 물체를 정해놓지
않고는 의미가 없다. 이 사람이 크다는 것은 한국사람의 평균치보다 크다는 뜻인지 그 자리에 모여있는 난쟁이들에 비해서 크다는 뜻인지, 또는
전등불 스위치를 의자를 받치지 않고도 끌 수 있는 정도로 큰지 도무지 알 수 없다. '크다'는 개념은 상대적인 개념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가 쓰고 있는개념중에는 상대적인 개념이 많다. 그 상대적인 개념중에서도 아버지, 형제, 아저씨, 조카 등 친척관계라든가 '크다' '작다'
라든가 '왼쪽'오른쪽' 등의 개념이 상대적이란 뜻은 충분히 알았다. 그렇다면 '동시'(同時, simultaneity)란 개념은 어떨까. 예컨대
'서울과 워싱턴에서 한미 양국은 무역협정에 관한 협정문을 동시에 발표했다'라는 신문기사를 읽었을 때 이 '동시'는 절대적인 개념일까, 상대적인
개념일까?
얼핏
듣기에 세계의 누구도 이 '동시'란 말의 뜻을 의심할 사람은 없어 보인다. 즉 누구에게도 그 동시는 절대적인 것으로 느껴질 것이다. 다시 말해
서울과 워싱턴에서의 동시는 누가 보아도 틀림 없이 단 하나의 '동시'인 것처럼 느껴진다. 이렇게 의심할 바도 없이 동시의 개념은 절대적인 것
처럼 보인다.
그러나
과연 정말일까? 정말로 서울과 워싱턴에서 발표한 협정문은 누구에게도 동시에 발표된 것처럼 보였을까? 이런 어처구니없는 질문을 최초로 심각하게
생각한 사람이 있었다. 다름아닌 26세의 젊은 알버트 아인슈타인이었다. 1905년의 일이다.
광속 불변의 원리
그는
그의 유명한 첫 논문에서 '동시'의 개념은 상대적이란 것을 명백히 했던 것이다. 왜 그럴까? 이것을 이해하려면 아무래도 까다로운 물리이론에 귀를
기울여주어야만 한다. 그러니 꾹 참고 다음 두 절을 읽어주기 바란다. 그러나 다음 두 절을 읽기에는 너무도 인내심이 없는 사람은 부득불 그
부분을 건너뛸 수 밖에 없다. 다만 그 댓가로서 '동시'란 개념도 결국은 보는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구나 하는 것은 믿어줘야 한다.
두
장소 J와 K에서 사건 ${E}_{j}$와 ${E}_{k}$가 동시에 일어났다는 것은 어떻게 정의해 주어야 보통사람의 구미에 맞을까? 우선 J와
K가 같은 장소였다면 ${E}_{j}$와 ${E}_{k}$가 동시에 일어났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누가 보아도 틀림없이 그것만은 동시이다.
즉, 한 장소에서 동시에 일어난 두 사건은 누가 보아도 동시에 일어난 것처럼 보인다. 이것만은 자명하다.
다음으로
J와 K가 같은 장소가 아니라 떨어져 있다고 하자. 이때는 J와K의 중간점을 L이라 할 때 다음과 같이 정해주는 것이 가장 타당할 것같다.
J와
K에서 두 사건 ${E}_{j}$와 ${E}_{k}$가 일어난 순간 중앙점 L에 이 사실을 신호로 보내준다고 하자. 이때 L에 있는 사람이 이
두 신호를 동시에 받았다고 할 때 J와 K에서일어난 두 사건 ${E}_{j}$와 ${E}_{k}$는 동시에 일어났다고 정하는 것이 상식적으로는
가장 타당해 보인다. 그래서 이 상식적인 정의를 두 장소 J와 K에서 일어난 두 사건 ${E}_{j}$와 ${E}_{k}$의 동시성의 정의로
쓰기로 하자. 그렇다면 이 신호로서는 무엇을 쓰면 될까? 가장 손쉬운것은 '소리' 신호이다.
광속
불변의 원리
그런데
그 소리 신호는 바람이 불면 곤란하다. 왜냐하면 바람이 불면 소리 신호의 속도는 방향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또 J와 K사이가 진공일 때는
'진공에서는 소리가 전달되지 않으므로' 신호로써 쓸 수가 없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은 전달되는 방향에 관계없이 언제나 속도가 일정한 '빛'을 신호로 쓰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아인슈타인이 이런 생각을 하게 된
1905년보다 18년이나 앞선 1887년에 미국의 '마이켈슨'과 그의 조수 '몰리'는 유명한 '마이켈슨·몰리'(Michelson-Morley)의
실험을 했다.
그들의
실험은 빛의 속도는 진공속에서는 방향에 관계없이 일정하다는 것이었다. 그 뿐만 아니라 사실은 빛을 내는 광원이나 빛을 받는 관측자 사이의
상대운동에도 무관하다는 것이다. 이 놀라운 사실을 '광속 불변의 원리' 라고 부른다. 이렇게 광속은 방향에 관계없이 그 전달속도가 꼭 같으니
만큼 '동시'의 정의에는 꼭 알맞은 '신호'로서 사용할 수가 있다.
'동시'의 상대성
'동시'란
개념이 사람에 따라, 또는 좀 더 정확하게 관측자의 운동상태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보기 위해 레일 위로 달리는 열차를 생각하자.
(그림2)에서 처럼 이 열차는 레일에 대해 왼쪽으로 달라고 있다. (그림2)의 (a), (b), (c), (d)는 시간이 지나는데 따른 열차와
레일 자이의 상대위치를 표시한다.
(그림2)
(a)에서 이 열차의 앞부분 J와 레일위의 점 J'가 일치한 순간 전기스파크가 발생한다(빛이란 신호를 방출). 또 이 열차의 뒷부분 K와 레일상의 점 K'가 일치한 순간에도 전기스파크가 생긴다. 이 두 전기스파크가 동시에 일어났나 아닌가를 열차의 중간점에 있는 관측자 L과 레일의 중간점에 있는 관측자 L'는 어떻게 관측할까?
(그림2)에서는
이 두 사건이 지상에 있는 사람 L'에게 '동시'가 되도록 그려 놓았다. 즉 열차 앞쪽의 J가 레일위의 점 J'와 일치한 순간에 발사된 빛이
(c)에서 처럼 레일 위의 중간점 L'에 도착한 순간과 열차 뒷쪽의 K가 레일 위의 한점 K'를 지나갈 때 발사한 빛이 L'에 도착한 순간이
동시(레일 위의 중간점인 L'라는 한 장소에서의 동시이니까 자명)가 된다.
그
결과 레일의 중간점 L'에 있는 관측자는 이 두 사건(J와 J'의 일치 및 K와 K'가 일치했다는 사건)은 동시에 일어난 것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이 꼭같은 두 사건을 열차내에 있는 관측자 L은 다르게 해석한다. 즉 L에 대해서는 J·J'가 일치했을 때 보내진 빛 쪽이 (b)에서 처럼 L에
먼저 도착한 후 한참 후에야 K와 K'가 일치한 순간에 발사된 빛이 L에 도착(그림d)한다. 따라서 열차내의 중간점에 있는 사람 L은 앞쪽
J·J'에서 일어난 사건이 먼저 일어나고, K·K'가 일치한 뒷쪽에서 일어난 사건은 뒤에야 일어난 것처럼 보인다. 결국 열차내의 중간점 L에
있는 사람은 위의 두 사건을 동시라 생각할 수 없게 된다.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지점에서 일어난 두 사건은 일반적으로 보는 사람(정확히는 보는 사람의 운동상태)에 따라 달라졌던 것이다.
시간·공간의 새로운 개념
이렇게
서로 떨어져 있는 두 지점 J와 K에서 일어난 두 사건 ${E}_{j}$와 ${E}_{k}$는 보는 사람에 따라 동시가 될 수도 있고 동시가
아닐 수도 있다. 즉 동시는 절대적 개념이 아니고 상대적 개념이란 것이 증명된 셈이다. 그 결과 시간·공간은 절대적 개념이 아니라 상대적
개념이란 것을 아인슈타인은 보여주었다.
로렌츠(Lorentz)
변환이라는 힘든 수식을 써야만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이 결과를
$x'=\frac{x-vt}{\sqrt{1-\frac{{v}^{2}}{{c}^{2}}}}$, t'= $\frac{t-\frac{v}{{c}^{2}}x}{\sqrt{1-\frac{{v}^{2}}{{c}^{2}}}}$
라는 식으로 표시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유도하는 것은 생략). 이 식에서 v는 두 물체간의 상대속도, c는 광속을 뜻한다. 이 수식을 쓰고, 또 막대나 물체의 길이는 '동시에 그 양단을 잰다'라는 약속을 지킨다면 운동하는 물체의 길이는 길이 방향으로
$l'=\sqrt{1-\frac{{v}^{2}}{{c}^{2}}}l$
로 관측된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 즉 운동하는 물체의 길이는 운동방향으로 $\sqrt{1-{v}^{2}/{c}^{2}}$의 율로 줄어들게 된다(로렌츠 단축). 마찬가지로 시계의 시간은
$△t' =\frac{△t}{\sqrt{1-\frac{{v}^{2}}{{c}^{2}}}}$
처럼 느리게 진행한다.
또 물체의 질량마저도
$m'=\frac{m}{\sqrt{1-\frac{{v}^{2}}{{c}^{2}}}}$
처럼 증가하게 되어 있다.
$x'=\frac{x-vt}{\sqrt{1-\frac{{v}^{2}}{{c}^{2}}}}$, t'= $\frac{t-\frac{v}{{c}^{2}}x}{\sqrt{1-\frac{{v}^{2}}{{c}^{2}}}}$
라는 식으로 표시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유도하는 것은 생략). 이 식에서 v는 두 물체간의 상대속도, c는 광속을 뜻한다. 이 수식을 쓰고, 또 막대나 물체의 길이는 '동시에 그 양단을 잰다'라는 약속을 지킨다면 운동하는 물체의 길이는 길이 방향으로
$l'=\sqrt{1-\frac{{v}^{2}}{{c}^{2}}}l$
로 관측된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 즉 운동하는 물체의 길이는 운동방향으로 $\sqrt{1-{v}^{2}/{c}^{2}}$의 율로 줄어들게 된다(로렌츠 단축). 마찬가지로 시계의 시간은
$△t' =\frac{△t}{\sqrt{1-\frac{{v}^{2}}{{c}^{2}}}}$
처럼 느리게 진행한다.
또 물체의 질량마저도
$m'=\frac{m}{\sqrt{1-\frac{{v}^{2}}{{c}^{2}}}}$
처럼 증가하게 되어 있다.
또
이 공식을 적절히 고쳐쓰면 질량이 어떤 방법에 의해 △m만큼 없어질 때 △E=c²△m만큼의 에너지가 발생하게 된다. 이것이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공식인 에너지 질량 공식 E=mc²이다. 즉 질량과 에너지는 같은 개념이며 서로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변환이 가능하다. 물론 이것이 원자탄과
원자력 발전소의 기본원리가 된다.
특수상대성이론이 완성한 전자기학
1905년에
발표한 이 논문은 위에서 예를 든 열차와 레일 사이처럼 두 물체가 서로 일정한 속도로 상대운동을 할 때에 한해서 사용되는 이론이란 이유로
'특수'란 말을 붙여 '특수상대성이론'이라 부르게 되었다.
아인슈타인의
이 특수상대성이론은 우리가 지금까지 막연히 생각해 왔던 시간·공간의 절대성을 부인하고, 그것이 상대적 개념이란 점을 밝혀 주었다는 점에서 물리학
자체는 물론이려니와 시간·공간을 절대적 개념으로 보아온 칸트 철학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또
특수상대성이론은 원자핵 물리학이나 원자론 등 물질입자가 광속에 가까운 무척이나 빠른 속도로 운동하고 있는 경우의 현상에 대해서는 실험적으로도
여러가지로 증명이 되어 있다.
사실은
특수상대성이론은 전자기현상에 관한 '전자기이론'에서 가장 그 본분을 발휘한다. '패러디'(Faraday), '맥스웰'(Maxwell)등에 의해
19세기에 완성된 전자기학은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이론에 의해 비로소 완전한 이론이 되었던 것이다. (이것을 이해하려면 적어도 대학원 과정에
들어가야 한다.)
중력현상을 설명하는 일반상대성이론
특수상대성이론은
발표(1905년)해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아인슈타인은 11년 후인 1916년에는 특수상대성이론을 더욱 확장한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했다.
특수상대성이론은
'서로 등속도 운동'을 하는 두 물체 (두 좌표계) 사이에 관한 이론인데 반해 일반상대성이론은 이 가정을 일반화시켜 두 물체(두 좌표계)가
어떠한 복잡한 운동을 할 때에도 적용이 되게 한 이론이다.
이
이론은 단순한 확장이라기 보다 기본적으로 성격이 다른 두 이론이라 보는 것이 옳을 정도로 그 기본 가설이나 이론의 내용이 다르다.
특수상대성이론에서는
기본원리로서,
(1)
광속불변의 원리, 즉 서로 등속도 운동을 하는 모든 두 좌표계에서 광속은 광원이나 관측자의 상대운동과는 무관하게 언제나 모든방향으로
동일하다.
(2)
특수상대성원리, 즉 물리학의 가장 기본적인 법칙은 서로 등속도 운동을 하는 두 좌표계에서 동일한 수식형태로 기술된다.
라는 두
원리를 채용하고 있다.
이에
반해서 일반상대성이론에서는
(1)
등가원리(等価原理), 즉 만유인력 법칙에 의해 정해지는 중력질량과 뉴튼의 제2법칙에 의해 정해지는 관성질량은 동일하다.
(2)
일반상대성 원리, 즉 임의의 두 좌표계에서 물리학의 가장 기본적인 법칙은 동일한 수식형태로 기술된다.
라는
두 원리를 채택하고 있다.
(2)의
상대성 원리는 기본정신이 동일하나 (1)의 두 가정은 특수상대성 이론의 경우와 일반상대성 원리의 경우가 서로 다르다.
따라서
특수상대성이론이 전자기학 현상을 완전하게 만드는 이론인데 반해 일반상대성이론은 중력현상을 잘 설명해 주는 이론이 되어 그 성격이 전연 다르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은 나중에 '칼루자'(Kaluza), '바일'(Weyl)등 여러 학자들과 함께 이 두 이론(전자기학과 중력이론)을 종합하려고
무척 애를 썼다. 그러나 시원한 결론은 못 내고 있다. 이런 종합이론을 통일장이론이라 부르고 있다.
우주론으로의 발전
일반상대성이론은
우주론과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다. 우선 아인슈타인에 의하면 만유인력은 우주내에 물질이 있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생기는 것으로 설명이 된다.
그에
의하면 물질이 없는 공허한 공간에는 중력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공간에 물질이 도입되면 이 물질의 존재는 공간을 휘게 만든다. 즉 물질의
존재가 공간의 굴곡을 가져온다. 이 굴곡된 공간이 바로 만유인력의 원천이 된다는 것이 아인슈타인의 생각이다.
좀더
쉬운 비유를 들자. 한장의 얇은 고무막이 있다 하자. 이것을 잡아당겨 평평한 평면이 되게 한다. 이 상태는 물질이 전연 없는 공허한 공간에
비유된다.
다음으로
철로 된 구슬을 가져와 팽팽하게 잡아당긴 고무막 위에 얹어놓는다. 그러면 구슬이 놓인 고무막은 휘어져 아래로 약간 가라앉는다. 물질의 도입이
공간을 휘게 하는것에 비유된다. 이 때 제2의 구슬을 이 휜 공간점 부근에 가져오면 그 구슬은 움푹 들어간 휜 고무막 쪽으로 끌려서 굴러
떨어진다.
즉
휜 공간 때문에 인력을 받는다. 이것이 만유인력이 왜 생기느냐 하는데 대한 설명이 된다.
이렇게
휜 공간을 설명하려면 우리가 지금까지 배워온 기하학('유클리드' 기하학)을 버리고 '리만'(Riemann) 기하학이라는새로운 기하학을 배워야
한다.
그런데
이 리만 기하학은 수학적으로 무척이나 복잡해서 초보자에게는 꽤나 힘들어 보인다. 그 결과 옛날에는 '일반상대성이론을 이해하는 사람은 세계에
3사람밖에 없다'라는 그럴싸한 엉터리 추측이 나돈 일이 있었다. 물론 수학적 소양이 있는 사람에게는 그리 힘든 수학은 아닌데도 말이다.
어쨌든
일반상대성이론은 근본적으로는 우주구조론과 상통한다. 특히 아인슈타인의 우주방정식은 유명하다. 이 우주방정식을 풀면 우주는 무한히 팽창할 수도
있고(우주팽창론), 조건에 따라서는 팽창과 수축을 되풀이 할 수도 있으며(우주맥동설) 또는 일정한 크기로 유지될 수도 있게 된다(정상우주론).
그 결과 여러 우주론이 전개 되고 있다.
이런
우주론의 하나가 빅뱅(big bang)이라 불리는 우주대폭발설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1백50~1백80억년 전에 우주는 '가모브'(Gamow)
박사가 '아일렘'(ylem)이라 부르는 한 덩어리의 우주대원자가 폭발해서 생겼다는 것이다. 그 이후 우주는 계속 팽창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주가
팽창한다는 사실은 실제로 1920년대에 들어와 '허블'(Hubble)이라는 천문학자가 실험적으로 증명하였다. 또 우주팽창 때 발생한 빛의
잔해라고도 할 절대온도 3도의 우주배경복사도 1965년에 발견되었다.
어쨌든
이런 우주론의 기본은 아인슈타인이 제공한 우주방정식 및 우주론이었다.
글
: 김정흠 고려대 물리학
과학동아
과학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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