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25일 일요일

수학이 불러온 생물학 혁명


 
사슬 두 가닥이 나선처럼 꼬여 있는 DNA, 올록볼록한 알맹이가 촘촘하게 박혀 있는 파인애플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수학적으로 가장 효율적이고 가지런한 모양이라는 것이다.

생명체가 자손을 번식하기 위해 꼭 필요한 유전물질 DNA(디옥시리보핵산)는 두 가닥의 사슬이 나선형으로 꼬여 있는 모양이다. DNA의 이중나선구조를 보면 유전 정보를 나타내는 염기코드를 감싸려는 듯이 보인다.

그런데 왜 DNA는 한 가닥이 아닌 두 가닥으로 돼 있을까? 또 사다리처럼 펴져 있지 않고 나선형으로 꼬여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과학자들은 DNA가 이중나선구조일 때 가장 효율적이라는 사실을 수학적으로 알아냈다. 두 가닥이어야만 하나가 망가졌을 때 유전정보를 지킬 확률이 높아진다. 기하학적으로 보면 유전자를 발현시키기 위해 이중나선이 나뉘었다가 다시 붙을 때 엉키지 않는다.

이렇게 수학은 생명체에 대한 자료를 분석하고, 정보를 이해할 수 있는 도구다. 영국의 수학자 이언 스튜어트는 저서 <생명의 수학>에서 “생물학에 수학이라는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일어나고 있다’고 표현한 까닭은 이미 생물학 여러 분야에서 수학이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파인애플과 꽃잎에 들어 있는 피보나치수열

아무렇게나 올록볼록 튀어나온 듯이 보이는 파인애플 겉표면의 알맹이도 사실은 수학적으로 가지런하다. 알맹이들은 소용돌이 모양의 두 묶음으로 서로 얽혀 있다. 한 묶음은 위에서 내려다볼 때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아가며, 나선 여덟 개가 들어 있다. 다른 한 묶음은 시계 방향으로 돌아가며, 나선 열세 개가 들어 있다.

수학자들은 이것을 피보나치수열로 설명한다. 이탈리아 수학자 레오나르도 피보나치가 발견한 이 규칙은 앞에 있는 두 수의 합이 바로 그 뒤에 나온다. 1, 1, 2, 3, 5, 8, 13, 21, 34, 55, 89, 144, 233, 377…의 순서로 이어진다.

피보나치수열은 꽃잎의 수에서도 나타난다. 백합이나 아이리스는 꽃잎이 3장, 미나리아재비와 들장미는 5장이다. 기생초와 참제비고깔은 8장, 금잔화와 시네라리아는 13장, 과꽃과 치커리는 21장, 질경이와 데이지는 34장, 해바라기는 55장이나 89장, 또는 144장이다. 무작위로 꽃잎이 돋아났다고 보기에는 수학적인 규칙을 정확히 따른다.

스코틀랜드 동물학자이자 수학자인 다르시 톰프슨은 꽃잎이 빗물과 햇빛을 골고루 받아들이기 위해 피보나치수열을 따른다고 설명했다. 첫 번째 꽃잎은 대개 두 번째 꽃잎과 약 137.5°, 세 번째 꽃잎과 약 275°를 이루면서 나선형으로 나 있는데, 서로 겹치지 않는 구조라 빗물과 햇빛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학자들은 이것을 ‘황금각’이라 부른다.

독일 뮌헨기술대학교의 헬무트 포겔은 왜 식물이 피보나치수열과 황금각을 따르는지 연구했다. 그는 해바라기에서 n번째 씨앗은 첫 번째 씨앗에서 약 137.5°의 n배가 되는 각을 이루고, 중심까지 거리는 n의 제곱근에 비례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리고 황금각인 137.5°를 조금 바꾸면 씨앗 배열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알아보았다. 놀랍게도 씨앗 사이에는 틈이 생기고, 해바라기 씨앗이 가진 특유의 나선무늬도 사라졌다. 가장 효율적인 생존을 위해서 수학적인 규칙을 따르도록 생명체가 스스로 진화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생물학과 수학의 만남~

이언 스튜어트는 생물을 수학적으로 설명하려면 먼저 실제와 거의 비슷하고 현실적인 모형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생물이 어떤 수학 규칙을 따르고 있는지 알아내는 게 중요하다는 뜻이다. 얼핏 생물과 수학은 전혀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수학적 기법을 활용해 생물학을 연구한다면 지금까지 발견하지 못했던 중요한 사실도 찾아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21세기에 들어선 뒤로는 점점 더 많은 생물학자들이 수학을 활용하고 있다. 수학 덕분에 생물에 대해 한걸음 더 다가서고 있는 셈이다.

인터뷰

수학으로 생명에 귀를 기울이다
이언 스튜어트

이언 스튜어트는 과학소설부터 수학 칼럼까지 쉽고 재미있는 글을 써온 수학자 겸 작가다. 모든 사람이 수학을 즐기길 꿈꾸는 그는 수학과 과학의 대중화에 기여한 공로로 영국왕립학회와 미국과학진흥회에서 상을 받았다. 그의 최신작인 <생명의 수학>의 번역판이 7월 중 출간된다. 영국 워릭대 수학과 명예교수로 재직 중인 그에게 궁금한 점을 물었다.



<생명의 수학>에서 생물학이 수학이라는 여섯 번째 혁명을 겪는 중이라고 했는데, 수학을 ‘혁명’이라고 표현한 이유가 있을까요?

우리가 생물학을 생각하는 방식에 큰 변화를 가져왔기 때문입니다. 지난 수십 년 간 생물학이 분자생물학에 강력히 초점을 맞춰왔던 것과 비교했을 때 말이죠. 예를 들면, 인간 게놈의 염기서열이 밝혀진 후 생물학자들은 DNA 염기서열만으로는 어떤 기관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단지 어떤 코드가 어떤 유전자와 관련 있는지 알아낼 뿐이죠. 이제는 ‘유전자의 기능은 무엇인가?’라는 더욱 어려운 질문에 주목하게 됐습니다. 수학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지점이죠.

수학이 최신 생물학을 이끌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생물학은 수많은 곁가지 주제를 가진 대주제입니다. 그 중에서 수리생물학은 아직까진 미미한 수준이죠. 하지만 수학은 생물학의 거의 모든 분야에 큰 변화를 가져올 충분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생태계의 구성요소를 체계적으로 분류할 뿐만 아니라, 앞으로 수학은 생물학의 복잡하고 다양한 문제에 깔려 있는 원리를 밝혀낼 겁니다. 대표적으로 뇌와 신경세포망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자라면서 신체 기관이 어떻게 발달하는지, 그리고 생태계는 어떻게 유지되는지의 3가지를 들수 있습니다. 생명을 이해하고 질병 문제를 해결하거나 멸종위기에 놓인 생명체들을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수학 분야에서 생물학에 대한 관심은 얼마나 되나요?

아마 5% 이하일 겁니다. 수학이 다룰 수 있는 분야가 워낙 넓기 때문이기도 하죠. 수학자들은 많은 사람들이 연구하는 분야보다는 전문적인 자기 분야를 개척해나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대부분이 최신 분야에 달려드는 물리학이나 생물학과는 조금 다른 부분이기도 하죠. 그래서 생물학에 관심을 갖는 수학자가 흔하진 않습니다. 그래도 수학에 관심을 갖는 생물학자보다는 훨씬 많을 겁니다. 한편, 거의 대부분의 수학자가 수학을 실제 세계에 적용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거든요. 응용수학 분야를 연구하지 않는 사람들도요.

<생명의 수학>을 쓰면서 가장 흥미롭게 느낀 점은 무엇이었나요?

카오스 이론으로 ‘플랑크톤의 역설’을 설명한 것이었습니다. 플랑크톤의 역설은 제한된 자원을 놓고 여러 종이 경쟁하는데도 일부 우세한 종만 살아남지 않고, 수많은 종이 공존하며 생태계를 이루는 것을 말합니다. 같은 먹이를 놓고 여럿이 경쟁하는 데도 모두 살아남는다는 말이죠.
예전에는 자원의 양이 다양한 종을 수용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봤습니다. 하지만 이런 설명은 시간이 흘러도 각 종의 개체수가 거의 일정할 것이라는 가정 아래에서만 가능하죠. 실제로는 그렇지 않거든요. 플랑크톤의 개체수는 매우 무질서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여러 종의 플랑크톤이 같은 틈새 시장에서도 공존할 수 있는 것이죠. 바로 카오스 이론입니다. 마치 교실의 책상 수보다 더 많은 수의 학생들이 책상에 앉아 수업을 들을 수 있는 것과 같죠.

많은 사람들에게 수학을 알리려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대중은 수학을 오해하고 있습니다. 수학을 산수로만 생각하는 거죠. 최근에 어떤 사람들이 “영화엔 수학이 없다”고 말하는 걸 들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지요! 수학이 없으면 그 어느 누구도 영화를 만들 수 없을 겁니다. 영화 ‘토이 스토리’의 특수효과는 수학 논문과 컴퓨터공학 논문 20개가 모여 만들어진 결과입니다. 영화 속 모든 장면에 수학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저는 사람들이 계산을 잘 하길 바라는 게 아닙니다. 단지 사람들이 얼마나 수학이 다양하고 유용한 학문인지 알았으면 하는 거죠. 우리 사회는 수학 없이 돌아갈 수 없거든요. 학생들에게는 수학에 겁을 먹지 않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심지어 전문가들도 수학 앞에서 좌절하기도 하거든요. 제게도 일주일에 한 번씩은 그런 일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걸 대담하게 극복하고 끈기 있게 다가서면, 어느새 문제를 해결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수학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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