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28일 수요일

'혼돈의 언어' 프랙탈이란?

자연의 불규칙 속에서 새질서 밝혀주는 새로운 기하학

프랙탈은 자연계의 구조적 불규칙성을 기술하고 분석할 수 있는 새로운 기하학이다.

17세기 후반 자연의 운동현상을 미분방정식으로 표현하여 해석한 뉴턴역학의 대두로 정량과학은 확고한 발전적 토대를 갖추었다.이후 3백년 동안 과학자들은 미분방정식의 해를 구하여 자연의 운동을 이해하려는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 결과가 오늘날의 과학기술문명이다.

자연현상을 모델화한 모든 미분방정식은 거의 대다수가 비선형방정식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지난 3백년간의 과학적 노력은 해석가능한 선형방정식에 입각하여 자연현상의 비선형성을 해결하려는 노력이었다. 그러나 비선형성이 내포하고 있는 특성을 파악하지 못하는 우를 범하고 있음이 20세기 후반에 나타난 카오스(chaos)과학에 의해 밝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간단하게 표현되는 식에서는 규칙적인 단순한 운동이 일어나고, 많은 입자들로 이루어진 복잡한 계에서는 카오스운동이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또 불규칙한 계는 불안정한 상태로 조그만 외적 영향에 의해 안정된 상태로 옮겨간다고 이해해 왔다. 이러한 선형적 해석법에 입각한 사고에 중대한 전환을 가져온 결과가 1963년 MIT 기상학 교수인 에드워드 로렌츠가 고안한 공기의 대류 모델방정식(로렌츠방정식)에 의해 관찰됐다.

이 방정식을 매개변수를 변화시켜가면서 풀면 특정한 값에서부터 결코 주기적이 아닌 복잡한 운동을 볼 수 있다. 이들 운동은 무질서한 운동처럼 보이나 파악하기에 따라서는 일정한 규칙에 따라 일어나고 있음을 볼 수 있다(로렌츠 끌개). 이와 같은 카오스운동은 후에 다양한 비선형운동방정식계에서도 나타남이 속속 밝혀졌으며 이를 우리는 기이한 끌개(strange attractor)라 부른다.
 
나비 모양을 만들어내는 로렌츠 끌개의 모습
 
유클리드 기하학의 한계

기이한 끌개를 파악하는 하나의 개념이 IBM연구원이면서 하버드의 객원교수로 있던 맨델브로트에 의해 제안되었다. 그것이 바로 프랙탈기하학(Fractal geometry)이다. 프랙탈은 영어단어 fracture(부숨)와 fraction(파편)에서 유래된 조어이다.

프랙탈은 자연계의 구조적 불규칙성을 기술하고 분석할 수 있는 새로운 기하학으로, 동력학에서 다양하게 나타나는 카오스 형상을 정량적으로 기술할 수 있는 새로운 언어를 제공하고 있다.

어린이들은 학교에 들어가면서 직선 동그라미 세모 네모 등을 그리며 기하학을 배운다. 하지만 인위적이 아닌 자연상태의 어떤 모양도 유클리드기하학적 형상을 보이지 않는다.

자연의 형상을 근사적으로 보아 산을 대충 원뿔로, 나무는 삼각형에 막대가 달린 모양으로 묘사하게 되지만 이는 정확한 묘사가 아니다.

자연의 형상에 내포된 불규칙성을 간파한 맨델브로트는 "구름은 둥그렇지 않으며 산은 원뿔 모양이 아니다. 해안선은 부드러운 곡선이 아니며 번개는 결코 직선으로 퍼져 나가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자연 현상에 내포된 불규칙성의 정도는 축척에 상관없이 일정함을 간파하고 "영국 해안선의 길이는 얼마일까?"를 생각하며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해안선의 길이는 재는 자의 길이가 짧아질수록 지수함수적으로 늘어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성질로부터 우리는 새로운 정량적 수치를 계산하여 해안선의 불규칙한 수치를 계산할 수 있다. 프랙탈 차원이 바로 그것이다. 부드러운 선은 1차원이며,면은 2차원, 공간은 3차원이라는 정수차원으로 나타나지만, 유클리드기하학의 개념으로 설명되지 않는 로렌츠방정식의 기이한 끌개와 같은 형상은 프랙탈차원으로 정의된다.

홀쭉이와 뚱뚱이

프랙탈 차원의 쉬운 예로 칸토어 집합((Cantor set)을 알아보자. (그림1)에 나타난 바와 같이 길이가 1인 막대에서 중앙의 1/3을 잘라낸다. 남은 부분에서 1/3을 잘라내는 일을 무한정으로 계속하면 무수히 많은 점들이 나타난다. 극한을 취해 잘라낸 길이의 총합을 구하면 1이므로 남아있는 점들의 길이는 0다. 그러나 남아 있는 점들의 차원을 용량 차원(capacity dimention)의 정의에 따라 계산하면 0.6309라는 숫자가 나온다. 유클리드기하학에서는 이 무수한 점들의 차원이 0이지만, 1보다는 작고 0보다는 큰 차원이 정의되는 것이다. 이처럼 길이가 없는(때로는 부피가 없을 수도 있음) 대상의 프랙탈을 야윈(thin) 프랙탈이라 한다.

위의 예에서 1/3을 잘라내지 않고 2/9를 잘라내면 차원은 약 0.46이 되며 남아 있는 길이의 총합은 0.6이 된다. 이처럼 길이가 있는, 또는 부피가 있는 프랙탈을 살찐(fat) 프랙탈이라 한다. 우리의 신체구조에서 혈관의 분포나 기관지의 분포, 콩팥의 배뇨관 분포, 신경계의 분포는 살찐 프랙탈의 좋은 예이다.

비선형방정식으로 표현되는 동력학계는 계를 특징짓는 매개변수에 따라 규칙적 운동을 보이기도 하고 카오스 운동을 보이기도 한다. 계의 장시간에 걸친 운동 양상이 카오스 운동, 즉 기이한 끌개로 나타날 때 이들의 기하학적 형태는 프랙탈 구조를 갖는다. 이들 끌개는 유한한 공간 내에 결코 반복되지 않는 궤적을 그린다.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의 수학 교수인 스메일은 말발굽사상(horseshoe map)의 개념으로 이를 설명했으며, 이는 마치 밀가루반죽을 할 때 잡아늘이고 접는 숙달된 요리사의 행동과 원리가 같다.

하지만 밀가루반죽은 전체 부피가 줄어들지 않지만 기이한 끌개가 나타나는 분산동력학계(dissipate dynamical system)에서는 위상공간의 부피가 시간에 따라 줄어든다. 그러나 기이한 끌개는 위상공간의 차원보다 작은 값의 차원으로 나타나므로 주어진 위상공간에서 체적이 없는 야윈 프랙탈이다(3차원공간에서 2차원의 면은 체적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
 
(그림1)간토어집합

코흐곡선과 프랙탈 차원

한변의 길이가 1m인 정삼각형을 생각해보자. 각 변을 3등분해 가운데에 모양이 같은 삼각형을 만들어 보자. 이를 반복하면 눈송이 모양의 아름다운 모양이 나타나는데 이를 코흐곡선(Koch curve)이라 부른다(그림2). 이 도형은 둘레길이는 무한히 늘어나면서 일정한 공간(처음 삼각형에 외접하는 원)은 벗어나지 않는다. 물론 서로 교차하지도 않는다. 한마디로 유한한 면적 내에 무한한 길이가 포함돼 있는 것이다.

여기서 프랙탈 차원의 유용성이 다시 한번 드러난다. 면적은 2차원이고 길이는 2차원이다. 코흐곡선은 무한한 길이(매번 4/3배씩 증가)이기 때문에 1차원은 넘어선 것이고 유한한 공간이기 때문에 2차원을 넘어서지 못하는 1.2618(이 수치는 위의 칸토어 집합 계산과 동일한 방법을 사용)이란 차원이 가능한 것이다.

대동맥에서 실핏줄에 이르는 혈관은 아주 미세할 때까지 갈라지고 또 갈라진다. 그러나 핏줄이 차지하는 공간은 아주 작다.마치 코흐곡선에서 유한한 공간에 무한한 길이를 제한된 부피 내에 밀어넣는 것과 유사하다. 혈관의 갈라짐은 프랙탈적 성격을 갖는다.

프랙탈 기하학은 지표면의 울퉁불퉁한 정도를 표현하는데 강력한 도구가 될 수도 있으며, 금속학자들이 여러 종류의 금속표면에서 금속과 관련된 정보를 얻는 수단이 될 수 있다. 듀폰사가 인공거위털을 합성한 이유는 천연거위털의 뛰어난 공기 함유능력이 주요 단백질인 케라틴의 프랙탈한 분지에서 생긴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한히 반복된 코흐곡선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초기 모양과 유사함을 발견할 것이다. 그것은 애초에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맨델브로트는 자연의 불규칙한 패턴에 관한 연구와 무한히 복잡한 형상에 대한 탐구에서 어떤 지적 교차점을 발견했는데 그것은 바로 코흐 곡선에서 보여주는 바와 같은 자기유사성(self-similarity)이다.

한때 자기유사성은 자연 현상을 해석하는 강력한 도구로 등장해 인간의 심장구조, 해안선의 모양, 은하계의 모습 등을 설명하는데 이용됐으나 코흐곡선과 같은 단순한 비교는 서서히 힘을 잃어가고 좀더 한차원 진전된 자기유사성의 개념이 제시되고 있다.

앞으로 프랙탈 개념의 물리적 해석이 폭넓게 연구된다면 이 분야는 급진전하게 발전할 것이다. 자연은 분명 프랙탈 구조를 보이며 프랙탈은 실제의 짜임새를 파악하는 언어이기 때문이다.
 
(그림2) 코흐곡선
 


과학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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