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위상수학자라면 코끼리를 갓 태어난 아기 코끼리로 바꿔서 냉장고에 넣을래요. 위상공간에서는 크기에 상관없이 물체에 뚫려 있는 구멍의 개수만 같으면 같은 물체로 보니까 어른 코끼리나 아기 코끼리랑 똑같겠지요."
단의 대답에 벽에 있던 코끼리가 움직이기 시작했고 곧 아기 코끼리로 작아졌다. 아기 코끼리는 아장아장 냉장고 속으로 기어 들어가서 코로 문을 닫았다. 냉장고 문이 닫히자 클라인 공간이 변하면서 다음 공간으로 이동하는 문이 열렸다. 공간이 원래대로 돌아오는 모습에 기뻐하는 푸앵카레를 두고 단은 서둘러 문 속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문 속은 발 디딜 곳 하나 없는 허공이었다.
“으아악! 계단이 없잖아?”
단은 허공에서 한참을 허우적대다가 어떤 단단한 물체 위로 떨어졌다.
천체의 위치를 찾아낸 수학자
간신히 매달린 단이 주변을 둘러보자 어둑어둑한 하늘에 별이 빛나고 있었다.
‘우주인가?’
단의 눈앞에 있는 거대한 천체는 양 옆으로 수증기를 내뿜고 있었다. 천체 위에는 턱이 짧고 코가 긴 남자가 검정 모자를 쓴 채 단을 쳐다보고 있었는데, 눈이 마주치자 먼저 말을 건넸다.
“나는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야. 넌 누구니?”
“수학자 가우스요? 왜 수학자가 우주 공간에 갇혀 있지요?”
“나는 수학자이지만 천문학자이기도 하니까. 이건 이탈리아 천문학자 주제페 피아치가 처음 발견한 ‘세레스’를 마왕이 재현해 놓은 거야.”
가우스는 앉아 있는 천체를 툭툭 치면서 말했다.
“난 이 세레스 덕분에 유명해졌지만, 지금은 세레스에 갇힌 신세가 됐지.”
단은 어리둥절했다.
“무슨 소리죠?”
“휴, 이탈리아 팔레르모 천문대에서 피아치라는 사람이 세레스를 처음 발견했어. 그리고 피아치는 세레스를 41일 동안 관찰하며 22개의 관찰 자료를 만들었어. 이후 세레스는 시야에서 사라져버렸고, 피아치를 포함한 어떤 천문학자도 한동안 세레스를 찾아내지 못했어. 다음에 나타날 위치를 계산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정보니까.”
“그럼 아저씨가 찾았다는 건가요?”
“나도 세레스의 궤도를 계산했지.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궤도의 모양을 미리 가정하고 계산했는데, 나는 오차를 줄이는 새로운 방법을 이용했어. 그리고 그 해 말, 내가 예측한 위치와 거의 같은 곳에서 세레스가 나타났지.”
내각의 합이 270°인 삼각형
“수학자인줄만 알았던 가우스 아저씨가 천문학에도 뛰어난 사람이었다니 놀라워요.”
“세레스 궤도 계산 이전에는 수학에서 훨씬 많은 일을 했지. 마왕이 나를 잡아 온 이유기도 하고.”
“어떤 게 마왕의 심기를 건드렸던 걸까요? 아하! 정17각형 작도법을 발견한 거요?”
“그것보다도 2000년이 넘도록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사실을 무너뜨리는 데 일조한 게 가장 컸지.”
“네? 그게 대체 뭐지요?”
“이쪽으로 건너와 볼래?”
가우스는 단에게 손을 내밀어 세레스 위로 건너오게 했다.
“저기 삼각형이 보이지?”
가우스는 우주에 떠 있는 둥근 행성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단은 가우스가 가리키는 곳을 쳐다보았지만, 삼각형은 보이지 않았다. 세 개의 곡선으로 이뤄진 볼록한 도형이 있을 뿐이었다.
“삼각형이라니 무슨 소리예요? 앗, 설마! 저기 곡선으로 이뤄진 뚱뚱한 도형을 말하는 거예요?”
“곡선이 아니야. 저기 행성의 가운데를 봐. 지구로 치면 적도가 되겠군. 분명히 적도에서 위로 수직인 두 직선을 그었어.”
“한 직선에서 수직으로 그은 두 직선은 분명히 평행이고, 평행한 두 직선은 절대 만날 수가 없어요! 그런데 왜 두 직선이 북극에서 만나는 거지요? 뭔가 이상한데….”
“충격을 받았나 보군. 수학자 유클리드가 말한 이후 2000년 동안이나 절대적으로 믿었던 명제였으니 네가 그렇게 반응할 만도 해.”
“그, 그렇군요…. 생각해보니 가우스 아저씨 말이 맞아요. 지구는 평평하지 않고 둥그니까요. 볼록한 공간에 삼각형을 그리면 내각의 합이 180°가 나올 리가 없지요. 유클리드처럼 위대한 수학자가 왜 둥근 공간을 생각하지 못했을까요?”
“지구가 평평하다고 생각하던 사람들이었으니 세계가 2차원 평면으로 이뤄진 줄 알았겠지. 하지만 공간이 오목하거나 볼록하면 평행하는 직선이 만날 수도 있는 거고, 삼각형의 내각의 합이 180°가 아니게 되는 거지.”
“공간의 형태에 따라 삼각형 내각의 합이 180°보다 클 수도 있고, 작을 수도 있군요! 가우스 아저씨 얘기를 들으니 문제를 쉽게 풀 수 있겠어요.”
수학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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