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25일 일요일

수학계 최고의 스승과 제자는 누구?


 
수학자 운동회를 찾아 주신 여러분, 반갑습니다! 저는 오늘 진행을 맡은 최 기자입니다. 이번 운동회는 특별히 스승의 날을 맞아 수학계 최고의 스승과 제자를 가리기 위해 마련됐습니다. 각 팀마다 제각기 특별한 사연을 가지고 참가했다고 하는데요, 앗! 저기 벌써 선수단이 입장하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불꽃 튀는 운동회 현장을 생생히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스승과 제자가 이어온 수학의 위대한 역사

앞서 말씀 드렸듯이, 이번 운동회는 스승과 제자가 함께 참가해 더욱 뜻 깊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경기에 앞서 스승과 제자로 참가 자격을 한정시킨 이유가 살짝 궁금해지네요. 단지 스승의 날이기 때문일까요? 그 이유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가우스는 “수학은 과학의 여왕이다”고 말했다. 물리학, 화학, 생물학, 천문학 등으로 세분화된 과학의 밑바탕에는 수학이 있다는 의미다. 처음에 수학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 팔 때 계산하는 용도로만 사용되었다. 하지만 꾸준히 발전되어 온 결과 현재는 경영학과 사회학, 심지어 암호학 등 많은 분야에 수학이 활용되고 있다. 이렇게 수학이 놀라울 정도로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수학자들의 끊임 없는 연구가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수학자들이 수학을 연구하는 방법은 제각각이다. 혼자 원리를 파헤치는 수학자도 있는 반면, 몇 명이 모여 공동의 연구를 하기도 한다. 또한 스승에게 가르침을 받은 것을 바탕으로 제자에게 가르쳐 주기도 한다.

이 중에서 스승과 제자의 관계에 주목한 미국 노스다코타 주립대학교와 미국수학회는 지난 2007년부터 수학자 계보 만들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수학자들의 사제 관계를 분석하면 수학의 발전상을 엿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수학자 계보란, 수학자들의 스승과 제자관계를 총망라해 정리해 놓은 일종의 족보와 같은 개념이다. 대학교와 연구기관, 박물관 등에서 보관 중인 고서와 자료들을 한데 모아 현재까지 약 18만 명에 달하는 수학자들의 사제관계를 분석해 냈다.

수학자 계보를 보면 2006년 필즈상 수상자인 테렌스 타오가 18세기에 활약한 오일러의 11대 제자임을 확인할 수 있다. 테렌스 타오를 지도한 스승들을 차례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11번째로 오일러가 등장한다.


스승의 가르침을 제자에게 전달하는 이어달리기

다시 최 기자입니다! 곧 첫 번째 종목인 이어달리기가 시작된다는데요, 이어달리기의 강력한 우승 후보로 점쳐지는 팀을 살짝 만나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팀은 출전 선수 5명이 모두 내로라하는 수학자이면서 스승과 제자 관계라고 하는군요. 와우~! 정말 놀랍지 않나요?

첫 번째 주자 야곱 베르누이(1654-1705)


저는 현재 통계 및 확률론에서 사용되는 ‘베르누이 분포를 만든 야곱 베르누이입니다. 저의 임무는 재빠르게 출발한 뒤, 두 번째 주자에게 바통을 넘기는 것이죠. 두 번째 주자인 요한 베르누이는 저의 동생이자 제자입니다.
사실 우리 형제는 스위스에서 각각 철학과 의학을 전공했지만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라이프니츠의 미분 관련 논문들이 실린 잡지를 보고 수학자가 되기로 결심했죠.
제가 먼저 수학 공부를 시작했지만, 동생인 요한 베르누이가 단 2년 만에 저를 따라잡았어요. 대단한 동생이죠? 결과적으로 동생은 '로피탈의 정리*'를 발견하는 등 저보다 더 많은 업적을 남겼답니다.

두 번째 주자 요한 베르누이(1667-1748)

하하! 제가 바로 요한 베르누이입니다. 제가 형보다 뛰어난 점은 한 가지가 더 있어요. 바로 훌륭한 제자를 길러 냈다는 점이죠 저에게는 4명의 제자가 있었는데, 그 중 한 명이 바로 그 유명한 오일러입니다. 저는 한눈에 오일러가 천재라는 것을 알아봤지요. 하지만 제가 너무 바빠서 직접 가르칠 수는 없었어요 그래서 스스로 수학책을 읽다가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토요일에만 찾아오라고 조언했죠. 그런데 오일러가 다른 책 내용까지 공부해가면서 일부러 질문하지 뭡니까? 저에게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요. 하하~.

세 번째 주자 레온하르트 오일러(1707-1783)

스승님, 바통이나 잘 넘겨 주세요~. 그럼 제 이야기를 해 볼까요? 1755년에 수학자들에게 가장 이목을 끌었던 문제가 있었어요. 바로 '등주{等周)문제'로, 일정한 길이를 가지는 것 중에서 넓이가 최대인 것을 구하는 문제였죠. 평면 상에서의 답은 원이지만, 그 과정을 증명하는 것은 꽤나 어려운 일이었죠.
저는 저의 제자였던 라그랑주와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의견을 나누었어요. 그 당시 저는 베를린 아카데미의 수학 책임자여서 라그랑주를 외부 회원으로 초빙해 본격적인 논의를 하려고 했어요. 하지만, 라그랑주가 고심 끝에 거절했답니다. 결국 제자인 라그랑주의 얼굴은 한 번도 못 본 셈이죠. 참고로 등주문제는 19세기가 되어서야 독일의 수학자인 바이어스트라스가 증명해 냈답니다.

네 번째 주자 조세프 루이 라그랑주(1736-1813)

스승님! 그때는 이탈리아에서 제자들과 할 일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거절할 수밖에 없었어요. 오해하진 말아 주세요〜.
스승님과 저는 대부분의 수학자들에게 18세기 최고의 수학자로 손꼽히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스승님과 저는 종종 비교의 대상이 되곤 해요. 스승인 오일러는 미적분학, 해석기하학, 정수론, 변분법 등의 방대한 분야를 연구했어요. 스승님에 비하면 저의 연구 분이는 해석학과 역학에 집중되어 있어 비교적 적은 셈이죠. 하지만 증명의 엄밀함과 우아함은 제가 낫다는 평가가 많아요. 일스(Eells, 1886-1962)라는 수학자가 미국수학회에서 가장 뛰어난 수학자 100명을선정했는데 제가 세 번째, 오일러가 네 번째이기도 했으니까요.

다섯 번째 주자 조세프 푸리에(1768-1830)

결승선을 끊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가진 푸리에입니다. 저와 제 스승인 라그랑주의 인연은 프랑스에서 시작되었어요 저는 그 곳에서 라그랑주의 강의를 뒷받침하는 보조강사를 하면서 스승님의 가르침을 받았고, 나중에는 라그랑주의 뒤를 이어 해석학을 가르쳤어요.
1807년에는 프랑스 과학원에 논문을 제출했는데, 제 스승인 라그랑주가 푸리에 급수의 핵심이 도I는 삼각법★의 개념에 대해 설명이 미흡하다며 논문 발간을 반대했어요 스승님의 또 다른 제자였던 푸아송이 논문 발간에 실패한 저를 놀려댔지만, 저는 4년 뒤 논문 내용을 보완해 결국 통과했지요. 당시에는 스승님에게 섭섭했지만,지금은 푸리에 급수가 데이터를 압축하거나 소리를 분석하는 데 활용되고 있어서 뿌듯해요.

로피탈의 정리* 함수의 극한에 관한 정리 중 하나다. 함수의 미분값을 사용하여 함수의 극한값을 쉽게 계산할 수 있다.
삼각법* 삼각함수와 삼각형의 변과 각 사이의 관계를 가지고 여러 도형을 연구하는 수학의 한 분야.

학교의 명예를 걸고 뛰는 단체줄넘기

이번에는 단체줄넘기가 벌어지고 있는 체육관입니다. 단체줄넘기는 여러 명의 선수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경기를 하는 마음이 승패를 가른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데요. 여기 학교의 명예를 드높이기 위해 함께 출전한 4명의 수학자로 구성된 팀이 있습니다!


19세기 말, 세계 수학의 중심지는 독일 괴팅겐 대학교였다. 이 당시 괴팅겐 대학교 수학과를 거친 수학자들은 클라인, 린데만, 힐베르트, 쿠란트 이 4명 이외에도 가우스, 디리클레, 리만 등 당시는 물론 오늘날까지도 손꼽히는 수학자들이 즐비하다.

괴팅겐 대학교가 수학으로 유명해지기 시작한 건 클라인을 교수로 초빙하면서부터였다. 1886년 수학과 교수가 된 클라인은 수학을 물리학이나 공학에 응용하는 데 관심이 컸다. 그 당시 우수한 수학자들 중 상당수가 공학자 출신이었기 때문이 었다. 그는 이 부분을 괴팅겐 대학교가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해 제자인 린데만에게 다양한 학문의 융합을 강조했다. 그러던 중 클라인은 린데만의 제자인 힐베르트가 자신의 뜻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후에 힐베르트를 괴팅겐 대학교 교수로 초빙한다.

1895년 괴팅겐 대학교 교수가 된 힐베르트는 학교의 발전을 위해 당시의 전통을 뒤집어엎었다. 당시 괴팅겐 대학교에서는 자신보다 직급이 낮은 사람과는 친하게 지낼 수 없었지만, 힐베르트는 자신의 학생과 당구를 치거나 산책을 했다. 이런 힐베르트의 제자와의 관계는 스승과 제자가 서로 발전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 실제로 힐베르트는 1900년 파리에서 열린 세계수학자대회에서 미해결된 23가지의 수학문제를 제시했는데, 힐베르트는 그 문제들을 제자와 함께 고민한 끝에 선별했다고 밝혔다.

한편, 괴팅겐 대학교에 수학 연구소를 설립하는 것은 클라인의 오랜 꿈이었다. 하지만 클라인은 그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고, 그의 꿈은 결국 힐베르트의 제자 쿠란트를 통해 이뤄지게 된다. 당시 독일 정부는 새로운 연구소를 짓는 것을 허락했지만, 건설자금이 부족했다. 그러자 쿠란트는 직접 미국 록펠러 재단과 접촉해 약 3억 6000만 원의 지원금을 이끌어냈다. 수학 연구소 개관식에서 쿠란트는 공을 클라인에게 돌렸지만, 사실 쿠란트가 없었다면 수학 연구소의 개관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스승을 떠받칠 든든한 제자가 필요한 기마전

이번 운동회의 백미! 기마전이 시작되었습니다! 기마전은 제자와 스승이 한 조가 되어 스승을 목마 태우는 종목입니다. 무엇보다도 스승의 가르침을 잘 받은 제자들이 승부를 가를 것이라고 예상됩니다.


19세기에 가장 유명한 천재 수학자로 손꼽히던 가우스는 연구하는 데 있어 두 가지를 중시했다. 그건 바로 ‘완벽함’과 ‘끊임없이 고민하는 태도’였다. 가우스는 어떻게 이렇게 많은 연구를 했냐는 질문을 받으면 “내용에서 오류가 안 나올 때까지 끊임없이 고민한다면, 누구든지 나와 같은 발견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대답하곤 했다.

완벽함을 중시한 가우스의 이 같은 태도는 제자를 가르치는 방법에서도 잘 드러난다. 가우스의 마지막 제자인 데데킨트는 가우스의 최소 제곱법*에 대한 수업을 수강했을 때의 느낌을 이렇게 말했다.

“가우스의 강의는 매우 단순하면서 명쾌했다. 풀이를 위해 칠판에 판서할 때도 한 치의 오차가 없었다. 게다가 가우스는 매번 강의 노트조차 없었다.”

한편 소수의 비밀을 풀어내는 데 핵심이 되는 ‘리만 가설’로 유명한 수학자 리만의 또 다른 업적으로는 ‘리만 기하학’이 있다. 그런데 리만 기하학에도 가우스의 끊임없이 고민하는 태도와 연관된 일화가 있다.

리만이 괴팅겐 대학교 교수 자격을 얻기 위해 시범강의를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리만이 세 가지 주제를 제출하면 교수들은 보통 첫 번째나 두 번째 주제를 시범강의 주제로 선택했다. 이에 리만은 연구 결과가 많이 있었던 주제를 첫 번째와 두 번째로 제출했고, 세 번째는 대충 준비했다. 하지만 가우스는 세 번째 주제를 선택했다. 세 번째 주제는 ‘비유클리드 기하학’에 관한 것이었는데, 당시에는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불필요한 것으로 치부되어 거의 연구가 진행되지 않았었다. 제자가 끊임없이 고민하면서 새로운 분야를 연구하기를 바랐던 가우스의 선택이었다.

리만은 부랴부랴 11시간 동안 준비해 시범강의를 했고, 예상대로 반응은 상당히 미지근했다. 하지만 새롭고 신선한 개념들을 상당히 많이 제시했던 그의 강의는 여러 해 동안 다른 연구자들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그리고 이 개념은 리만이 죽고 50년이 지나 20세기 최고의 이론이라고 손꼽히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의 기초가 되었다.


최소 제곱법* 관찰이나 실험으로 얻은 적은 수의 자료를 가지고 그 상횡을 설명하기 위한 방정식을 도출해 내는 예측 방법.







수학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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