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25일 일요일

물질의 수 체계

김민형 옥스퍼드대 교수의 수학 산책


 
우주를 이루는 입자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그 중에 보통 물질은 쿼크(Quark)와 전자 같은 페르미온(Fermion)의 결합으로 생긴다. 이런 물질의 미세한 물리량이 19세기에 발견된 클리퍼드 수를 값으로 갖는다는 사실은 20세기 과학의 중요한 발견이었다.

그라스만 수 복습 


기하학에서 가장 중요한 수 체계는 실수 체계(R)다. 실수 집합을 직선 상의 점들로 생각하는 것이 수와 공간 사이의 기본 관계이기 때문이다. 거기에서 시작하면 n차원 공간을 실수 n개의 순서쌍 Rⁿ으로 간주하는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Rⁿ에 각종 연산 구조가 주어져 있음을 이미 설명한 바 있다. 이때 덧셈은 다음과 같이 항상 단순하게 각 좌표를 따로 더하면 된다.


그런데 곱셈의 가능성은 복소평면의 경우(a1, a2)(b1, b2)=(a1b1-a2b2, a1b2+a2b1)처럼 약간 복잡하면서도 자연스러운 방법들이 있다. 때로는 Rn의 원소를 꼭 순서쌍으로 생각하지 않고 어떤 기본원소 v1, v2, …, vn의 실수계수배합인 a1v1+a2v2+…+anvn으로 표현하는 것이 편리하기도 하다. 그렇게 했을 때 분배법칙과 결합법칙을 가정하면 다음과 같이 vivj곱에 의해서 나머지 임의의 원소의 곱이 정해지기 때문이다.


복소수를 a+bi꼴로 쓰면 i²= -1과 분배법칙에 의해서 복소수의 곱셈이 완전히 결정되는 것도 한 예다.

지난달 설명한 공간의 그라스만 수 체계는 3차원의 경우에 서로 직각인 3개의 벡터 E₁, E₂, E₃를 고정하고 나서 그 원소들을 다음과 같은 꼴로 표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즉, 임의의 원소가 기본 점, 벡터, 직사각형, 그리고 직육면체의 실수배합으로 주어진다. 그런 다음 자연스러운 기하적 법칙인 V∧W=-W∧V, V∧V=0과 분배법칙을 사용하면 이 연산을 R8에 주어진 수 체계로 해석할 수 있음도 배웠다. d차원 공간기하의 그라스만 대수는 일반적으로 R2d에 주어진 연산체계로 해설할 수 있다. 실제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경우는 물론 4차원 시공간의 그라스만 대수인데, 그때는 기본 직육면체도 많아지고 4차원 평행도형이생기기 때문에 기본원소가 다음과 같이 무려 16개가 된다.


그래서 4차원 그라스만 대수는 R16에 주어진 수 체계 구조로 생각할 수 있다. d차원 그라스만 수 체계를 Gd라 표기하자.



클리퍼드 수

처음 만났을 때 까다로울 수 있는 개념이 d차원 벡터 V가 Gd의 원소일 뿐만 아니라 Gd에서 Gd로 가는 함수를 두 개 정의한다는 사실이다. 하나는 e(V)라고 표기하는 일종의 ‘외적’ 함수인데, 공간도형 U1∧U2∧…∧Uk를 V∧U1∧U2∧…Uk로 보내고 점은 그저 벡터 V로 보낸다. 즉, 점은 벡터, 벡터는 평행사변형, 평행사변형은 평행육면체 등으로 보내는 함수다. 이 외적 함수는 이런 방법으로 상당히 뚜렷한 기하적 해석이 가능하다. 또 하나의 함수는 i(V)로 표기하는 ‘내적’ 함수다. U1∧U2∧…∧Uk를 다음과 같이
조금 복잡하게 나타낸다.


내적 함수는 상당히 기묘하게 보일 수 있지만, 사실은 공간도형에 주어진 일종의 ‘미분’ 작용으로 생각할 수 있다. 차원을 내리는 벡터내적을 기초로 미분의 곱셈 법칙과 벡터의 순서를 바꿀 때, 부호가 바뀌는 원리를 사용하면 어느 정도 식이 이해될 것이다. 이 두 함수를 합했을 때 생기는 소위 ‘클리퍼드곱 함수’ c(V)가 오늘의 주 관심사다. 함수 c(V)는 Gd의 원소 X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 간단한 계산을 해보자. 벡터 Ei들이 서로 수직이고 길이가 1이면 다음과 같다.


일반적으로 평행사변형에 작용한 벡터의 클리퍼드 곱셈은 벡터와 평행육면체의 배합을 값으로 갖는다. 그런데 클리퍼드 곱 함수들을 합성하면 재미있는 현상이 일어난다. 함성함수 c(V)c(W)와 c(W)c(V)가 다르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계산해보면 다음 관계가 성립한다.


여기서 [CAR]이라 쓴 것은 ‘Canonical Anti-commutation Relation’의 약자인데, 양자장론에서 페르미온들의 일종의 ‘하이젠베르크 불확정성’을 내포하는 식이다. 이 식은 다음과 같다. 이 식은 정의의 간단한 적용인 다음 식들로부터 따르는데, 각자 한 번 확인해 보도록 강하게 권한다.


d차원 클리퍼드 수 체계란 클리퍼드 곱함수들의 거듭제곱, 그러니까 Gd에서 Gd로 가는 c(V₁)c(V₂)…c(Vl)꼴 함수들의 실수배합으로 이뤄진 모든 함수들의 집합이다. 여기서 덧셈은 물론 직관적인 함수 덧셈이고, 곱셈은 함수의 합성으로 정의한다. 이렇게 정의한 클리퍼드 수 체계는 자연계에 나타나는 대표적인 비가환(즉, 교환법칙이 성립하지 않는) 수 체계 중 하나다.



디락 방정식 재검 

이제 드디어 이런 대수법칙을 자연계의 4차원 시공간에 적용해 보자. 단지 여기서 유의할 점은 특수상대론에 의하면 벡터들의 내적이 유클리드 공간과 다르다는 것이다. 정확히 설명하면 시공간에는 서로 수직인 벡터 4개 E0, E1, E2, E3가 있어서 다음과 같은 식을 만족하는 자연스러운 내적 함수가 있다는 것이다. (사실은 상대성이론의 많은 놀라운 산물들이 이 내적의 존재로부터 따른다.)


그 경우에 시공간 그라스만 대수에 작용하는 클리퍼드 곱 함수들 사이에는 [CAR]을 이용해서 다음 관계들을 쉽게 보일 수 있다.


7월호에서 설명했듯이 디락은 2차 미분연산의 제곱근을 찾는 다음 방정식을 풀어야만 했다.


여기서 변수는 A, B, C, D인데 결국 그들은 A²=1, B²=C²=D²=-1과 AB+BA=AC+CA=AD+DA=BC+CB=BD+DB=CD+DC=0을 만족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보통 수로는 해가 불가능한 이 방정식들이 이제는 A=c(E0), B=c(E1), C=c(E2), D=c(E3)라는 클리퍼드 수들을 통해서 쉽게 풀린다. 이런 수의 직관적인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당연히 어렵다. 또 그런 어려움이 현재도 과학자들로 하여금 양자세계의 개념적인 이해가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인상을 갖게 만드는 게 사실이다. 이런 문제를 기하학적인 관점에서 근본적으로 재검하려는 노력 중 하나가 바로 요새 자주 이야기되고 있는 초대칭성 이론이다. 이처럼 세상을 탐구하는 과정은 상당히 신비한 수 체계를 끊임없이 필요로 한다.




수학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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