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14일 토요일

0에서 1 창조… 온리 원이 돼라 |

경쟁 말고 독점" 페이팔 창업자 피터 틸 인터뷰

김지호 기자
지난달 24일 정오. 실리콘 밸리를 대표하는 벤처 사업가이자 투자자 중 한 명인 피터 틸(Thiel·48)씨가 하늘색 셔츠에 감색 재킷을 차려 입고 인터뷰룸으로 걸어 들어왔다. 키는 크지 않았지만 몸매가 다부졌고 활기가 넘쳐 보였다. 그는 "원래 티셔츠와 청바지를 고집하는데, 한국에서는 강연 일정이 많아 어쩔 수 없이 조금 신경을 썼다"고 말했다. 그는 평소 '창업자가 미팅에 정장을 입고 나타난다면 그 회사는 투자할 가치가 없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다.

그는 1998년 인터넷 결제 서비스 업체 페이팔(Paypal)을 창업해 온라인 상거래의 주춧돌을 놓았다. 2002년 회사를 이베이에 판 다음에는 주로 벤처 투자자의 길을 걸었다. 페이스북, 링크드인, 에어비앤비, 스페이스X 등 수십여 개의 성공적인 벤처기업에 초기 투자자로 참여했다. 이 기업 중 다수가 이른바 '페이팔 마피아'에 의해 운영된다. 페이팔 마피아는 페이팔 창업 초기 멤버들을 일컫는 말인데, 페이팔을 떠난 뒤 저마다 벤처기업을 창업했고 지금은 실리콘 밸리를 움직이는 강력한 인맥 그룹이 됐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링크드인의 리드 호프먼, 유튜브의 스티브 첸 등이 대표적이다. 틸씨는 페이팔 마피아의 대부(代父)로 불린다.




그는 자신의 경영 철학을 담은 책을 지난해 냈다. 제목이 '제로 투 원(0 to 1)'이다. 무슨 뜻일까? "다른 사람이 다 하고 있는 일, 이미 효과가 입증된 일을 카피해 봤자 세상은 1에서 n이 될 뿐이지만, 기존에 없던 새로운 것을 창조하면 0에서 1이 된다는 의미"라고 그는 설명했다. 그는 전자를 수평적 진보, 후자를 수직적 진보라고 부른다. 그는 "인간이 다른 종들과 구별되는 것은 0에서 1로 가는 기적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이라고도 했다. 그는 지난달 하순 한국을 포함해 아시아 4개국을 전세기로 돌면서 제로 투 원 철학을 강의했다.

―책을 인상 깊게 읽었습니다. 책의 핵심 내용을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제 책의 핵심 주장은 '경쟁은 피하면 피할수록 좋다. 경쟁을 피하고 시장을 독점하기 위해서는 남들과 다른 것을 하라'는 겁니다.

이건 책 시장에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사실 서점에 가보면 비즈니스 서적이 너무 많아요. 그런데 그 책들 대부분이 '어떻게 하면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가'를 다루고 있어요. 반면 제 책은 세상에서 유일하게 '싸우지 않는 법'을 가르치는 책입니다. 그래서 이 책은 기존의 비즈니스 서적과 싸우지 않아요. 그래서 먹혀들었죠. 경쟁하지 않고 특정 분야를 독점했습니다. (웃음)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경쟁을 부추기는 환경에 살고 있습니다. 교육은 경쟁을 부추겨요.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아서 최고 수준의 대학에 가야 성공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정말 성공일까요? 아닙니다. 경쟁은 반복되고, 다음 경쟁은 더 어려워지고, 경쟁에서 패배할 확률은 점점 커집니다.

예컨대 스탠퍼드대 입학 경쟁에서 승리하면 4년 뒤 스탠퍼드대 로스쿨 입학 경쟁을 치러야 합니다. 그런데 로스쿨을 나왔다고 유명 로펌에 바로 입사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또 치열한 경쟁을 뚫어내야 합니다. 만약 그 경쟁에서조차 승리해서 입사했다고 합시다. 그런데 그 삶이 행복할까요? 분명 선망의 직업이지만,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행복해 하지 않아요. 오히려 회사를 관두고 나가고 싶어 하죠.

이처럼 경쟁에서 승리하는 게 삶의 성공을 보장하는 것도 아닌데, 우리는 관성적으로 경쟁을 숭배해 왔어요. 이는 옛날부터 굳어져 온 시스템에 대해 한 번도 제대로 생각해 보지 않고 '좋다'고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물론 경쟁에서 패배하면 나쁜 결과를 맞이합니다. 그런데 경쟁에서 승리한다고 좋은 결과가 주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애초에 왜 경쟁하느냐는 겁니다.

저는 20대 중반 독점이 인생의 최우선 과제가 돼야 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살아보기로 했습니다. 페이팔을 세웠고, 기업가이자 투자가가 되기로 한 겁니다."

―말씀에 크게 공감합니다만, 사실 '독점'이란 단어는 부정적 연상을 잔뜩 떠오르게 합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경쟁은 좋은 것이고 독점은 나쁜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러나 이는 어느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 개인적인 관점에서 먼저 봅시다. 만약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이 기업가거나 창업가 또는 투자자라면 대부분 자신의 회사가 시장을 독점하길 바랄 겁니다. 비록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더라도요. 그건 동의하시죠?

그러면 사회적인 관점에서 보면 어떨까요? 독점에는 두 가지 형태가 있습니다. 고정된(static) 독점과 역동적인(dynamic) 독점입니다. 고정된 독점은 변하지 않는 세상에서의 독점이고, 나쁜 독점입니다. 사회의 희생을 대가로 너무 큰 이윤을 차지하니까요. 그런 독점 기업은 지대(地代) 수금원밖에 안 됩니다.

반면 역동적인 독점은 좋은 독점이고 창조적인 독점입니다. 기존에 없던 시장을 만들고, 그 시장을 독점하기 때문입니다. 아이폰은 스마트폰이라는 새 시장을 만들고 그 시장을 독점한 것이지, 기존의 휴대폰 시장에서 경쟁하면서 제로섬 게임을 한 것이 아닙니다. 저는 이런 독점은 장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우리는 이미 좋은 독점을 장려하고 있습니다. 독점금지법을 통해 고정된 독점을 막으면서, 특허법을 통해 역동적 독점을 장려합니다.

독점은 진보의 원동력입니다. 경제 이론상으로는 좀 다르지만요. 현실 세계에서 기업은 남들이 할 수 없는 것을 해내는 만큼, 딱 그만큼 성공할 수 있습니다."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는 이렇게 시작한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이유로 불행하다.’ 그러나 피터 틸은 비즈니스에서는 정반대라고 말한다. “행복한 기업은 모두 서로 다릅니다. 다들 독특한 문제를 해결해 독점을 구축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실패한 기업은 한결같습니다. 비슷비슷해서 결국 경쟁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죠.”

―독점이 사회에 어떻게 기여하는지 좀 더 설명을 부탁 드립니다.

“좋은 독점은 사회에 풍족함을 제공합니다. 테슬라는 실제로 사람들이 운전해보고 싶어하는 첫 전기차를 개발했어요. 새로운 시장을 만들고 독점적 지위를 갖게 됐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혁신을 통해 기존에는 없던 새 혜택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쁜 독점은 항상 부족함을 유발합니다. 사회에 돌아가는 혜택의 공급을 제한한다는 겁니다. 예컨대 샌프란시스코에서는 4층 이상 건물을 지을 때 ‘지역개발규제법’의 영향을 받습니다. 재개발을 하거나 새집을 지으려면 법의 허락을 받아야만 합니다. 그러다 보니 부족함이 양산됐고, 결국 부동산 가격은 계속 올랐습니다. 그리고 그 혜택은 기존 빌딩 주인들이 독식했습니다. 저는 우리가 이런 형태의 독점에 항상 주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작다 싶을 만큼 작게 시작하라

―독점 기업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방법은 세 가지입니다. 먼저 작게 시작해서 독점하세요. 너무 작다 싶을 만큼 작게 시작해야 합니다. 장악하고 지배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신생 기업에 완벽한 표적 시장은 경쟁자가 없거나 아주 적고, 특정한 사람이 모여 있는 시장입니다. 처음부터 1억명 시장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완전히 빨간불입니다. 그만큼 경쟁이 치열할 테고, 이는 곧 이윤이 ‘0’이 된다는 말이니까요.

둘째, 그렇게 해서 일단 시장을 장악하고 난 뒤 몸집을 키우세요. 제프 베조스가 아마존을 처음 세웠을 때는 책을 팔았습니다. 그리고 가장 비슷한 시장부터 공략했죠. 음악 CD, 비디오, 소프트웨어를 거쳐 지금은 만물상이 됐습니다.

셋째는 파괴하려고 하지 말라는 겁니다. 신생 기업은 파괴에 대한 강박을 갖고 있습니다.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이라는 유행어 때문입니다. 그러나 파괴에 집착하면 장애물이 늘어납니다.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싸움을 계속해야 합니다. 설령 파괴를 하더라도 이를 겉으로 드러내지 마세요. 신생 기업은 ‘창조’라는 활동 자체가 훨씬 더 중요합니다. 가능하면 경쟁은 피할수록 좋습니다. 경쟁은 회사를 약하게 만듭니다.”
☞파괴적 혁신은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인터뷰 <2013년 2월 2일자>
―경쟁이 회사를 약하게 만든다고요?

“경쟁엔 부작용도 크다는 뜻입니다. 무엇보다 진짜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감을 흐려놓습니다. 왜 싸우는지 목적을 잊어버리고 경쟁을 위한 경쟁에 집착하고, 근시안이 되게 만듭니다. 실제로 기업이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하는 짓을 분석해 보면 정말 회사와 제품을 위한 의미 있는 행동은 없습니다.”

페이팔 성공 이유는 경쟁 없는 기업 문화

1998년 틸이 창업한 페이팔은 결제에 사용할 신용카드로 본인 인증을 하고, 돈을 이메일 계정으로 송금하는 온라인 결제 서비스다. 결제할 때 비밀번호만 입력하면 돼 절차가 간편하다. 최근 금융에 IT를 결합한 ‘핀테크’가 유행인데, 그 원조 격인 셈이다.

―페이팔이 성공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제가 페이팔 창업 당시 믿었던 것은 한 가지였습니다. 새로운 기술로 과거 기술을 대체하는 것은 언제나 좋다는 겁니다. 문제는 새 시스템이 아무리 편리하다고 해도 아무도 쓰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라는 것이었습니다. 1960년대 비자카드, 마스터카드도 똑같은 문제를 겪었습니다. 카드에 가입해봤자 상점에서 쓸 수 없다면 무용지물입니다. 반면 상점 입장에선 고객이 카드를 안 쓰면 카드사에 가입한 효과가 없습니다. 마치 닭과 달걀 같은 문제입니다.

저는 결제 플랫폼으로 네트워크 효과를 만들려면 적어도 사용자가 100만명 이상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페이팔이 성공할 수 있었던 핵심 솔루션은 ‘이메일’이었습니다. 1999년 당시 이미 300만명 이상이 이메일 계좌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메일 계좌를 이용해 돈을 주고받는다면 300만명 고객을 끌어모을 수 있을 터였습니다. 간단한 아이디어였지만 그것이 성공 비결이었습니다.”
☞네트워크 효과란
일단은 판을 키워라… 선순환이 시작된다 <2014년 8월 30일자>
―‘마피아’란 말이 있을 정도로 페이팔 출신은 페이팔을 떠나서도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런 기업 문화를 만들었습니까?

“저는 페이팔 직원을 모을 때 이력서를 검토해 가장 재능 있는 사람들을 뽑은 게 아니었습니다. 저는 직원들이 비즈니스 관계가 아니라 인간적인 관계가 되길 바랐거든요. 그래서 ‘즐거운 마음으로 함께 일할 수 있는’ 사람들만 골라 뽑았습니다. 재능도 있어야 하지만 함께 일하는 것 자체를 즐겨야 했습니다. 저희는 협력이 잘 됐습니다. 우리는 모두 SF 장르의 영화나 소설을 사랑했다는 공통점도 있었습니다.(웃음)

제가 잘했다고 생각하는 건 회사의 모든 사람이 오직 한 가지 일에만 책임지게 한 것이었습니다. 처음엔 사람 관리를 쉽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역할을 구분해 주다 보니 동료 간 충돌이 줄어들었습니다. 회사 내에서 다툼이 생기는 건 대부분 같은 책임을 두고 동료들끼리 경쟁할 때입니다. 경쟁을 제거하면 모든 사람이 비즈니스 관계를 넘어 인간적 관계를 맺기 쉬워집니다.”

―페이팔은 핀테크의 원조입니다. 앞으로 핀테크 사업을 독점할 기업은 어디가 될까요?

“아직은 무엇이 성공할 것이라고 단정하기 너무 이릅니다. 그러나 중요한 건 두 가지입니다. ‘비즈니스 모델이 얼마나 좋은가’와 ‘실제로 어떤 기술력을 가지고 있는가’입니다. 제가 영국의 핀테크 기업인 ‘트랜스퍼와이스(TransferWise)’를 좋아하는 이유는 이 회사가 정말 작은 시장에서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말 그대로 ‘해외 송금(transfer)’에만 집중하고 있거든요. 종종 핀테크 기업 중에는 목표를 ‘온라인 뱅킹의 효율성을 키우겠다’고 하는 회사가 있습니다. 그런데 온라인 뱅킹은 수십조달러짜리 시장입니다. 그런 회사는 태평양 한가운데서 물고기 한 마리가 되겠다고 하는 격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기술이 어디에 있는지 봐야 합니다. 예컨대 빅데이터 분석 기술을 가졌다고 했는데, 알고 보니 마케팅 구호로만 떠드는 회사는 독점 기업이 될 수 없어요.”

☞트랜스퍼와이스는
금융업 뿌리 흔드는 '핀테크 벤처' <2014년 11월 15일자>

로스쿨 나왔지만 대법관 안 돼서 다행


틸씨는 스탠퍼드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스탠퍼드대 로스쿨에 진학했다. 대법관을 꿈꿨지만 대법관 보좌관 시험에 응시했다 떨어지고 기업가의 길을 걸었다.

―당신이 대법관 보좌관이 안 돼서 우리로서도 참 다행입니다.

“(웃음)고맙습니다. 사실 로스쿨 재학생에게 최고로 선망받는 직업은 대법관이 되는 겁니다. 그러려면 단계별로 차근차근 밟아나가야 하죠. 문제는 최종적으로 대법관이 될 기회는 오직 1~2명에게만 주어진다는 겁니다. 저는 케네디 대법관 보좌관직에 지원해 면접을 봤지만 탈락하고 말았습니다. 그 순간은 (잠시 쉬며) 정말 엄청난 좌절감을 느꼈습니다. (그는 이 대목에서 음절 하나하나를 끊어 말할 만큼 강조했다.) 세상이 끝난 줄 알았어요. 제게는 대법관만이 유일한 꿈이었거든요.

10년이 지나고 우연히 로스쿨에서 가장 친했던 친구 한 명과 마주쳤습니다. 그는 10년 만에 만난 제게 ‘와, 정말 반갑다. 요즘 어떻게 지내?’라고 묻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짜고짜 ‘피터, 그때 시험에 탈락해서 정말 다행스럽지 않니?’라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때때로 무언가를 잃고 나면 엄청나게 좌절합니다. 그러나 1년쯤 지나고 되돌아봤을 땐 ‘에이, 별거 아니었네’ 싶을 때가 더 많아요. 제 인생에서 대법관이 딱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때 탈락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쟁은 하면 할수록 더 힘들어집니다. 새로운 경쟁은 언제나 눈앞에 나타나고 그 경쟁에서 승리할 확률은 점점 줄어들죠. 저는 굳이 ‘승자의 저주’를 말씀드리려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승자의 축복’도 없다는 건 분명히 하고 싶습니다.”

 프리미엄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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