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중 세종실록 12년(1430년) 10월 23일에 이런 글이 있다.
“上, 學 <啓蒙算>, 副提學鄭麟趾入侍待問, 上曰: “算數在人主無所用, 然此亦聖人所制, 予欲知之.”
해석하면 이렇다. “임금이 계몽산(啓蒙算)을 배우는데, 부제학 정인지(鄭麟趾)가 들어와서 모시고 질문을 기다리고 있으니, 임금이 말하기를 ‘산수(算數)를 배우는 것이 임금에게는 필요가 없을 듯하나, 이것도 성인이 제정한 것이므로 나는 이것을 알고자 한다.’”
“上, 學 <啓蒙算>, 副提學鄭麟趾入侍待問, 上曰: “算數在人主無所用, 然此亦聖人所制, 予欲知之.”
해석하면 이렇다. “임금이 계몽산(啓蒙算)을 배우는데, 부제학 정인지(鄭麟趾)가 들어와서 모시고 질문을 기다리고 있으니, 임금이 말하기를 ‘산수(算數)를 배우는 것이 임금에게는 필요가 없을 듯하나, 이것도 성인이 제정한 것이므로 나는 이것을 알고자 한다.’”
- 훈민정음 해례본(왼쪽)과 세종대왕.
젊고 유례없이 총명한 두 사람이 수학을 이야기하는 상황. “수학은 성인이 제정한 것이므로 알고자 할 따름”이라는 것은 무슨 의미였을까. 여기서 성인(聖人)이란 요·순·우·탕·주공 등 유교에서 이상적으로 여기는 인물들을 말한다.
훈민정음도 반대했던 신하들이다. 임금이 그 바쁜 중에 수학을 공부한다는 건 눈치 보이는 일이었을 것이다. 위의 세종대왕 말씀은 수학 공부의 필요성을 신하들에게 납득시키려는 현명한 답변이다. 실록에는 간결하고 함축적인 표현이 많다.
임금이 단순히 책을 ‘구경한다’는 것이 아니라 ‘임금(上)이 공부한다(學)’(상, 학)는 표현은 실록 전체에서도 쉽게 찾기 힘들다. 수학을 공부하면 성인들처럼 된다니 과연 그럴까? 이후 세종의 행적을 보면 그렇지 않다. 세종은 유교의 전통적 성인들과는 달랐다.
임금이 공부했던 수학 교재 계몽산(啓蒙算)에는 ‘공자왈 맹자왈’이 전혀 없다. 쉬운 문제는 풀이를 생략한 259문제가 실려 있는 완전 고급 수학책이다. 이 계몽산은 실생활을 다룬 문제들로만 이루어져 있는데, 급수와 고차연립방정식 같은 고등수학도 있을 정도다. 세종이 산가지를 옆에 놓고 이리저리 움직이며 계산하는 장면을 상상한다. 고금을 통해 그 예가 없는 군주의 행동이었으니 눈물겹게 훌륭하고 아름답다.
매일 너댓시간 주무시면서 고등수학까지 공부해 가며 22명의 자식을 둔 세종은 초인인가 성인인가? 정인지는 “우리 임금은 성인(聖人)”이라 하였다.
누가 그랬던가? 조선은 당초부터 과학을 천시하여 그 근간이 없고 형편없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고…. 이미 산산조각난 식민사관은 ‘죽은 자의 사당’ 야스쿠니에 봉인해 마땅하다.
프리미엄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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