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8월 3일 금요일

영재 담당 교사들 “정부가 희생만 강요… 교육 위기 초래”

② 식어가는 영재 열기 / 과중한 업무에 별도의 보상체계 없어 / 토요일 수업에 전문적 공부 병행해야 / 학생 만족도 높은 것으로 그나마 버텨 / 학교선 “매년 지원자 줄어들어 어려움” / 교육당국은 영재비율 등 지표만 관심 / 현장 고충 외면 대상자 늘리기만 급급 / 예산도 부족해 실질적인 교육 어려워

“영재교육의 위기라고 봐야죠. 처음 시작할 때와 비교하면 전반적인 지원도 그렇고, 사회적 관심도 많이 줄어든 게 사실입니다.”

11년간 영재교육을 해온 한 초등학교 교사가 털어놓은 말이다. 이처럼 일선 영재교육 현장에는 위기의식이 팽배하다. 영재를 가르치는 교원들은 “과중한 업무에 비해 적절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사정이 이런데도 교육당국은 행정편의적 태도로만 일관해 현장의 어려움을 가중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영재교육 관련 예산도 정치·사회적 여건에 따라 들쑥날쑥하면서 혼란을 키우고 있다.

◆“현장에 희생 강요… 보상해 줘야”

30일 세계일보 취재진과 인터뷰를 한 영재교육 담당 교사들은 하나같이 “정부가 현장에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서울 은평구 한 초등학교에서 과학영재교육을 하고 있는 이모(41) 교사는 “영재교육 담당 교사들은 전문적인 공부를 계속해야 하는데 기타 업무도 차질없이 해야 한다”며 “들이는 노력에 비해 실질적 혜택이 부족한 것 같다”고 말했다.

수도권 한 영재학교(고교)에서 화학을 가르치는 원모(46) 교사도 “이 학교에 오기 전에 ‘교장·교감이나 장학사 하고 싶은 사람은 가면 안 된다’는 얘길 많이 들었다”며 “별다른 이점이 없는 걸 알았지만 아이들한테 제 전공을 잘 가르쳐 보고 싶고, 같이 실험도 해보고 싶어 왔다”고 말했다. 원 교사가 평가하는 이 학교 수업 수준은 대학 1·2학년 과정이다. 영재교육 담당 교사들은 수당 외에 승진 가산점이나 해외연수 기회 등 별도의 보상은 받지 못하는 점이 불만이다. 그나마 학생들이 학업 의지가 뛰어나고 집중력이 좋아 수업 만족도가 높은 걸 위안으로 삼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교사들이 영재학교나 영재학급 운영학교를 기피하는 현상도 빚어진다. 임규형 서울과학고(영재학교) 교장은 “힘든 일에 비해 예우나 보상이 부족해서 그런지 아무래도 교사를 데려오기 어려워진 건 사실”이라며 “(교사)모집은 그럭저럭 하고 있어 아주 곤란한 수준은 아니지만 갈수록 지원자 풀이 줄어들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털어놨다.

◆당국은 기관·대상자 수에만 집착

현장의 불만이 커지면서 서울 서대문구 S중학교처럼 영재학급 운영을 포기하는 학교가 속출하고 있다. 새로 영재교육을 맡으려는 사람이 줄다 보니 한번 발을 들인 교사가 10년 넘게 책임을 져야 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간혹 열의를 잃은 교사들이 수업을 소홀히 해 학생들의 만족도가 떨어지거나 아예 영재교육을 외면하게 되는 등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교육당국은 이런 현실을 외면한 채 영재교육과 관련한 각종 지표를 관리하기에만 급급한 인상이다. 교육계에 따르면 교육부는 매년 시·도교육청 평가를 진행할 때 영재교육기관 수와 대상자 비율 등을 하나의 평가지표로 활용한다. 영재교육 대상자의 목표 비율은 3%다. 전국 평균이 2% 이하인 점을 감안하면 대상자를 더 늘리라고 압박하는 셈이다.

◆예산 늘렸다지만…체감은 달라

영재교육에 투입되는 예산도 현장 상황을 악화시킨 한 요인이다. 최근 5년간 현황을 살펴보면 중앙 예산과 시·도교육청에 분배하는 특별교부금을 더한 교육부 예산은 2014년 42억원에서 이듬해 25억7000만원으로 급감한 이후 꾸준히 늘어왔다. 2015년은 누리과정 예산을 둘러싼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던 해다. 올해 교육부 예산은 63억1800만원까지 늘었다.

반면 시·도교육청이 자체 편성하는 예산은 양상이 사뭇 다르다. 세계일보가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입수한 전국 시·도교육청별 영재교육 예산을 보면 그 추이가 지역마다 제각각이다. 서울은 2014년 45억2446만원에서 이듬해 급감했다가 올해 43억6394만원까지 회복했다. 그러나 경기, 인천, 세종, 대전, 부산 등은 여전히 2014년과 큰 차이가 난다.
모든 시·도교육청 예산을 더한 금액은 2014년 393억955만원에서 이듬해 315억2862만원으로 떨어졌다가 점차 증가해 올해 409억2968만원으로 집계됐다. 조금 늘었지만 차이가 크진 않다. 지난 5년간 사실상 제자리걸음이다. 예산이 동결되거나 줄어든 지역은 대부분 교육의 ‘수월성’보다 ‘기회균등’을 더 강조하는 진보성향 교육감이 있는 곳이다.

하종덕 인천재능대 영재교육원장은 “영재교육기관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영재학급의 경우 처음에는 거의 무료로 운영했지만 지금은 비용 일부를 학생들이 부담하고 있다”며 “(시·도교육청들이) 가능하면 예산을 좀 늘려 영재교육 대상자 범위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세계일보

댓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