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8월 3일 금요일

모기의 비밀

침 6개로 피부 뚫고 흡혈… 초당 800번 날갯짓해 달아나


올해는 장마가 일찍 물러가고 폭염이 계속되면서 모기마저 자취를 감췄다는 말이 나옵니다. 서울과 경기 지역에서 잡힌 모기 수는 지난해와 비교해 4분의 1 수준이에요.하지만 모기의 여름철 활동은 줄어도 1년 중 모기가 활동하는 기간은 늘 거라는 분석도 나와요. '여름 불청객' 모기가 가을부터 초겨울까지 나타나 극성을 부릴 수도 있다는 뜻이죠.

◇침으로 마취해 아픈지 모르게 피 뽑아

모기가 피를 빠는 모습을 본 적이 있나요? 아마 많지 않을 거예요. 모기에게 물리고 난 뒤에야 간지러움이나 통증을 느끼기 때문이에요. 모기는 사람 피를 빨 때 신경을 건드리지 않아요. 모기의 흡혈관 끝에는 피 냄새를 맡는 후각기관이 있어요. 이 후각기관 덕분에 혈관을 찾아 정확히 침을 꽂을 수 있답니다. 흡혈관이 신경을 건드리지 않기 때문에 모기에 물릴 당시에는 느낌이 없어요.

또 모기는 사람 몸에서 피를 뽑는 과정에서 우리 몸에 침을 뱉어요. 이 침 속엔 피가 굳는 것을 막아주는 단백질성 항응고 성분이 들어있어요. 피는 공기와 만나면 금세 굳는데, 이 성분 덕에 모기는 굳지 않은 신선한 피를 마실 수 있어요. 이뿐만 아니라 침 속에는 약간의 마취 성분이 있어 모기가 무는 것을 우리가 느끼기 어려워요. 모기에게 물렸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리는 이유죠.

모기가 우리 몸에 주입한 침은 우리 몸 입장에서는 이물질로 여기기 때문에 면역물질인 히스타민이 출동해요. 면역세포인 백혈구가 이물질을 제압할 수 있도록 히스타민이 혈관을 확장하는데, 그 과정에서 조직 사이의 액체인 조직액이 늘어나면서 모기 물린 곳이 부어올라요.

◇냄새로 피 뽑을 자리 찾아

모기는 사람 몸에서 피가 나올 만한 부위를 어떻게 찾는 것일까요? 모기의 후각기관은 더듬이, 작은턱수염, 주둥이로 이뤄져 있어요. 작은턱수염은 15m 밖의 이산화탄소 냄새를 맡을 수 있고, 주둥이는 동물 땀에서 나는 젖산이나 향기 성분을 30m 밖에서도 감지할 수 있죠. 바람을 거슬러 지그재그로 날던 모기는 체취를 감지할 수 있는 범위에 들어서면 피를 빨 대상을 향해 직선으로 날아갑니다. 우리 땀과 우리가 내쉬는 이산화탄소를 감지하고 찾아오기 때문에 모기는 깜깜한 밤이나 어두운 곳에서도 쉽게 피를 뽑을 수 있는 거예요.


모기의 신체 구조 그래픽
▲ 그래픽=안병현모기 주둥이는 빨대처럼 곧바로 꽂을 수 있는 단순한 구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은 매우 복잡해요. 피부에 꽂는 침은 총 6개예요. 모기가 피부에 앉으면 먼저 톱날 모양의 침 2개가 피부 조직을 썰어 피부 표면을 약하게 만들어요.

동시에 양옆에 47개 넘는 이빨이 달린 침 2개로 혈관이 있는 곳까지 피부에 구멍을 뚫어요. 이 때문에 코끼리처럼 피부가 단단한 동물은 물론이고 우리가 청바지를 입고 있을 때에도 모기에게 물릴 수 있어요.

이어 타액관과 흡혈관이 들어갈 차례예요. 모기는 피부 표면에서 가장 가까이 분포하는 혈관을 찾으면 먼저 침을 뱉어요. 앞서 설명한 혈액의 응고를 막고 일시적으로 마취를 하기 위해서예요. 그 뒤 흡혈관을 혈관에 꽂아 피를 빨아들여요. 사람처럼 목구멍에서 한 차례 '꿀꺽' 삼키는 일이 없이 한 번에 빨아들여요.

2015년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 안용준·권형욱 교수팀은 과학저널 '사이언스 리포트'를 통해 모기 흡혈관 맨 앞쪽에 두 가지 후각 수용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혔어요. 이 후각 수용체들은 핏속의 휘발성 향기 성분인 '사이클로헥산'과 '1-옥텐-3-올'에 강하게 반응해요.

연구팀이 이 후각 수용체가 기능하지 못하도록 하자 모기는 혈관을 찾지 못해 여러 번 침을 찌르고, 피를 빨아들이는 데 3~15분이나 걸렸어요. 반면 후각 수용체가 정상인 모기는 한 번에 정확히 혈관을 찾았고 30초 만에 피를 빨아 먹고 달아나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죠.

열매즙이나 꿀을 빨아 먹는 초파리나 꿀벌의 주둥이는 감각기관이 없고 움직이지 않는 대상에 빨대를 꽂기 때문에 후각 수용체가 발달할 필요가 없어요. 하지만 모기는 움직이는 동물의 피를 빠느라 후각 수용체가 진화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요.

◇1초에 800번 움직이는 날개

귓가에서 앵앵거리는 소리에 잠이 깬 적이 있지요? 하지만 깜깜한 방의 불을 켜면 모기는 어느새 사라져 잡기 어려워요.

영국 런던대 리처드 봄프리 박사팀은 초고속카메라로 열대집모기가 나는 과정을 촬영해 분석했어요. 그 결과, 모기가 1초에 800회의 빠른 날갯짓을 하고, 다른 곤충에 비해 날개가 움직이는 각도가 작은 것을 확인했어요. 날개가 움직이는 각도가 작으면 비행 속도가 빨라지죠.

일반적으로 곤충은 날개를 아래로 내리쳐서 얻는 힘을 통해 위로 떠오르는 양력을 만들어요. 그런데 모기는 날개를 파닥거림과 동시에 회전시켜요. 초파리나 꿀벌, 나방 등이 날개를 파닥이기만 해서 몸통에서 날개 끝으로 갈수록 양력이 작아지는 반면, 모기는 회전 날갯짓을 통해 양력이 날개 끝부분까지 고르게 퍼져 더 잘 날 수 있다는 얘기예요. 또 곤충의 날개는 보통 세로 대비 가로 비율이 3이지만 모기는 4.2로 길어요. 이 긴 날개 덕분에 다른 곤충에 비해 더 빠르게 비행하는 것이 확인됐어요.

모기는 사람에게 말라리아·일본뇌염·황열병·뎅기열 등을 옮기고, 개와 고양이에게는 심장사상충을 옮길 수 있는 위험한 곤충이에요. 모기로 인해 전 세계에서 한 해 70만명이 목숨을 잃고 있어요. 작은 몸집으로도 수많은 사람을 죽게 하는 비밀은 이처럼 모기의 뛰어난 비행술에 있지 않을까요?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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