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에 친구에게 선물할 은목걸이를 만들고 있어요." 지난 6일 이 학교 '은공예' 수업에서 만난 크리스티나(22·코펜하겐대 심리학 3년)는 묵직한 망치를 들고 손톱만 한 크기의 은조각을 수십 번씩 내리쳤다.
지난 6일 덴마크 힐레뢰드의 성인 대상 시민학교 ‘프레데릭스보르 학교’에서 학생들이 은공예 수업을 받고 있다.
이 학교 개설수업 중 절반이 문화예술교육이며, 학생들은 4개월간 기숙사 생활을 하며 공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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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도인 그가 시민학교를 택한 이유는 "오로지 날 위한 공부를 하고 싶어서"였다. 등록금 마련을 위해 아르바이트로 2만4000크로네(약 430만원)를 모았고, 은공예와 연극·노래·암벽등반 등으로만 시간표를 짰다. 그는 "여행을 갔다면 이보다 훨씬 많은 돈을 썼을 것"이라며 "진로와 큰 연관은 없지만, 온전히 내게 집중할 수 있는 이 시간이 좋다"고 했다.
◇ 시민학교서 문화예술교육
유럽의 문화예술교육은 청소년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학교를 졸업한 성인은 물론, 노년층에게까지 필요하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1844년 처음 설립된 덴마크 '시민학교'는 생애 예술교육에 대한 덴마크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성인을 대상으로 한 '시민학교'는 덴마크에 67곳 있다. 1년에 2~3번 학생들을 모집하고, 연간 등록 학생 수만 4만~5만명에 이를 정도로 대중화돼 있다. 정규학기엔 청년층이, 여름학기엔 노인층까지 제한 없이 지원한다. 원하는 수업을 골라 시간표를 짤 수 있는데, 커리큘럼의 40% 정도는 예술 관련 분야다. 또 다른 유명 시민학교인 보른홀름 학교는 아예 도자·유리공예 과목 중심으로만 짜여 있다.
안드레아스 시민학교 편집장은 "과거엔 평생 한 가지 직업으로만 살았다면 이제는 다양한 진로에 유연한 태도를 가져야 한다"며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성취감과 창의성을 높이고, 평생 공부하면서 사회 참여와 좋은 인생의 의미를 고민하자는 것"이라고 했다. 야곱 닐슨 프레데릭스보르학교 교장은 "문화예술만큼 인간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고 스스로 뭔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주는 교육은 없다"고 했다.
학령기 청소년이 아닌 성인들에게도 생애 문화예술교육을 강조하는 건, 예술활동이 사회적으로도 긍정적인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김소연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국제교류팀장은 "유럽은 일찌감치 학생이나 소외 계층 말고도 일반 성인들도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자기 삶의 질을 높여야 한다는 인식이 퍼졌다"면서 "문화예술 활동으로 여가를 제대로 즐기는 법, 가족과 화목하게 지내는 법, 이웃과 더불어 지내는 법을 자연스럽게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 노인들도 예술교육 받을 권리
노인층도 예외는 아니다. 거동이 힘든 고령이어도 최소한의 문화예술교육을 받을 권리를 갖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가령 영국의 민간재단 '이퀄아트(Equal Art)'는 일주일에 한 번 2~3시간씩 영국 북부지역 32개 노인요양원에 예술 강사를 파견해 노인들에게 노래와 미술, 공예를 가르친다. 노인들은 강사의 도움을 받아 부직포로 인테리어 소품을 만들고, 진흙으로 머그컵을 빚고, 행주 천에 물감을 들인다. 매년 1000여명의 노인이 혜택을 누린다.
노인들 반응도 좋다. 영국 뉴캐슬의 노인시설 '윈튼코트'에서 만난 마거릿(87) 할머니는 강사의 기타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면서 "정말 좋다. 노래 부르니 정말 좋다"고 했다. 노인복지관 '섀던하우스'에서 만난 조지(88) 할아버지는 "예전엔 앉아서 TV만 봤는데, 이젠 '오늘은 뭘 만들까' 기대하게 된다"고 했다.
더글러스 헌터 이퀄아트 프로그램 디렉터는 "어떤 노인들은 젊었을 때 잊고 살았던 예술가의 꿈을 되찾았다며 기뻐하기도 하고, 자신에게 숨겨져 있던 예술성을 뒤늦게 발견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윈튼코트의 캐럴 벨트람 매니저는 "노인들에게 항상 '쪼그려 있지 마라. 예술교육은 당신이 마땅히 받아야 하는 서비스일 뿐'이라고 말한다"고 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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