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엽지추(一葉知秋)’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나뭇잎 하나가 떨어짐을 보고 가을이 옴을 안다는 뜻으로 한가지 일을 보고 장차 오게 될 일을 미리 짐작한다는 말이다. 하찮은 조짐을 보고서도 앞으로 일어날 일을 미리 안다는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산의 스님은 갑자을축으로 세상의 변화를 풀지 못하지만 나뭇잎 하나가 지는 것으로 온 세상이 곧 가을이 될 것을 안다(山僧不解數甲子 一葉知秋)”는 구절에서 유래된 말이다.
또한 중국 한나라 시대의 고전인 ‘회남자(淮南子)’에 “작은 것으로 큰 것을 밝혀내고 한 잎이 지는 것을 보고 한 해가 저물어감을 알며 병 속의 얼음을 보고서 세상이 추워졌음을 알 수 있다(以小明大見 一葉落 而知歲之將暮 睹甁中之氷 而天下之寒)”는 시가 있다.
이렇듯 세상 변화의 흐름을 안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조그마한 하찮은 일이라도 눈 여겨 본다면 사물의 이치 또한 알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통찰력과 영감도 얻을 수 있다. 모두가 보는 것 가운데서 남들이 생각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해 내는 것이 바로 유레카의 순간이 아닐까?
하잘것없이 조그마한 것에서 커다란 것을 밝혀내 과학기술의 발전에 신기원을 이룩하고 인류의 문명에 이바지한 사례는 너무나 많다. 어쩌면 모든 위대한 과학과 기술이 그런 속에서 탄생했다. 시작은 미미했지만 결과는 장대했다.
이탈리아가 낳은 세계적인 과학자로 지동설을 주장해 땅의 혁명을 일으킨 갈릴레오 갈릴레이도 예외는 아니다. 아인슈타인의 지적처럼 그는 종교적인 도그마에 대항한 과학자로 그리고 당시 누구보다도 경험과 깊은 사고 속에서 커다란 업적을 일구어 낸 선구자다.
지루한 예배시간에 나온 번뜩이는 아이디어
시계가 세상에 나온 것은 약 700년 전의 일이다. 하지만 당시의 시계는 잘 맞지 않았다. 분을 잴 수 있는 분침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시계는 시간을 알려주는 시침 하나만 갖고 있었다.
분침이 등장한 것은 17세기의 일이다. 뉴턴, 다윈과 더불어 근대 과학혁명을 일으킨 갈릴레오가 성당에서 지루한 예배시간에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체득하고 나서다. 당시 그는 이탈리아 피사 대학에서 의학공부를 하고 있었다.
어느 날 피사의 로마네스크 성당에 들어선 갈릴레오는 천장에서 길게 늘어져 흔들리는 샹들리에를 보았다. 그는 손목의 맥박을 재면서 샹들리에의 흔들림을 유심히 관찰하다가 “그렇다! 틀림없어!”라고 소리를 쳤다. 열여덟 살의 갈릴레오가 유명한 진자의 등시성을 발견한 순간이다.
진자(pendulum)란 일반적으로 중력의 영향하에서 전후로 자유롭게 흔들릴 수 있도록 한 점에 고정된 상태로 매달려 있는 물체를 의미한다. 중력이나 탄성력 등의 힘에 의해 평형점을 중심으로 진동운동을 반복한다. 실에 단 추를 생각하면 된다.
샹들리에의 흔들리는 폭은 점점 줄어들었으나 흔들림이 크건 작건 한 번 왕복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동일했다. 당시만 해도 사람들은 흔들거리는 물체의 폭이 좁을수록 시간이 적게 소요될 것으로 믿고 있었다. 그러나 청년 갈릴레오는 진자가 진동하는 주기가 진폭과는 관계없이 일정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갈릴레오는 물체가 흔들리는 것을 이전에도 수백 번은 더 봤을 것이다. 더구나 성당에서 샹들리에가 흔들리는 것은 적어도 일주일에 한번 이상은 목격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곳 로마네스크 성당에서 진자의 법칙을 생각해 낸 것은 의학과 1학년 때였다.
찰나의 깨달음은 오랜 경험과 숙고의 결과물
그러면 왜 그 전까지는 진자의 법칙에 대한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관찰력이 모자라서? 그런 위대한 생각을 하기에는 나이가 어려서? 위대한 발견의 순간, 다시 말해서 유레카라는 찰나의 깨달음은 한 순간에 온다.
그러나 그 찰나의 시간은 오래 축적된 경험과 갚은 의문 속의 숙고들이 모여 탄생한다. 시인 미당 서정주의 시 ‘국화 옆에서’에 나오는 구절처럼 한 송이 아름다운 국화꽃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피를 토하는듯한 소쩍새의 한스러운 울음, 그리고 천둥과 먹구름의 시간이 있어야 한다.
갈릴레오가 성당에서 진자의 원리를 발견하게 된 일화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의 하나가 성당의 남자 수도승이 천장에 달린 샹들리에 촛불을 붙인 후 놓았을 때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피사 사람들은 갈릴레오가 본 것은 흔들리는 향로라고 믿고 있다. 좀 더 세부적인 내용을 들여다 보자. 남자 수도승은 향의 연기를 퍼뜨리기 위해 향로를 흔들고 있었다. 갈릴레오는 자신의 맥박을 이용해 향로가 흔들리는 주기를 측정했다.
놀랍게도 향로가 크게 흔들리던 작게 흔들리던 간에 한번 흔들리는 데 걸리는 시간은 항상 같았다. 그 후, 갈릴레오는 추의 무게와 줄의 길이를 바꿔가면서 진자 실험을 했다. 결국 추의 무게는 진자의 주기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으며 줄의 길이는 영향을 준다는 것을 발견했다.
지적처럼 갈릴레오가 성당에 매달려 있는 램프의 흔들림 속에서 진자의 법칙을 발견했는지, 아니면 수사(修士), 즉 남자 수도승이 흔들거리는 향로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진자의 법칙을 처음으로 발견한 과학자가 바로 갈릴레오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이견(異見)이 없다.
성당 샹들리에가 아니라 향로가 더 설득력
사실 성당 샹들리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일화는 신빙성이 떨어진다. 기록에 따르면 갈릴레오가 1582년에 보았다는 로마네스크 성당의 샹들리에는 1587년에 설치되었기 때문이다.
아마 이 일화는 대부분의 사람이 종교적 의례에 시간을 낭비하고 있을 때 갈릴레오는 과학적 진리를 추구하는 데 전념하고 있었다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일부 과학사가들은 물론 갈릴레오가 여러 가지 진자를 가지고 실험을 하긴 했지만 그것은 대학 시절이 아닌 노년 시절에 있었던 일이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는 노년에 진자의 법칙을 터득한 후 시계제조 사업을 구상하기도 했다.
갈릴레오는 의사들에게 환자의 맥박을 잴 때 특별히 표시를 한 진자를 사용하도록 권했다. 질병이 있으면 대부분 맥박이 빨라지기 때문에 환자의 맥박을 정기적으로 체크하는 것은 의사들의 기본임무였다. 맥박계라는 이름으로 갈릴레오가 만든 장치는 맥박을 정확하게 측정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갈릴레오가 진자의 주기가 일정한 것을 이용해 시계를 만들려고 생각한 것은 그가 77세 되던 해였다. 그러나 그 때는 완전히 시력을 잃은 상태였다. 갈릴레오는 흔들리는 진자가 시계의 톱니바퀴를 잡거나 놓게 하여 일정한 속도로 돌게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노년에 시력 완전히 잃어, 진자시계 완성 못해
그래서 그의 아들 비센초(1606~1649)는 그런 진자시계를 만들려고 시도했다. 그는 시력을 잃은 갈릴레오의 설명에 따라 추시계를 그렸다. 그러나 갈릴레오는 그 시계가 완성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생을 마쳤다. 갈릴레오가 죽은 후 비센초는 시계를 완성했지만 작동하지 않았다.
세계 최초로 제대로 작동하는 진자시계를 만든 사람은 네덜란드의 과학자 크리스찬 호이겐스(1629~1695)로 1656년의 일이다. 시계 발명에 대한 기득권은 갈릴레오에게 주어지기도 하고 호이겐스에게 주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매달린 물체, 즉 시계추가 원의 일부가 아닌 사이클로이드(cycloid)를 따라서 운동하게 하는 회전축을 고안함으로써 진자의 주기를 진정으로 일정하게 하는 중요한 문제를 해결한 사람은 호이겐스다.
갈릴레오가 발견한 원리에 근거한 진자시계는 거의 3세기 동안이나 사람들에게 시간을 알려주었다. 1929년 전자시계가 발명되기 전까지는 거의 모든 시계 안에서 진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갈릴레오가 성당에 목격한 바로 그 향로의 흔들림처럼 말이다.
“일단 발견되면 모든 진리란 이해하기 쉽다. 중요한 것은 그 진리들을 발견하는 일이다. (All truths are easy to understand once they are discovered; the point is to discover them.)” 오늘날 과학자들에게 연구에 충실하라는 하나의 충고가 아닐까?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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