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 15일 수요일

영국 대입에 영향 끼친 '콕스 효과'


스타 과학자가 수학·과학 인기 높여


수준 높은 다큐멘터리 콘텐츠로 유명한 영국 BBC 방송에 지난해 괴짜 과학자가 등장해 인기를 끌고 있다. 언제나 헝클어진 머리에 청바지와 티셔츠를 입은 동안의 과학자는 실없는 농담을 섞어가며 태양계와 우주의 생성 원리를 설명한다. 맨체스터대 물리학 교수이며 유럽원자핵공동연구소(CERN)에서 입자물리학 실험을 진행 중인 브라이언 콕스(Brian Cox, 42세)이다.

▲ 영국 BBC 방송이 최근 시작한 TV다큐멘터리 ‘우주의 경이’에 사회자로 등장한 브라이언 콕스 교수 ⓒBBC
프로그램 제목은 ‘태양계의 경이(Wonders of the Solar System)’인데, 그가 저술한 동명의 서적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한 것이다. 이전에도 그는 ‘E=MC2 이야기(Why Does E=MC2)’ 등의 과학서적을 펴내 큰 인기를 끌었고, 최근에는 자신의 저서 ‘우주의 경이(Wonders of the Universe)’가 TV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져 방영되기 시작했다.

그는 다른 과학자들에 비해 이력이 독특하다. 젊은 시절에는 동네 술집에서 만난 유명 뮤지션 씬 리지(Thin Lizzy)의 눈에 띄어 ‘데어(Dare)’라는 락밴드에 가입해 전국 투어를 다니기도 했다. 멤버 간의 불화로 팀을 탈퇴한 후에는 ‘다시 공부나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맨체스터대 박사과정에 입학했다. 그 후 입자물리학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다가 TV 과학 프로그램의 사회자로 나선 것이다.

수학과 과학에 대해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는 콕스 교수 덕분에 프로그램은 큰 인기를 끌었다. 그는 영국 데일리메일(Daily Mail)이 선정한 ‘섹시 가이’에도 뽑혔다. 트위터(twitter.com/ProfBrianCox)에서 그를 팔로잉하는 사람만 40만명 가까이 된다.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사회자로 등장해 스타 과학자가 된 사람들은 콕스 이전에도 있었다. 작고한 과학자 칼 세이건(Carl Sagan)은 1980년 동명의 서적을 다큐멘터리화한 ‘코스모스(Cosmos)’에 출연해 6억명의 시청자를 TV로 끌어들였다. ‘평행우주’라는 책의 저자이자 BBC 과학다큐멘터리 사회자로 출연한 미치오 가쿠(Michio Kaku)도 인기를 얻었다. 이들의 인기 비결은 호감가는 외모, 화려한 언변, 쉬운 설명 등이다.

이렇듯 대중적인 스타로 자리 잡은 과학자들 덕분에 수학·과학 과목의 인기가 높아진다는 분석이 나와 화제다. 딱딱하고 어렵다는 선입견을 깨고 고등학생들이 수학·과학 과목에 관심을 가져 관련 학과로 진학하는 경우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이른바 ‘브라이언 콕스 효과(Brian Cox Effect)’이다.

대입 예비시험에도 스타 과학자 효과 나타나
최근 실시된 영국의 대입 예비시험 에이레벨(A-levels)의 결과에도 ‘콕스 효과’가 그대로 반영되었다. 영국 청소년들은 중학교까지의 의무교육을 마치는 만16세에 GCSE(The General Certificate of Secondary Education) 시험을 치르는데, 그 결과에 따라 대학 진학을 위한 2년간의 에이레벨 과정 또는 취업을 위한 직업과정 중에서 진로를 선택하게 된다.

▲ 영국에서는 대입 예비시험인 에이레벨(A-levels)을 통과하기 위해 마음대로 과목을 골라 시험을 치른다. ⓒMicrosoft
에이레벨은 응시자 스스로가 과목을 선택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역사, 과학, 경제학, 외국어, 인문학 등 수십 가지 과목 중에서 일반과목은 4과목을, 자연과학 분야는 6과목을 골라 시험을 치른다. 그런데 최근 들어 수학과 과학 과목의 선택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올해로 29년째를 맞는 에이레벨 시험에서 가장 많이 선택된 상위 10개 과목은 영어, 수학, 생물학, 심리학, 역사학, 화학, 미술, 교양학, 미디어학, 물리학 순이다. 수학·과학 분야가 4과목이나 포함되어 있다.

증가 폭도 크다. 수학을 선택한 학생의 비율은 지난 5년 동안 40퍼센트 넘게 성장했다. 물리학은 19.6퍼센트, 화학도 19.4퍼센트나 증가했다. 지난해와 비교해도 화학이 9.15퍼센트, 수학이 7.78퍼센트 늘어났다.

대학마다 인정해주는 과목이 다르기 때문에 대입에 불리하면 인기도 떨어진다. 비판적 사고 과목 비율은 17.34퍼센트나 하락했고, 교양학을 선택한 학생은 12.37퍼센트, 독일어는 6.89퍼센트 줄어들었다.

취업도 영향을 끼친다. 경제가 불황으로 돌아서고 비관적 전망이 계속되면 기업들은 추상적인 인문학 대신 실질적인 외국어나 과학 전공자를 선호하게 된다. 이번 에이레벨에서도 외국어 관련과목은 지난해에 비해 21.48퍼센트가 늘어나 가장 큰 증가폭을 보였다.

특히 중국어는 프랑스어, 스페인어, 독일어에 이어 외국어 분야 중 4위를 차지했다. 영국산업연맹(CBI)의 닐 벤틀리(Neil Bentley) 박사는 가디언지와의 인터뷰에서 “언어능력이 뛰어난 인재를 보유한 기업은 장래에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수학·과학 선택이 경제성장으로 연결돼

수학과 과학의 인기도 경제적인 상황과 연관되어 있다. 경제를 분석하고 예측할 때 수학이 쓰이며 정보통신기술 분야에서 과학 능력은 필수적이다. 운동경기를 해설할 때도 통계를 곁들여 설명하는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는다.

영국 내 지역 중 잉글랜드, 웨일즈, 북아일랜드의 학력평가를 담당하는 에덱셀(Edexcel)의 지기 리아쾃(Ziggy Liaquat) 관리팀장은 “학생들은 대입과 취업에 유리한 과목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며 “앞으로 세계시장에서 경쟁해야 하는 청소년들이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는 수학·과학 분야를 선택하는 것은 긍정적인 측면”이라고 분석했다.

콕스 박사도 최근 TV에 등장해 수학과 과학에 대한 대중의 인식에 “큰 변화가 있었다”고 언급했다. 그는 “학교를 찾아가서 물어보면 남자든 여자든 수많은 아이들이 ‘과학과 공학에 관심이 많다’고 대답한다”며 “개인적으로는 수학·과목 전공자의 숫자가 적으니 경쟁하기에 좋고, 국가로서는 21세기에 경제를 개선시킬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에 좋다”고 밝혔다.

▲ 1980년 TV 다큐멘터리 ‘코스모스’로 스타덤에 오른 칼 세이건 ⓒNASA
전문가들은 이러한 시기에 브라이언 콕스 같은 스타 과학자가 등장하면 긍정적인 롤모델이 생기면서 수학과 과학에 대한 거부감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고 분석한다. 많은 과학자들이 “어린 시절 만나본 과학자들 덕분에 과학자의 꿈을 키웠다”고 증언하는 것도 그 예다.

대중들의 관심을 높일 만한 과학 증진 프로그램이 늘어나면 효과는 급상승한다. 예를 들어 영국은 정부, 학계, 대학, 전문가들이 합심해 다양한 과학대중화 프로그램을 진행해왔다. 1996년부터는 스템넷(STEM) 프로젝트를 시작해 과학, 기술, 공학, 수학, 정보통신학 전문가들을 학교 교육과 연계시켜왔다. 2007년부터 3년 동안은 330만 파운드(한화 약 60억 원)의 정부 지원으로 영국수학협회가 ‘수학 전공자를 늘리자(More maths grads)’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 같은 노력 덕분에 영국에서는 대입 예비시험인 에이레벨에서 해마다 수학 과목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으며, 미래의 성장동력으로 수학·과학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좀 더 대중적이고 친근한 스타 과학자가 나타나 학생들의 수학과학에 대한 관심을 높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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