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회익 교수는 1938년 5월 경북 예천에서 태어나 청주공고를 거쳐 서울대 문리대 물리학과를 졸업했다. 공군사관학교에서 물리학 교관으로
복무한 후 미국 캘리포니아 리버사이드대학 대학원에서 수학하고 루이지애나대 대학원에서 물리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1년 이후 서울대 물리학
교수로 33년 간 후학 양성에 힘쓰다 2003년 명예교수가 되었다.
올해로 퇴임 10년째를 맞는 장 교수는 현직 때보다 오히려 요즘이 “진짜 사람 사는 맛이 난다”고 말한다.
- 학자보다 ‘공부꾼’으로 불리길 더 좋아하신다는데, 요즘도 공부에 큰 재미를 느끼십니까.
“나이가 좀 들었지만 솔직히 공부가 재미있어요. ‘공부’하면 지긋지긋해 하는 일부 젊은이들에게는 이상하게 들릴 수 있으나, 공부가 없으면 무슨 재미로 사나 하는 정도라고 할까요. 뭐든지 재미가 있으면 쉬워집니다. 이렇게 재미로 하다 보니까 최근에도 과학철학 쪽 논문을 하나 썼습니다. 그리고 대학에 있을 때는 강의 준비 등으로 스케줄이 빡빡한데 지금은 아무 구속 없이 스스로 관리하며 자유롭게 사니까 정말 내 삶을 산다는 느낌이에요.”
지적 호기심이 왕성한 장 교수는 지금도 뭘 하다 알고 싶은 것이 있으면 책을 펴서 읽고 생각하곤 한다. 자연스럽게 반복되는 작업으로 이를 연구라고 하기보다는 가볍게 ‘공부’라고 표현한다. 지금까지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이렇게 보내왔다. 그래서 연구자나 학자보다 ‘공부꾼’에 가깝다고 말한다.
“공부는 젊어서 하다가 적당히 집어치우는 것이 아니고 평생 하는 것이지요. 누구나 젊어서는 젊었을 때의 열정을 가지고 공부에 임하지만 나이가 들어서는 넓은 시야와 경륜을 살려 젊은이들이 못 하는 것을 할 수가 있습니다.”
- 공부에 흥미를 갖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어려서부터 사물을 이해하는 게 재미있었습니다. 천둥이나 번개처럼 모르는 것을 하나하나 알아가는 데 재미를 느끼다가 점점 새로운 눈이 열리니까 다이아몬드도 이해하고 태양도 이해하고 나중에는 생명까지 알고 싶어졌습니다. 생명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하고 나니 ‘나라는 존재는 무엇인가’하는 또 다른 질문을 품게 되었고요.”
부모가 공부하는 모범 보이고, 성적 아닌 흥미가 우선돼야
그러면 어릴 적부터 공부에 흥미를 느끼고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을 들이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장 교수는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먼저 부모가 공부하는 모범을 보이고, 다음으로 환경을 조성해 주고, 가능하면 적절한 시기에 맞춰 자신감을 함양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어른이 공부를 하는 모습을 아이들이 보면 공부는 꼭 해야 하는 거구나 하는 마음이 심어지게 됩니다. 내 경우는 아버님이 늘 어려운 수식이 있는 책을 읽는 것을 보고 그런 생각을 가졌고, 뭔가 신비스런 느낌도 받았습니다. 두 번째로 환경을 조성한다는 건 어릴 때부터 성적을 올리기 위해 강요받는 공부를 해서는 안 된다는 거지요. 이게 매우 중요합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아이들이 성적에 신경을 쓰게 하면 창의력을 기르는 데에 커다란 해가 됩니다. 그저 재미있게만 공부하고 잘 놀고 운동을 해 체력을 길러야 합니다. 세 번째로, 적절한 기회에 자기 능력을 발휘해서 뭔가를 성취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면 이게 자기 힘으로 학습을 해나갈 중요한 전기가 될 수 있습니다.”
머리의 좋고 나쁨과 상관없이 모르는 것을 깨우치는 것에 흥미를 느끼면 공부가 재미있어 진다. 이렇게 공부에 재미를 붙이면 무리를 하지 않아도 길게 볼 때 남보다 더 많이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공부에 재미를 붙인 다음에는 ‘내가 스스로 공부한다, 내 힘으로 배운다’라는 자기주도 학습을 습득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장 나쁜 것은 아침부터 밤 12시 혹은 새벽까지 학원에서 남이 가르쳐주는 것만 머리 속에 집어넣는 방식입니다. 이런 방법에 익숙해지면 남이 집어넣어주는 것만 받아들이지 자기 스스로 학습하는 능력은 안 생깁니다. 이렇게 일종의 암기식 과외공부룰 통해 일류대에 들어갔어도 결국 창의적인 능력이 부족해 독창적인 일을 해낼 인재가 되기는 어렵습니다. 이것이 창조경제를 부르짖는 오늘날 우리나라 교육이 지닌 큰 문제점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혼자서 공부하는 능력 키우면 큰 시험에 강해
장 교수가 ‘본의 아니게’ 자기주도적 학습능력을 처음 습득하게 된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 당시 6학년에 올라가서 한 달 쯤 되었을 때 온 가족이 고향으로 귀향을 하게 됐다. 이 때 할아버지가 더 이상 학교에 다니지 말라는 엄명을 내리시는 게 아닌가. 그 이유에 대해서는 전혀 말이 없었다. 그러자 공부를 좋아했던 장 교수는 나무를 하고 소를 먹이는 틈틈이 혼자서 책을 빌려 공부를 하게 됐고, 여기서 자기 나름의 인식 틀을 만들어 사물을 이해하는 방법을 익히게 됐다는 것이다.
“그 전까지는 선생님이 가르쳐주는 것을 기억하는 방법으로 공부를 했는데, 1년 반 정도 혼자서 공부하는 과정을 거쳐 정규 중학교에 편입해 수업을 들어보니 수용하는 자세가 달라지더군요. 선생님의 가르침을 단순히 받아들이지 않고 나름대로 비판하고 이해를 한 다음에야 받아들이는 습관이 들게 됐어요. 이 방법이 장단점이 있더군요. 내게 납득이 안 되면 안 받아들이는 경향이 생겨 학교 성적에는 큰 도움이 안 되었는데, 폭넓은 내용에 대해 스스로 이해하고 정리를 해서 치르는 입학시험 때에는 오히려 효과를 봤습니다.”
장 교수는 과학의 길로 더 빨리 들어서고 싶다는 생각에 선택한 청주공고 입시에서 전례가 없는 높은 성적으로 수석을 차지했고, 이후 서울대 물리학과에도 당당히 합격했다. 또한 미국 유학을 위해 치른 대학원입학자격시험(GRE) 역시 최고 등급의 성적을 얻어 조교 장학금을 받으며 유학생활을 할 수 있었다.
“스스로 정리를 해서 이해하는 습관을 들이면 어떤 문제가 나와도 풀어낼 수 있는 응용력이 생깁니다. 그런데 요즘 중고생들은 이런 유형의 문제는 이렇게 풀어라 하는 주입식 교육을 받았기 때문인지 응용력이 많이 모자라는 것 같아요. 언젠가 대입 예비고사 출제위원으로 위촉돼 이해력을 알아보는 창의적 문제를 내봤더니 온통 어렵다고 난리더군요.”
창의적 능력 발휘할 수 있는 휴지기 필요
창의적인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공백기는 그 창의력을 발현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한다. 과학계의 두 거봉 뉴턴과 아인슈타인에게도 이런 경험이 있다. 과학계에서 ‘기적의 해’로 꼽히는 두 해, 즉 1666년에 뉴턴은 고전역학의 틀을 만들어냈고, 1905년에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이론을 포함해 노벨상 급의 논문을 서너 편이나 발표했다.
“뉴턴은 16세 때 2년 정도 타의에 의해 학교를 중단하고 혼자 공부한 경험이 있고, 1665년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1년 동안 혼자 생각할 수 있는 기간이 있었습니다. 아인슈타인도 고교 1학년 때 학교를 뛰쳐나와 2년 동안 혼자 공부했고, 대학 졸업 후 2,3년 간 백수 노릇을 하다 1905년에 역사적인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장 교수에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1년 반 정도 혼자서 공부해야 하는 시련을 겪었고, 고교 때는 담임선생님의 권유로 미적분을 혼자서 미리 혼자 공부했다. 또 공교롭게도 물리교사가 충원이 안 돼 물리학도 혼자 공부한 끝에 서울대 물리학과에 합격했다.
창의력이 발휘될 수 있는 ‘유익한 공백기’는 ‘빨리 빨리’를 부르짖는 우리나라에서 낭비로 치부될 소지가 많다.
“영재학교 선생님들을 만나면 그런 얘기를 하곤 합니다. 3년 과정을 2년으로 압축해서 공부시키는 것은 좋지만 그 대신 1년의 안식년을 주라고. 과학기술 인재를 길러내는 카이스트 교육에도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카이스트에서는 조기 박사제를 운영하고 있지만, 머리 속에 무조건 많은 지식을 집어넣는다고 그것이 창의력으로 이어지지는 않거든요. 학생들이 배운 걸 차분히 정리하고, 이것을 바탕으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는 휴식기를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장 교수 역시 공사 교관을 하면서 미국 유학에 앞서 물리학에 대해 새롭게 정리할 시간을 가졌다고 말한다.
“대학 때 일종의 소화불량이라고 할까요. 제가 가진 인식의 틀을 새롭게 변화시킬 필요가 있었는데 그렇지 못하다 보니 몇몇 과목에 대해 음식이 얹힌 것처럼 답답함을 느꼈어요. 공사에서 물리학 교관을 하면서 이런 부분을 차근차근 정리해 놓으니 유학 가서도 바로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그런 과정 없이 유학을 갔더라면 고생 좀 했을 겁니다. 길게 공부하는 사람에게 1~2년의 공백은 낭비가 아닌 약이 될 수 있습니다.”
적절한 시기에 자신감과 성취욕 불러일으킬 수 있는 계기 필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칭찬과 격려는 자신감과 긍지를 높여준다. 더구나 미지의 세계를 헤쳐 나갈 청소년들에게 칭찬은 더 없는 응원군이다. 장 교수도 중학시절에 부친과 부친의 친구로부터 받은 한마디 칭찬이 공부에 자신감을 갖게 하는 바탕이 됐다.
“중학교 2학년 때인가 부친이 10미터 높이에 돌을 놓을 때 몇 초 후에 땅에 떨어지는지를 계산해 보라는 문제를 하나 주셨어요. 고교 물리에서는 공식에 넣어 쉽게 계산할 수 있는 문제였지만, 당시 나는 오직 중력가속도의 값 이외에 아무런 사전 지식이 없었어요. 하루쯤 혼자 생각을 해서 정답을 찾아내자 아버지가 칭찬을 해주시고 아버지 친구가 그 얘기를 듣고 또 크게 칭찬을 해주셨어요. 이게 굉장히 중요하더군요. 그런 칭찬을 들은 후 ‘나는 어떤 문제든지 내 힘으로 풀 수 있다’는 자신감이 부풀어 올라 아무리 어려운 문제라도 혼자서 해결해 보려고 노력하게 됐습니다.”
장 교수는 이런 작은 경험 하나가 학원에서 받는 주입식 선행교육보다 몇 십 배나 큰 효과를 발휘한다고 강조한다. 자신감과 함께 자력으로 성취욕을 느낄 수 있는 경험을 계속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능력과 방법을 터득하게 되고, 나아가 창의적인 문제 해결능력을 배양하게 된다는 것이다.
‘60년 공부꾼’인 장 교수가 또 하나 강조하는 점은 ‘공부는 몸도 생각하면서 서두르지 말고 길게 보고 정진해야 한다’는 것.
“공부는 천천히 일생을 두고 하는 것이라는 긴 안목도 필요합니다. 조급하게 건강을 해칠 정도로 밤샘을 하는 것은 잘못된 방법이지요. 길게 보고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자연히 건강 유지에도 신경을 써야 합니다.”
장 교수는 공부는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하는 것이라는 지론도 편다. 공부를 하다 보면 머리는 즐거운 반면 몸이 피곤할 수 있는데, 공부를 제대로 한다면 몸도 즐거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절대 몸에 무리를 주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책상에 너무 오래 앉아 있다 싶으면 문제를 하나 만들어 머리에 넣고 밖으로 나갑니다. 산보를 하면서 생각하면 의외로 아이디어가 샘솟을 때가 많아요. 또 경험상 잠자면서도 공부가 가능하다는 것을 실감하기도 합니다. 생각할 거리를 하나 마련해 잠자리에 들면 금세 잠이 옵니다. 그러다 아침에 일어나면 신기하게도 그 문제와 관련해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곤 합니다.”
올해로 퇴임 10년째를 맞는 장 교수는 현직 때보다 오히려 요즘이 “진짜 사람 사는 맛이 난다”고 말한다.
- 학자보다 ‘공부꾼’으로 불리길 더 좋아하신다는데, 요즘도 공부에 큰 재미를 느끼십니까.
“나이가 좀 들었지만 솔직히 공부가 재미있어요. ‘공부’하면 지긋지긋해 하는 일부 젊은이들에게는 이상하게 들릴 수 있으나, 공부가 없으면 무슨 재미로 사나 하는 정도라고 할까요. 뭐든지 재미가 있으면 쉬워집니다. 이렇게 재미로 하다 보니까 최근에도 과학철학 쪽 논문을 하나 썼습니다. 그리고 대학에 있을 때는 강의 준비 등으로 스케줄이 빡빡한데 지금은 아무 구속 없이 스스로 관리하며 자유롭게 사니까 정말 내 삶을 산다는 느낌이에요.”
지적 호기심이 왕성한 장 교수는 지금도 뭘 하다 알고 싶은 것이 있으면 책을 펴서 읽고 생각하곤 한다. 자연스럽게 반복되는 작업으로 이를 연구라고 하기보다는 가볍게 ‘공부’라고 표현한다. 지금까지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이렇게 보내왔다. 그래서 연구자나 학자보다 ‘공부꾼’에 가깝다고 말한다.
“공부는 젊어서 하다가 적당히 집어치우는 것이 아니고 평생 하는 것이지요. 누구나 젊어서는 젊었을 때의 열정을 가지고 공부에 임하지만 나이가 들어서는 넓은 시야와 경륜을 살려 젊은이들이 못 하는 것을 할 수가 있습니다.”
- 공부에 흥미를 갖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어려서부터 사물을 이해하는 게 재미있었습니다. 천둥이나 번개처럼 모르는 것을 하나하나 알아가는 데 재미를 느끼다가 점점 새로운 눈이 열리니까 다이아몬드도 이해하고 태양도 이해하고 나중에는 생명까지 알고 싶어졌습니다. 생명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하고 나니 ‘나라는 존재는 무엇인가’하는 또 다른 질문을 품게 되었고요.”
부모가 공부하는 모범 보이고, 성적 아닌 흥미가 우선돼야
그러면 어릴 적부터 공부에 흥미를 느끼고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을 들이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장 교수는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먼저 부모가 공부하는 모범을 보이고, 다음으로 환경을 조성해 주고, 가능하면 적절한 시기에 맞춰 자신감을 함양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어른이 공부를 하는 모습을 아이들이 보면 공부는 꼭 해야 하는 거구나 하는 마음이 심어지게 됩니다. 내 경우는 아버님이 늘 어려운 수식이 있는 책을 읽는 것을 보고 그런 생각을 가졌고, 뭔가 신비스런 느낌도 받았습니다. 두 번째로 환경을 조성한다는 건 어릴 때부터 성적을 올리기 위해 강요받는 공부를 해서는 안 된다는 거지요. 이게 매우 중요합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아이들이 성적에 신경을 쓰게 하면 창의력을 기르는 데에 커다란 해가 됩니다. 그저 재미있게만 공부하고 잘 놀고 운동을 해 체력을 길러야 합니다. 세 번째로, 적절한 기회에 자기 능력을 발휘해서 뭔가를 성취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면 이게 자기 힘으로 학습을 해나갈 중요한 전기가 될 수 있습니다.”
머리의 좋고 나쁨과 상관없이 모르는 것을 깨우치는 것에 흥미를 느끼면 공부가 재미있어 진다. 이렇게 공부에 재미를 붙이면 무리를 하지 않아도 길게 볼 때 남보다 더 많이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공부에 재미를 붙인 다음에는 ‘내가 스스로 공부한다, 내 힘으로 배운다’라는 자기주도 학습을 습득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장 나쁜 것은 아침부터 밤 12시 혹은 새벽까지 학원에서 남이 가르쳐주는 것만 머리 속에 집어넣는 방식입니다. 이런 방법에 익숙해지면 남이 집어넣어주는 것만 받아들이지 자기 스스로 학습하는 능력은 안 생깁니다. 이렇게 일종의 암기식 과외공부룰 통해 일류대에 들어갔어도 결국 창의적인 능력이 부족해 독창적인 일을 해낼 인재가 되기는 어렵습니다. 이것이 창조경제를 부르짖는 오늘날 우리나라 교육이 지닌 큰 문제점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혼자서 공부하는 능력 키우면 큰 시험에 강해
장 교수가 ‘본의 아니게’ 자기주도적 학습능력을 처음 습득하게 된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 당시 6학년에 올라가서 한 달 쯤 되었을 때 온 가족이 고향으로 귀향을 하게 됐다. 이 때 할아버지가 더 이상 학교에 다니지 말라는 엄명을 내리시는 게 아닌가. 그 이유에 대해서는 전혀 말이 없었다. 그러자 공부를 좋아했던 장 교수는 나무를 하고 소를 먹이는 틈틈이 혼자서 책을 빌려 공부를 하게 됐고, 여기서 자기 나름의 인식 틀을 만들어 사물을 이해하는 방법을 익히게 됐다는 것이다.
“그 전까지는 선생님이 가르쳐주는 것을 기억하는 방법으로 공부를 했는데, 1년 반 정도 혼자서 공부하는 과정을 거쳐 정규 중학교에 편입해 수업을 들어보니 수용하는 자세가 달라지더군요. 선생님의 가르침을 단순히 받아들이지 않고 나름대로 비판하고 이해를 한 다음에야 받아들이는 습관이 들게 됐어요. 이 방법이 장단점이 있더군요. 내게 납득이 안 되면 안 받아들이는 경향이 생겨 학교 성적에는 큰 도움이 안 되었는데, 폭넓은 내용에 대해 스스로 이해하고 정리를 해서 치르는 입학시험 때에는 오히려 효과를 봤습니다.”
장 교수는 과학의 길로 더 빨리 들어서고 싶다는 생각에 선택한 청주공고 입시에서 전례가 없는 높은 성적으로 수석을 차지했고, 이후 서울대 물리학과에도 당당히 합격했다. 또한 미국 유학을 위해 치른 대학원입학자격시험(GRE) 역시 최고 등급의 성적을 얻어 조교 장학금을 받으며 유학생활을 할 수 있었다.
“스스로 정리를 해서 이해하는 습관을 들이면 어떤 문제가 나와도 풀어낼 수 있는 응용력이 생깁니다. 그런데 요즘 중고생들은 이런 유형의 문제는 이렇게 풀어라 하는 주입식 교육을 받았기 때문인지 응용력이 많이 모자라는 것 같아요. 언젠가 대입 예비고사 출제위원으로 위촉돼 이해력을 알아보는 창의적 문제를 내봤더니 온통 어렵다고 난리더군요.”
창의적 능력 발휘할 수 있는 휴지기 필요
창의적인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공백기는 그 창의력을 발현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한다. 과학계의 두 거봉 뉴턴과 아인슈타인에게도 이런 경험이 있다. 과학계에서 ‘기적의 해’로 꼽히는 두 해, 즉 1666년에 뉴턴은 고전역학의 틀을 만들어냈고, 1905년에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이론을 포함해 노벨상 급의 논문을 서너 편이나 발표했다.
“뉴턴은 16세 때 2년 정도 타의에 의해 학교를 중단하고 혼자 공부한 경험이 있고, 1665년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1년 동안 혼자 생각할 수 있는 기간이 있었습니다. 아인슈타인도 고교 1학년 때 학교를 뛰쳐나와 2년 동안 혼자 공부했고, 대학 졸업 후 2,3년 간 백수 노릇을 하다 1905년에 역사적인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장 교수에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1년 반 정도 혼자서 공부해야 하는 시련을 겪었고, 고교 때는 담임선생님의 권유로 미적분을 혼자서 미리 혼자 공부했다. 또 공교롭게도 물리교사가 충원이 안 돼 물리학도 혼자 공부한 끝에 서울대 물리학과에 합격했다.
창의력이 발휘될 수 있는 ‘유익한 공백기’는 ‘빨리 빨리’를 부르짖는 우리나라에서 낭비로 치부될 소지가 많다.
“영재학교 선생님들을 만나면 그런 얘기를 하곤 합니다. 3년 과정을 2년으로 압축해서 공부시키는 것은 좋지만 그 대신 1년의 안식년을 주라고. 과학기술 인재를 길러내는 카이스트 교육에도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카이스트에서는 조기 박사제를 운영하고 있지만, 머리 속에 무조건 많은 지식을 집어넣는다고 그것이 창의력으로 이어지지는 않거든요. 학생들이 배운 걸 차분히 정리하고, 이것을 바탕으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는 휴식기를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장 교수 역시 공사 교관을 하면서 미국 유학에 앞서 물리학에 대해 새롭게 정리할 시간을 가졌다고 말한다.
“대학 때 일종의 소화불량이라고 할까요. 제가 가진 인식의 틀을 새롭게 변화시킬 필요가 있었는데 그렇지 못하다 보니 몇몇 과목에 대해 음식이 얹힌 것처럼 답답함을 느꼈어요. 공사에서 물리학 교관을 하면서 이런 부분을 차근차근 정리해 놓으니 유학 가서도 바로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그런 과정 없이 유학을 갔더라면 고생 좀 했을 겁니다. 길게 공부하는 사람에게 1~2년의 공백은 낭비가 아닌 약이 될 수 있습니다.”
적절한 시기에 자신감과 성취욕 불러일으킬 수 있는 계기 필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칭찬과 격려는 자신감과 긍지를 높여준다. 더구나 미지의 세계를 헤쳐 나갈 청소년들에게 칭찬은 더 없는 응원군이다. 장 교수도 중학시절에 부친과 부친의 친구로부터 받은 한마디 칭찬이 공부에 자신감을 갖게 하는 바탕이 됐다.
“중학교 2학년 때인가 부친이 10미터 높이에 돌을 놓을 때 몇 초 후에 땅에 떨어지는지를 계산해 보라는 문제를 하나 주셨어요. 고교 물리에서는 공식에 넣어 쉽게 계산할 수 있는 문제였지만, 당시 나는 오직 중력가속도의 값 이외에 아무런 사전 지식이 없었어요. 하루쯤 혼자 생각을 해서 정답을 찾아내자 아버지가 칭찬을 해주시고 아버지 친구가 그 얘기를 듣고 또 크게 칭찬을 해주셨어요. 이게 굉장히 중요하더군요. 그런 칭찬을 들은 후 ‘나는 어떤 문제든지 내 힘으로 풀 수 있다’는 자신감이 부풀어 올라 아무리 어려운 문제라도 혼자서 해결해 보려고 노력하게 됐습니다.”
장 교수는 이런 작은 경험 하나가 학원에서 받는 주입식 선행교육보다 몇 십 배나 큰 효과를 발휘한다고 강조한다. 자신감과 함께 자력으로 성취욕을 느낄 수 있는 경험을 계속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능력과 방법을 터득하게 되고, 나아가 창의적인 문제 해결능력을 배양하게 된다는 것이다.
‘60년 공부꾼’인 장 교수가 또 하나 강조하는 점은 ‘공부는 몸도 생각하면서 서두르지 말고 길게 보고 정진해야 한다’는 것.
“공부는 천천히 일생을 두고 하는 것이라는 긴 안목도 필요합니다. 조급하게 건강을 해칠 정도로 밤샘을 하는 것은 잘못된 방법이지요. 길게 보고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자연히 건강 유지에도 신경을 써야 합니다.”
장 교수는 공부는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하는 것이라는 지론도 편다. 공부를 하다 보면 머리는 즐거운 반면 몸이 피곤할 수 있는데, 공부를 제대로 한다면 몸도 즐거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절대 몸에 무리를 주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책상에 너무 오래 앉아 있다 싶으면 문제를 하나 만들어 머리에 넣고 밖으로 나갑니다. 산보를 하면서 생각하면 의외로 아이디어가 샘솟을 때가 많아요. 또 경험상 잠자면서도 공부가 가능하다는 것을 실감하기도 합니다. 생각할 거리를 하나 마련해 잠자리에 들면 금세 잠이 옵니다. 그러다 아침에 일어나면 신기하게도 그 문제와 관련해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곤 합니다.”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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