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으로 위대한 사상들은 모두 걷다가 잉태되었다.” (프리드리히
니체)
기원전 384년 그리스 외곽 스타기라에서 태어난 아리스토텔레스는 열일곱 살에 당시 학문의 중심지인 아테네로 가서 대철학자 플라톤의 아카데메이아에 들어가 20년 동안 공부했다.
그러나 너무 뛰어난 제자에게 명성이 가려질 걸 걱정했는지 플라톤은 기원전 347년 80세로 사망하면서 조카에게 원장 자리를 물려줬다. 이에 크게 실망한 아리스토텔레스는 아테네를 떠나 각지를 여행하다 기원전 343년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왕자의 교사가 된다.
알렉산드로스가 왕으로 즉위하고 1년 뒤인 기원전 335년 아테네로 돌아온 아리스토텔레스는 ‘리케이온’이라는 학교를 세웠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리케이온의 지붕 덮인 산책로, 즉 페리파토스를 거닐면서 제자들을 가르치는 걸 좋아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학문을 계승한 학자들을 ‘페리파토스학파’라고 불렀다.
국내에서는 ‘소요학파’라고 번역해 쓰기도 한다. 국어사전을 보면 소요(逍遙)는 ‘자유롭게 이리저리 슬슬 거닐며 돌아다님’이라고 풀이돼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뿐 아니라 위대한 철학자나 과학자들 가운데는 산책을 좋아해 많은 시간을 할애한 경우가 꽤 있다. 18세기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매일 정확히 4시가 되면 산책을 나가는 걸로 유명했고, 칸트를 가장 존경했던 염세주의 철학자 아르투르 쇼펜하우어도 매일 반려견을 데리고 프랑크푸르트 시내를 산책했다.
아인슈타인 역시 인생 후반기에 미국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에서 머물 때 집에서 연구실까지 3킬로미터 거리를 매일 홀로 또는 논리학자 쿠르트 괴델과 함께 걸어서 출퇴근했다. 현대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독일의 다비트 힐베르트 역시 괴팅겐대학 교정을 산책하는 걸로 유명했다. 그렇다면 위대한 철학자, 과학자들의 산책 습관과 이들의 엄청난 창조력은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수렴적 사고 향상에는 도움 안 돼
학술지 ‘실험심리학저널’ 최근호에는 걷기가 정말 창의력을 높여준다는 연구결과가 실렸다.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자들은 피험자가 앉아있을 때와 트레이드밀(러닝머신)에서 편안한 템포로 걸을 때 길퍼드 대체 용도 데스트(GAU)를 실시했다.
GAU는 사람들에게 단추 같은 흔한 대상을 제시한 뒤 4분 동안 새로운 용도를 생각해내게 한 뒤 평가하는 방법이다. 즉 단추를 보고 “인형의 눈으로 쓰겠다”, “작은 체로 쓰겠다”는 식으로 답을 해야 한다. GAU는 인지적 유연성, 즉 창의력을 측정하는 방법이다. 이를 ‘발산적 사고’라고 부르기도 한다.
연구자들은 이렇게 얻은 대답을 기준에 맞게 분류해 창의성 점수를 매겼다. 그 결과 가만히 앉아있을 때 실시한 GAU보다 러닝머신에서 걸을 때 점수가 두 배 가량 더 높았다. 실제로 피험자의 80퍼센트에서 창의성이 높아진 결과를 얻었다. 하지만 이 차이는 창의성이 아니라 뇌의 활동 자체가 향상된 결과일수도 있지 않을까.
연구자들은 이런 가능성을 검토하기 위해 이번에는 복합 원격-결합 검사(CRA)를 실시했다. CRA는 ‘수렴적 사고’를 측정하는 방법으로, 주어진 세 단어를 연결해주는 한 단어를 찾아야 한다. 예를 들어 ‘cottage(작은 집), 스위스, 케익’이라는 단어가 제시될 경우 ‘치즈’가 정답이다. 모두 16건의 세 쌍이 제시되고 각각에 대해 15초 내에 답을 해야 한다. CRA의 경우 꽤 집중이 요구되는 과제임을 알 수 있다.
피험자들은 앞과 마찬가지 방식으로 먼저 앉아서 CRA를 받고 이어서 러닝머신에서 걸으며 CRA를 받았다. 그 결과 GAU와는 달리 걸을 때 오히려 성적이 약간 떨어졌다. 즉 걷기는 사고 전반이 아니라 발산적 사고만을 향상시킨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결과는 순서 효과일수도 있지 않을까. 이를 명확히 하기 위해 연구자들은 두 번 다 앉아있는 상황과 먼저 걷고 나중에 앉아있는 상황에서 GAU 테스트를 했다. 그 결과 두 번 다 앉아있을 경우 두 번째에도 성적이 나아지지 않았다. 그런데 먼저 걷고 그 뒤에 앉아있는 경우 앉아있을 때도 꽤 높은 점수가 나왔다. 즉 앞서 걸었던 ‘효과’가 남아 있었던 것.
그렇다면 걷는 게 왜 발산적 사고, 즉 창의력을 높이는데 도움이 될까. 이전 연구에 따르면 걷는 게 무조건 도움이 되는 건 아니다. 즉 험한 등산로처럼 걷는데 집중을 해야 하는 경우에는 오히려 사고력이 떨어진다. 즉 우리가 걷는 것에 신경을 쓰지 않을 정도의 편안한 걸음, 즉 산책 같은 걷기가 효과가 있다는 것.
연구자들은 이에 대해 정확한 이유는 아직 모른다면서도 이 과정이 3단계의 복합인과경로로 이뤄져 있지 않을까 하는 가설을 내놓았다. 첫 단계는 걸음 그 자체다. 그 결과 신체적 변화가 일어나 순환계나 체내 신호분자 등에 변화가 생기는 게 두 번째다. 이에 따라 기분도 바뀔 수 있다. 끝으로 이런 변화가 인지과정에 영향을 미쳐 창의력을 높여준다.
연구자들은 걷기가 뇌의 ‘유연한 사고 경로’를 활성화하거나 ‘억제 경쟁’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다고 추측했다. 억제 경쟁이란 뇌가 한 생각에 집중하기 위해 다른 경쟁적인 생각 또는 기억이 떠오르는 것을 억제하는 메커니즘이다. 그 결과 창의력도 떨어진다.
아무리 걷기가 창의력 향상에 좋다고 해도 현실적으로 학교와 회사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리케이온처럼 늘 ‘소요’하며 공부하고 일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이 연구에 따르면 틈틈이 걷는 게 꽤 도움이 될 수 있다. 즉 걷고 난 뒤 앉아서 공부나 일을 해도 어느 정도 ‘잔여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아이디어 회의나 브레인스토밍을 할 때 먼저 일이십 분 산책을 하고나서 시작하면 기발한 생각들이 쏟아져 나오지 않을까.
기원전 384년 그리스 외곽 스타기라에서 태어난 아리스토텔레스는 열일곱 살에 당시 학문의 중심지인 아테네로 가서 대철학자 플라톤의 아카데메이아에 들어가 20년 동안 공부했다.
그러나 너무 뛰어난 제자에게 명성이 가려질 걸 걱정했는지 플라톤은 기원전 347년 80세로 사망하면서 조카에게 원장 자리를 물려줬다. 이에 크게 실망한 아리스토텔레스는 아테네를 떠나 각지를 여행하다 기원전 343년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왕자의 교사가 된다.
알렉산드로스가 왕으로 즉위하고 1년 뒤인 기원전 335년 아테네로 돌아온 아리스토텔레스는 ‘리케이온’이라는 학교를 세웠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리케이온의 지붕 덮인 산책로, 즉 페리파토스를 거닐면서 제자들을 가르치는 걸 좋아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학문을 계승한 학자들을 ‘페리파토스학파’라고 불렀다.
국내에서는 ‘소요학파’라고 번역해 쓰기도 한다. 국어사전을 보면 소요(逍遙)는 ‘자유롭게 이리저리 슬슬 거닐며 돌아다님’이라고 풀이돼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뿐 아니라 위대한 철학자나 과학자들 가운데는 산책을 좋아해 많은 시간을 할애한 경우가 꽤 있다. 18세기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매일 정확히 4시가 되면 산책을 나가는 걸로 유명했고, 칸트를 가장 존경했던 염세주의 철학자 아르투르 쇼펜하우어도 매일 반려견을 데리고 프랑크푸르트 시내를 산책했다.
아인슈타인 역시 인생 후반기에 미국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에서 머물 때 집에서 연구실까지 3킬로미터 거리를 매일 홀로 또는 논리학자 쿠르트 괴델과 함께 걸어서 출퇴근했다. 현대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독일의 다비트 힐베르트 역시 괴팅겐대학 교정을 산책하는 걸로 유명했다. 그렇다면 위대한 철학자, 과학자들의 산책 습관과 이들의 엄청난 창조력은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수렴적 사고 향상에는 도움 안 돼
학술지 ‘실험심리학저널’ 최근호에는 걷기가 정말 창의력을 높여준다는 연구결과가 실렸다.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자들은 피험자가 앉아있을 때와 트레이드밀(러닝머신)에서 편안한 템포로 걸을 때 길퍼드 대체 용도 데스트(GAU)를 실시했다.
GAU는 사람들에게 단추 같은 흔한 대상을 제시한 뒤 4분 동안 새로운 용도를 생각해내게 한 뒤 평가하는 방법이다. 즉 단추를 보고 “인형의 눈으로 쓰겠다”, “작은 체로 쓰겠다”는 식으로 답을 해야 한다. GAU는 인지적 유연성, 즉 창의력을 측정하는 방법이다. 이를 ‘발산적 사고’라고 부르기도 한다.
연구자들은 이렇게 얻은 대답을 기준에 맞게 분류해 창의성 점수를 매겼다. 그 결과 가만히 앉아있을 때 실시한 GAU보다 러닝머신에서 걸을 때 점수가 두 배 가량 더 높았다. 실제로 피험자의 80퍼센트에서 창의성이 높아진 결과를 얻었다. 하지만 이 차이는 창의성이 아니라 뇌의 활동 자체가 향상된 결과일수도 있지 않을까.
연구자들은 이런 가능성을 검토하기 위해 이번에는 복합 원격-결합 검사(CRA)를 실시했다. CRA는 ‘수렴적 사고’를 측정하는 방법으로, 주어진 세 단어를 연결해주는 한 단어를 찾아야 한다. 예를 들어 ‘cottage(작은 집), 스위스, 케익’이라는 단어가 제시될 경우 ‘치즈’가 정답이다. 모두 16건의 세 쌍이 제시되고 각각에 대해 15초 내에 답을 해야 한다. CRA의 경우 꽤 집중이 요구되는 과제임을 알 수 있다.
피험자들은 앞과 마찬가지 방식으로 먼저 앉아서 CRA를 받고 이어서 러닝머신에서 걸으며 CRA를 받았다. 그 결과 GAU와는 달리 걸을 때 오히려 성적이 약간 떨어졌다. 즉 걷기는 사고 전반이 아니라 발산적 사고만을 향상시킨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결과는 순서 효과일수도 있지 않을까. 이를 명확히 하기 위해 연구자들은 두 번 다 앉아있는 상황과 먼저 걷고 나중에 앉아있는 상황에서 GAU 테스트를 했다. 그 결과 두 번 다 앉아있을 경우 두 번째에도 성적이 나아지지 않았다. 그런데 먼저 걷고 그 뒤에 앉아있는 경우 앉아있을 때도 꽤 높은 점수가 나왔다. 즉 앞서 걸었던 ‘효과’가 남아 있었던 것.
그렇다면 걷는 게 왜 발산적 사고, 즉 창의력을 높이는데 도움이 될까. 이전 연구에 따르면 걷는 게 무조건 도움이 되는 건 아니다. 즉 험한 등산로처럼 걷는데 집중을 해야 하는 경우에는 오히려 사고력이 떨어진다. 즉 우리가 걷는 것에 신경을 쓰지 않을 정도의 편안한 걸음, 즉 산책 같은 걷기가 효과가 있다는 것.
연구자들은 이에 대해 정확한 이유는 아직 모른다면서도 이 과정이 3단계의 복합인과경로로 이뤄져 있지 않을까 하는 가설을 내놓았다. 첫 단계는 걸음 그 자체다. 그 결과 신체적 변화가 일어나 순환계나 체내 신호분자 등에 변화가 생기는 게 두 번째다. 이에 따라 기분도 바뀔 수 있다. 끝으로 이런 변화가 인지과정에 영향을 미쳐 창의력을 높여준다.
연구자들은 걷기가 뇌의 ‘유연한 사고 경로’를 활성화하거나 ‘억제 경쟁’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다고 추측했다. 억제 경쟁이란 뇌가 한 생각에 집중하기 위해 다른 경쟁적인 생각 또는 기억이 떠오르는 것을 억제하는 메커니즘이다. 그 결과 창의력도 떨어진다.
아무리 걷기가 창의력 향상에 좋다고 해도 현실적으로 학교와 회사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리케이온처럼 늘 ‘소요’하며 공부하고 일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이 연구에 따르면 틈틈이 걷는 게 꽤 도움이 될 수 있다. 즉 걷고 난 뒤 앉아서 공부나 일을 해도 어느 정도 ‘잔여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아이디어 회의나 브레인스토밍을 할 때 먼저 일이십 분 산책을 하고나서 시작하면 기발한 생각들이 쏟아져 나오지 않을까.
- ScienceTimes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