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을 빌어 천체지도 처음 그려” 아테네 학당아낙시만드로스
아낙시만드로스는 천문학의 창시자, 천문학의 아버지로 불립니다. 스승인 탈레스도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를 천문학의
창시자라고 부르는 데는 그 이유가 있습니다. 물론 철학도 그렇지만 천문학, 또는 우주론에 대해 체계적으로 전개한 최초의 사상가였기 때문입니다.
물론 지금까지 전해지는 것은 없지만 천문학, 우주론에 관한 논문들을 썼고, 지리학에도 밝아 당시까지 알려진 세계에 관한 지도를
처음으로 제작했다는 증거도 있습니다.
그는 또 합리적인 접근을 통해 기하학과 수학적 비례를 도입하여 천체지도를 그리려고 했습니다. 기존의
신비적인 우주관에서 벗어나, 이후의 과학으로서의 천문학 발전을 예시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철학자인 그는 인간사회가 법이라는 규율을
통해 일정하게 돌아가는 것처럼 자연도 법칙들에 의해 움직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자연의 균형이라는 법을 깨는(disturb) 것들이
나타날 수도 있지만 결코 오랫동안 지속되지 않는다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이집트에서 처음 생겼다고 하는 해시계인
그노몬(gnomon)을 그리스에 처음으로 도입했으며 우주가 초자연적인 힘에 의해서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물리적인 힘들(physical
forces)에 의해 움직인다는 대단히 선구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후세 학자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역사상 최초의 과학자(first
true scientist)라는 칭호를 붙여줍니다.
그는 죽는 것, 사라지는 것은 결코 없어지는 것이 아니며 원래의
원소(element)로 되돌아가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즉 사물의 원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아페이론으로 간다는 것이죠.
이
사상이 바로 훗날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어 ‘원소의 불멸’의 개념을 이끌어내는 데 크게
이바지합니다.
“죽는 것은 결코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의 이러한 주장은 문학에도 영향을 끼칩니다. 아이스퀼로스, 소포클레스와 함께 아테네 3대 비극시인이며 그
가운데서도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 받는 에우리피데스(Euripides, 480~BC40)의 문학에 깊은 영향을 주죠.
비극 시인
에우리피테스가 남긴 명언이 있죠. “What comes from earth must return to earth. 흙에서 나온 것은 결국
흙으로만 돌아가야 한다.”
너무나 많이 들은 이야기죠? 또 어느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인 것 같습니다. 바로 아낙시만드로스의
아페이론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렵게 들리는 아페이론이 무엇인지 대충 감을 잡을 수 있을
겁니다.
한 철학자의 생각이 이처럼 여러 방면에 영향을 미칠 때입니다. 철학, 과학, 문학 등 사고의 개념이 분리되지 않고
종합적이었을 때가 바로 고대 그리스시대라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처럼 당시만 해도 철학적 사고는 바로 과학과 연결되고,
그래서 사람의 삶과 죽음 또한 어떤 단절이 아니라 하나라는 생각을 했던 겁니다. 최근 서거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긴 유서의 일부분을 생각하게
합니다. 또 이 이론은 훗날 영혼불멸의 종교적 사상에도 영향을 줍니다.
“지구는 무한의 중심에 떠 있다”
과학과 관련해 아낙시만드로스가 다른 자연철학자와 구별되는 것은 그의 독창적인 우주론에 있습니다. 예를 들어
헤라클레스가 지구를 떠받치고 있다거나, 아틀라스가 하늘을 떠받치고 있다는 신화적인 가설에서 완전히 벗어나 과학적인 이론을 내세운 겁니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지구는 아무것도 지탱하지 않는 무한한 공간의 중심에 떠 있고 그 주위에 별들과 달, 그리고 태양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림 참조) 그리고 지구는 “중심에 있기 때문에 이동하지 않고 항상 같은 위치에 있다(in the same place
because of its indifference)”는 생각을 가졌죠.
물론 지금의 시각으로 본다면 허구로 가득 차 있다고 할 수
있죠. 그러나 아낙시만드로스가 내세운 이러한 우주관은 대단히 앞서 간 이론이기 때문에 감히 도전장을 내민 학자가 거의 없었습니다.
무려 200년 정도 지나고 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천체에 대해서, on the Heavens>를 통해 아낙시만드로스의
이러한 생각은 대단히 천재적(indigenous) 발상이라고 칭찬하지만 틀렸다고 지적합니다.
지구는 원가둥으로 생겨,
별들이 가장 가까이 있어
아낙시만드로스는 지구를 평평한 원의 개념으로 생각했고 지구를 중심으로 그 주위를 다른
별들이 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고 완전히 원은 아니고 드럼과 같은 원통(cylindrical drum)으로 되어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주 길지는 않고 넓이(width)의 3분의1 정도의 원통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는 태양을 하나의 질량의 덩어리인
물질(mass)로 생각한 최초의 학자이기도 합니다. 그는 태양이 지구를 중심으로 도는 회전 원(solar wheel, sun’s ring)의
직경이 지구의 28배에 해당할 정도로 크다고 주장했고 달도 지구보다는 온도가 낮지만 18배 정도는 크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별들과 다른
항성들이 달이나 태양보다 지구에 더 가까이 있다고 믿은 학자입니다.
일식을 예견해서 세상을 놀라게 한 탈레스도 지구가 어떻게
지탱되고 있느냐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답변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그는 지구가 아주 넓은 대양(大洋)에 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비해 제자인
아낙시만드로스는 무한의 중심에 있다고 주장했죠.
지금과는 상당히 다릅니다. 너무나 맞지 않는 개념이죠. 그러나 기원전 500년 당시의 상황을 생각한다면
대단히 진보적인 생각입니다. 이때라면 모든 것이 신화며 전설이라고 생각해도 과언이 아닌 시기입니다. 심지어 유럽 중세시대의 우주관과도 비교한다면
대단히 앞서간 개념입니다.
가만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과연 우리가 사는 땅덩어리가 누가 떠 받치지 않고 허공에 떠 있다는
생각을 감히 할 수 있을까요? 하늘을 쳐다보면 무한한 공간이 있습니다. 공중에 떠 있다는 생각을 하기가 어렵죠. 우리도 배웠기 때문이지 지구가
허공에 떠 있다는 생각이 결코 실감나지 않잖아요?
신화와 전설의 시대에 천체지도를 그려
그러면 그가 말하는 무한은 무엇인가요? 바로 아페이론입니다. 만물을 이루는 아주 작은 근원이 아페이론인 동시에
모든 것을 감싸고 있는 것 역시 아페이론이라는 대단히 철학적 명제를 주장한 겁니다.
예를 들어 우주는 아주 작은 먼지인
티끌(微塵)들로 이루어졌다고 주장하면서, 다시 한 편으로는 대단히 큰 우주 역시 하나의 티끌이 감싸고 있다는 이론을 제시한 겁니다. 모든 것은
하나로 이루어져 있고, 모든 것 역시 하나로 귀결된다는 이론입니다.
탈레스는 오늘날 우주라는 공간을 채우고 있는 것은 물이라고
주장한 반면 제자인 아낙시만드로스는 무한이라고 하는 아페이론이 채우고 있다는 생각을 한 거죠. 대단한 발상입니다. 더구나 이러한 알쏭달쏭한
아페이론을 과학에 도입해 대단한 천문학이론을 내세운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정리하자면 아낙시만드로스의 이론에서
새로운 요소는 지구가 어떤 방식으로든 우주의 다른 부분에 매달려 있거나 무언가 떠받치고 있다는 기존의 생각을 거부했다는 점입니다. 또한 지구가
아무런 받침대 없이 우주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어떤 방향으로든 움직일 이유가 없고, 따라서 정지해 있다는
주장입니다.
“천둥은 구름끼리 부딪쳐서 생기는 것”
당시만 해도 천둥과 번개는
신(神)의 행동이라고 생각할 때였습니다. 그러나 아낙시만드로스는 이러한 괴이한 자연현상은 한 원소가 다른 원소를 침입하기 때문이라는 아주
과학적인 발상을 했습니다.
예를 들어 천둥은 구름끼리 충돌로 인해 생기는 것이고 천둥소리의 크기는 충돌의 크기와 비례한다고 믿었습니다. 또
번개는 이런 구름의 충돌로 생기는 불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또한 번개가 없는 천둥과 천둥이 없는 번개에 대해서도 설명했습니다.
구름이 충돌한다 해도 강하게 부딪히지 않으면 번개가 안 생기며, 천둥 없이 번개가 생기는 것은 구름이 아니라 공기끼리 강하게 부딪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과 비교할 때 어떤 것 같습니까?
세계지도를 처음으로 그렸는가 하면 지진을 예견한 학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BC
1세기경의 로마 정치가이자 철학자인 키케로는 <신성(神聖)에 대하여, on Divination>에서 이를 하나의 일화로 이렇게
적었습니다.
“아낙시만드로스는 라케다에몬(Lacedaemon, 훗날 스파르타)에 있는 시민들에게 지진이 다가오고 있으니 도시를
버리고 무기는 챙겨서 다른 곳으로 대피하라고 충고했다. 그리고 나서 며칠 후 큰 지진이 일어나 펠로폰네소스에 있는 타이게투스(Taygetus)
산을 완전히 두 동강이를 냈고 도시는 완전히 폐허에 묻혔다”
지리학에 밝았던 아낙시만드로스가 이 지진을 어떤 과학적 연구를 통해
예견했는지, 아니면 어떤 ‘훌륭한 영감(admirable inspiration)’에 의해 예측했는지는 모릅니다. 또 사실적인 기록이 아니라 정말
일화인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대단한 학자였던 것만은 사실이었던 것 같습니다. 인간의 기원에서부터 세계지도를 만든 것까지, 그가
이루어낸 업적을 본다면 말입니다.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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