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지닌 수학능력은 모두 다 학습과 교육을 통해 배운 건 아니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도 있다.
가령, 사람들로 붐비는
마트에서 쇼핑을 마치고 계산하려고 한다고 치자. 이때 우리는 쭉 늘어선 계산대들 가운데 어디가 사람이 가장 적게 서 있는지를 순식간에 파악하곤
쇼핑카트를 그쪽으로 몰아간다. 이런 어림짐작이나 가늠은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수학능력이 아니다. 태어날 때부터 선천적으로 갖고 있는
것이다.
수리감각, 원시 수렵채집 생활의 필수 생존수단
이 같은
선천적인 수학능력을 ‘어림짐작을 통한 수리감각’(approximate number sense, ANS)이라고 한다. 우리는 이 선천적인
수리감각을 이용해 여러 접시들 중 어느 접시에 쿠키가 가장 많이 담겨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이 같은
어림짐작이나 가늠은 4개월 된 아기에게서도 구사한다고 한다. 사람뿐만 아니라 일부 동물도 이런 능력을 갖고 있다.
과학자들은 사람과
동물이 선천적인 수학능력을 갖게 된 것은 수백만 년쯤 되었다고 추정하고 있다. 인간과 동물이 자연에서 먹을거리를 얻기 위해 수렵채집 생활을 하는
데 어림짐작이나 가늠은 냉혹한 생존경쟁에서 필수적이었던 것이다.
새들이 열매가 가장 많이 달린 나무를 찾을 수 있는 것도,
개코원숭이 두 마리가 여섯 마리의 무리와 싸우기보다 피하는 게 낫다는 걸 아는 것도 다 선천적인 수리능력 덕분이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필수적인
생존수단이었던 만큼 선천적인 수리감각이 누구나 비슷비슷한 수준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또한 원시적인 수리감각이 학교에서 우리가
보이는 수학능력과는 무관하다고 여겼다. 학교에서 우리가 푸는 수학문제는 어림짐작을 통해 애매한 답을 얻는 게 아니라 특정 숫자나 기호를 이용해
정확하게 답을 내도록 되어 있다.
우리는 복잡한 수학문제를 풀기 위해 아주 오랜 시간의 노력을 들인다. 즉 수학문제는 단박에
어림짐작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인간이 이런 고난이도의 수학 능력을 갖게 된 건 고작 수천 년 정도밖에 안 된다. 그것도 문명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말이다. 그러니 인간만이 구사하는 복잡한 숫자놀음과 계산은 원시적인 수리감각과 무관해 보였던 것이다.
당신의
선천적 수리감각은 얼마나?
그런데 지난해 9월 이런 과학적 신화를 단박에 깨뜨리는 연구결과가 네이처지에 발표되었다.
즉각적으로 어림짐작하는 원시적이고 선천적인 수리감각이 사람마다 꽤 차이가 날 뿐 아니라 우리의 수학 점수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
미 존스홉킨스 대학의 심리학자 저스틴 할베다 교수는 14살 학생 64명을 대상으로 선천적인 수리능력을 평가했다. 화면으로 아주
짧은 시간 동안만 노란색과 파란색의 점들을 학생들에게 보여준다. 그리고는 어느 색깔의 점이 더 많았는지를 물었다. 이때 점의 숫자는 10-32개
정도였고 점의 크기는 다양했다.
먼저 할베다 교수 연구팀은 학생들의 성적이 꽤 넓게 분포한다는 걸 발견했다. 예상할 수 있듯이 노란색
점과 파란색 점의 개수 비율이 1:1에 가까워질수록 학생들의 성적은 점점 떨어졌다. 하지만 잘하는 학생의 경우 두 가지 색깔의 점이 거의 개수가
같을 때도 답을 잘 맞혔다.
반면 어떤 학생들은 개수가 확연하게 차이가 나는데도 가늠을 하는 데 애를 먹었다. 가장 성적이 나쁜
학생의 경우 다른 색의 점의 개수 비율이 3:4 정도로 큰 데도 답을 잘 맞히지 못했다.
독자들 중에 자신의 선천적인 어림짐작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확인하고 싶다면 뉴욕타임즈의 다음 웹사트를 방문하면 된다(http://www.nytimes.com/interactive/2008/09/15/science/20080915_NUMBER_SENSE_GRAPHIC.html).
어림짐작
능력이 유치원 때부터 수학점수 영향
그런데 할베다 교수의 연구가 가져다준 결과는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할베다
교수는 이들 학생들의 유치원 때부터의 수학성적과 시험결과를 비교했다. 그랬더니 더욱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할베다 교수는 당시의
놀라움을 “유치원 때까지 거슬러 올라가도 둘 간에 상관관계가 있는 걸 확인하곤 의자에서 벌떡 뛸 뻔했다”고 표현했다. 할베다 교수는 학생들의
IQ와 기억력 등의 요인들을 제거한 다음에도 선천적인 수리감각과 수학성적 간에 밀접한 관계가 나타난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렇다면
자신의 수학점수가 낮은 건 뒤떨어지는 선천적인 수리감각 탓일까? 아니면 선천적인 수리감각을 가지면 높은 수학 점수를 받게 된다는 걸까? 아직 그
답은 분명치 않다.
한편 할베다 교수는 연구대상의 숫자를 늘려 다시 한 번 더 결과를 확인했다. 이때 간단한 계산에 애를 먹는
산수장애를 가진 학생들도 포함시켰다. 그 결과, 할베다 교수는 산수장애를 가진 학생의 경우 선천적인 수리감각이 더
낮은 것을 확인했다.
수학장애는 선천적일 수도 후천적일 수도
그렇다면 산수장애의 원인은
선천적인 수리감각에 있었던 걸까? IQ도 정상이고 다른 과목에서 점수도 좋은데 유독 수학만 못하는 산수장애인 사람은 학습과 교육으로 장애를
극복할 수는 없는 걸까? 그런데 이 문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할베다 교수와는 정반대 결과를 보인 연구가 있기 때문.
2007년 벨기에 루뱅카톨릭대의 로렌스 로셀 연구팀은 산수장애 어린이들에게 막대기의 개수를 비교하도록 했다.
예를 들어 5개의 막대와 7개의 막대 중 어느 게 더 많은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랬더니 산수장애 어린이들이 비교대상과 별반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반면 숫자 5와 7 중 큰 수에 동그라미를 치라고 하자 산수장애 어린이는 어려움을 보였다. 이 외에도 산수장애 어린이가
선천적인 어림짐작에는 정상적인 데 반해 숫자에서 곤란을 겪었다는 연구결과가 더 있었다.
이렇게 상반된 연구결과들이 등장하면서 현재
과학자들은 산수장애에 대해 이렇게 결론을 내리고 있다. 산수장애에는 선천적인 수리감각에 문제가 있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후천적인 학습장애인
경우도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결론은 현재 잘 알려지지도 않은 산수장애에 대해 더욱 복잡함만을 가져오고 있다. 정말
수학에 고통 받는 어린이들을 도우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ScienceTimes
가령, 사람들로 붐비는 마트에서 쇼핑을 마치고 계산하려고 한다고 치자. 이때 우리는 쭉 늘어선 계산대들 가운데 어디가 사람이 가장 적게 서 있는지를 순식간에 파악하곤 쇼핑카트를 그쪽으로 몰아간다. 이런 어림짐작이나 가늠은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수학능력이 아니다. 태어날 때부터 선천적으로 갖고 있는 것이다.
수리감각, 원시 수렵채집 생활의 필수 생존수단
이 같은 선천적인 수학능력을 ‘어림짐작을 통한 수리감각’(approximate number sense, ANS)이라고 한다. 우리는 이 선천적인 수리감각을 이용해 여러 접시들 중 어느 접시에 쿠키가 가장 많이 담겨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이 같은 어림짐작이나 가늠은 4개월 된 아기에게서도 구사한다고 한다. 사람뿐만 아니라 일부 동물도 이런 능력을 갖고 있다.
과학자들은 사람과 동물이 선천적인 수학능력을 갖게 된 것은 수백만 년쯤 되었다고 추정하고 있다. 인간과 동물이 자연에서 먹을거리를 얻기 위해 수렵채집 생활을 하는 데 어림짐작이나 가늠은 냉혹한 생존경쟁에서 필수적이었던 것이다.
새들이 열매가 가장 많이 달린 나무를 찾을 수 있는 것도, 개코원숭이 두 마리가 여섯 마리의 무리와 싸우기보다 피하는 게 낫다는 걸 아는 것도 다 선천적인 수리능력 덕분이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필수적인 생존수단이었던 만큼 선천적인 수리감각이 누구나 비슷비슷한 수준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또한 원시적인 수리감각이 학교에서 우리가 보이는 수학능력과는 무관하다고 여겼다. 학교에서 우리가 푸는 수학문제는 어림짐작을 통해 애매한 답을 얻는 게 아니라 특정 숫자나 기호를 이용해 정확하게 답을 내도록 되어 있다.
우리는 복잡한 수학문제를 풀기 위해 아주 오랜 시간의 노력을 들인다. 즉 수학문제는 단박에 어림짐작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인간이 이런 고난이도의 수학 능력을 갖게 된 건 고작 수천 년 정도밖에 안 된다. 그것도 문명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말이다. 그러니 인간만이 구사하는 복잡한 숫자놀음과 계산은 원시적인 수리감각과 무관해 보였던 것이다.
당신의 선천적 수리감각은 얼마나?
그런데 지난해 9월 이런 과학적 신화를 단박에 깨뜨리는 연구결과가 네이처지에 발표되었다. 즉각적으로 어림짐작하는 원시적이고 선천적인 수리감각이 사람마다 꽤 차이가 날 뿐 아니라 우리의 수학 점수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
미 존스홉킨스 대학의 심리학자 저스틴 할베다 교수는 14살 학생 64명을 대상으로 선천적인 수리능력을 평가했다. 화면으로 아주 짧은 시간 동안만 노란색과 파란색의 점들을 학생들에게 보여준다. 그리고는 어느 색깔의 점이 더 많았는지를 물었다. 이때 점의 숫자는 10-32개 정도였고 점의 크기는 다양했다.
먼저 할베다 교수 연구팀은 학생들의 성적이 꽤 넓게 분포한다는 걸 발견했다. 예상할 수 있듯이 노란색 점과 파란색 점의 개수 비율이 1:1에 가까워질수록 학생들의 성적은 점점 떨어졌다. 하지만 잘하는 학생의 경우 두 가지 색깔의 점이 거의 개수가 같을 때도 답을 잘 맞혔다.
반면 어떤 학생들은 개수가 확연하게 차이가 나는데도 가늠을 하는 데 애를 먹었다. 가장 성적이 나쁜 학생의 경우 다른 색의 점의 개수 비율이 3:4 정도로 큰 데도 답을 잘 맞히지 못했다.
독자들 중에 자신의 선천적인 어림짐작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확인하고 싶다면 뉴욕타임즈의 다음 웹사트를 방문하면 된다(http://www.nytimes.com/interactive/2008/09/15/science/20080915_NUMBER_SENSE_GRAPHIC.html).
어림짐작 능력이 유치원 때부터 수학점수 영향
그런데 할베다 교수의 연구가 가져다준 결과는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할베다 교수는 이들 학생들의 유치원 때부터의 수학성적과 시험결과를 비교했다. 그랬더니 더욱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할베다 교수는 당시의 놀라움을 “유치원 때까지 거슬러 올라가도 둘 간에 상관관계가 있는 걸 확인하곤 의자에서 벌떡 뛸 뻔했다”고 표현했다. 할베다 교수는 학생들의 IQ와 기억력 등의 요인들을 제거한 다음에도 선천적인 수리감각과 수학성적 간에 밀접한 관계가 나타난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렇다면 자신의 수학점수가 낮은 건 뒤떨어지는 선천적인 수리감각 탓일까? 아니면 선천적인 수리감각을 가지면 높은 수학 점수를 받게 된다는 걸까? 아직 그 답은 분명치 않다.
한편 할베다 교수는 연구대상의 숫자를 늘려 다시 한 번 더 결과를 확인했다. 이때 간단한 계산에 애를 먹는 산수장애를 가진 학생들도 포함시켰다. 그 결과, 할베다 교수는 산수장애를 가진 학생의 경우 선천적인 수리감각이 더 낮은 것을 확인했다.
수학장애는 선천적일 수도 후천적일 수도
그렇다면 산수장애의 원인은 선천적인 수리감각에 있었던 걸까? IQ도 정상이고 다른 과목에서 점수도 좋은데 유독 수학만 못하는 산수장애인 사람은 학습과 교육으로 장애를 극복할 수는 없는 걸까? 그런데 이 문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할베다 교수와는 정반대 결과를 보인 연구가 있기 때문.
2007년 벨기에 루뱅카톨릭대의 로렌스 로셀 연구팀은 산수장애 어린이들에게 막대기의 개수를 비교하도록 했다. 예를 들어 5개의 막대와 7개의 막대 중 어느 게 더 많은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랬더니 산수장애 어린이들이 비교대상과 별반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반면 숫자 5와 7 중 큰 수에 동그라미를 치라고 하자 산수장애 어린이는 어려움을 보였다. 이 외에도 산수장애 어린이가 선천적인 어림짐작에는 정상적인 데 반해 숫자에서 곤란을 겪었다는 연구결과가 더 있었다.
이렇게 상반된 연구결과들이 등장하면서 현재 과학자들은 산수장애에 대해 이렇게 결론을 내리고 있다. 산수장애에는 선천적인 수리감각에 문제가 있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후천적인 학습장애인 경우도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결론은 현재 잘 알려지지도 않은 산수장애에 대해 더욱 복잡함만을 가져오고 있다. 정말 수학에 고통 받는 어린이들을 도우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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