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는 10월 초만 되면 북유럽 스웨덴으로부터 낭보가 날아든다. 일본인 과학자들이 노벨상 수상자로 결정됐다는 소식이다. 한 해 걸러 2년에 한 번꼴로 이어진 뉴스지만 2008년 이후 이 패턴은 변함이 없다. 올해도 어김없었다. 스웨덴왕립과학원 노벨물리학상 선정위원회는 청색발광다이오드(LED)를 최초로 개발한 나고야 대학의 아카사키 이사무 교수 등 3인에게 물리학상 수상의 영예를 안겼다.
일본의 과학 부문 노벨상은 중간에 잠시 건너뛰긴 했어도 2000~2002년 3년 연속 수상자가 배출된 것을 포함하면 2000년대 들어 모두 일곱 차례다. 유카와 히데키 교수가 일본인 최초로 물리학상을 받은 1949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19명(미국국적 2명 포함)의 수상자가 나왔다. 전체 수상자 22명의 90%를 넘는 수치니 노벨상에서 일본의 자부심을 지켜준 것은 과학자들이라 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국가 간의 생존 레이스에서 노벨상은 국력을 재는 잣대가 아니다. 선·후진국을 가르는 공통의 기준도 아니다. 상을 제정한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처럼 "인류 복지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에게 주는 상"이 본래 취지다. 따라서 수상 의미를 개인의 영예로 좁혀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114년 역사의 노벨상에 담긴 의미와 권위는 가볍게 보거나 깎아내릴 수 있는 게 아니다. 역대 수상 순위에서 미국이 압도적 1위(330명)에 오른 데 이어 영국·독일·프랑스 등 선진 강국들이 상위권을 휩쓸었듯 노벨상은 한 국가의 토털 파워와 무관치 않아서다.
나라 경제가 '잃어버린 20년'의 슬럼프에 빠져 있다고 조롱 받아도 일본이 노벨상 강국의 지위를 굳건히 지켜낸 이유는 여럿 있을 수 있다. 무엇보다 한국(492억달러)의 4배에 이르는 연구개발(R&D) 투자(2012년 기준, 1998억달러)는 그들의 노벨상이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님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자신의 일에 전념하며 평생 한 우물을 파는 오타쿠(한 우물) 문화와 이를 존중하는 사회 분위기 역시 시사하는 점이 적지 않다. 학사 출신의 회사 연구원으로 2002년 화학상을 수상한 다나카 코이치의 영예도 실험 과정에서 나온 실수에서 싹이 텄음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유룡 IBS 단장과 이장철 서울대 의대 석좌교수가 '노벨상수상 예측 후보'에 이름을 올리는 등 수상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은 것으로 평가받아 왔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클 수 있다. 하지만 노벨상은 반도체와 자동차를 잘 만드는 나라라고 쉽게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묵묵히 학문의 지평을 넓혀가며 빛나는 업적으로 인류에 공헌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단기 성과에 연연치 않고 과학 두뇌들이 '마음껏' '창의적으로' 연구에 매달릴 수 있도록 도닥여주는 토양이 중요함은 두말할 것도 없다. 한국이 '한물간 것'으로 여겼던 일본의 노벨상 수상에서 챙겨야 할 메시지는 이것이다.
일본의 과학 부문 노벨상은 중간에 잠시 건너뛰긴 했어도 2000~2002년 3년 연속 수상자가 배출된 것을 포함하면 2000년대 들어 모두 일곱 차례다. 유카와 히데키 교수가 일본인 최초로 물리학상을 받은 1949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19명(미국국적 2명 포함)의 수상자가 나왔다. 전체 수상자 22명의 90%를 넘는 수치니 노벨상에서 일본의 자부심을 지켜준 것은 과학자들이라 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국가 간의 생존 레이스에서 노벨상은 국력을 재는 잣대가 아니다. 선·후진국을 가르는 공통의 기준도 아니다. 상을 제정한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처럼 "인류 복지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에게 주는 상"이 본래 취지다. 따라서 수상 의미를 개인의 영예로 좁혀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114년 역사의 노벨상에 담긴 의미와 권위는 가볍게 보거나 깎아내릴 수 있는 게 아니다. 역대 수상 순위에서 미국이 압도적 1위(330명)에 오른 데 이어 영국·독일·프랑스 등 선진 강국들이 상위권을 휩쓸었듯 노벨상은 한 국가의 토털 파워와 무관치 않아서다.
나라 경제가 '잃어버린 20년'의 슬럼프에 빠져 있다고 조롱 받아도 일본이 노벨상 강국의 지위를 굳건히 지켜낸 이유는 여럿 있을 수 있다. 무엇보다 한국(492억달러)의 4배에 이르는 연구개발(R&D) 투자(2012년 기준, 1998억달러)는 그들의 노벨상이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님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자신의 일에 전념하며 평생 한 우물을 파는 오타쿠(한 우물) 문화와 이를 존중하는 사회 분위기 역시 시사하는 점이 적지 않다. 학사 출신의 회사 연구원으로 2002년 화학상을 수상한 다나카 코이치의 영예도 실험 과정에서 나온 실수에서 싹이 텄음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유룡 IBS 단장과 이장철 서울대 의대 석좌교수가 '노벨상수상 예측 후보'에 이름을 올리는 등 수상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은 것으로 평가받아 왔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클 수 있다. 하지만 노벨상은 반도체와 자동차를 잘 만드는 나라라고 쉽게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묵묵히 학문의 지평을 넓혀가며 빛나는 업적으로 인류에 공헌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단기 성과에 연연치 않고 과학 두뇌들이 '마음껏' '창의적으로' 연구에 매달릴 수 있도록 도닥여주는 토양이 중요함은 두말할 것도 없다. 한국이 '한물간 것'으로 여겼던 일본의 노벨상 수상에서 챙겨야 할 메시지는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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