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들의 이야기를 연이어 들으며 지난 30여 년 동안 간접으로 인생경험을 많이 했습니다. 기막힌 삶의 이야기는 아직 못 들은 것 같습니다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갈등과 그 결과에 관해서는 넘치도록 들었습니다. 사람 사이의 갈등은 조심해 살펴보면 비교적 쉽게 눈에 띕니다. 그러나 마음 안의 갈등은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의 눈에는 가려져 있습니다. 가려져 있지만 속에서 일어나는 풍파의 힘은 대단합니다. 때로는 폭력적인 말이나 행동으로 표출됩니다.
정년퇴직 이후 생활이 단조롭습니다만 지루하지는 않습니다. 로빈슨 크루소처럼 무인도에 있는 것은 아니어서 번잡한 거리를 걸으며 직장생활을 하면서 몰랐던 것들을 매일 보고 듣고 배웁니다. 그러면서 병원에서는 못 만났던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데 한 가지 깨달은 점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스스로 충동을 조절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겁니다. 그러니 세상은 조용하고 생산적인 대화보다는 일방적인 고함소리, 더 나아가 욕설과 위협으로 넘쳐납니다. 대한민국 반만년 역사에서 지금보다 더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적이 없었을 겁니다. 문제는 물질적 풍요와 정신적 성숙이 반드시 어깨를 나란히 하며 발전해 나가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이미 대한민국에서는 식당에서 떠들며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다른 식탁의 손님이 제지할 수 있는 시대가 물 건너갔습니다. 아이들의 부모인 젊은 부부와 멱살잡이를 할 각오를 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참으며 보고 있자니 걱정입니다. 그 아이들이 크면 충동조절 장애를 가진 어른들이 되지 않을까요? 귀하게 키운다고 그리했지만 커서 다른 사람들이 회피하는 사람이 된다면 우리 모두의 미래가 불행하지 않을까요?
대한민국은 아이가 있는 집마다 귀한 아이들로 넘칩니다. 부유층에서 자란 아이들만 귀하게 크지 않습니다. 현재의 중산층 생활수준은 궁핍했던 시절 부유층이 누렸던 수준을 월등하게 넘었습니다. 풍족하게, 귀하게, 적절한 좌절 없이 귀하게만 자라면 자기만 알기 쉽습니다. 남의 입장과 심정을 모르거나 무시하게 됩니다. 그런 아이들은 성격장애까지는 아니더라도 자기애(自己愛) 성향이 과도하게 발달합니다. 다른 사람, 사회, 국가는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과도한 자기애나 충동 조절 장애 같은 양육의 문제를 사회나 국가가 직접 풀 수 있을까요? 입시 위주의 공교육이 할 역할도 마땅하지 않습니다. 확장 위주의 종교단체들, 특히 창립자가 자식에게 물려주는 조직의 경우는? 글쎄요. 그렇다고 국민의 상당수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 채울 수도 없는 문제입니다. 대가족제도의 붕괴로 조부모나 가까운 친척의 역할은 실종되었으니 결국 부모가 풀어야 할 숙제입니다만 사회 전체 분위기가 ‘귀한 자식, 절대 귀하게 키우기’이니 기대가 되지 않습니다. ‘아이들 하루 한 번 야단치기’ 국민 캠페인을 열자고 할 수도 없는 딱한 상황입니다.
우선, 요새 부쩍 화제가 된 ‘물병’에만 관심을 기울이지 마시고 국민 각자가 내 집안의 문제를 한번이라도 생각해 보겠다는 마음의 자세를 취하시길 권고합니다. 쉽지 않습니다. 반복해야 습관이 됩니다. 둘째, ‘공부, 공부!’ 덜 하시고 아이들 잠을 더 재우십시오. 잠이 모자라면 충동 조절이 안 됩니다. 셋째, 어른들 싸우는 모습을 제발 좀 덜 보여주세요. 아이들이 보고 그대로 배웁니다. 방송도, 신문도 달라져야 합니다. 넷째, 퇴근 후에는 사춘기 아이들처럼 몰려다니지 마시고 곧장 집으로 가십시오. 쉬셔야 가족이 눈에 보입니다. 다섯째, 상황이 나아지지 않으면 오래전에 알프레트 아들러라는 의사(‘개인 심리학’ 창시자)가 오스트리아에서 주도했던 ‘아동 지도 클리닉’ 운동을 고려해 봅시다. 아들러의 주장에 의하면 마음이 건강한 아이들을 키우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1920년대 후반에 빈에만 ‘아동 지도 클리닉’이 22곳이나 설립되었고 유럽과 영국으로 파급되었습니다.
살기 좋은 대한민국은 온 국민이 끊임없이 노력해야 찾아옵니다.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와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정도언 정신분석학자·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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