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23일 화요일

세상에서 가장 슬픈 향기, 커피로드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저를 낳은 커피라는 식물에 대해 말씀 드릴게요.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고산지대가 원산지인 다년생 식물이에요. 약 3000년 전에 이 지역에 살던 오로모 부족이 야생 상태의 나무 열매를 빻아서 기름에 섞어 먹었는데, 이 열매가 바로 커피예요. 이 지역엔 이후 15세기에 케파 또는 카파 왕국이라는 나라가 생기는데, 짐작하시다시피 커피라는 이름이 여기에서 나왔다고 해요.

그런데 기원전 에티오피아에서 커피를 먹었다는 이 이야기는 검증되지 않은 ‘설’이에요. 커피를 다룬 많은 입문서들은 커피의 역사가 오래됐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인지 이 이야기를 즐겨 인용하지만, 학자들은 훨씬
후대에야 커피가 음료나 음식으로 사용됐을 거라고 믿고 있지요.

역사학자인 김복래 안동대 유럽문화학과 교수가 쓴 ‘프랑스가 들려주는 이야기’에는 커피가 에티오피아에서 900년쯤에야 처음 ‘발견’됐다고 나와 있어요. ‘위키피디아’의 ‘커피 역사’ 항목은 900년대 발견설조차 의심스럽다는 투로 말하고 있죠. 훨씬 후대에 발견했다는 뜻이에요. 하지만 168년 전통의 미국 과학잡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의 커피 기사가 오로모 족의 일화를 소개하고 있으니, 마냥 무시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그리고 아무렴 어때요, 야생 커피 나무의 원산지가 에티오피아란 것만은 변함없는 사실인데.

사실 원산지인 에티오피아가 그리 주목 받지 못하고 있는 건, 커피를 작물로 처음 키우고 음료로 만든 나라가 따로 있기 때문이에요. 바로
아라비아 반도 남부의 예멘이죠. 여기에서부터 전세계로 퍼져나갔기 때문에 커피는 아라비아가 원산지인 것처럼 알려지게 됐어요.

그래서 가장 유명한, 현재 전체 커피 생산량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고급 품종이 ‘코페아 아라비카’라는 이름을 갖게 됐지요. 흔히 ‘아라비카 종’이라고 불리는 커피예요. 에티오피아가 원산지니까 ‘코페아 에티오피카’가 돼야 할 것 같은데, 안타깝게도 이름을 빼앗겼어요.

당시 예멘에서 만들어 마시던 커피는 오늘날의 커피와 달랐어요. 열매를 물에 우려서 그 국물을 마셨죠. 보리차처럼요. 그러다 13~15세기가 돼서야 오늘날처럼 뜨거운 열에 볶은 뒤 갈아 뜨거운 물에 타 마시기 시작했답니다.





자, 이제 주전자의 물이 다 끓었어요. 온도가 94℃쯤 되겠군요. 분쇄기로 원두를 갈아 여과지에 넣고 물을 붓겠습니다. 방울방울 조심조심…. 표면만 젖을 정도로 조금씩….

이를 ‘뜸을 들인다’고 표현해요. 커피 가루 사이로 뜨거운 물이 물줄기를 이루며 흘러내리도록 하는 과정이에요. 어떠신가요. 은은한 향기가 확 풍기죠? 고소하기도 하고 달콤하기도 하죠. 커피 안에 숨어 있던 방향성 유기화합물 성분이 빠져 나왔기 때문이에요. 자세한 얘긴 나중에 하기로 하고….

이제 커피도 다 됐으니까 이야기를 계속할게요. 커피를 볶아 내려 마시기 시작한 이후, 이슬람 국가들은 말 그대로 커피에 ‘미쳐’ 있었다고
해요. 어찌나 유행했던지, 16세기 세계의 중심 도시였던 콘스탄티노플(지금의 터키 이스탄불)에서는 남편이 커피를 마시러 나가서 안 들어와 가족을 부양하지 못해 이혼당하는 경우가 있을 정도였어요. 이 때를 배경으로 한 터키 소설가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에도 주인공들이 툭하면 커피를 마시고 커피숍에서 음모를 꾸미는 장면이 나오죠. 오늘날의 카페 못지 않죠?

예멘의 모카 지방에서 처음 재배된 커피는 이제 아라비아 반도를 넘어가 퍼지기 시작했어요. 중동의 페르시아 지역은 물론 아프리카 북부에도 퍼졌죠. 원래 야생 시절 원산지가 아프리카였는데, 작물로 변신해 다시 고향 땅을 밟은 심정이 어땠을지 참 궁금해집니다. 그런데 유럽 얘기는 왜 안 하냐고요?

사실 유럽의 나라들은 당시까지도 커피의 ‘커’ 자도 모르는 커피의 후진국이었답니다. ‘내 이름은 빨강’의 인물들이 가정도 내팽개치며 너도나도 커피숍에 드나들던 16세기까지, 유럽 사람들 대부분은 커피를 마시지 않았어요. 그도 그럴 것이 이슬람 국가들이 상품 가치가 높은
커피 종자의 국외 반출을 엄격히 막았거든요. 수출을 하긴 했지만, 싹을 틔울 수 없도록 모두 볶아서 내보냈어요. 그나마도 1615년 베네치아의 상인이 콘스탄티노플에서 사들인 게 처음이었죠.

하지만 일단 소개되자 빠르게 퍼졌어요. 1650년쯤엔 영국 옥스퍼드대 옆에 커피숍이 생겼고 1672년에는 파리에도 생겼어요. 1750년 즈음에는 서유럽 전체에 커피숍이 유행하게 됐어요. 이제 유럽도 커피의 열병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됐어요. 이후 동쪽으로는 인도와 베트남과 캄보디아,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까지 확산됐어요. 특히 동남아시아는 슬픈 역사가 있죠. 한때 이 지역은 ‘인도차이나’라는 이상한 이름으로 불렸는데,,인도 사람들과 중국 사람들이 대거 진출해 살았기 때문이에요. 지금도 말레이시아나 싱가포르와 같은 지역은 인도계와 중국계 사람들이 많이 사는데, 인도계 사람들이 처음 온 게 다름아닌 커피를 재배하기 위해서였어요. 동남아시아의 역사에는 커피 재배민들의 눈물이 어려 있어요.





새로 내린 커피 맛이 어떤가요. ‘만델링’이라는 커피예요.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북부에서 자란 아라비카 종 원두죠. 과일 향이 떠오르는 화사한 향기와 달콤한 뒷맛이 일품이죠. ‘토라자’라는, 이웃한 슐라웨시 섬의 커피와 비슷하지만 향이 좀더 강렬해요.

지금까지 이야기를 죽 들으면서 또하나 의아하게 생각한 게 있을 거예요. 커피를 많이 소비하게 된 유럽이 왜 직접 커피를 재배하지 않았나 하는 거죠. 답은 간단해요. 기후와 풍토 때문이에요. 커피는 자랄 수 있는 기후가 꽤 까다로워요. 연중 강수량은 1500mm 내외가 돼야 하고, 수확할 때는 조금 건조해야 하죠. 인삼처럼 직사광선을 쬐면 안 되고, 서리나 바람도 없어야 합니다. 토양은 비옥해야 하고 배수도 좋아야 하고요.

이런 상황이니 온대 지역은 커피를 재배할 수 없어요. 오직 남위 23.5°, 북위 23.5° 사이의 아열대 몬순이나 열대 기후에서만 가능하죠. 이
지역을 ‘커피 벨트’라고 해요. 유럽은 커피에 푹 빠졌지만 자신들의 땅에 커피를 심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그래서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다른 나라에게는 불행히도, 당시는 유럽이 한창 식민지를 개척하던 때였어요. 세계 해상 무역을 좌지우지하던 네덜란드가 첨병이 됐습니다. 지금 우리가 마시고 있는 커피의 고장 인도네시아 역시 마찬가지였죠. 특히 자바 섬에서 나온 자바 커피는 당시 네덜란드에서 소비되던 커피를 대는 ‘공장’ 역할을 했답니다.

이런 식으로, 동남아시아와 남미 여러 나라는 유럽의 식민지가 돼 커피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역할을 맡게 됐습니다. 서양의 자본력과 기술이 식민지 원주민의 싼 노동력과 결합해 이뤄진 이런 대규모 단일 농업 방식을 ‘플랜테이션 농업’ 혹은 ‘재식농업’이라고 부릅니다. 고무나 커피, 담배, 목화, 카카오 등이 대표적인 품목이죠. 식민지 사람들은 자신들은 이용하지도 못하는 기호식품이나 재료를 오로지 자신들을 정복한 유럽의 나라를 위해 만들어야 했죠. 함민복 시인은 ‘눈물은 왜 짠가’라는 시를 남겼지만, 저희는 ‘커피는 왜 짠가’라는 시라도 짓고 싶은 심정이에요. 물론 커피는 쓰지 짜지 않아요. 하지만 그 안에 짠 눈물이 스며 있으니 짜다고 해도 되겠지요.

1954년, 인도네시아는 식민지배에서 벗어나 독립했습니다. 하지만 한 번 유럽의 제국이 만든 농업 구조를 바꿀 수 없었습니다. 영세하고 낙후된 방식에서 벗어날 수가 없던 거죠. 독립 후 30년 가까이 지난 1981년 3월 ‘내셔널지오그래픽’에는 한 네덜란드 상인이 당시 인도네시아의 커피 교역 상황이 묘사한 말이 나오는데, 눈물 없이는 볼 수가 없네요.


유럽의 커피 욕심이 뻗은 마수는 동남아시아로만 향한 게 아니었어요. 중남미 여러 나라가 후보지가 됐어요.
벌써 만델링을 다 마셨나요. 그럼 새로운 커피를 내릴게요. 어차피 밤을 지새울 테니 잠 못 잘 걱정은 안 해도 되니까요. 이건 ‘하와이안 코나’라고 부르는 커피예요. 가볍고 산뜻한 느낌이 장점인 커피죠. 볶을 때도 강하게 오래 볶을 수 없어요. 향이 죽어버리거든요. 병충해에도 약하다는 단점도 있네요.

이 커피는 ‘티피카’라는, 대표적인 아라비카 재래종 커피의 일종이에요. 이 커피의 유랑도 참 기구해요. 아프리카에서 아라비아 반도로 간 아라비카 커피 묘목이 네덜란드와 프랑스를 거쳐, 당시 프랑스의 지배를 받던 남미 북쪽의 마르티니크 섬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몇 년 뒤 커피 수확에 성공하며 크게 번창하지요.

그런데 고립된 이 섬에서 약간의 변종이 만들어집니다. 커피도 작물이니 육종을 했겠죠. 이 종이 바로 티피카예요. 티피카 커피는 자메이카를 거쳐 멕시코와 베네수엘라 등 중남미 여러 나라에 퍼졌고, 결국 하와이까지 가게 됩니다. 고급원두로 유명한 ‘블루마운틴’도 자메이카의 티피카 종 커피예요.

아라비카의 또다른 대표종이 다른 곳에서 태어납니다. 예멘에서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 옆 레위니옹 섬(당시 부르봉 섬)을 거쳐 탄자니아와 브라질로 간 ‘부르봉’이라는 종이에요.

한편 일찍이 아시아로 갔던 아라비카 종은 19세기 후반 대수난을 겪었어요.잎곰팡이병이라는 전염병이 유행하면서 대부분 죽었거든요. 그래서 인도의 실론 섬은 커피 농사를 아예 포기하고 홍차를 키우기 시작했고, 다른 농장들은 품질이 낮은 대신 병충해에 강한 ‘카네포라(대표적인 변종인 ‘로부스타’로 불리기도 함)’ 종으로 묘목을 바꿉니다. 결국 요즘 아시아에서는 아라비카가 아닌 카네포라 종을 많이 키우고 있어요. 현재 전세계 생산량의 약 38%가 카네포라 종이죠(2012년 기준).

아시아의 커피 농장이 쑥대밭이 된 이후, 세계 커피 생산량의 절대 강자는 브라질로 넘어갔어요. 국제커피협회(ICO)의 통계를 보면, 지난 2012년 브라질의 커피 생산량은 전세계 생산량의 35%로, 여전히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답니다. 2위는 베트남인데, 브라질 생산량의 절반도 채 안 되고, 그나마 카네포라 종이에요






서서히 여명이 밝아오네요. 할 이야기야 많지만, 그럼 당신이 궁금해하는 저, 파나마 에스메랄다 게이샤(게샤) 이야기를 할 차례예요. 먼저 게샤 커피를 한 잔 내리겠습니다. 좀 화려한 느낌이라 새벽에 마시기에 적절할 지 모르겠지만….

사실 모든 커피는 종도 많고, 워낙 이주와 품종개량을 복잡하게 겪어서 정확한 ‘족보’를 찾기가 어려워요. 특히 게이샤는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과는 또다른 역경을 겪었어요. 기구한 인생역전이요.

게이샤는 원래 에티오피아의 게샤 지방의 마을에서 자라던 재래종이었어요. 에티오피아에는 커피의 원산지답게 지금도 수많은 재래종이 자라고 있지요. 이 중 하나가 케냐를 거쳐 보다 남쪽의 탄자니아에 옮겨 갔죠. 이후 이 종은 대서양 건너 코스타리카를 거쳐 파나마의 농장으로 흘러 들어갔는데, 그게 바로 게이샤 종이에요. 요즘은 파나마와 코스타리카 등지에서 아주 조금씩 키우고 있어요.

파나마에 자리를 잡은 게이샤 종은 병충해에 약했어요. 그래서 파나마를 휩쓴 병충해에 곧 대부분 죽고 말았죠. 단 하나, 고지대에 농장을 꾸린 에스메랄다 농장의 게이샤만 빼고요. 전염병이 창궐한 죽음의 산악지대에서 극적으로 목숨을 건져서일까요. 소중한 생의 기쁨을 표현하고 싶었는지, 이 종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화려하고 풍부한 과일향과 복잡한 맛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그야말로 별명(게이샤)과 잘 어울리지는 특징이었지요.

그리고 곧 세계가 저의 진가를 알아봤습니다. 1990년대 후반, 세계적인 커피 경연대회에 ‘에스메랄다 스페셜’이라는 이름으로 출전해 심사위원으로부터 거의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았습니다. 거의 나올 수 없는 점수라며 많은 바리스타와 생두감별사들이 경악을 했지요.

이런 화려한 등장 덕분에, 저는 금세 커피계의 세계적인 스타가 됐어요. 당시 게이샤 생두 1kg이 우리 돈 70만 원 정도에 팔렸다고 하니 인기를 짐작할 수 있지요.

자, 이제 햇살이 창가로 다가오네요. 곧 새벽의 어스름이 가시고 환한 아침이 오겠죠. 당신은 마지막 남은 게이샤 한 모금을 넘기고 있어요. 식어서 차가워졌지만 좋은 커피는 식어서도 화사한 향미를 잃지 않습니다. 저 게이샤 역시 주스처럼 진한 맛을 마지막 한모금까지 선사할 거예요.

이제 저는 별명인 게이샤 대신 게샤라는 원래 이름으로 불리길 바라요. 하지만 그렇다고 고향에 가겠다는 말은 아닙니다. 제가 게샤에 가면, 저는 더 이상 ‘파나마 에스메랄다 게샤’가 아니게 될 테니까요. 그 땅의 기후와 토양, 문화, 이 모든 것이 혼연일체가 돼 나온 게 저예요. 만약 에티오피아 게샤에서 꽃과 열매를 피운다면, 그건 그 곳만의 또다른 게샤 품종이 될 것입니다.

요즘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커피 전문점에 가보면 이런 문구가 걸려 있어요. “지리학이 곧 맛과 향이다(Geography is flavor).” 식민지로 커피를 재배해 영국에 납품해야 했던 인도의 몬순 말라바 커피는 아프리카 항로를 거치는 긴긴 시간 내내 바다 바람을 맞았어요. 그래서 이 커피에는 눈물과도 같은 비릿한 해초 냄새가 배어 있습니다. 커피 중 막내지만, 끔찍한 병충해를 견디고 살아남은 저는 모진 세월을 숨긴 채 역설적인 화사한 맛과 향을 선보이고 있어요. 그 누가 우리 커피에게서 자연의 영향을 지울 수 있겠어요. 그리고 우리를 수확한 커피벨트 농민의 눈물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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