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23일 화요일

뱀껍질엔 마찰력 줄이는 나노과학이 숨쉰다

아이디어 원천 떠오른 뱀의 과학
12간지 중 뱀은 지혜롭고 신령스러운 동물로 취급된다. 그렇지만 실제로 뱀은 차가워 보이는 피부, 갈라진 혀, 구불거리는 긴 몸통, 독이빨 때문에 징그럽고 두려운 존재로 받아들여진다. 이는 동양과 서양을 막론한 뱀에 대한 보편적 감정이다.

이 혐오스러운 존재가 과학자들에게는 새로운 아이디어의 원천이 되고 있다.

다리 없는 몸통으로 자유롭게 누비는 모습은 ‘뱀 로봇’의 아이디어가 됐다. 또 보기만 해도 서늘한 느낌을 주는 ‘뱀 껍질’이 놀라운 구조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뱀 껍질은 물고기 비늘과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물고기 비늘이 각각 따로 떨어져 있는 것과 달리 뱀 껍질은 하나로 연결된 피부가 비늘 모양으로 주름 잡혀 있다. 뱀의 허물이 조각나지 않고 통째로 유지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뱀이 움직이는 힘도 바로 이 껍질에서 나온다. 다리가 없는 뱀은 몸통을 지표면에 붙여 마찰시키며 움직이는데, 몸통 각 부분의 마찰력을 적절하게 조절하며 이동하는 것이다.

미국 조지아공대 데이비드 후 교수팀은 ‘푸에블란 밀크 스네이크’란 작은 뱀의 몸통을 앞뒤로 돌려 마찰력을 측정했는데, 앞으로 갈 때 마찰력이 뒤로 갈 때보다 작았다. 또 옆 부분의 마찰력은 앞뒤보다 훨씬 커서 브레이크 작용을 하게 된다. 뱀은 이런 마찰력을 적절히 활용해 몸을 움츠렸다 펴는 동작으로 ‘S’자 곡선을 그리면서 전진하는 것이다.

뱀 껍질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일정한 형태의 무늬를 볼 수 있다. 나노미터(1nm=10억분의 1m)나 마이크로미터(1μm=100만분의 1m) 크기에서 드러나는 독특한 무늬는 이동에 유리할 뿐 아니라 험한 자연 환경에서도 껍질이 다치지 않게 만들어 준다.

문명운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계산과학연구단 선임연구원은 “뱀 비늘은 머리 쪽으로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일정한 형태의 나노 무늬가 잘 발달돼 있다”며 “이 나노 무늬는 뱀 껍질이 지표면과의 마찰을 최대한 줄이고, 피부가 덜 닳도록 만들어 준다”고 설명했다.

재미있는 것은 뱀의 서식환경에 따라 표면 무늬가 달라진다는 데 있다. 사막 같이 건조한 장소에 사는 뱀의 표면은 매끄러우며 수십 마이크로미터 간격으로 미세한 칸막이가 나타난다. 이런 칸막이 구조에 아주 작은 모래 알갱이들을 가둬, 마찰력을 줄이고 부드럽게 움직이기 위한 ‘윤활제’로 쓴다. 대표적인 것이 사막 도마뱀인 ‘샌드피시’인데, 사막에 사는 다른 뱀들도 이런 피부 구조를 갖고 있다.

반면 동남아시아처럼 습기가 많은 곳에 사는 뱀은 마이크로미터 단위의 무늬와 함께 나노미터 크기의 작은 돌기들이 발달했다. 이렇게 볼록볼록 튀어나온 표면은 물기가 있는 환경에서 마찰력을 줄인다. 피부에 머금은 물이 윤활 작용을 하게 되는 것이다. 보아뱀(boa snake)의 표면이 바로 이런 상태다.

문 연구원은 “뱀 비늘을 모사한 표면을 만들면 같은 소재를 쓰더라도 마찰이 작고, 마모가 거의 없는 표면을 만들 수 있다”며 “자동차 엔진에 들어가는 실린더를 이런 표면으로 만들면 윤활제도 적게 들고 수명도 늘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뱀의 피부 구조를 연구하면 휴대전화나 컴퓨터 등에서 미세하게 작동하는 마이크로발전기를 비롯해 우주처럼 진공 상태에서도 마찰이나 마모를 견디는 특수 표면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DongaScience

댓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