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23일 화요일

엄마! 수학 잘하게 형 낳아 주세요

 
“엄마! 나 수학 잘하게 형 낳아 주세요”
라고 말하고 싶은 심정의 과동이. 그런데 수학의 神은 왜 이런 말을 한 것일까. 과동이는 곰곰이 생각해봤지만 결론은 “모. 르.겠. 다.” 수학의 神이 농담 따먹기를 한 것은 아닐 테고 말이다.

불현듯 유럽의 베르누이 가문이 떠올랐다. 그 유명한 ‘신비의 베르누이가(家)’는 3대에 걸쳐 8명의 뛰어난 수학자를 배출한 가문이다. 그 중에서도 야곱 베르누이와 요한 베르누이, 다니엘 베르누이의 업적이 유명하다. 야곱은 통계추론과 확률론에서 큰 기여를 했고, 그의 동생 요한은 뛰어난 통계학 실력으로 ‘베르누이의 효용법칙’을 발표했다. 그리고 요한의 아들 다니엘 베르누이가 그 유명한 ‘베르누이의 법칙’을 발표했다. 그가 없었다면 비행기 개발이 더뎌졌을지도 모른다.

특히 야곱과 요한은 가난한 수학자의 길을 반대했던 아버지의 눈을 피해 몰래 수학공부를 함께 했다. 형제가 함께 공부하면서 둘은 뛰어난 업적을 남긴 큰 수학자가 됐다. 이런 가정 분위기에서 큰 다니엘 베르누이가 뛰어난 수학자이자 과학자로 자란것은 당연해 보이기도 한다.

형 있으면 수학, 누나 있으면 언어 잘한다?!
‘수학 神의 말이 정말인 건가.’ 과동이는 베르누이가의 사례가 특이한 경우일 수 있다는 생각에 좀 더 많은 자료가 없는지 찾아보기 시작했다. 마침 지난 3월 3일 조현국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이 ‘2013 경제학 학술대회’에서 ‘학습능력에서의 형제간 동료효과’라는 논문을 발표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신빙성이 있어 보였다.

조 연구원에 따르면 형(오빠)이 있는 학생은 언어보다 수학을, 누나(언니)가 있는 학생은 수학보다 언어를 상대적으로 더 잘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 연구원은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조사한 2004년 당시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의 가족관계와 성적을 분석했다. 자료에 나온 총 4000명의 학생 중에서 형이나 누나가 있는 두 자녀 가정의 학생은 510명이었다. 55%는 형이 있고, 45%는 누나가 있었다.

연구팀은 이들의 수능 수리 점수에서 언어 점수(백분위 점수)를 빼서 어떤 과목을 더 잘 하는지 비교했다. 결과를 보니 형이 있는 그룹이 누나가 있는 그룹보다 이 값이 5.69점 더 높았다. 형이 있으면 누나가 있는 것보다 상대적으로 수학을 더 잘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해석하면 누나가 있는 그룹은 상대적으로 언어를 더 잘 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효과는 여학생에게 더욱 컸으며, 형제가 같은 방을 쓰고 나이 차가 많지 않을수록 두드러졌다.

과동이는 당장 조현국 연구원에게 e메일을 보내 정말 형이 있으면 수학 점수가 잘 나오냐고 물었다. 그는 “형 있는 사람이 수학을 잘한다는 것은 수학 100점을 받는다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어디까지나 언어보다 수학을 잘한다는 말이다. 바로 ‘동료효과’때문이란다.

동료효과는 동료의 행동과 사고방식에 영향을 받아 개인의 행동이 변하는 것을 말한다. 2009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를 보면 남학생이 여학생보다 수학 점수가 높고, 여학생은 언어 점수가 높다. 그러니 형은 수학을 잘하고, 누나는 언어를 잘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형이 있는 동생은 자연히 수학을 잘하는 형의 행동이나 사고방식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누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생활공간이 겹칠수록 서로의 행동을 관찰할 기회가 많기 때문에 동료효과가 더 크게 나타난다.
 


 
그룹 스터디를 하는 건 어떨까
형이 없는 과동이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만년 형 타령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다른 방법을 찾아 보기로 했다. 혹시 수학을 잘하는 친구와 함께 공부를 하면 동료효과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역시 나는 머리가 좋아’라며 스스로를 칭찬한 뒤, 같은 반에서 수학을 잘하는 친구 몇 명을 포섭했다. 과동이가 잘하는 언어영역은 과동이가 앞장서서 스터디를 이끌고 수리영역은 친구들이 이끌어 가기로 했다.

“그런데 정말 같이 공부하는 게 효과가있는 거 맞아?”
의심이 많은 민수가 물었다.
“훗. 물어볼 줄 알고 내가 찾아 놓은 자료가 있지.”

과동이는 2006년에 노동경제학저널에 발표된 동료효과에 대한 연구를 이야기했다. 스위스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편지지 넣기 실험’을 한 것인데, 24명의 실험자 중 16명은 두 명씩 짝을 지어 같은 공간에서 각자 편지지 넣기를 하고 나머지 8명은 한 명씩 독립된 공간에서 혼자 일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혼자 작업한 사람이 4시간 동안 평균 190개를 하는 동안 짝을 지어 작업한 사람은 31개 많은 221개를 완수한 것이다.함께 일한 동료의 성실한 태도에 영향을 받아 주변 사람들까지 바뀌는 동료효과가 일어난 것이다.

교육계에서 동료효과는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굳이 맹모삼천지교를 꺼내지 않아도 자녀를 좋은 학생이 모이는 학교에 입학시키기 위해서 위장 전입시켰다는 고위공직자 관련 뉴스를 심심찮게 접하게 된다. 이해는 가지만 씁쓸하다. 요즘은 산업계에서도 동료효과에 주목하고 있다고 한다. 적은 투자로도 큰 성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이라는 측면에서다.



그룹 스터디 여학생에게 더 좋다
과동이는 그룹 스터디 활동 제안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가희가 부쩍 예뻐 보였다. 고맙다고 하자 가희가 속으로 싱긋 웃었다. 그룹 스터디 효과가 남학생보다 여학생에게 더 크다는 한신대 교육대학원의 연구 결과를 보았기 때문이다.

오현숙 교수팀이 경기도에 있는 중학생 남학생(151명)과 여학생(2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여학생의 ‘기질의 사회적 민감성’이 남학생보다 더 강한 것으로 나왔다. 사회적 민감성이 높은 여학생은 혼자 공부할 때보다 다른 사람과 함께 할 때 주변을 더 의식하기 때문에 학습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타인의 행위를 모방하거나 교감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거울뉴런 덕분인데, 흐시에흐 옌추엔 대만 국립양민대 교수팀의 2006년 연구 결과 여성의 거울뉴런이 남성의 그것보다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한다. 그러니 그룹 스터디가 가장 반가운 것은 가희였다. 반대로 남학생은 여학생보다 자율성이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자기주도적 학습전략을 세워 공부하는 것이 더 좋다는 것이다.

열심히 공부하려고 그룹 스터디도 주도해 만든 과동이가 이런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가희는 큰 맘먹고 과동이에게 알려줬다. 과동이는 동료효과도 무시할 수 없어 고민에 빠졌다. 결국 학습 계획은 각자 세우고 교재와 진도만 서로 맞춰서 모르는 것을 물어보면서 함께 공부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그룹 스터디를 시작하고 과동이는 친구들과 진도를 맞춰나가기 위해 게으름 피우지 않고 열심히 수학 문제를 풀어야 했다. 여러 가지 책에 나오는 문제를 친구들과 공유하다 보니 공부의 양도 늘어났다. 게다가 서로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도움을 주면서 공부를 할 수 있는 친구들이 생겨서 더욱 든든하다. 이번 중간고사에서 수학 성적이 어떻게 나올지 몰라도 이미 무언가를 이룬 것 같은 뿌듯한 느낌이라 당장 성적에
연연하는 조급한 마음을 버렸다.

“수학의 神, 땡큐!”  과학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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