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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일본은 노벨상 수상자를 세 명 배출했다. 이번엔 물리학상이다. 이제 일본의 수상은 놀랍지 않다. 노벨상, 특히 과학 분야 상을 발표할 때가 되면 ‘이번엔 누가 받을까’에 앞서 ‘올해도 일본이 받을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 정도다.
1949년 유카와 히데키가 물리학상을 받은 이후, 지금까지 19명의 일본 과학자들이 노벨상을 받았다(문학상 및 평화상을 합하면 22명). 21세기, 그러니까 최근 15년 동안에 상을 받은 과학자는 14명에 달한다. 이 기간만 따지면 독일(6명), 영국(11명)보다 많아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다.
● 자신만의 발상으로 도전하다
19번의 노벨 과학상 중 가장 두드러진 분야는 물리학상이다. 올해 받은 세 명을 포함해 모두 10명이 받아 절반을 넘었다. 수보다 중요한 것은 분야로, 이론과 실험, 응용 분야에서 고루 받았다.
특히 이론물리학, 그 중에서도 ‘인류 지성의 꽃’으로 불리는 입자물리학에서 일찌감치 여러 명의 수상자를 낸 것은 일본을 뒤쫓는 주변 국가들이 감히 넘보지 못하는 아성이다. 화학 역시 만만치 않아서, 지금까지 재료, 측정, 이론 분야에서 7명이 수상했다.
일본은 첫 번째 수상자인 유카와 히데키 전 교토대 교수(물리학상)부터 입자물리이론으로 상을 받았다. 유카와 교수는 ‘중간자’라고 불리는 존재를 예측한 독특한 이론으로 유명하다.
이 이론은 하나의 핵 안에 어떻게 전하 상태가 다른 두 입자, 즉 전하를 지닌 양성자와 전하가 없는 중성자가 결합해 있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나왔다. 전하로는 서로 끌어당길 수 없기 때문에 다른 미지의 힘이 이 둘을 묶어야 한다. 유카와 교수는 이 힘이 어떤 미지의 입자를 주고 받음으로써 발생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 입자에 중간자(메존)라는 이름을 붙이고 그 질량과 특성을 예측했다.
그 뒤 그가 예측한 것과 비슷한 성질을 지닌 파이온이라는 입자가 실제로 발견되면서, 그는 큰 주목을 받았다. 그 뒤 좀더 복잡하고 정확한 핵력 이론이 정립되면서 그의 이론이 완벽히 맞지는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하지만 입자가 힘을 매개한다는 발상 자체는 완벽히 맞았기에 그는 이 이론의 선구자로 꼽힌다.
● 유학파보다 국내파를 키우다
과학적 업적은 아이디어와 정신력만으로 단번에 이뤄지지 않는다. 학계가 꾸준히 쌓아온 연구가 밑바탕을 이뤄야 한다. 유카와 교수는 외국 유학 한 번 하지 않은 소위 ‘국내파’다. 하지만 유카와 교수가 이론을 만든 1930년대는, 일본 물리학계가 어느 정도 세대교체가 된 이후였다.
즉 서양을 배우고 따라잡으려 애쓰면서 물리학을 발전시킨 시대를 이미 한 차례 보내 어느 정도 토대가 잡힌 뒤였다. 유카와 교수는 이런 토대 위에서 변방 콤플렉스에 시달리지 않으며 당당하게 이론을 제시할 수 있었다.
이런 ‘국내파’는 이후 분야를 막론하고 일본 노벨상 수상자의 전형으로 자리잡았다. 일본 노벨상 수상자 중 해외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학자는 단 네 명뿐이다. 나머지 15명은 모두 일본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아예 외국 체류 경험이 없는 극단적인 경우도 있었다.
2008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마스카와 도시히데 교토대 명예교수의 경우, 노벨상을 받으러 스웨덴에 간 게 일생의 첫 해외 출국이었다. 영어도 못해 노벨상을 받은 논문도 일본어로 쓴 뒤 동료인 공동수상자 고바야시 마코토 교수가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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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들은 자국의 울타리에 갇히지 않았다. ‘토종’ 과학자들이 노벨상을 받을 수 있었던 비결은 적극적인 교류였다. 2010년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이 낸 ‘노벨과학상 수상 현황 분석과 우리의 대응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은 1920년대부터 해외 공동연구를 장려하고 해외 유명 과학자들을 초청해 지속적으로 교류했다.
물리학의 경우 1세대 물리학자들이 하이젠베르크와 닐스 보어 등 당대의 석학들을 데려와 젊은 학생들과 만나도록 했다. 유카와 교수와 도모나가 신이치로(1965년 노벨물리학상) 교수 등이 당시 이 혜택을 본 경우였다.
투자 역시 중요하다. 일본 정부는 메이지시대인 1886년부터 지역 거점에 도쿄대, 교토대, 나고야대, 규슈대 등의 7개 제국대학을 운영하며 기초과학을 가르쳤다. 이들은 나중에 모두 국립대가 됐는데, 이 가운데 5개 대학에서 일본인 노벨과학상 수상자의 대부분이 나왔다.
여기에 1917년부터 기초과학 연구소인 이화학연구소(리켄)를 설립해 기초연구를 강화했다. 이후로도 일본은 GDP 대비 연구개발비, 기초과학 투자비 등에서 꾸준히 세계 최고 수준을 유지했다(107쪽 그래픽). 일본이 2000년대 이후 노벨상을 휩쓸고 있는 것은 이렇게 1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이뤄진 긴 기다림과 투자 덕분이다.
일단 세계적인 학자가 나오면, 이들은 자국에서 후학을 기르는 데 온 힘을 쏟았다. 첫 노벨상 수상자인 유카와 교수가 대표적이다. 이론물리학자인 이강영 경상대 물리교육과 교수의 저서 ‘LHC, 현대물리학의 최전선’에는 유카와 교수가 노벨상을 받은 뒤, 과학계와 정부가 합심해 교토를 ‘일본 과학계의 수도’이자 노벨상의 산실로 만드는 과정이 자세히 묘사돼 있다.
교토대는 유카와 교수를 기념하는 유카와 기념관을 지었다. 일본 과학평의회도 이론물리학 연구 장려 기금을 요청했고, 물리학계는 이 돈으로 일본 기초물리학 연구소를 만들었다. 이 연구소는 1990년 히로시마대 이론물리연구소와 합병해 유카와 이론물리학연구소가 됐다. 2008년 물리학상을 받은 마스카와 교수가 바로 이 연구소의 소장 출신이다.
재미있는 것은 마스카와 교수가 물리학을 하게 된 계기다. 그는 나고야대 출신인데, 고등학생 때 과학잡지에서 나고야대 교수의 연구 내용을 보고 ‘과학이 유럽이 아니라 일본 땅에서도 만들어지고 있구나’ 하고 깨닫고 나고야대 이학부를 지망했다고 한다(마스카와 도시히데-야마나카 신야 대담집, ‘새로운 발상의 비밀’, 65쪽). ‘과학을 일본에서도 할 수 있다’는 패러다임 변화가 훗날의 노벨상을 낳은 것이다.
교육뿐만이 아니다. 이 교수의 저서에 따르면, 유카와 교수는 일본 물리학 학술지도 새로 창간해 권위지로 키웠다.
1965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도모나가 신이치로, 2008년 수상자 고바야시 마코토, 마스카와 도시히데가 모두 이 학술지에 실은 논문으로 물리학상을 받았다. 외국 학술지에 의존하지 않고도 자국의 학술지만으로도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를 발표할 수 있다는 점은 학자로서는 무시하지 못할 강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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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야 가능성을 보인 한국
일본의 연이은 수상 소식에 한국이 조급증을 내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아직은 ‘체급’이 다른 게 현실이다. 세계 수준에 근접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2010년 그래핀이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을 때, 이 분야에서 세계 3위 안에 든다고 평가 받는 김필립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위 사진)가 수상에서 제외된 사실이 국제적으로 큰 관심을 모았다.
그런데 안타깝다는 의견 사이로 “드디어 노벨상과 관련해 논란이라도 일으키는 인물이 나타나 반갑다”는 반응도 있었다. 이제야 국제 무대에 등장할 만한 자타 공인의 실력파 학자가 나오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톰슨-로이터의 예측에서 한국인 또는 한국계 과학자 두 명이 노벨상 후보로 거론됐다. 처음 있는 일이라 많은 사람이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 톰슨-로이터에 후보로 오르는 학자가 거의 매년 나온다.
2008년의 경아카리 시즈오 교수(생리의학상)가 후보로 올랐고, 2009년에는 오가와 세이지 교수(생리의학상)가 올랐다. 2010년에도 야마나카 신야 교수(생리의학상), 기타가와 스스무 교수(화학상) 등이 후보로 거론됐다. 2011년에도 오노 히데오 교수(물리학상)가 올랐고, 2012년과 2013년에는 무려 3명씩이다.
잘 알려졌듯, 이 가운데 야마나카 신야 교수가 2년 뒤인 2012년에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거론되는 후보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우수하고 독창적인, ‘준비된’ 수상 후보자가 많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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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심지어 노벨상을 ‘예상’하고 있기도 하다. 올해 물리학상을 수상한 나카무라 슈지 교수가 수상자 발표 직후 일본 니혼게이자이 신문과 한 인터뷰를 보면, 특허료를 놓고 자신의 출신 회사와 소송을 벌일 때 주변 사람들이 “그러면 노벨상 받는 데 지장이 있지 않겠냐”며 만류했다는 언급이 보인다.
또 노벨상을 예상했냐는 질문에 “화학상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은 했는데, 물리학상이라 놀랐다”라고도 답했다.
일본에 두터운 후보군이 아직 많다는 것은 앞으로도 수상 소식이 이어질 것이라는 뜻이다. 이 모든 것은 100여 년에 걸친 교육과 투자의 결과다. 외국 바라기로 서양 뒤만 좇지 않고 과감하게 자국의 생각과 힘을 키웠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직 그런 역사가 짧다. 이제 겨우 한두 명의 후보자나 유망주가 나오고 있다. 긴 시간 연구자를 기다려주는 문화도 별로 없다. 노벨상이 문제가 아니라, 괜찮은 성과 하나 내기 어려운 환경이지 않을까. 이런 와중에도 분투하며 우수한 성과를 내고 있는 과학자들이 오히려 대단하다.
동아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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