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2월 4일 수요일

칼 세이건 -천문학을 넘어서 과학을 대중화한 칼 세이건

  
우주탐사선 파이어니어호에 실린 금속판 사진
우주탐사선 파이어니어호에 실린 금속판이에요. 칼 세이건이 만든 이 금속판에는 인간의 모습과 지구 위치 등의 정보가 그림으로 담겼어요. /위키피디아
누구나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본 적이 있을 거예요. 옛날 사람들은 신(神)이 별을 통해 인간에게 메시지를 보낸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별의 움직임을 통해 운명을 점치는 점성술이 발달했지요. 또 하늘에 뜬 태양과 달의 위치 변화를 보며 날씨를 예측하고 농사 시기를 알아내기도 했습니다. 미국 천문학자 칼 세이건(1934~1996)도 어린 시절 밤하늘의 별을 무척이나 동경했어요. 별을 관찰하고 별자리에 관련된 신화를 읽으며 천문학자의 꿈을 키웠지요. 특히 외계 생명체에 관심이 많아서 외계생물학 연구에 일생을 걸었습니다. 외계생물학이란 우주 생물을 연구하는 학문이에요. 우주에서는 생물이 어떤 형태로 사는지, 우주 생물의 근원은 무엇인지, 우주에 생물이 살 가능성은 얼마나 되는지 등을 연구하지요.

그런데 칼 세이건이 대학생일 때만 해도 '외계생물학'이라는 학문은 세상에 없었어요. '천문학계의 천재'로 주목받던 그가 외계생물학을 공부하겠다고 나서자 주변 사람 모두가 그의 미래를 걱정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주위의 반대와 걱정에도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가지요. 그 덕분에 스물세 살에 학생 신분으로 나사(NASA ·미항공우주국) 연구원이 되어 금성과 목성의 외계 생물체 연구에 참여합니다. 하지만 나사에서 열심히 일하던 세이건에게 시련이 찾아와요. 그가 참여한 외계 생물체 연구가 중단된 거예요. 금성, 목성 등은 생물체가 살 수 없는 환경이라는 연구 결과가 줄줄이 발표되었기 때문이지요. 학계와 대중도 외계 생물체 연구를 허황된 이야기로 취급하며 외면했고요. 세이건 역시 자신의 연구는 아무 가치도 없다며 좌절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세이건에게 편지 한 통이 도착해요. 천문학자가 되고 싶은 한 소년의 편지였어요. 세이건은 가난한 집안 형편 탓에 천문학자의 꿈을 포기하려던 소년을 자신이 강의하던 대학으로 초대해요. 그리고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천문학자의 길을 선택한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지요. 그 만남을 통해 세이건 또한 별을 좋아했던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좌절을 이겨내고 다시 연구를 시작합니다.
칼 세이건 사진
외계생물학의 개척자인 칼 세이건은 ‘코스모스’라는 다큐멘터리를 통해 천문학을 대중화하는 데 앞장섰어요. /Getty Images/멀티비츠
칼 세이건이 대중에게 친숙한 천문학자가 된 계기는 바로 1980년대에 만들어진 다큐멘터리 '코스모스'였어요. 그는 이 다큐멘터리에서 지구의 탄생과 우주 탐험의 역사, 외계 생명체, 우주에 얽힌 신화 등 우주에 대한 모든 내용을 대중에게 소개합니다. '코스모스'는 전 세계 60여개국에 방송되어 무려 7억5000만명이 시청했다고 해요. 뒤이어 같은 제목으로 출간한 책 역시 지금까지 천문학계의 명저로 손꼽힙니다.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외계생물학의 개척자로 유명세를 치렀지만, 끝내 외계 생명체를 발견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어요. 하지만 그의 연구와 다양한 활동은 베일에 싸인 우주와 외계생명체에 대한 많은 사람의 관심을 이끌어냈지요. 이러한 그의 노력은 멀지 않은 미래에 '외계 생명체 발견'이라는 놀라운 성과로 돌아오지 않을까요?
[1분 상식] '나사'는 어떤 기관인가요?
나사(NASA)는 ‘미항공우주국(National Aeronautics and Space Administration)’의 줄임말이에요. 우주선을 발사하고, 항공·우주 분야를 연구하는 미국 국가기관이지요. 1957년 미국과 경쟁하던 구소련이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 발사에 성공합니다. 인공위성을 보유한다는 것은 우주에서 지구를 내려다볼 수 있다는 뜻이지요. 우주 과학 분야에서 구소련에 뒤처질지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낀 미국은 여러 우주 연구 기관을 합쳐 1958년 나사를 설립합니다. 현재 나사는 세계 최고의 우주연구기관으로 인정받아요.
 
    조선일보

댓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