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2월 4일 수요일

존 스튜어트 밀 -'만들어진 천재'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사상 발전시킨 위대한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은 19세기를 대표하는 사상가로, 철학·정치·경제 등 여러 분야에서 큰 업적을 남겼어요.
존 스튜어트 밀은 19세기를 대표하는 사상가로, 철학·정치·경제 등 여러 분야에서 큰 업적을 남겼어요. /위키피디아
존 스튜어트 밀(1806~1873)은 19세기에 활동한 영국의 공리주의 철학자입니다. 공리주의(功利主義)란 어떤 행위의 결과나 선악의 판단 기준을 '인간의 이익과 행복을 늘리는 데 얼마나 기여했는가'에 두는 사상이에요. 존 스튜어트 밀은 더 많은 사람의 행복, 즉 사회복지 개념을 포함한 공리주의를 주장하여 '공리주의 철학을 완성한 사상가'로 평가받고 있답니다. 이렇게 훌륭한 철학자였으니, 어린 시절에도 정말 대단했을 것 같지요? 실제로 존 스튜어트 밀은 어린 시절 '천재'로 불렸어요. 하지만 그 별명은 결코 칭찬이 아니었답니다. 사람들은 그를 보며 '만들어진 천재'라고 수군거렸거든요. 왜 그랬을까요?

존 스튜어트 밀은 세 살 때부터 철학책을 읽고, 그리스어를 공부했어요. 자라면서 라틴어, 지리, 역사 등 어려운 학문을 두루 배웠지요. 아들을 훌륭한 철학자로 키우겠다고 마음먹은 아버지 때문이었어요. 그의 아버지가 '놀이는 시간 낭비'라고 여긴 탓에, 존은 어린 시절부터 밖에서 뛰어논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한 채 집 안에서 공부에만 매달렸습니다. 또래 아이들과 교류가 없었던 존은 모든 아이가 자신처럼 산다고 생각하여 불만조차 갖지 못했다고 해요. 결국 그는 아버지의 바람대로 10대 초반에 이미 대학을 나온 사람보다 뛰어난 지식을 갖추게 되었지요.

하지만 이러한 강압적 교육 방식은 곧 한계를 드러내고 말았어요. 존이 열네 살 때 집을 떠나 프랑스에서 생활하면서 변화가 찾아온 것이에요. 프랑스에서 여러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생각을 접하면서 존은 그동안 쌓은 지식이 그저 다른 사람의 생각을 달달 외운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정작 자신은 어떤 생각이나 의견도 가지지 못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지요. 더구나 대인관계 속에서 체험해야 할 '희로애락(喜怒哀樂)'의 감정을 책으로만 접했던 그는 사람의 감정을 머리로만 이해할 뿐 가슴으로 느끼지는 못했어요. 존은 이런 자신의 모습에 절망하며 깊은 우울증에 빠졌습니다. 학업에 대한 열정도 잃고 말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 존은 한 편의 시를 읽다가 눈물을 흘리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그는 자신에게도 감정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고 뛸 듯이 기뻐했다고 해요. 이를 통해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의지도 얻었지요. 그리고 앞으로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에 충실하기로 마음먹습니다. 이때부터 존은 자신의 생각을 바탕으로 당시 영국 사회와 정치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하였고, 사상가로 널리 이름을 떨치게 되지요.
존 스튜어트 밀의 저서인‘자유론’(왼쪽)과‘공리주의’.
존 스튜어트 밀의 저서인‘자유론’(왼쪽)과‘공리주의’.
존은 어린 시절에 비판 없이 받아들이기만 했던 제러미 벤담의 공리주의가 가진 한계를 깨닫고, 자신만의 공리주의를 주장했어요. 또한 정치·경제·사회 등 다방면에 걸쳐 방대한 저술을 남겼지요. 정치가로 활동하며 여성의 참정권을 주장하고, 노동자의 입장을 대변하기도 했어요. 자기만의 사상과 학문을 발전시킨 것이 그가 위대한 사상가로 남은 비결인 것이에요. 여러분도 무작정 외우는 공부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생각을 키우는 습관을 가지면 어떨까요?



[1분 상식] '제러미 벤담'은 어떤 사람인가요?
제러미 벤담(1748~1832)은 영국의 법학자이자 철학자예요. 그는 개인의 이익과 전체의 이익을 접목해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공리주의를 주장하였지요. 또한 공리주의 정신에 따라 자유경제, 정치와 종교의 분리, 표현의 자유, 양성평등, 동물의 권리 등도 주장하였습니다. 이러한 벤담의 사상은 영국은 물론 세계 각국의 법과 정치 체계에 큰 영향을 미쳤어요. 오늘날 대부분 국가에서 시행되는 '보통·직접·비밀·평등'이라는 선거의 4대 원칙이 확립되는 데도 크게 기여했습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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