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2월 4일 수요일

루이 파스퇴르 -딸의 목숨 앗아간 전염병 연구… 최초로 '저온 살균법' 밝혀내다



루이 파스퇴르(1822~1895)는 전염병의 위험에서 인류를 구원한 프랑스의 과학자입니다. 미생물을 발견해 병원균을 찾아내고 그것을 예방할 수 있는 백신도 발견해 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했지요.

작은 마을에서 가죽을 손질하는 평범한 무두장이의 아들로 태어난 파스퇴르는 학창 시절 공부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어요. 대신 그에게는 큰 장점이 있었어요. 관찰력이 남보다 뛰어나다는 점이었죠. 더불어 그는 호기심도 많았어요. 사물에 대한 강한 호기심을 바탕으로 사물을 소재로 그림도 그렸지요. 몇 시간씩 그림을 그리는 파스퇴르의 관찰력과 끈기를 눈여겨본 교장 선생님은 과학과 문학, 예술 과목의 교사를 양성하는 파리의 에콜 노르말 학교에 들어가 선생님이 되라고 조언해줬어요. 삶의 목표가 생긴 그는 열정적으로 공부했고, 결국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시험에 통과했죠.

파스퇴르는 사물에 대한 왕성한 호기심과 끊임없는 탐구 정신으로, 미생물학의 기초를 다지는 큰 업적을 남겼어요.
▲ 파스퇴르는 사물에 대한 왕성한 호기심과 끊임없는 탐구 정신으로, 미생물학의 기초를 다지는 큰 업적을 남겼어요. /Corbis/토픽이미지
에콜 노르말에 입학한 파스퇴르는 과학 선생님이 되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어요. 그는 과학 분야 중 특히 화학을 좋아했는데, 새로운 화학 가설을 실험으로 증명하는 것만큼 뿌듯한 일은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날마다 실험하고 그 결과를 완벽하게 기록했는데, 그런 완벽에 가까운 꼼꼼함은 실험에 대한 성공률을 더욱 높였죠.

도서관과 실험실을 오가며 열심히 공부하는 파스퇴르의 성실한 모습은 담당 교수 발라르의 눈에 띄었죠. 발라르는 파스퇴르를 자신의 조교로 추천했고, 덕분에 졸업 후에도 학교에 남아서 박사 학위를 딸 수 있었습니다. 이후 그는 서른두 살의 나이로 릴 대학의 교수가 됐습니다. 그리고 과학이 실생활에 활용될 수 있는 연구를 많이 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파스퇴르의 큰딸 잔이 아홉 살 때, 장티푸스란 전염병에 걸려 죽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어요. 파스퇴르는 딸의 목숨을 앗아간 전염병의 병원균이 공기 중에 떠돌아다니는 미생물일 것이라고 생각했죠. 당시 프랑스의 과학자들은 생명체가 무생물에서 만들어진다는 자연발생설을 주장했죠. 하지만 그는 미생물이 자연적으로 생긴다는 것에 동의할 수 없었어요. 연구를 통해 미생물은 자연적으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공기 중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또한 질병과 미생물을 최초로 명확하게 연결해 전염병의 원인이 병원성 미생물이라는 학설도 완성했죠.

그의 연구들은 널리 인정받았고, 당시 프랑스 왕이었던 나폴레옹 3세의 권유로 프랑스의 대표적인 수출품인 포도주가 상하는 원인과 방지법을 연구하게 됐죠. 그리고 오랜 연구 끝에 포도주를 섭씨 60~65℃의 저온에서 몇 분 동안 끓여 박테리아를 박멸하는 '저온 살균법'을 처음으로 알아냈습니다. 그는 저온 살균법을 특허로 내, 큰돈을 벌 수도 있었지만 모든 국민이 사용할 수 있도록 했죠.

마흔다섯 살이 된 파스퇴르는 뇌졸중에 걸려 한쪽 팔다리를 자유롭게 쓸 수 없게 됐지만, 그런 와중에도 연구에 대한 열정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가축이 잘 걸리는 전염병인 탄저병과 콜레라에 대해 연구해 예방접종법을 개발하는 등 질병 치료 연구에 앞장섰지요.

파스퇴르가 전염병의 위험에서 인류를 구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그가 머리가 좋았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끊임없는 호기심과 실패에도 좌절하지 않는 인내심 등이 뒷받침된 덕분이었습니다.
[1분 상식] 파스퇴르 연구소에서는 무얼 하나요?
파스퇴르 연구소는 많은 업적을 남긴 파스퇴르를 위해 프랑스와 전 세계에서 모은 기부금으로 1888년에 세워진 연구소입니다. 매년 예산의 30% 이상이 기부금으로 조성될 정도로 파스퇴르의 업적은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고 있죠. 또한 파스퇴르 연구소는 파스퇴르의 정신을 이어받아 전염성 질환을 예방하는 백신과 치료제 개발에 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메치니코프, 자코브 등 노벨상 수상자를 여럿 배출하는 등 세계 최고의 연구소가 됐답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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