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와 괴짜들의 일본 과학사/ 고토 히데키/ 부키
2016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오스미 요시노리, 일본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 유카와 히데키, 일본 현대 물리학의 아버지 니시나 요시오.(왼쪽부터)
지난 3일 오스미 요시노리 도쿄공업대 명예교수가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 단독 수상자로 선정됐다. 이로써 일본의 노벨상 수상자는 25명으로 늘어났으며, 이 중 과학분야 수상자는 22명이 됐다.
일본에 처음 노벨상을 안긴 인물은 유카와 히데키로 1949년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이후 과학상 분야에서 1965년 도모나가 신이치로, 1973년 에사키 레오나(이상 물리학상), 1981년 후쿠이 겐이치(화학상), 1987년 도네가와 스스무(생리의학상)가 수상을 이어갔고, 2000년대 들어서는 거의 해마다 수상자를 내고 있다.
노벨상 시즌만 되면 일본과 한국을 비교하는 목소리가 부쩍 높아진다. 일본 과학계의 선전을 보면서 한국인들은 “일본은 되는데 왜 한국은 안 되는가?” 묻는다. ‘천재와 괴짜들의 일본 과학사’는 바로 이 질문에 답해준다. 일본이 1854년 개국하고 나서 후쿠자와 유키치가 과학 보급에 나선 이래 2012년 야마나카 신야가 16번째로 과학 분야 노벨상을 받기까지 150여년의 일본 과학사를 주요 과학자들 중심으로 조명했다. 책에 등장하는 과학자들 중 상당수는 노벨상을 수상했다.
일본 과학은 개국 시기의 국가 전략으로 출발했다. 대단한 것은 집중력이었다. 저자는 “일본은 얼마 되지 않는 외화를 쏟아부으며 목숨을 걸고 서양을 배우고자 했다”면서 “그러한 태도는 중국이나 조선 등 여타 동아시아 국가와는 대조적이었다”고 평가했다.
일본은 어떻게 그렇게 과감하게 동양적인 유산과 결별하고 서양을 빠르게 흡수할 수 있었을까? 우선 산업을 일으켜 국력을 키우고자 하는 욕구가 컸고, 서양에 맞서 독립을 지키려는 군사적 목적이 절실했다. 또 “중국과 조선의 왕조는 유교에 속박되었지만 일본의 무사는 전쟁을 유리하게 하는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판단력을 익히고 있었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일본의 과학자들 대부분은 사무라이 계급 출신들이었다.
일본은 1871년 이와쿠라 견구사절단을 시작으로 유학생들을 서양으로 파견해 세계적인 과학자들과 교류하며 학문적 네트워크를 만들어 왔다. 일본의 유학생들은 세계 최고의 대학과 연구소에 들어가서 볼츠만, 닐스 보어, 아인슈타인, 오펜하이머, 파인만, 하이젠베르크 등 석학들과 교류했고, 그 경험들을 가지고 일본으로 돌아왔다.
일본의 세균학자 기타사토 시바사부로가 1901년 제1회 노벨상의 가장 유력한 후보였다는 얘기 등 흥미로운 뒷얘기들도 많다. 1회 노벨상(생리의학상) 수상자는 베링으로 결정됐지만, 수상 이유가 된 디프테리아 연구에서는 기타사토가 우위에 있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호르몬의 첫 발견자인 다카미네 조키치 역시 노벨상을 받기에 충분한 업적이었다. 그는 “일본인의 폐단은 성공을 너무 서둘러 금방 응용 쪽을 개척해 결과를 얻고자 한다는 점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화학 연구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순수 이화학의 연구 기초를 다져야 합니다”라며 현재 일본 노벨상 수상의 산실이 된 이화학연구소(RIKEN) 설립을 주도했다.
일본 과학은 국가 지도자들의 의지에서 출발해 150여년의 역사를 쌓아 노벨상에 도달한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일본 과학자들이 보여준 도전, 고뇌, 야심, 선택, 성취 등은 인상적인 것이었다. 그들은 서양의 무시 속에서, 전쟁의 광풍과 전후의 폐허 속에서, 또 원자력과 지진 참사 속에서 고뇌하고, 때론 저항하고 때론 협력하면서 세계 최고의 연구 성과를 일궈냈다. 일본 과학의 약진은 우리가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빨랐고 또 훨씬 높았다.
이 책은 2014년 에세이스트 클럽상 수상작이다. 과학사를 다룬 책으로서는 지나치게 재미있다. 연대기적 설명 방식을 버리고 일본 과학사의 가장 빛나는 순간들에 초점을 맞춘 후 당시 과학자들의 분투와 일본의 사회상, 세계 과학계의 상황 등을 교직해 드라마처럼 보여준다. 독자들은 일본 과학사의 전개 과정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한편, 왜 일본이 세계 최고의 과학국가가 됐는지 그 이유와 저력을 가늠할 수 있게 된다.
일본에 처음 노벨상을 안긴 인물은 유카와 히데키로 1949년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이후 과학상 분야에서 1965년 도모나가 신이치로, 1973년 에사키 레오나(이상 물리학상), 1981년 후쿠이 겐이치(화학상), 1987년 도네가와 스스무(생리의학상)가 수상을 이어갔고, 2000년대 들어서는 거의 해마다 수상자를 내고 있다.
노벨상 시즌만 되면 일본과 한국을 비교하는 목소리가 부쩍 높아진다. 일본 과학계의 선전을 보면서 한국인들은 “일본은 되는데 왜 한국은 안 되는가?” 묻는다. ‘천재와 괴짜들의 일본 과학사’는 바로 이 질문에 답해준다. 일본이 1854년 개국하고 나서 후쿠자와 유키치가 과학 보급에 나선 이래 2012년 야마나카 신야가 16번째로 과학 분야 노벨상을 받기까지 150여년의 일본 과학사를 주요 과학자들 중심으로 조명했다. 책에 등장하는 과학자들 중 상당수는 노벨상을 수상했다.
일본 과학은 개국 시기의 국가 전략으로 출발했다. 대단한 것은 집중력이었다. 저자는 “일본은 얼마 되지 않는 외화를 쏟아부으며 목숨을 걸고 서양을 배우고자 했다”면서 “그러한 태도는 중국이나 조선 등 여타 동아시아 국가와는 대조적이었다”고 평가했다.
일본은 어떻게 그렇게 과감하게 동양적인 유산과 결별하고 서양을 빠르게 흡수할 수 있었을까? 우선 산업을 일으켜 국력을 키우고자 하는 욕구가 컸고, 서양에 맞서 독립을 지키려는 군사적 목적이 절실했다. 또 “중국과 조선의 왕조는 유교에 속박되었지만 일본의 무사는 전쟁을 유리하게 하는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판단력을 익히고 있었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일본의 과학자들 대부분은 사무라이 계급 출신들이었다.
일본은 1871년 이와쿠라 견구사절단을 시작으로 유학생들을 서양으로 파견해 세계적인 과학자들과 교류하며 학문적 네트워크를 만들어 왔다. 일본의 유학생들은 세계 최고의 대학과 연구소에 들어가서 볼츠만, 닐스 보어, 아인슈타인, 오펜하이머, 파인만, 하이젠베르크 등 석학들과 교류했고, 그 경험들을 가지고 일본으로 돌아왔다.
일본의 세균학자 기타사토 시바사부로가 1901년 제1회 노벨상의 가장 유력한 후보였다는 얘기 등 흥미로운 뒷얘기들도 많다. 1회 노벨상(생리의학상) 수상자는 베링으로 결정됐지만, 수상 이유가 된 디프테리아 연구에서는 기타사토가 우위에 있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호르몬의 첫 발견자인 다카미네 조키치 역시 노벨상을 받기에 충분한 업적이었다. 그는 “일본인의 폐단은 성공을 너무 서둘러 금방 응용 쪽을 개척해 결과를 얻고자 한다는 점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화학 연구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순수 이화학의 연구 기초를 다져야 합니다”라며 현재 일본 노벨상 수상의 산실이 된 이화학연구소(RIKEN) 설립을 주도했다.
일본 과학은 국가 지도자들의 의지에서 출발해 150여년의 역사를 쌓아 노벨상에 도달한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일본 과학자들이 보여준 도전, 고뇌, 야심, 선택, 성취 등은 인상적인 것이었다. 그들은 서양의 무시 속에서, 전쟁의 광풍과 전후의 폐허 속에서, 또 원자력과 지진 참사 속에서 고뇌하고, 때론 저항하고 때론 협력하면서 세계 최고의 연구 성과를 일궈냈다. 일본 과학의 약진은 우리가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빨랐고 또 훨씬 높았다.
이 책은 2014년 에세이스트 클럽상 수상작이다. 과학사를 다룬 책으로서는 지나치게 재미있다. 연대기적 설명 방식을 버리고 일본 과학사의 가장 빛나는 순간들에 초점을 맞춘 후 당시 과학자들의 분투와 일본의 사회상, 세계 과학계의 상황 등을 교직해 드라마처럼 보여준다. 독자들은 일본 과학사의 전개 과정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한편, 왜 일본이 세계 최고의 과학국가가 됐는지 그 이유와 저력을 가늠할 수 있게 된다.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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