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 3일 월요일

받는 나라만 받는 노벨상, 그 이유는 젊은 과학자

노벨상 115년 미·영·독 70% 독점하고
이스라엘 새로 진입하는 데 25년 걸려

“과학도 적대적 문화자본이기 때문”그래도 노벨상은 ‘흙수저’에게 희망
한국 받으려면 젊은이에게 투자해야
“연구 이단아 배제 말고 지원을”

120년 전 스웨덴의 부호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장에서 시작된 노벨상은 과학 분야에서 1901년부터 지난해까지 115년 동안 583명의 수상자를 배출했다. 100년째인 2000년까지 노벨 과학상은 미국(199명·42.4%), 영국(70명·14.9%), 독일(61명·13.0%) 등 3개국이 전체의 70.3%를 차지했다. 최근 들어 독식 현상은 더욱 심해졌다. 2001~2015년 동안 미국의 비중은 51.8%로 급증했다. 전체 기간에서도 미국은 42.4%에서 44.3%로 늘어났다. 지금까지 노벨상을 배출한 국가는 28개국이다. 2004년 이스라엘이 1979년 마지막으로 수상자를 배출한 파키스탄 이래 25년 만에 ‘노벨클럽’에 신규 회원이 됐다.
‘마태효과’ 심해지는 노벨과학상
노벨 과학상의 집중 현상은 국가만이 아니라 개별 연구기관에도 적용된다. 미국 하버드대(20명), 캘리포니아공대(16명), 스탠퍼드대(16명)는 다섯번째로 노벨상을 많이 배출한 국가인 러시아(15명)보다도 많다. 미국 컬럼비아대의 과학사회학자 로버트 킹 머튼은 이런 현상을 두고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라는 성경 마태복음의 구절에 빗대 ‘마태효과’라 불렀다.
승자독식 구조는 노벨상 후보자의 선정 방식에서도 기인했다. 노벨상은 세계의 수백~수천 명의 관련 분야 전문가들의 추천을 받아 스웨덴 왕립과학원(물리·화학상)과 카롤린스카 의대(생리·의학상) 노벨위원회가 최종 수상자를 선정한다. 하지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건 기존 노벨상 수상자들의 추천이다. 1972년까지 미국 노벨상 수상자 92명 가운데 48명이 노벨상 수상자를 스승이나 선배로 뒀다. 이들 48명은 모두 71명의 수상자 스승 밑에서 연구했다. 스승과 제자 계보가 다섯 세대까지 연결된 경우까지 있다. 임경순 포항공대 과학문화연구센터장(인문사회학부 교수)은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과학을 문화적 자본의 하나로 봤다. 자본이 적대적 경쟁을 통해 무한히 확대 재생산하듯이 과학도 자신이 가진 과학적 성과를 다른 사람들과 철저히 구별하고 특정 분야·집단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노벨 과학상이 특정 국가나 기관에 쏠리는 현상도 이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노벨이 유언장에 “후보자의 국적을 일절 고려해서는 안 된다. 스칸디나비아 사람이건 아니건 관계없이 가장 적합한 인물이 수상해야 한다”고 적시하고 노벨위원회가 그의 ‘특별한 당부’를 지켜내 그나마 노벨상의 권위가 유지된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선영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지난달 27일 대전 한국연구재단에서 열린 ‘노벨과학상 정책토론회’에서 “노벨 과학상은 패러다임을 바꾸거나 지식의 외연을 확대한 업적, 곧 영향력과 파괴력이 큰 ‘딥 임팩트’(deep impact) 한 성과에 대해 수여함으로써 명성을 쌓아왔다”고 말했다.
노벨 과학상의 집중 현상은 국가만이 아니라 개별 연구기관에도 적용된다. 노벨상 시상식 장면.  노벨위원회 제공
노벨 과학상의 집중 현상은 국가만이 아니라 개별 연구기관에도 적용된다. 노벨상 시상식 장면. 노벨위원회 제공
노벨상이 과학의 주류에 안주했던 것만은 아니다. 모욕과 인내를 견딘 외로운 ‘흙수저’들한테도 기회가 열려 있음을 보임으로써 대중적 지지도 받았다. 1997년 생리의학상을 받은 스탠리 프루지너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 교수는 1982년 10년 연구 끝에 단백질이 감염원이 될 수 있고 또 증폭될 수 있다는 ‘프리온 가설’을 내놓았지만 학계에서는 상당 기간 황당한 이론으로 취급했다. 노벨상을 받은 뒤에도 <네이처>에 수상 자격 여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논문이 실릴 정도로 논쟁거리였지만, 지금은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1983년 81살에 상을 받은 바버라 매클린톡은 1951년 옥수수 연구를 통해 ‘움직이는 유전자(유전자 점핑) 개념’을 발표했다 모욕을 당한 뒤 은둔생활을 하며 홀로 연구를 계속했다. 20년이 지나 박테리아·이스트 등에서 유전자 점핑이 발견되고 나서 인정을 받았다. 가장 최근으로는 2011년 준결정 발견으로 화학상을 받은 단 셰흐트만이 있다. 그는 준결정 발견 당시 미국 화학계의 거장 라이너스 폴링이 “준결정은 없고 가짜 과학자들이 있을 따름”이라고 할 정도로 학계에서 홀대를 당했지만 뒷날 화학의 패러다임을 바꾼 업적으로 평가받았다.
노벨상에는 이들처럼 젊은 시절 이단아로 취급받으면서도 묵묵히 연구한 뒤 수상하는 사례들이 적지 않다. 노벨상을 받는 패턴을 평균적으로 일반화하면, 30살 이전에 박사학위를 마치고 연구를 시작해 40살께 연구를 완성하고 미국 국립과학원(NAS) 회원이 돼 50대 중반께 연구 성과가 학계의 주목을 받으며 울프상·래스커상 등을 받은 뒤 50대 후반에 상을 받게 된다. 지난달 한국연구재단 조사에서 가장 노벨상에 근접한 국내 연구자로 꼽힌 김빛내리(47)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기초과학연구원 단장)의 경우를 보면, 29살에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생화학 박사 학위를 받고 33살인 2002년 마이크로아르엔에이(microRNA)의 생성에 대한 새로운 이론을 제시했으며 지난해 미국 국립과학원 회원이 됐다. 로레알 유네스코 세계 여성과학자상, 호암 의학상 등은 받았지만 ‘프리 노벨상’이라 할 만한 상은 받지 못했다.
“35살 이하 연구비 지원 10% 안돼”
과학계 일각에서는 “노벨상이 목표일 수도 없고 목표일 필요도 없다”는 의견이 나온다. 그럼에도 우리나라가 노벨상을 받을 만한 연구 성과를 내려면 젊은 과학자들한테 더 많은 지원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김선영 교수는 “노벨상 업적이 40살 이후 연구에서 나오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 노벨상 진입장벽을 뛰어넘으려면 젊은 과학자들한테 파격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현실은 반대다. 35살 이하 연구원이 25%인데 연구비 지원은 10%도 안 된다”고 말했다. 박배호 건국대 물리학과 교수는 “세계수준연구중심대학(WCU) 프로그램으로 한국에 왔던 스웨덴 노벨위원회 위원 출신 교수가 ‘한 나라의 과학기술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는 유명한 과학자들을 유치하는 것보다 젊은 과학자를 양성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한 말에 귀 기울여야 한다. 박사후과정(포닥) 등 연구생태계를 조성해주는 게 급선무다”라고 말했다. 현택환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교수(기초과학연구원 단장)는 “신규 임용 교수에게 주는 초기 정착금이 너무 적어 심지어 은행에 융자를 받으러 다니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박문정 포항공대 화학과 교수는 “같은 연배의 일본 교수들이 연구비를 걱정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우리나라 교수들은 연구비를 받기 위한 제안서를 쓰는 데 열정을 허비한다”고 지적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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