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 30일 월요일

나는 한때 '영재'였다…스무살 대학생의 후회


나는 한때 ‘영재’였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모두가 그렇게 불렀다. 영재 판정을 받은 2007년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8년간 죽 그랬다. 호기심 삼아 몇 차례 시험을 봤다가 영재가 됐다. 부모님은 영재인 딸을 자랑스러워했고, 주변에서는 명문대 진학을 보장받았다고 부러워했다.

중학교 때까지 ‘영재학급’에서 일주일에 3∼4시간씩 다른 수업에선 접할 수 없는 것들을 배웠다. 특히 2차 세계대전 당시 쓰인 암호를 해석하는 데에 실력이 있었다. 복잡한 암호를 풀어냈을 때 느껴지는 성취감이란…. 학교 수학시험을 잘 봤을 때와 차원이 달랐다.

거기서 그쳤어야 했다. 영재 학생이라면 당연히 밟아야 한다는 경로를 따라간 게 화근이었다. 고교 진학 후 교육청이 운영하는 영재교육반에 ‘화학 영재’로 들어갔다. 매주 토요일 7시간씩 수강하는 수업은 지루했다. 선생님이 “영재가 이런 것도 모르니?”라고 타박할 때마다 숨이 턱 막혔다. 집에서, 학교에서 “완벽해야 한다”, “하나라도 틀려서는 안 된다”는 얘기를 들었다. 10문제 중 1문제라도 못 맞히면 주위에서 호들갑을 떨었다. 난 분명히 화학 영재인데도, 모든 과목을 다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컸다.

재미도 없고 귀에도 안 들어오는 수업에 당장이라도 포기하고 싶었다. 같은 반 20명가량의 친구 대부분 비슷한 생각이었다. 그러나 단 한 명도 그만두지 않았다. ‘낙오자’나 ‘중도포기자’로 낙인찍혀 불이익을 받을까 봐서였다. 물론 ‘대학 입시에 도움이 되겠지’라고 기대했던 것이 솔직한 마음이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초조해졌다. ‘영재란 대체 뭘까’라고 자주 고민했다.

정말 나는 영재일까. 한때 영재였을까. ‘실패한 영재’임은 분명하다. 한국 사회에선 아무리 뛰어난 영재라도 좋은 대학 간판을 달지 못하면 낙오자가 되고 만다. 대학 입시에서 두 차례나 쓴잔을 마셨다. 첫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망치고 재수생으로 치른 수능에서도 영재의 성적표라고 보기 힘든 성적을 받았다. 결국 점수에 맞춰 별로 알아주지 않는 지금의 대학에 입학했다. 대학에 화학과가 없어 전혀 엉뚱한 전공을 택해야 한다.

나는 대입을 거치면서 아주 평범한 대학생이 되었다. 한 친구는 “요즘 같은 세상에 그 대학 나와 미래가 있겠냐”는 말까지 했다. 그 후로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는 원인 모를 피부질환까지 생겼다.

돌이켜 보니 영재로 선발되지 않았더라면 겪지 않아도 될 고통이 너무 컸다. 비단 나뿐일까.

그의 질문처럼 과연 이수민(20·여·가명)씨만의 문제일까.

우리나라 영재교육에서 정의하는 영재는 ‘재능이 뛰어난 사람으로서 타고난 잠재력을 계발하기 위해 특별한 교육이 필요한 사람’이다. 언뜻 모순된 것처럼 보이는 ‘발현된 능력(재능)’과 ‘발현되지 않은 능력(잠재력)’을 섞어놓았다. 현재 영재교육을 받고 있는 청소년들이 겪고 있고, 그 대열에 들어가려고 일찍부터 사교육시장에 발을 담근 어린이들이 겪을 혼란과 고충은 이 모순으로부터 시작된다.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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