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재교육 정책 40년 변천사 / 1978년 국가 주도로 첫 연구 본격화 / 1983년 국내 최초 ‘경기과학고’ 설립 / “입시에 유리” 소문에 전국 각지 확산 / 진보정권 들어서며 대상자 3배 확대 / 보수정권선 투자·관심 뒷전으로 위축 / 소외계층 맞춤형 지원 사업 / “국가적 인재 양성 취지 퇴색” 지적도
영재교육이 안고 있는 근본적 딜레마다. 소수 학생을 위해 막대한 국가 예산을 투입하는 것을 두고 국가와 개인의 관계, 교육에 대한 가치관에 따라 시각차가 있는 건 당연하다. 40년 전 영재교육이 도입된 이래 교육의 중점 방향이 민주주의와 엘리트, 개인과 국가라는 양극단을 출렁이며 오간 이유다. 이 과정에서 ‘우리 아이들의 건강한 삶과 미래’라는 교육의 핵심 목표를 어떻게 구현할지는 소홀하게 취급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1970년대 태동, 1990년대 본격화
30일 교육부 등에 따르면 국내 영재교육의 태동은 박정희정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가 주도의 경제성장 과정에서 ‘엘리트주의’가 극에 달한 시절이었다. 1978년 문교부가 한국교육개발원에 ‘교육발전의 전망과 과제’ 연구용역을 준 것을 기점으로 관련 연구가 본격화했고 마침내 1983년 1월 국내 첫 과학영재교육기관인 경기과학고를 설립했다. 이때만 해도 영재교육은 ‘과학·수학 인재 배출’이란 협소한 개념으로 이해됐다.
과학고에 뛰어난 학생이 몰리면서 ‘입시에 좋다’는 입소문을 탔고 수요가 늘자 민주화 이후인 1990년대 전국 각지에 과학고가 우후죽순 설립됐다. 당시 사회상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 이른바 ‘특수목적고 집단 자퇴사건’이다. 서울대가 “1999학년도 입시부터 비교내신제를 폐지하겠다”고 발표하자 전국 과학고 학부모들이 대규모 항의집회를 열고 학생들은 등교를 거부하거나 자퇴했다. 우수한 학생이 몰려 있는 과학고에 다니는 것이 내신에 불리하게 작용해 입시에서 불이익을 볼까봐 염려해서다.
결과적으로 이 사건은 영재교육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기점이 됐다. 1995년 교육개혁위원회는 ‘영재교육 강화의 내용이 포함된 보고서’에서 과학고의 입시 위주 운영을 감안해 정규학교 내 과학 영재교육과 발굴, 영재교육기관 설립 등을 제안했다. 이를 토대로 2000년 국회는 영재학교 설치와 운영 등을 골자로 한 ‘영재교육진흥법’을 제정했다. 부산과학고가 2001년 ‘과학영재학교’로 간판을 바꿔 달고 2003년 전국에서 신입생 144명을 받아 개교한 것이 시초다.
진보정권이 들어선 뒤로는 영재교육 역시 ‘민주화’, ‘대중화’라는 큰 흐름을 탔다. 노무현정부 첫해인 2003년 1만9974명(전체 학생 대비 0.25%)이었던 영재교육 대상자는 ‘제1차 영재교육 진흥종합계획’(2003∼2007)을 거치며 2008년 5만8346명(0.77%)으로 3배가량 늘었다. 영재교육을 일종의 대중교육처럼 운영한 결과였다. 이런 추세는 이명박정부에서도 그대로 이어져 대상자 수는 2011년 처음 10만명을 넘겼다. ‘3차 종합계획’의 마지막 해인 지난해에는 10만9266명(1.91%)으로 집계됐다. 보수정권이 진보정권의 정책 흐름을 이어받아 영재교육 대상자를 늘린 건 당시 정부가 영재교육과 관련해 일 수 있는 ‘특혜’ 논란을 의식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애초 우리 영재교육이 상위 3% 정도에게 영재교육을 집중하는 이스라엘식 모델과 상위 15∼20%까지 기회를 주는 미국식 모델의 중간 지점을 목표로 했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다. 각급 학교에서 방과후로 운영되는 영재학급이 대폭 늘고 지원 연령도 낮아진 배경이다.
그러나 영재교육의 양적 확대는 자연스레 영재교육 교원의 역량과 수업의 질을 둘러싸고 잡음을 낳았다. 또 시험과 성적 중심의 선발과정이 사교육을 조장한다는 비판도 컸다.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엔 다른 모든 분야와 마찬가지로 영재교육에도 ‘창조교육’ 바람이 불었다. 이 시기에 담임교사가 학생들의 창의성을 관찰해 추천하는 ‘교사 관찰추천제’가 전국적으로 확대됐다. 이와 함께 2015년 세종과학예술영재학교와 이듬해 인천과학예술영재학교가 개교되는 등 예술분야 영재교육도 본격화했다.
영재교육의 ‘위기’가 공공연하게 거론된 건 만3∼5세 누리과정과 무상급식 공약 등 정치 쟁점화한 교육 관련 이슈들의 영향과 무관치 않다. 상대적으로 영재교육에 대한 투자와 관심이 뒷전으로 밀렸기 때문이다.
문재인정부 들어 지난 3월 발표된 ‘4차 종합계획’(2018∼2022)에서는 소외계층에 대한 배려가 눈에 띈다. 정부는 ‘희망하는 모든 학생에게 영재교육 기회를 제공한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소외계층 맞춤형 영재교육 지원사업이 시·도별로 도입되고 있다. 또 수학·과학 분야 이외의 예술 및 인문사회 분야의 영재교육도 활성화시켜 지난해 22.7%였던 수학·과학 제외 영재 비율을 2022년 25%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방침이다. ‘평등교육’과 ‘교육복지’를 강조하는 기조가 그대로 이어진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갈팡질팡하는 영재교육을 두고 우려도 제기된다. 애초 영재교육의 취지와 점점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14년간 영재교육을 담당했다는 한 교사는 “다양한 학생을 발굴하고 부족한 학생을 끌어올리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미래 신성장 동력을 창출할 소수 엘리트 교육을 강화하는 것도 정부가 신경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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