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스에서 벤자민 프랭클린까지
어떤 힘(중력)이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게 하고, 달이 지구 둘레를 돌게 한다는 생각은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시대가 돼서야 등장했다. 고대 그리스에서 자연철학이 등장한 지 2000년이 지난 뒤였다.
중력과 달리 전자기력은 아주 오래전부터 알려져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철학의 아버지’라 부른 탈레스도 양털에 문지른 호박이 머리카락처럼 가벼운 물체를 잡아당긴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호박이 없어도 흔한 플라스틱 책받침만 있으면 전기력을 눈으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마른 헝겊이나 옷에 여러 번 문지른 책받침을 머리 위에 가까이 대면 머리카락이전기력 때문에 곤두선다.
이렇게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는 전기력을 만들어 내는 근원이 바로 오늘의 주인공 전하다. 1600년 무렵부터 전하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영국의 물리학자이자 의사였던 윌리엄 길버트는 전기를 의미하는 라틴어 단어 일렉트리쿠스(‘electricus’)를 처음 사용했다. 흥미롭게도 이 단어는 그리스어로 호박을 뜻한다. 전기(electricity)의 어원이 탈레스의 호박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셈이다.
호박을 양털에 문지를 때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내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프랑스의 화학자 찰스 듀페이는 양털에 문지른 호박이 갖는 전기와 비단에 비벼댄 유리가 갖는 전기가 서로 다름을 관찰해, 서로 다른 두 종류의 전기가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듀페이는 두 전기가 질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했고 호박과 같은 수지에 생기는 전기를 수지전기, 유리에 생기는 전기를 유리전기라 불렀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 한 명인 벤자민 프랭클린은 두 가지 전기가 질적으로 다르지 않고 양적인 차이, 즉 전기 전하가 더 많고 적음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아차렸다. 프랭클린은 호박을 양털에 문지르면 호박의 전하가 양털로 옮겨가 호박이 음의 전기를 띠게 되고, 유리를 비단에 비비면 이번엔 비단의 전하가 유리로 전해져 유리가 양의 전기를 띤다고 설명했다.
톰슨의 전자
호박이 띠는 전기를 음으로, 유리가 띠는 전기를 양으로 부르는 건 습관에 불과하다. 전자의 전하량을 음으로 정한 것도 그저 우연이었다. 거꾸로 전자의 전하량을 양으로 바꿔도 물리학은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 전자는 금속에서 전류를 흘려주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전류의 방향은 양의 전하가 움직이는 방향으로 약속돼 있어 우리를 혼란스럽게 한다. 물리학 교수인 필자마저 가끔 헷갈릴 정도다. 전류가 도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흐른다는 이야기는 사실 전자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뜻이다. 뿐만 아니라 교과서에 따라 전자의 전하량을 그냥 e로 적기도 하고(e<0), -e로 적기도 해 혼란스럽다(e>0). 모든 게 프랭클린 때문이다. 프랭클린이 전자의 전하량을 양으로 정했다면 참 좋았겠다는 생각을 가끔 해본다.
전류는 공간에 자기장을 만들어 내고, 자기장이 변하면 전류가 흐른다. 맥스웰 방정식(8월호 상수의 탄생 참조)에 따르면 전기와 자기를 하나의 틀로 이해할수 있기 때문에 현대 물리학에서는 전기력과 자기력을 합해 전자기력이라 부른다. 로렌츠의 힘(F=q(E+υ×B), υ는 속도)을 이용하면 전하(q)가 전기장(E)과 자기장(B) 안에서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알 수 있다. 이를 뉴턴의 운동방정식(F=ma)으로 풀어보면, 자기장안에서 일정한 속력으로 움직이는 전자는 자기력을 받아 자기장 방향에 수직인 면 위에서 원운동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국의 물리학자 조지프 존 톰슨 경은 이를 이용해 자기장에 의해 둥근 모양의 방전 불빛을 보이는 음극선을 관찰했고, 전자의 질량과 전하량의 비(m/)를 성공적으로 측정했다. 자기장 속에서 전자가 휘는 정도를 보면 m/를 구할 수 있다. 필자가 대학생일 때 같은 실험을 통해 전자의 질량과 전하량의 비를 구했던 기억이 난다. 불 꺼진 실험실에서 희미하게 빛나던 전자의 방전 불빛은 정말 예뻤다. 그리고 우리가 물리학을 이용해 이토록 작은 입자의 질량과 전하량을 구하고 이야기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경이롭게 느껴졌다.
전자의 전하량과 관련된 실험이 하나 더 있다. 미국의 물리학자 로버트 앤드루스 밀리컨의 기름방울 실험이다. 밀리컨은 전하를 띠고 있는 기름방울에 작용하는 중력, 걸어준 전기장에 의한 전기력 그리고 움직이는 기름방울에 작용하는 공기의 저항력을 모두 고려해 기름방울의 전하량을 측정했다. 기름방울 여럿의 전하량을 재보면 항상 어떤 값의 정수배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밀리컨은 이를 통해 전자의 기본 전하량 e를 계산해냈다.
필자는 밀리컨의 실험도 따라 해봤다. 눈에 보이는 그 많은 기름방울 중 하나의 속도를 재는 일은 정말 어려웠다. 밀리컨의 성공비결이 ‘좋은 시력’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현재 물리학에서 정하고 있는 전자의 전하량(e)은 -1.602176565(35)×10-19C(쿨롱)이다.
원자, 원자핵, 그리고 전자
톰슨은 원자가 건포도가 든 맛있는 크리스마스 푸딩처럼 생겼다고 생각했다. 널리 퍼진 양전하(푸딩) 사이사이에 전자(건포도)가 송송 박혀있는 모형이었다. 1911년 영국의 물리학자 에른스트 러더퍼드는 알파입자(헬륨 핵) 산란 실험을 통해 원자가 톰슨의 생각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을 보였다. 양의 전하가 원자내부의 아주 작디작은 영역 안에 조밀하게 모여 있다는 사실을 밝힌 것이다. 러더퍼드의 원자모형에서 원자핵의 지름은 약 10-15m, 원자의 지름은 약 10-10m에 불과하다.
비유하자면 이렇다. 원자핵을 잠실야구장에 놓인 지름이 10cm정도의 야구공으로 생각하면 원자 주변의 전자는 야구장에서 10km정도 떨어진 서울 시청쯤에 있는 셈이다. 잠실에 있는 야구공 하나와 시청쯤에 멀찍이 떨어져 있는, 마치 점처럼 크기가 0인 전자 사이의 공간은 아무것도 없는 진공상태다. 이처럼 원자는 말 그대로 텅텅 비어있다. 그럼에도 왼손과 오른손이 서로를 뚫고 지나가지 않고 박수를 칠 수 있는 건 전자기력 때문이다. 전자로 둘러싸인 두 원자가 가까워지면 전자끼리 서로 밀치는 힘이 작용해 ‘찰싹’하는 소리가 난다. 텅텅 빈 원자로 이뤄진 손바닥으로 뜨거운 햇볕을 막아 그늘을 만들 수 있는 이유도 전자기적인 상호작용 때문이다. 원자를 이루는 전자들에 의해 전자기파의 일종인 가시광선(햇빛)이 산란돼 손바닥을 뚫고 똑바로 나아가지 못한다.
도대체 전자는 어떤 형태로 원자 내부에 자리잡고 있을까? 이야기의 결말은 결국 양자역학이 맺게 된다.
동아사이언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