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 명문고 시대, 중1 엄마들 마음은?
입시 경쟁에 조바심 특목고·자율고 못 가면 도태될까 욕심 생겨 평소 아이의 의견 들어야
중1 자녀를 둔 엄마들 사이에선 "청심환부터 한 알 먹고 성적표를 보라"는 농담 아닌 농담이 떠돈다. 아이의 실력을 처음 제대로(?) 알게 되는 중학교 첫 시험. 엄마들의 걱정은 태산 같다. "중1 성적으로 3년을 가늠해 보고 어느 학교에 보낼지, 무엇을 준비할지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특히 올해는 특목고, 자사고에 이어 수십 곳의 자율학교가 새로 문을 열기에 엄마들의 마음은 더욱 초조하다. '신(新) 명문고' 시대를 엄마들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임은정(이하 임): 특목고, 자율고가 늘어난다는 얘기에 엄마들은 더 초조해졌다. 이제 이런 학교에 못 가면 소위 '도태된 아이들'이라는 딱지가 붙는 형국이 되지 않았나. 엄마들은 아이를 '낙오자'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특목고, 자율고에 보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안순옥(이하 안): 본격적으로 입시 준비를 해야 하는 중학생이 되고 보니 성적이 가장 걱정이다. 과연 우리 아이가 기본기를 탄탄하게 다졌는가. 특히 국영수과사 주요과목은 고입, 대입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정말 걱정스럽다.
옥기숙(이하 옥): 아이 스스로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첫 성적을 받고 아이가 충격을 받지 않을까 걱정이다. 어떤 성적이 나오더라도 "네가 최선을 다해 받은 성적이라면 그게 최고다"라고 말해줄 계획이지만, 효과가 있을지 의문스럽다.
이지영(이하 이): 공부해야 할 과목이 확 늘어나 아이도, 나도 당황스럽다. 해야 할 게 너무 많으니까 마음이 절로 조급하다. 지난 겨울방학엔 중1 때부터 무얼 해야 할지 아이와 함께 정리해 보기도 했다.
옥: 국제중 열풍이질 않나. 지난해 '우리 아이 정도면 되겠지' 싶은 생각에 원서를 넣어봤다. 그런데 웬걸, 문턱이 너무 높았다. 국제중인데도 영재교육원 경력, 수학·과학 경시대회 실적을 요구했다. 그제야 어린 아이를 입시에 밀어넣은 게 후회가 됐다.
임: 국제중 보낼 생각이 없었는데, 학교 선생님의 권유를 받아 뒤늦게 준비를 시작했다. 그런데 아이가 "나는 과학공부를 하고 싶은데 왜 자꾸 국제중에 가라고 하느냐"고 볼멘소리를 하더라. 원서 넣기 직전, 교문 앞에서 아이한테 "정말 싫으냐"고 물었다. 아이가 울 것 같은 얼굴로 "싫다"고 하기에 그냥 돌아왔다.
안: 아이가 원해서 청심국제중에 보냈다. 처음엔 아이도 "몇 달 다녀보고 그만둘지 모른다"며 입학했는데, 지금은 잘 적응하고 학교를 무척 마음에 들어 한다. 수업의 70%가 수행평가로 이뤄지고, 토론식으로 진행되는 점이 좋다고 한다. 우수한 아이들끼리 모여 서로 경쟁하면서 성장하는 시너지 효과도 있다. 하지만 그만큼 내신관리 스트레스가 엄청나다. 내로라하는 아이들이 모였지만, 그 안에서도 1~102등은 나뉘기 마련이지 않나.
옥: 대원중에 원서를 넣으면서 그 모습을 봤다. 우수한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원서를 넣을 때부터 "안 돼도 괜찮다. 그 과정에서 네가 뭔가를 배우게 될 것이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가르쳤다.
임: 교육전문가들은 "아이를 기다려주라"고 말한다. 하지만 엄마들은 '기다리다가 늦으면 어쩌나' 싶어 초조하다. 중1부터 본격적으로 준비해야 특목고든 어디든 갈 수 있는데 언제까지나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지 않나.
이: 엄마가 넋 놓고 있을 수 없는 현실이다. 학원에서 아이를 '외고반'으로 분류하고, 특목고에 가려면 뭘 해야 하는지부터 알려준다. 그러면 자연스레 '외고'에 대한 관심과 욕심이 생긴다. '나는 입시 위주 교육은 안 시키겠다'고 다짐했었지만, 다른 아이들이 다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안 시킬 수가 없다.
옥: 힘들다고 하지만 어떤 때는 아이가 강한 승부욕을 보이곤 한다. 한번은 주말에 놀러 가자고 했더니 아이가 "수학학원은 못 빠진다"고 했다. 아이가 가겠다는데 엄마가 말릴 수도 없어서 헛웃음이 났다. 한편으로는 그 모습이 서글프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신, 수행평가, 학원 등에 쫓기면서 결국 책 읽을 시간도 없지 않은가.
이: 어느 학교에서 '수학 심화보충 수업'을 하는데 아이들이 죄다 존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학원에서 다 배우는 거지?"라면서 교사가 대충 가르친다고 했다. 사실 공교육에서 이런 수업이 잘만 이뤄지면 얼마나 좋겠는가?
임: 중학교에서 수준별 수업을 한다고 했을 때, 솔직히 우리 아이가 열반이면 어쩌나 걱정했다. 그런데 중간만 해도 '우반'에 들더라. 이렇게 반을 나눠서야 무슨 수준별 수업이 되나. 국가 지침이니까 그냥 형식만 갖추는 꼴 아닌가.
안: 그래도 '학교수업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은 변함없다. 아이가 학원 도움 없이 청심국제중에 합격한 것도 '학교수업' 덕분이다. 우리 아이는 수업시간에 졸리면 입술을 깨물어서라도 졸음을 참을 정도로 수업에 몰입했다. 청심국제중 합숙면접에 다녀오더니 "문제가 6학년 교과서에 다 있는 내용"이라고 했을 정도다.
옥: KMO를 하도 강조하기에 기출문제를 한번 봤다. 깜짝 놀랄 정도로 어려웠다. 영재교육원 시험도 마찬가지다. 과연 초등 3~4학년 아이가 학교 수업만 받고도 풀 수 있는 문제인가. 정말 수학을 좋아하는 특별한 아이들만 봐야 하는 시험에 보통 아이들이 전부 매달리는 형국이다. 특목중·고에서 가산점을 준다고 하니 그럴 수밖에 없다.
안: 청심국제중 숙제 때문에 아이와 애플사 CEO인 스티브 잡스의 연설문을 들었는데 정말 감동적이었다. 일반 학교에서도 이런 연설을 보여주는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지 않나. 진도 나가기에만 급급해 정작 중요한 교육을 놓친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책을 하나 읽어도 작가의 성장배경을 먼저 본다. 작가가 왜 이런 작품을 썼는지 깨닫게 하기 위해서다. 이런 교육방법이 정말 마음에 든다"고 하더라. 공교육에서도 수업방법을 조금만 창의적으로 바꾸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임: 이런 고민을 늘어놓으면 '엄마들이 변하면 되지 않느냐'는 따가운 질책을 듣곤 한다. 옳은 말이다. 하지만 이 사회 분위기는 엄마들이 변하지 못하게 한다. 아이가 안쓰럽고, 경제적 부담이 버겁지만 그래도 할 수밖에 없다.
이: 엄마가 1% 변하면 아이는 99% 변한다고 했다. 엄마가 아이를 정확하게 보고 이해해 주는 것이 치열한 경쟁 속에서 아이를 지킬 수 있는 첫 번째 방법이다. 엄마의 끝없는 욕심을 아이에게 강요하기보다 그 욕심을 하나씩 내려놓으려고 노력했으면 좋겠다.
임: 입시 전쟁 속에서 엄마가 얼마나 균형을 잘 잡는가가 중요하다. 선배 엄마들 말이, 묵묵히 잘하던 아이라도 언젠가 한번은 힘들다는 신호를 보내는데 엄마가 이것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아이의 말에 귀 기울여주는 엄마가 되는 것"이 요즘 엄마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닌가 생각한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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