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8월 28일 일요일

식물도 말하고, 싸우고, 생각합니다

세상과 소통하는 식물의 세계

사탕단풍나무, 곤충 공격 받으면 화학물질 보내 이웃에 '위험신호'
야생담배는 화학물질로 'SOS' 노린재 불러 애벌레 잡아먹게 해
파리지옥, 벌레가 닿는 횟수 기억… 그에 따라서 잎 닫고 소화효소 분비

흔히 움직일 수 없거나 제 기능을 못 하는 어떤 상태를 지칭해 '식물'이라는 말을 갖다 붙인다. 식물인간은 흔히 쓰이는 용어고 식물국회도 뉴스에서 종종 언급된다. 심지어 최근에는 연구를 하지 않는 과학자를 지칭해 '식물과학자'라는 표현도 쓰였다. 식물학자들의 항의로 정정됐지만 식물을 사랑하고, 연구하는 학자들은 불편한 마음을 감추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다. 정말 식물은 움직일 수 없는 무능(無能)의 존재일까.

우리는 식물을 너무 과소평가하고 있다. 최근 과학계에서는 식물의 지능과 커뮤니케이션, 감각에 대한 연구 결과들이 쏟아지고 있다.

동료에게 경계 신호 보내는 단풍나무
식물은 고립된 존재가 아니다. 화학물질이라는 언어를 사용해 다른 식물들과 대화한다. 이를 처음으로 밝힌 논문은 1983년 '사이언스'에 실렸다. 미국 다트머스대 연구진은 사탕단풍나무가 화학물질을 통해 이웃 나무들에게 위험을 알린다는 사실을 실험을 통해 증명했다.

곤충의 공격을 받은 나뭇잎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 유독성 페놀과 탄닌 성분을 만든다. 그런데 아직 공격을 받지 않은 이웃 나뭇잎에서도 같은 성분의 물질이 증가했다. 알아보니 공격받은 나뭇잎이 공기 중으로 휘발성 물질을 배출해 이웃 나뭇잎에게 앞으로 닥칠 위험에 대비하라는 신호를 전달했기 때문이었다. 이웃 덕에 손상되지 않은 잎은 미리 방어 물질을 합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무들이 화학물질로 의사소통한다는 사실이 소개되자 언론은 '나무가 말할 수 있음을 발견' '쉿! 작은 식물들이 큰 귀를 가졌다'고 대서특필(大書特筆)했다. 이후 식물은 여러 조건에서 다양한 향기를 뿜어내고 있으며 또한 그 향기 신호를 인식해서 필요한 정보를 습득한다는 사실이 여러 식물에서 확인됐다. 그 향기는 '초식동물에 의해서 유도되는 식물 휘발성 물질들(herbivore-induced plant volatiles)'이라는 긴 이름으로 통칭되어 불리고 있다.
용병(傭兵) 불러 해충 쫓는 담뱃잎
식물은 휘발성 물질을 포함해 2만 가지가 넘는 다양한 물질을 합성할 수 있는 화학 공장이다. 카페인·니코틴·캡사이신 등은 식물이 우리를 위해서 만들어내는 물질이 아니다. 초식동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 만들어내는 물질이다. 식물은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어 자신을 먹는 동물에게서 도망칠 수 없지만 이런 물질들을 사용해서 초식동물과 끊임없이 싸우고 있다.

야생담배는 뿌리에서 니코틴을 합성해서 잎으로 보낸다. 니코틴은 근육을 가지고 움직이는 동물의 신경계를 마비시킬 수 있는 강력한 신경독(神經毒)이다. 대부분의 생명체는 니코틴을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하지만 야생담배를 먹고 자라는 곤충도 있다. 담배박각시나방 애벌레는 탁월한 니코틴 소화력을 지녔다.

야생담배도 물러서지 않는다. 야생담배는 탄소 6개로 이루어진 작은 분자들을 포함한 독특한 화학물질을 공중에 흩뿌린다. 이 냄새를 맡고 온 곤충은 노린재다. 잎에 도착한 노린재는 주저 없이 막 알에서 깨어나 열심히 야생담배를 갉아대는 애벌레를 잡아먹는다. 식물이 생존을 위해 적의 적을 부른 것이다.

대박 바라고 도박하는 완두콩
식물은 동물의 뇌에 해당하는 중앙 정보 처리 기관이 없다. 대신 세포 하나하나가 뇌처럼 활동을 한다.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진은 지난 6월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뇌가 없는 식물이 어느 쪽이 생존에 유리한지 위험 평가까지 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연구진은 우선 완두의 뿌리를 두 갈래로 나누고 각각 다른 화분에 심었다. 첫 번째는 영양분을 듬뿍 줬다. 대신 한 화분에는 영양분을 일정하게 공급하고 나머지 하나는 불규칙적으로 영양분을 공급했다. 완두의 뿌리는 규칙적으로 영양분을 공급한 화분에서 더 잘 자랐다. 두 번째는 빈약한 영양분을 하나는 일정하게 나머지 하나는 불규칙하게 공급했다. 이때는 불규칙적으로 영양분을 공급한 화분 뿌리가 더 많이 자랐다.

사람들은 안정적인 수입이 보장되면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다. 하지만 안정적 수입이 만족스럽지 않으면 위험을 감수하는 도박을 한다. 식물 역시 영양분이 풍족한 상태에서는 안정된 환경을 선호하지만, 영양분이 부족해지면 더 큰 수익을 바라고 도박을 한다는 것을 밝혀낸 것이다.
파리지옥에 붙잡힌 벌.
파리지옥에 붙잡힌 벌. / Newscientist
"하나 둘 셋" 숫자 세는 파리지옥
판단을 하려면 과거 정보를 새로 얻은 정보와 비교해야 한다. 그러려면 정보를 기억해야 한다. 식물도 기억을 한다. 지난 1월 독일 뷔르츠부르크대 연구진은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식충(食蟲)식물인 파리지옥이 잎에 먹잇감이 닿는 횟수를 기억하고 그에 따라 잎을 닫고 소화효소를 분비한다고 발표했다.

파리지옥은 야구 글러브 같은 잎 안쪽에 감각모(感覺毛)가 나 있다. 관찰 결과 벌레가 감각모를 한 번 건드리면 파리지옥은 꼼짝하지 않았다. 30초 안에 다시 건드려야 잎을 닫기 시작했다. 세 번 건드리면 잎을 완전히 닫는다. 네 번째 자극에 소화효소를 만들기 시작하고 다섯 번째에 소화효소가 분비된다. 잎을 닫고 소화효소를 만드는 데 엄청난 에너지가 들어간다. 파리지옥은 헛걸음을 하지 않기 위해 감각모를 건드린 사실을 '기억'해 '판단'하는 것이다.

미모사의 기억력도 유명하다. 2014년 이탈리아 피렌체대 연구진은 미모사 화분을 푹신한 바닥에 떨어뜨리는 실험을 했다. 초기엔 떨어질 때마다 잎을 접었지만, 실험이 몇 시간 이어지자 잎을 접지 않았다. 놀라운 사실은 6일 후 같은 실험을 다시 했더니 처음부터 잎을 접지 않았다. 아무런 해가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는 뜻이다. 기억은 4주까지 유지됐다.

다윈의 先見之明 따라가는 과학

다윈은 "내가 식물을 조직화된 존재의 범주로 승격시킨 것은 생각해봐도 잘한 일이다"고 회고한 바 있다. 그는 식물을 하등(下等) 존재로보는 당대의 시각에 굴하지 않고 조직화된 존재로 식물을 인정했다. 영화 '마션'의 주인공 와트니는 우여곡절 끝에 화성에서 돋아난 감자 싹을 보고 "안녕"이라고 말을 걸었다. 길에서 만나는 식물들에게 한번쯤 인사를 건네는 것이 동등한 지적 존재에 대한 합당한 대우가 아닐까.
조선일보

댓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