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8월 28일 일요일

해를 쫓아가는 해바라기 꽃… 내부 생체시계가 움직임 조정 가을로 접어드는 문턱에서 해바라기가 만개했다.이름과 달리 다 자란 해바라기는 더 이상 해를 쫓아가지 않는다. 어린 해바라기만 해를 쫓아간다. 미국 UC데이비스 연구진은 지난 5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해바라기가 생체 시계 덕분에 해를 쫓아갈 수 있다고 밝혔다. 어린 해바라기꽃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해가 뜨고 지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해가 질 때 서쪽을 향해 있다가 밤이 되면 다시 동쪽을 향해 방향을 바꿔 아침에 떠오를 태양을 기다린다. 연구진은 이를 줄기 내부의 세포 생장 속도로 설명했다. 낮에 어린 꽃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움직이기 위해 동쪽 부분에 있던 줄기의 세포가 먼저 생장한다. 그러면 꽃은 서쪽으로 기운다. 반대로 밤에는 줄기의 서쪽 세포가 자라고 꽃이 동쪽으로 기운다. 연구진은 정교한 해바라기의 움직임은 내부 생체 시계에 의해 조절되고 있음을 확인했다. 시간에 따라 빛을 감지하거나 성장을 관장하는 유전자들이 각기 다른 쪽에서 작동했다. 해바라기의 이동을 방해하면 무게나 잎 면적이 10% 정도 감소했다. 활짝 핀 해바라기꽃이 늘 동쪽을 향해 있는 것도 다 이유가 있었다. 연구진이 인위적으로 서쪽을 보게 한 해바라기와 비교했더니 동쪽을 향한 해바라기가 온도가 더 높고, 이에 따라 벌과 나비 등 꽃가루받이 곤충들이 서향 해바라기보다 5배나 더 많이 찾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미지 크게보기시간별로 피는 꽃을 그려놓은 18세기의 ‘꽃 시계’. / Ursula Schleicher-Benz 식물에게 시간은 동물보다 더 중요하다. 마음대로 이동하기 어려운 식물은 시간에 맞춰 꽃을 피우고 잎을 열어야 날아가는 벌과 나비를 붙잡고, 햇빛을 제대로 받을 수 있다. 생물이 생체 시계를 갖고 있다는 사실은 식물에서 제일 먼저 밝혀졌다. 18세기 프랑스 과학자 장 자크 도르투 드 메랑은 낮에는 열리고 밤에는 닫히는 미모사 잎이 어둠 속에서도 계속 움직인다는 것을 관찰했다. 그는 '외부의 빛 신호 없이도 미모사가 시간의 흐름을 인식하고 있다'고 결론 내렸다. 우리 주변에서도 식물의 생체 시계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아침 일찍 피는 나팔꽃, 오후 늦게 피는 분꽃(분꽃의 별명은 '오후 4시 꽃'이다), 나방을 유인하기 위해 밤에 피는 달맞이꽃 등 식물은 시계가 따로 없어도 정해진 시간에 꽃을 피운다. 18세기 스웨덴 식물학자 린네는 이를 이용해 꽃 피는 시간을 기준으로 '꽃 시계'를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꽃들이 각각 다른 시간에 꽃을 피우는 것은 오랫동안 미스터리로 남았다. 최근에서야 개화(開花) 시간의 비밀이 유전자 수준에서 밝혀지고 있다. 기초과학연구원 연구진은 지난 2월 국제학술지 '뉴파이톨로지스트'에 북미 사막기후에서 자라는 야생담배에서 LHY 유전자를 억제했을 때, 꽃이 피는 시간과 더불어 향기가 나오는 시간도 바뀐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피튜니아에 있는 동일한 유전자가 꽃향기가 나오는 시간을 조절한다는 연구 결과도 비슷한 시기에 나왔다. 최근의 연구는 분자생물학·분석화학·생태학이 결합된 결과물이다. 자연과학이라는 한 뿌리에서 갈라져 나온 여러 학문의 줄기들이 잘 자라 서로 얽히면서 오랜 질문에 답을 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1200년전 가라앉은 헤라클레이온

'현실의 인디애나 존스' 고디오 발굴단
음파 탐지기·핵 자기공명 자력계 사용… 대운하 갖춘 도시와 신전·유물 발굴

과학기술 날개 단 현대 고고학
앙코르와트·마추픽추·폼페이… 숨겨진 이야기 찾기에 도전

1990년대 말. 이집트 북부의 아부 퀴르만 해협 을 수색하던 프랑스 잠수부들의 뿌연 시야 사이로 커다란 화강암 덩어리가 나타났다. 잠수부들은 프랑스 유럽 해저 고고학 연구소 소속으로 18세기에 가라앉은 프랑스 전함을 찾는 작업을 진행 중이었다. 화강암은 거대한 석상(石像)의 일부였고, 주변에서 6개의 조각이 더 발견됐다. 석상은 고고학자들에게는 익숙한 모습이었다. 바로 이집트 신화에서 나일강의 범람을 관장하는 농업·다산(多産)의 신 '하피(Hapi)'였던 것이다. 대대적인 수색 작업이 진행됐고 하피가 왜 그곳에 묻혀 있었는지 곧 밝혀졌다. 하피가 서 있는 바닷속에서 고대 도시 '헤라클레이온'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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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북부 아부 퀴르만 해협의 바닷물 속에 잠겨 있는 고대 도시 헤라클레이온 유물 위로 물고기들이 노닐고 있다. 대운하까지 갖추고 번성했던 헤라클레이온은 1200~1300년 전 지진으로 바닷속에 잠기면서 신화에서나 존재했던 도시로 여겨졌다. 2000년대 초반 유럽 해저 고고학연구소 연구팀이 첨단 과학기술을 동원해 발견했다. / 힐티재단·프랑크 고디오
해저에서 건져진 신화의 땅
신화 속에서 헤라클레이온은 영웅들의 무대로 그려진다. 반신반인(半神半人) 헤라클레스가 아프리카 모험을 시작한 곳이자, 스파르타의 헬레네가 트로이의 패리스와 함께 사랑의 도피 행각을 벌인 곳이다. 기원전 450년 이집트를 방문했던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화려한 헤라클레이온의 생활상과 헤라클레스 신전의 모습을 남겼다. 하지만 오랜 세월 헤라클레이온은 신화 속 상상의 도시로만 여겨졌다. 어느 곳에서도 흔적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1933년 영국 공군은 헤라클레이온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지역을 하늘에서 샅샅이 훑어봤지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도시는 하늘에서도, 땅에서도 보이지 않는 바닷속에 있었다.

현실의 '인디애나 존스'로 불리는 고고학자 프랑크 고디오가 이끄는 발굴단은 대운하를 갖춘 도시와 신전, 수많은 유물을 바닷속에서 건져냈다. 인디애나 존스에게 채찍이 있었다면, 고디오 소장은 첨단 과학 기술을 동원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탁한 아부 퀴르만 해역에서 음파탐지기를 투입해 유물들을 찾아냈다. 음파를 바닷속으로 쏜 뒤 돌아오는 거리를 측정해 유물의 위치를 파악한 것이다. 지구 자기장을 측정하는 핵 자기공명 자력계(Nuclear Magnetic Resonance Magnetometer)도 썼다. 거대한 도시를 이루는 암석들이 해저에 있으면 수면에서 측정하는 지구 자기장에 미묘한 변화가 있다. 이를 이용해 거대 도시 헤라클레이온의 구조를 파악하고, 훼손을 방지하면서 발굴 작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연구팀이 그려낸 헤라클레이온의 복원도에 대해 항구 전문가들은 "오늘날도 이만큼 설계하기란 불가능할 것"이라는 탄사를 쏟아냈다. 고디오는 유물 복원 작업에도 첨단 기법을 썼다. 해저에 오래 머무른 석상과 유물들은 화학적 변화가 일어나면서 크기가 변한다. 고디오는 전기 화학적 분해법을 이용해 소금기를 제거하고 유물들을 원상태에 가깝게 되돌렸다.

그렇다면 왜 헤라클레이온은 땅에서 사라진 것일까. 해저에 묻혀 있는 도시를 재구성하고 주변 지반을 탐사하면서 원인이 밝혀졌다. 지진과 지진해일(쓰나미)이 반복되면서 헤라클레이온이 자리 잡고 있던 해수면이 올라오고, 지반은 낮아지는 현상이 반복되다가 1200~1300년 전 도시를 둘러싼 땅이 해저로 가라앉은 것이다. 고디오는 수학과 출신으로 금융업계에 종사하다가, 뒤늦게 어릴 적 꿈을 찾아 고고학에 뛰어들었다. 주류 고고학계에서는 그의 경력을 들어 '이단아'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통적인 발굴법과 역사책에 얽매이지 않고 상상을 과학으로 입증하기 위해 애쓴 그의 접근법이 영원히 바닷속에서 잠들 뻔했던 도시 헤라클레이온을 되살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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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탐사정으로 유물을 발굴하는 모습. / 힐티재단·프랑크 고디오
과학이 부른 고고학의 격변
인류가 지구상에 나타난 이후 전 세계적으로 수만개 이상 나라와 도시국가가 명멸(明滅)했지만, 현재 우리가 그 실체를 명확하게 알고 있는 것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헤라클레이온과 같은 '사라진 도시', '잃어버린 도시'를 찾아낸다고 해도 일부일 뿐이다. 그랜드 마스터상을 받은 미국 작가 어설라 르 귄은 고대 도시 유적에 대해 "그토록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사람들은 이 세계의 전설과 사실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 물었다.

과학은 전설과 사실을 구분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이다. 실제로 현대 고고학은 과학과 결합하면서 격변기를 맞고 있다. 최근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하늘에서 내려다본 영상을 이용해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주변 거대 밀림에서 또 다른 사원의 흔적을 찾아냈다. 과학은 그리스에 맞섰던 트로이가 하나의 도시가 아니라 최소 수천년간 이어진 10개의 왕국이었음을 밝혔다. 발굴이 끝났다고 생각했던 이탈리아 폼페이에서는 화산재에 묻혀 숯덩이가 돼버린 그 시절의 문서를 읽는 도전이 시작됐다.

하지만 여전히 수많은 과제가 남아 있다. 잉카제국의 도시 '마추픽추'와 콜럼버스가 도착하기 이전 북미 대륙의 가장 큰 도시였던 '카호키아'는 왜 멸망했을까. 영국 스톤헨지와 칠레 이스터 섬의 모아이 석상은 누구의 작품일까. 사라진 도시와 함께 사라진 사람들이 그 답을 얘기해 줄 리는 없다. 고고학자와 과학자들이 맞춰갈 퍼즐에서 우리는 또 어떤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될까.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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