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8월 30일 화요일

미국서도 사교육 굴레 못 벗는 한국계 학생들

미국 뉴저지 주 팰리세이즈파크에 사는 한인 1.5세인 8학년(중2) A 군은 매주 토요일 학원을 찾습니다.

뉴저지 주에서 유명한 과학고인 버겐카운티 아카데미(BCA)에 입학하기 위해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까지 학원에서 지내는 것입니다.

A 군은 "주중에는 학교 숙제 때문에 학원에 다닐 시간이 없어 주말에 다닌다"며 "토요일마저 학원에서 지내는 게 힘들지만 성적을 올리기 위해서는 안 다닐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뉴욕에서 3년 동안 근무하게 된 아버지를 따라 1년 전 미국에 온 B 양(11학년)도 토요일마다 SAT(Scholastic Aptitude Test) 학원에 갑니다.

B 양의 어머니는 "미국의 유명 대학에 진학시키기 위해 학원을 보내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한국으로 돌아갈 경우를 대비해 최소한의 준비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한국의 대학들이 외국 생활을 오래한 학생 중 일부를 특기자 전형으로 뽑는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뜻입니다.

한국계 학생들이 사교육을 받는 사례는 수없이 많습니다.

뉴저지 주 데마레스트에 사는 5학년 C 양은 집에서 과외교사에게 배웁니다.

학원에 가는 대신 영어와 수학을 가르치는 교사가 1주일에 한 번씩 C 양의 집을 방문하는 것입니다.

C 양은 현직 교사인 과외 선생님으로부터 지도를 받은 이후에도 성적이 크게 향상되지는 않지만, 학교 교과과정을 따라가려면 과외라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C 양의 부모도 과외를 중단하는 데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그만두지 못한다고 주위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한국 출신 학생들이 미국에서조차 사교육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부모들의 교육열이 주된 요인입니다.

일단 공부는 잘하고 봐야 한다는 한국식 사고방식을 미국에 와서도 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1979년부터 팰리세이즈파크에서 학원을 운영해 온 제임스킴아카데미의 제임스 킴 원장은 "미국에 왔다고 해서 학부모들의 교육열이 한국에 뒤지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자녀를 좋은 대학에 보내려고 하는 욕구는 한국이나 여기나 다를 바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뉴저지 주에서 유명한 특목고인 BCA의 교육위원장도 맡고 있어 사교육과 공교육에 모두 깊숙이 관여하고 있습니다.

한국 학생들은 초등학생 때부터 영어와 수학 학원에 다니는 경우가 많지만 중학생 때부터는 본격적인 학원 생활에 돌입합니다.

학업 성적이 좋은 중학생들이 많이 찾는 코스는 특목고 준비반입니다.

대부분의 한국계 학원들이 경쟁적으로 특목고 준비반을 운영하며 뉴욕의 스타이버슨, 브롱스사이언스, 헌터하이스쿨, 그리고 뉴저지의 BCA 등에 입학할 수 있는 비법을 알려준다고 선전하고 있습니다.

학교 내신 성적도 전 과목 A를 받아야 특목고 진학이 가능해 일부 과목에서 부진하면 과외교사의 특별수업을 받기도 합니다.

고등학생이 되면 SAT반은 필수 코스로 여깁니다.

주로 10학년이 끝나고 여름방학 때 SAT 캠프가 집중적으로 개설됩니다.

이 여름캠프를 통해 점수 올리기 작업이 시작되며 9월에 새 학년이 시작된 이후에는 토요일을 이용해 6개월가량 학원에 더 다니면서 점수를 최대한 끌어올립니다.

최근 하버드대, 예일대 등 아이비리그대학에 입학지원서를 낸 뒤 결과를 기다리는 뉴저지 주 포트리의 D 양은 여름캠프를 통해 성공한 사례입니다.

D 양은 "여름 캠프 3개월 동안 SAT점수가 300점가량 높아져 2천300점을 넘겼다. 학원에 다녔기 때문에 점수가 올랐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학원에서 연습문제를 많이 푼 게 도움됐다"고 말했습니다.

2천400점 만점에서 2천300점을 넘기면 SAT 점수만 놓고 보면 최고의 대학에 지원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다양한 스펙을 갖추면 대학에 진학하기가 유리해짐에 따라 수학경시대회 등의 입상을 목표로 하는 학원 프로그램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현직 교사를 집으로 불러 과외를 받는 경우는 학부모들이 '쉬쉬'하지만 드물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학원에서 학교 교사들을 과외교사 풀(Pool)로 확보하고 나서 학생들을 1대 1로 연결해 주는 일도 있습니다.

뉴욕 그레이트넥에 있는 한 학원 원장은 "미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거나 학원 클래스의 수준에 맞추기 어려운 학생들은 과외교사를 연결해 준다. 과외교사가 부족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보완해 주면 몇 개월 뒤에 다른 학생들과 같은 클래스에서 공부를 진행할 수 있다"고 전했습니다.

이렇게 어린 학생들이 미국까지 와서 사교육에서 벗어나지 못한 데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작지 않습니다.

우선 사교육을 통해 점수를 올릴 수는 있지만 다양한 경험과 봉사활동을 중시하는 미국의 문화에서 성공하는 것과는 별개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뉴저지 주 버겐카운티의 교육위원을 지냈던 김경화 '함께하는 교육' 대표는 "SAT반을 예로 들면 문제유형에 맞춰 답을 찾는 방식을 가르쳐 주는 학원이 많다. 점수를 올릴 수는 있지만, 실력이 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SAT점수를 잘 받아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더라도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이 많다. 다양한 체험을 바탕으로 대학에 들어온 미국 학생들 속에서 견뎌내기가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뉴욕에서 교육문제전문상담소인 안영희상담소를 운영하는 안영희 소장도 학원교육이 가져오는 부작용을 지적했습니다.

안 소장은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부모들의 욕심 때문에 자녀를 학원에 등록시키는 경우가 많다"면서 "부모의 강요로 학원에 다니던 학생들이 어느 순간이 되면 공부를 놓아 버리고 방황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나 자녀의 나은 인생을 위해 최선은 아니지만, 사교육을 통해 성적을 올려야 한다는 현실적인 주장도 만만치 않습니다.

한국계 학생은 학업 성적이라도 좋아야 좋은 학교에 도전하고, 나아가 미국의 주류 사회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뉴저지 주 클로스터에 거주하는 한 학부모는 "한국 학생들만 사교육을 받는 게 아니다. 경제적 여유가 많은 미국인이나 유대인들은 과외교사를 집으로 불러 교육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이들과 경쟁하려면 학원에라도 보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최근에는 중국계, 인도계, 흑인 학생들도 학원에 많이 다니고 있어 한국 학부모들이 자녀 성적에 더 조바심을 내고 있습니다.

불과 4∼5년 전만 해도 한국계 학생들이 학원 등록생의 대부분을 차지했지만, 최근에는 비 한국계 학생들이 부쩍 늘었습니다.

팰리세이즈파크에서 MEK아카데미를 운영하는 안건석 원장은 "2∼3년 사이에 비 한국계 학생들이 2배 이상 늘어났다. 지금은 전체 수강생의 절반 정도에 이른다"고 전했습니다.

안 원장은 "3년 전에 뉴저지 주 에디슨시에 또 다른 지점을 냈는데 지금은 이 지점의 중등부에는 인도계가 제일 많다"고 덧붙였습니다.

팰리세이즈파크 레카스 아카데미의 이영호 원장도 "한국 학생들의 점수가 높아지는 것을 보고 중국계, 인도계 학생들이 학원을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면서 "최근 2∼3년 사이에 나타난 현상"이라고 전했습니다.

팰리세이즈파크의 한 학원 앞에서 만난 인도계 학생 앨리(10학년)는 "친구들 이야기를 듣고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공부가 재미있어졌다. 성적도 나아지고 있다"며 만족해했습니다.

타이완 출신의 린다는 뉴저지 주 클로스터에 있는 한국계 학원에 아들을 3년째 보내고 있습니다.

린다는 "성적이 크게 나아지는 것은 아니지만, 학원에 다닌 이후 수학에 대한 자신감이 많이 생긴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뉴욕 일원의 학원 수강료는 시간당 40∼50달러선입니다.

학교 선생님을 과외교사로 부르면 학년에 따라 다르지만 고등학생의 경우 시간당 100달러 수준입니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학원에는 학원에 다닌 결과 점수가 크게 올라 좋은 대학에 합격한 학생들의 이름이 자랑스럽게 걸려 있습니다.

한국계 학생이 대부분이지만 인도계, 중국계로 짐작되는 학생들의 이름도 어렵지 않게 목격됩니다.

한 학원에는 등록 당시 SAT 점수가 1천520점에 그쳤으나 10개월가량 다닌 뒤 2천300점으로 올라 하버드대, 예일대 등의 입학 허가를 받은 학생의 이름이 나붙었습니다.

학원에 걸린 'KOBE'라는 이름은 일본계라는 선입견을 주지만 이 학원의 원장은 "미국에서 태어나 자란 흑인 학생"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성이 탕(TANG)인 학생은 중국계, 잘랄(JALAL)인 학생은 인도계라고 설명했습니다.

레카스 아카데미의 이 원장은 "한국인들이 우수한 것은 아닌 것 같다"면서 "공부를 많이 하니까 성적이 좋은 것일 뿐 중국계나 인도계 학생들이 훨씬 우수하다는 것을 많이 느낀다"고 수년간의 느낌을 털어놓았습니다.

경제적으로 우월한 유대인이나 미국 부유층은 한국계 학원을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대신 유명 대학 진학을 위해 엄청난 돈을 들여 컨설팅을 받은 뒤 컨설팅 업체의 조언에 따라 스펙을 만들어갑니다.

컨설팅 전문업체는 스펙을 만들기 위한 최적의 과외교사까지도 알선해주며 이들 과외교사에게 시간당 300∼400달러를 주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11학년에 재학 중인 딸을 둔 한 학부모는 유대인만큼 해 주지 못하는 데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한국계 부모들은 유대인만큼 돈을 지불할 수 없어서 이들을 경쟁 상대로 생각하지도 않는다"며 씁쓸해했습니다.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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