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28일 화요일

강철보다 강한 ‘기적의 실’


1940년 5월 15일 미국 뉴욕의 백화점 앞에는 아침부터 여성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기적의 실’로 만든 스타킹을 사기 위해서였다. 백화점이 문을 열자 여성들은 치마를 걷어붙이고 매장에서 스타킹을 신어 보기에 바빴다.
당시 판매된 나일론 스타킹은 한 켤레에 약 1달러 20센트로서 약 60센트에 판매되던 실크 스타킹보다 2배나 비쌌지만 그날 하루에만 500만 켤레가 팔릴 만큼 인기를 끌었다. 이후 미국 여성들은 얇아서 속이 훤히 비치는 나일론 스타킹을 신기 위해 다리털을 밀기 시작했다.
스타킹 소동에서 알 수 있듯이 나일론은 신분 과시보다 맵시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도록 옷의 기능을 바꾸어 버렸다. 또한 합성섬유인 나일론의 등장으로 인해 목화나 누에 등 자연 섬유를 얻기 위해 사용되던 농토가 식량을 생산하기 위한 작물을 재배하는 용도로 바뀜으로써 식량 생산도 크게 늘어났다.
나일론을 발명한 월리스 흄 캐러더스. 그는 나일론 제품이 출시되기 전에 세상을 떠났다. ⓒ 위키피디아 Public Domain
나일론을 발명한 월리스 흄 캐러더스. 그는 나일론 제품이 출시되기 전에 세상을 떠났다. ⓒ 위키피디아 Public Domain
나일론이라는 유기 중합체가 등장함으로써 생물 물질의 기본 구성 요소가 분자들이 화학 결합으로 길게 연결돼 있는 구조라는 사실도 알려지게 됐다. 효소나 DNA, RNA도 이 같은 중합체로 만들어져 있다. 즉, 나일론은 오늘날의 분자생물학과 DNA 연구를 탄생시키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 셈이다.
나일론은 반도체 기술을 응용한 전자장비에서부터 사람의 인공혈관에까지 사용되는 등 재료의 혁명을 몰고 왔다. 때문에 나일론은 20세기 최고의 발명품으로 꼽힌다.
그러나 정작 나일론을 발명한 과학자 월리스 흄 캐러더스는 그만큼 유명하지도 않으며, 최고의 발명품을 개발한 보상도 얻지 못했다. 그는 나일론 스타킹이 발매되기 3년 전에 이미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1896년 4월에 태어난 캐러더스는 미국 아이오와주의 데스모인스에서 성장했다. 상업학교 교감이었던 부친은 그가 상과대학에 진학하기를 원했으나, 캐러더스는 미주리주의 장로회 대학인 타키오대학에 입학했다. 거기서 우연히 화학을 전공한 스승을 만나 일리노이 대학에서 유기화합물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하버드 대학에서 기초 유기화학을 가르치는 강사가 되었다.
동료 연구원의 장난에서 나일론 탄생
그러다 종합화학회사인 듀폰 사로부터 유기화학의 기초 연구를 이끌어달라는 제의를 받고 중앙연구소 기초과학 연구부장으로 입사했다. 상업적인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연구보다는 순수 연구를 하길 원하는 그에게 듀폰 사는 최첨단 설비 및 충분한 연구 인력을 보장하는 매력적인 제안을 해왔기 때문이다.
당시만 해도 중합체의 복잡한 구조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거의 없었다. 비누나 설탕, 알코올처럼 분자량이 비교적 적은 일상적인 유기 화합물은 개발됐지만, 나일론처럼 분자량이 엄청나게 거대하고 복잡한 중합체를 분리하거나 합성하는 방법은 아무도 몰랐던 것이다.
듀폰 사의 대대적인 연구 지원에 힘입어 캐러더스가 이끄는 연구팀은 입사 후 2년 만인 1930년 4월, 최초의 고품질 합성고무인 ‘네오프렌’을 발명했다. 그가 중합체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탄생시킨 네오프렌은 대공황기에 천연 고무보다 몇 배나 비싼 가격에 팔릴 만큼 성공을 거두었다.
그런데 네오프렌을 발명한 지 2주일도 지나지 않아 캐러더스 연구팀은 또 하나 놀라운 발견을 했다. 연구원 중 한 명인 줄리언 힐이 실패한 중합체 찌꺼기를 제거하다가 장난삼아 유리막대로 휘저은 결과, 한 가닥의 미세한 가는 실이 생겼던 것. 이것이 바로 최초의 합성섬유인 폴리에스테르 섬유였다.
하지만 이 섬유는 실크를 닮긴 했으나 실용적인 가치는 없었다. 중합체 사슬이 튼튼한 섬유를 만들 만큼 충분히 길지도 않았을 뿐더러 낮은 온도에서 잘 녹아 다리미로 다리거나 뜨거운 물에서의 세탁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몇 개월 후 연구팀은 녹는점이 높은 아미드 화합물을 발견했다. 이것이 바로 나일론의 전신격이었지만, 여러 가지 사정이 복잡하게 얽혀 그에 관한 본격적인 연구는 4년 후에야 이루어졌다. 그때가 1934년 5월로서, 최초의 폴리아미드 섬유를 합성한 것이다.
스타킹이 나일론의 대량 판매시장 개척해
이후 보다 실용적인 섬유를 찾기 위해 연구를 이어간 캐러더스 연구팀은 이듬해인 1935년 2월 마침내 진주빛 광택이 나는 초중합체 실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캐러더스는 그 실을 이루는 두 가지 핵심 반응물질이 6개씩의 탄소 원자를 포함하고 있다고 해서 자신의 발명품에 ‘6-6’이라는 암호명을 붙였다.
듀폰 사는 1938년 9월 최초의 완전한 합성섬유의 발명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나일론’으로 명명된 이 섬유에 대해 언론들은 ‘석탄과 공기와 물로 만든 섬유로서 거미줄보다 가늘고 강철보다 강한 기적의 실’이라고 보도했다.
그런데 나일론으로 만든 최초의 제품은 옷이나 스타킹이 아닌 칫솔이었다. 이 칫솔이 등장하기 전만 해도 대부분의 칫솔은 돼지털로 만들었다. 돼지털은 칫솔에서 잘 빠지고 세균 번식 우려가 있었지만, 나일론 칫솔은 단단히 박혀서 빠지지 않고 세균 번식도 막았다. 그러나 나일론의 대량 판매 시장을 개척한 것은 서두에서 언급한 여성용 스타킹이었다.
나일론은 천연 섬유인 실크보다 더 튼튼하고 탄성이 뛰어났다. 또한 부식이나 곰팡이가 필 염려도 없었다. 더구나 나일론은 플라스틱으로 만들 수도 있고 섬유로 뽑아낼 수도 있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나일론은 개발한 캐러더스는 자신의 41번째 생일을 맞은 지 이틀 후인 1937년 4월 29일 필라델피아의 한 호텔에서 자살한 채로 발견됐다. 10여 년간 호주머니에 넣고 다녔던 청산가리를 주스에 타서 마셨던 것이다. 그의 자살 동기는 대학 시절부터 앓아온 갑상선 관련 질병과 그로 인한 우울증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약 그가 자살하지 않았더라면 노벨상 수상이 유력했다. 천연 고분자 화합물의 구조를 밝혀낸 헤르만 슈타우딩거 등 중합체를 연구한 과학자들이 노벨상을 4회나 수상했기 때문이다. 그와 가까웠던 듀폰 사의 동료 과학자 폴 플로리 역시 그중 한 명이었다.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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