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28일 화요일

더운 물이 찬 물보다 빨리 언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라는 속담이 있다. 급할수록 질러 가야지 왜 돌아가라고 할까? 상식적으로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역설적 교훈이지만, 과학기술의 입장에서 보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논리다. ‘급할수록 질러가야 한다’라는 고정관념을 깨는 것이 바로 과학이기 때문이다.
역설을 표현하는 대표적 상징인 펜로즈 계단 ⓒ brainroche.org
역설을 표현하는 대표적 상징인 펜로즈 계단 ⓒ brainroche.org
지금 소개하는 ‘음펨바 효과’와 ‘브라에스 가설’은 상식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는 사례들이다. 얼핏 보면 이미 답이 나와있다고 생각하기 쉬운 문제들이지만, 좀 더 파고들면 완전히 상반된 답이 나오게 되는 역발상의 결과물인 것이다.
물의 결합 구조가 음펨바 효과의 비밀
‘뜨거운 물이 빨리 얼까? 차가운 물이 빨리 얼까?’ 이 같은 물음이 주어진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대답할까?
아마도 ‘이걸 문제라고 내는거야? 당연하게 차가운 물이지’라고 답하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맞는 답이기는 하지만, 정답은 아니다. 정답은 ‘뜨거운 물이 차가운 물보다 빨리 얼 수도 있다’이다.
뜨거운 물이 차가운 물보다 먼저 얼 수도 있다? 물론 펄펄 끓는 물이 얼음처럼 차가운 물보다 빨리 언다는 의미는 아니다. 30℃ 정도의 따뜻한 물과 10℃ 정도의 시원한 물을 얼릴 때 그렇다는 뜻이다.
이처럼 기존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되는 역설적 발견은 고정관념을 벗어난 한 고등학생에게서 비롯되었다. 1969년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고등학생이었던 음펨바(Mpemba)는 학교에서 끓는 우유와 설탕을 섞어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실습을 하다가 뜨거운 물이 차가운 물보다 빨리 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물의 결합 구조가 음펨바 효과의 비밀이다
물의 결합 구조가 음펨바 효과의 비밀이다 ⓒ currentearthscience
1년 뒤 고등학교에 진학한 음펨바는 물리학자인 데니스 오스본(Dennis Osborne) 박사의 특강 때 “같은 부피의 물을 냉동실에 넣었을 때, 높은 온도의 물이 낮은 온도의 물보다 더 빨리 어는 이유가 무엇이냐?”라는 질문을 던졌다.
말도 안되는 질문이라 생각한 친구들은 일제히 음펨바를 놀려댔지만, 오스본 박사 만큼은 그의 질문에 주목했다. 이후 오스본 박사는 다양한 실험을 통해 음펨바의 말이 사실임을 확인했지만, 그 원인에 대해서는 파악하지 못했다.
이후 오스본 박사 외에도 수많은 과학자들이 이 역설적 현상에 숨겨져 있는 비밀을 밝히려 노력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런데 최근 싱가포르의 과학자들에 의해 음펨바 효과의 원인이 밝혀져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바로 물의 수소결합과 공유결합의 상관관계에 그 비밀이 숨어 있었던 것.
물을 이루는 수소 원자와 산소 원자의 결합은 물을 끓이면 그 간격이 벌어지면서 수소결합 역시 길어진다. 이렇게 끓인 물은 냉각할 때 결합 간격이 다시 줄어들면서 축적했던 에너지를 방출하게 되는데, 뜨거운 물은 축적된 에너지 양이 많아서 냉각시 더 빠른 속도로 에너지를 방출하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물에서 일어날 수 있는 증발과 대류, 그리고 전도와 같은 현상들이 동시에 작용하면서 뜨거운 물이 식을 때 물이 증발하고, 이 증발로 인해 많은 열을 잃음과 동시에 물의 양도 줄어서 더 빨리 얼게 된다는 설명이다.
뉴욕 42번가를 만든 브라에스 가설
음펨바의 효과만큼이나 역설적인 과학계의 사례는 교통 혼잡과 관련한 가설이다. 도로가 좁은 곳에 교통 혼잡이 발생할 경우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다음과 같이 생각할 것이다. ‘도로가 좁은데 차는 많으니 교통 혼잡이 생긴다. 따라서 도로를 더 늘려야 한다’
하지만 이런 기본적인 생각과 정반대의 생각을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독일의 수학자인 ‘디트리히 브라에스(Dietrich Braess)’ 교수였다. 그는 도로를 넓히면 오히려 교통수요가 늘어나서 혼잡도가 줄기는커녕 더 늘어난다는 이른바 ‘브라에스의 가설’을 발표하여 전 세계의 주목을 끌었다.
과연 그의 가설이 맞았을까? 이에 대한 답은 뉴욕의 42번가 도로에서 찾을 수 있다. 브라에스의 가설이 적용된 대표적 장소이기 때문이다.
지난 1990년 뉴욕 주지사는 ‘지구의 날’ 행사를 위해 42번가 도로를 하루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42번 거리는 혼잡하기로 유명한 뉴욕의 도로 중에서도 가장 혼잡한 곳으로 악명이 높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사상 최악의 교통 정체가 발생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폐쇄된 42번가에서 교통 대란의 모습을 발견할 수는 없었다.
브라에스 가설이 사실로 검증된 사례들 ⓒ Youtube
브라에스 가설이 사실로 검증된 사례들 ⓒ Youtube
오히려 주변 교통의 흐름이 좋아지면서 뉴욕 시민들은 그날 새롭게 변신한 42번가의 모습을 즐겼다. 그 후 뉴욕시는 42번가 도로의 차량을 조금씩 제한하는 대신에 보행자와 관광객을 위한 도보 공간은 차츰차츰 늘려나갔다.
그 결과 자동차 통행이 대폭 줄어든 42번가는 뉴욕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가 됐다. 특히 도보 공간의 확대는 ‘타임스퀘어 광장’과 ‘브로드웨이 거리’가 뉴욕과 미국을 대표하는 관광 명소로 성장하는데 있어 결정적 기여를 했다.
이처럼 ‘브라에스 가설’의 효과가 입증된 후 전 세계의 여러 나라들이 교통 혼잡에 대한 대책으로 도로 축소를 도입하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의 수도인 서울도 이를 도입하려는 움직임들이 나타나고 있다.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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