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28일 화요일

펭귄 깃털의 비밀

남극에 사는 펭귄은 수은주가 보통 영하 40도 가까이 내려가는 추운 날씨에 살을 파고드는 강풍까지 견디며 살아야 한다. 남극이 얼마나 추우면 오줌을 누면 오줌발이 그대로 얼어버린다는 과장된 말까지 나왔을까.
이 정도는 아니더라도, 어릴 적 한겨울 맹추위에 집 밖으로 나가면 숨을 쉴 때 공기 속의 수증기가 코털에 쩍쩍 얼어붙는 것을 흔하게 경험하곤 하였다.
또 겨울철에 빨래 줄에 널어놓은 빨래가 동태처럼 딱딱하게 얼어붙는 일도 많았다. 요즘은 그렇게 추운 겨울을 경험해 본 기억이 별로 없지만.
헤엄치는 임금 펭귄. ⓒ 김웅서
헤엄치는 임금 펭귄. ⓒ 김웅서
부산 해운대에서는 한겨울에 북극곰 수영대회가 열린다. 겨울에 바닷물에 들어갔다 나오면 몸에 묻은 물 때문에 추위를 더 느낀다. 빨리 닦아내지 않으면 몸은 사시나무 떨듯 저절로 덜덜 떨린다.
펭귄은 남극의 추운 날씨에도 바닷물에 들어가는데 어떻게 대처할까? 몸에 물이 그대로 남아있으면, 바닷물에 들어갔다 나오자마자 얼어버릴 텐데. 몸에 달라붙은 물을 없애는 재주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물이 달라붙지 않는 펭귄 깃털
과학자들이 펭귄의 깃털을 면밀하게 조사한 결과 그 비밀이 밝혀졌다. 털에 아주 미세한 나노 구조가 있고, 털이 물에 젖지 않도록 특별한 기름이 분비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2015년 11월 23일자 사이언스데일리에 실렸다.
로스앤젤레스 소재 캘리포니아대학교의 카베퍼(Kavehpour)교수는 펭귄이 나오는 자연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흥미를 가지기 시작하였다. 물 밖으로 나온 펭귄의 깃털에 얼음조각이 달라붙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남극의 기온이라면 물 밖에 나오는 순간 금방 물방울들이 얼어붙었어야 했는데. 그는 펭귄 전문가로부터 건강한 펭귄의 경우 물 밖으로 나오더라도 깃털에 얼음이 달라붙은 것을 본 적이 없다는 말을 듣고 펭귄 깃털의 비밀을 캐기 시작하였다.
연구팀은 이런 펭귄의 결빙방지 능력을 밝히고자 샌디에이고 시월드 수족관에서 얻은 펭귄 깃털을 주사전자현미경으로 관찰하였다. 그 결과 깃털에 공기를 품고 있는 아주 미세한 구멍이 있는 것을 발견하였고, 이것 때문에 물이 달라붙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렇게 물과 친화력이 떨어지는, 즉 물과 잘 섞이지 않는 성질을 소수성(hydrophobic)이라 한다. 소수성 가운데 물과 섞이지 않는 정도가 더욱 강한 것을 초소수성(superhydrophobic)이라 한다. 반대로 물과 친화력이 높은 성질은 친수성(hydrophilic)이라 한다.
초소수성 표면에서는 물이 달라붙지 않고 공 모양의 물방울이 만들어진다. 그러다보니 표면에 물이 흡수되지 않고 방울방울 굴러 떨어진다. 연잎 위에 떨어진 빗방울이 또르르 구르는 것을 보았다면 쉽게 상황이 이해될 것이다. 펭귄 깃털에 묻은 물방울은 물 밖에 나와 얼기 전에 굴러 떨어진다. 아예 얼어버릴 물을 없애버린다.
펭귄 깃털은 최첨단 초소수성 재질이었던 것이다. 이런 기능성 털을 갖지 못한 개는 털이 젖으면 몸을 흔들어 물을 털어버리는 수밖에 없다. 우리는 머리감고 수건으로 닦아야하고.
연구팀은 물방울이 공처럼 되어 있으면 표면과 닿는 면적이 작아져 물방울이 접촉면에서 열을 덜 빼앗겨 더디게 언다고 설명한다. 열이 전달되는 것은 교통 흐름에 비유될 수 있다.
자동차가 고속도로를 빠르게 달리다가 좁은 출구로 나갈 때 속도가 느려지는 것처럼, 열도 단면적이 큰 물방울의 가운데서는 잘 전달되다가 깃털의 표면과 접촉하는 좁은 단면에 이르러서는 잘 전달되지 않는다.
추운 곳에 사는 펭귄이 나노구조 더 많아
연구팀은 남극과 남아메리카 끝단에 사는 젠투펭귄의 깃털을 좀 더 따뜻한 칠레나 아르헨티나 연안에 사는 마젤란 펭귄과 비교하여 살펴보았다. 그랬더니 온화한 곳에 사는 펭귄의 깃털에 작은 구멍들이 더 적은 것을 발견하였다.
한편 그들이 분비하는 기름도 추운 곳에 사는 펭귄들과 비교할 때 소수성이 덜하였다.
펭귄의 결빙방지 능력은 우리 실생활에도 많이 응용된다. 비행기 날개에 얼음이 달라붙게 되면 비행 효율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자칫 추락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래서 항공사에서는 날개 결빙을 방지하기 위해 비싼 화학처리제를 사용한다. 펭귄이 사용하는 결빙방지 노하우를 적용한다면 훨씬 친환경적이고 비용도 적게 들것이다.
펭귄은 정작 날지 못하지만 펭귄의 이러한 결빙방지 능력이 비행기가 안전하게 날도록 응용될 수 있으니 참 아이러니하다.
사족이지만 새끼 펭귄의 경우 몸에 얼음을 잔뜩 붙이고 있기도 하다. 새끼 펭귄 깃털은 성체만큼 나노 구조가 잘 발달해있지 않아서일까?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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