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28일 화요일

근대 기계 탄생의 시초, ‘시계’


오늘날 시계의 중요성에 대해 논한다는 것은 매우 진부한 일이 될 것이다. 갈수록 바쁘고 복잡해지는 현대사회에서, 만약 시계가 없거나 아주 부정확하다면 사람들의 생활 자체가 커다란 혼란에 빠질 것이다. 최근에는 촌각의 시간도 제대로 활용하자는 이야기도 자주 들린다.‘시계의 역사’는 인류문명사의 한 축을 이어오기도 하였다. 해시계, 물시계 등이 동서양을 막론하고 일찍부터 나타났으며, 보다 정확한 시계를 만드는 일은 당대의 수많은 과학자, 기술자들의 커다란 관심사였다. 인류는 어느 시대에 어느 정도로 정확한 시계를 만들 수 있었는지 살펴보는 것도 상당한 의미가 있을 듯하다.
고대 서양의 물시계 클렙시드라. ⓒ Free Photo
고대 서양의 물시계 클렙시드라. ⓒ Free Photo
아주 옛날, 사람들의 생활이 단순했던 시대에는 시계가 별로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즉 수렵, 채집 등으로 살아가던 원시사회나 농경시대, 심지어 오늘날에도 문명의 혜택을 누리지 않는 오지의 원주민 등에게는 그다지 정확한 시간이 요구되지 않는다.
최초의 시계가 고안된 것은 기원전 약 2천 년 전 고대 바빌로니아인데, ‘해시계’가 가장 먼저 만들어졌다. 지표면에 막대기 등을 세워서 그림자의 위치만 재면 되므로, 제작하기도 간단한 편이다.
햇빛이 없는 밤에는 별의 방향을 정확하게 재어서 시간을 아는 ‘아스트롤라베(astrolabe)’라는 시계가 쓰이기도 했다. 이것은 시각 뿐 아니라 별의 위치와 경위도 등을 관측할 수 있는 천문기계였다.
그리고 흐린 날이나 비오는 날은 햇빛도 별빛도 볼 수 없었을 것이므로, 물시계, 모래시계 등이 고안되어 쓰였다. 이들 시계들은 이집트, 중국, 인도, 그리스, 로마 등 동서양을 막론하고 널리 쓰였다. 고안자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비교적 쉽게 구상해서 만들 수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고대 서양의 물시계는 ‘클렙시드라(Clepsydra)’라고 불렸는데 정교한 물시계를 만든 사람으로는, 여러 자동장치를 발명한 헤론(Heron)의 친구로 알려진 크테시비오스(Ktesibios)가 있다.
기원전 2세기 무렵에 그가 제작한 물시계는 기존의 물시계에 톱니바퀴를 붙이고 물의 흐름을 잘 조절하여 정밀하게 시간을 표시하도록 만들어졌다. 이 물시계는 1년 중 해 뜨는 시각과 해 지는 시각이 항상 아침, 저녁 6시로 고정되어 있어서 낮의 길이가 계절에 관계없이 12시간으로 되어 있었다. 따라서 겨울에는 1시간의 길이가 여름보다 짧아지는 불합리한 결과가 생겼는데도, 그리스 사람들은 이와 같이 시간의 길이가 일정치 않은 시계를 ’진짜시계‘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밖에도 일정량의 기름이 연소되기까지의 시간을 재는 ‘기름시계’도 있었고, 비슷한 원리로 양초가 타서 짧아지는 길이로 시간을 재는 ‘양초시계’도 있었다.
해시계에서 시작된 이들 여러 시계들은 근대에 기계장치를 이용한 시계들이 등장하면서 서서히 사라져갔지만, 모래시계만은 예외적으로 오랫동안 사용되었고 아직도 매우 제한적인 용도이긴 하지만 여전히 쓰이고 있다.
오벨리스크형 해시계. ⓒ Free Photo
오벨리스크형 해시계. ⓒ Free Photo
중세 이후, 시계의 제작은 매우 흥미로운 발명의 하나가 되었다. 시계가 필요한 곳은 여러 곳이 있었겠지만, 특히 정확한 시각측정을 가장 필요로 했던 곳은 교회였다. 많은 사람들이 정해진 시간에 모여서 예배를 보아야 했기 때문이다. 시간에 맞춰서 예배 종을 치는 것이 당시 교회 성직자들의 중요한 일과의 하나였고, 시계를 뜻하는 영어 단어 ‘Clock’도 원래는 ’종‘이라는 뜻을 지닌 단어였다고 한다. 따라서 시계는 종을 치는 일을 대신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1500년경에 독일의 뉘른베르크를 중심으로 시계 제조와 연구가 더욱 진전되어 헨라인(Peter Henlein; 1485-1542)이라는 기술자가 태엽을 이용한 회중시계를 처음으로 만들어내었다.
이 무렵의 휴대용 회중시계는 그 모양이 달걀과 비슷하다고 하여 ‘뉘른베르크의 달걀’이라고 불렸고, 추를 이용한 시계는 가정용 괘종시계로서 보급되었다.
당시의 부유층들은 앞 다투어 시계를 구입하기도 했으나, 용수철을 동력으로 하는 휴대용 회중시계나 추시계 모두 당시의 기술로 정밀한 시간을 제공하기는 어려웠기 때문에, 하루에 20-30분 쯤 틀리는 게 보통이었다.
보다 정확한 시계가 나오기 위해서는 물리학의 원리 및 근대적인 과학기술의 축적된 연구 성과를 필요로 했으며, 이후 정확한 시계의 발명은 곧 근대적인 기계 발명의 시초가 되었다.
헨라인이 제작한 회중시계. ⓒ Free Photo
헨라인이 제작한 회중시계. ⓒ Free Photo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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