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28일 화요일

혈소판, 절반은 폐가 만든다


지난해 초 장내세균의 숫자가 인체세포의 열 배가 아니라 비슷한 수준이라는 논문이 발표됐다. (자세한 내용은 관련링크 참조 : 과학에세이 155 ‘장내미생물 숫자가 인체 세포의 10배?’) 당시 연구자들은 정확한 비교를 위해 인체 세포 숫자도 다시 조사했는데 그 결과 약 30조 개로 나왔다(몸무게 70kg인 표준체형 남성).
그런데 개수로 1위인 적혈구가 무려 25조 개로 84%나 차지했다. 혈액의 부피가 5리터이고 그 가운데 적혈구가 2kg인 걸 감안하면 의아한 결과이지만 적혈구가 워낙 작다보니(100입방마이크로미터) 가능한 일이다. 4.9%를 차지한 2위 역시 혈액 세포로 1조4700억 개인 혈소판이다. 이밖에 골수세포, 백혈구 등 혈액세포를 다 합치면 29조 개가 넘고 나머지 세포를 다 합쳐도 1조 개가 안 되는 걸로 나왔다.
혈소판은 인체에서 가장 작은 세포로 지름이 2-3㎛이고 부피는 10입방마이크로미터도 채 안 돼 약간 큰 박테리아 크기다. 그럼에도 삶은 유지하는 데는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 폐쇄혈관계를 지니고 있는 동물은 혈관이 손상을 입어 혈액이 지속적으로 유출되면 치명적이다.
따라서 즉시 상처부위의 혈액이 응고돼 출혈을 막고 손상을 복구해야하는데 이 과정에서 혈소판이 주역을 담당한다. 큰 병에 걸려 입원을 하거나 치료를 받을 때 혈소판 수치를 자주 확인하는 이유다.
혈소판의 수명은 열흘 내외이기 때문에 성인의 경우 매일 1000억여 개의 혈소판을 새로 만들어야하는데 다른 대부분의 혈액세포와 마찬가지로 골수가 생산기지로 알려져 있다. 즉 모든 혈액세포의 조상인 조혈모세포(줄기세포)가 분화한 거핵세포(megakaryocyte)가 신호를 받으면 혈소판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그 정확한 메커니즘은 겨우 10여 년 전에야 확증됐다.
2007년에야 골수에서 혈소판이 만들어지는 정확한 메커니즘이 밝혀졌다. 즉 골수에 있는 거핵세포(megakaryocyte)가 혈관 바깥벽에 부착한 뒤 세포질이 실 형태로 떨어져 나가고(proplatelet) 그 뒤 혈액에서 혈소판(platelet)이 형성된다.  ⓒ 사이언스
2007년에야 골수에서 혈소판이 만들어지는 정확한 메커니즘이 밝혀졌다. 즉 골수에 있는 거핵세포(megakaryocyte)가 혈관 바깥벽에 부착한 뒤 세포질이 실 형태로 떨어져 나가고(proplatelet) 그 뒤 혈액에서 혈소판(platelet)이 형성된다. ⓒ 사이언스
다른 조혈세포들도 존재
조혈전구세포 가운데 하나인 거핵세포는 세포질의 분열 없이 최고 일곱 번까지 유사분열을 하기 때문에 세포도 크고 핵도 크다(물론 게놈도 여러 벌 있다). 그 결과 지름이 25㎛가 넘고 부피는 1만 입방마이크로미터에 이른다. 이렇게 덩치를 키운 거핵세포가 신호를 받으면 마치 밀가루 반죽에서 수제비를 뜨듯 세포질이 떨어져 나가며 혈소판이 된다.
그런데 거핵세포에서 바로 혈소판이 만들어지는지 길쭉한 형태인 프로혈소판(proplatelet)이 떨어져 가가고 이게 혈액 내에서 혈소판 몇 개로 쪼개지는지 불명확했다. 2007년에야 최신 현미경을 써서 후자가 맞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리고 10년이 지나 혈소판 생성에 관한 또 다른 사실이 밝혀졌다. 즉 혈소판의 절반은 골수가 아니라 폐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 연구자들은 2광자 생체내 현미경이란 특수 장비를 만들어 폐의 혈관을 면밀히 조사한 결과 이곳에 있는 거핵세포가 혈소판을 만드는 장면을 포착하는데 성공했다고 학술지 ‘네이처’ 3월 22일자 온라인판에 발표했다.
연구자들이 이런 조사를 하게 된 건 폐로 들어가는 혈액에 있는 거핵세포 개수에 비해 폐에서 나오는 거핵세포의 개수가 적고 혈소판 개수는 그 반대라는 사실이 오래 전부터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혈액을 따라 폐로 들어간 거핵세포 가운데 일부가 폐에 머물러 혈소판을 만들었음을 의미할 수 있지만 증명이 되지 않은 상태였다.
최근 연구자들은 생쥐의 폐에서도 혈소판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폐의 조직 이미지로 가운데 큰 녹색 덩어리가 거핵세포이고 주변에 흩어져 있는 작은 녹색 덩어리들이 혈소판이다. ⓒ 네이처
최근 연구자들은 생쥐의 폐에서도 혈소판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폐의 조직 이미지로 가운데 큰 녹색 덩어리가 거핵세포이고 주변에 흩어져 있는 작은 녹색 덩어리들이 혈소판이다. ⓒ 네이처
연구자들은 거핵세포와 혈소판 표면에 녹색형광단백질(GFP)이 생기게 조작한 생쥐를 만들어 이를 입증했다. 생쥐 열 마리를 대상으로 얻은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거핵세포 하나 당 적게는 500개 미만에서 많게는 1000개가 넘는 혈소판이 만들어지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렇게 생쥐의 폐에서 만들어지는 혈소판의 개수는 시간 당 1000만 개로 전체 혈소판 생산 개수의 50%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됐다. 그렇다면 폐에 거핵세포 말고 다른 조혈전구세포도 존재할까.특정 세포의 표면에서 발현하는 유전자 산물(단백질)을 확인하는 방식으로 조사한 결과 폐 조직에 다양한 조혈세포가 존재한다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조혈줄기세포의 한 종류인 ST-HSC와 만능전구세포2(MPP2), MPP3/4, 골수전구세포 등이 존재했다. 조혈기능이 고장 난 변이 생쥐에 건강한 쥐의 폐조직을 이식한 결과 그 안에 있던 조혈세포가 골수로 이동해 조혈작용을 하는 것으로 관찰됐다.
이번 연구는 생쥐를 대상으로 했지만 이런 기본적인 생리 메커니즘은 많은 경우 포유류 진화과정에서 보존되기 때문에 사람의 폐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실제 그런 것으로 확인된다면 ‘인체 생리학’ 교재에 나오는 “혈소판은 골수에 있는 거핵세포에서 만들어진다”는 문구의 수정이 불가피할 것이다.
Science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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