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25일 화요일

토론의 기본은 '팩트'… 출처가 탄탄한 근거부터 확보를

창의적 인재, 디베이트 능력이 만든다
전문가 비법 알아봤더니
'토론'이란 시소의 오른쪽엔 이성이, 왼쪽엔 감정이 놓여 있다. 사회자는 쉴 새 없이 널뛰는 시소 한복판에서 무게중심을 잡아주는 '균형추' 같은 존재다. 맛있는공부는 지난달 22일과 29일, 8년간 TV토론 현장을 지켜 온 김형민(56·사진 왼쪽) SBS 보도제작국장과 왕상한(49)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각각 만났다. 김 국장은 지난 2004년 이후 줄곧 '이것이 여론이다' '시시비비' 'SBS 시사토론' 등 SBS 간판 토론 프로그램을 이끌어 온 베테랑 사회자다. 왕 교수 역시 2004년부터 '난상토론'(EBS) 'KBS 생방송 심야토론'(KBS1) 등의 진행을 맡아 왔다. 두 사람이 공개한 '토론 잘하는 법'을 지면에 옮긴다.

◇토론은 '일상'ㅣ쉬운 주제부터 접근해라
"짜장과 짬뽕 중 어떤 걸 먹고 싶나요? 먹고 싶은 메뉴를 골랐다면 옆 사람이 자신과 같은 메뉴를 고르도록 설득해보세요. 주장과 그에 따른 근거를 마련하는 게 토론의 시작입니다."

김형민 국장은 인터뷰 내내 '일상 속 토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말로 영향력을 발휘하는 행위는 전부 토론 실력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얘기다. 그에 따르면 최근 우리나라 청소년 사이에서 토론 문화가 뿌리내리는 추세는 "국가적으로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다. "1990년대에 프랑스 파리에서 특파원으로 근무했어요. 당시 프랑스에선 황금시간대인 오후 7시에 TV 토론 프로그램을 방영하더군요. 토론 프로그램이 으레 심야시간대에 편성되는 우리나라와는 전혀 다른 풍토여서 적잖이 충격을 받았죠. 프랑스인은 어릴 때부터 철저한 토론 교육을 받습니다. 대입 시험도 서술형으로 치러지죠. 그 결과, '관용(tol�[rance)'이란 사회적 가치가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왕 교수는 고교생·대학생 토론대회에서 심사위원으로 활동한 적이 있다. 그는 "반드시 수상 여부를 가려야 하는 '대회' 형식 토론이야말로 올바른 토론 문화 정착의 훼방꾼"이라고 지적했다. "현행 청소년 토론대회가 지닌 최대 함정은 모든 논의가 '토론을 위한 토론'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제가 심사를 맡았던 대회는 하나같이 참가자 연령대를 뛰어넘는 난해한 주제를 제시하더군요. 만약 제가 대회 주최자라면 '남녀는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반장 뽑는 방법으로 선출제와 임명제 중 어느 쪽이 적절할까?'처럼 실생활에 와 닿는 주제를 던져주겠어요."

◇토론은 '팩트'ㅣ믿을 만한 출처 찾아라
김형민(56) SBS 보도제작국장(왼쪽)과 왕상한(48)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염동우 기자, 이경민 기자
두 사람은 "토론의 기본은 '팩트(fact)'"라고 입을 모았다. 김 국장은 "출처가 탄탄한 근거를 얼마나 많이 확보하고 있느냐가 토론의 승패를 좌우한다"고 말했다. "유능한 토론자는 'A가 B라고 말했다'는 형태의 문장을 빌려 자신의 주장을 강화합니다. 이때 'A'는 출처, 'B'는 메시지에 각각 해당해요. 출처는 책·논문·신문기사 같은 텍스트가 될 수도, 전문가 같은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출처가 미더운 대상일 때 토론자의 주장은 한층 빛나죠. B, 즉 메시지 자체에만 집중해 출처의 신뢰도를 낮추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왕 교수는 "설득할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출처의 신뢰도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관객이 반 친구들이라면 담임교사도 훌륭한 출처가 될 수 있다는 것.

'경청'과 '존중'의 미덕을 지키는 것 역시 토론의 중요한 요소다. 두 사람은 최악의 패널로 "상대를 무시하는 사람"을 꼽았다. "방송을 진행하다 보면 '잘 모르고 하시는 말씀 같은데…'라며 반대 측 패널의 감정을 자극하는 분이 있어요. 동일한 용어를 완전히 다르게 해석, 토론 자체를 혼란에 빠뜨리는 패널도 있죠. 사실 이런 방식도 엄연한 토론 비법 중 하나이긴 합니다. 하지만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패널은 종종 토론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듭니다. '사고력 기르는 토론'엔 결코 적합하지 않은 방식이죠."(김형민)

◇토론은 '소통'ㅣ반론도 충분히 헤아려야
왕 교수에겐 초등 1학년인 딸이 있다. 그는 딸에게 독후 활동을 통해 토론을 가르친다. "전래동화 '콩쥐팥쥐'를 읽혔다면 아이에게 콩쥐와 팥쥐 중 마음에 드는 등장인물을 택하게 합니다. 그런 다음, 왜 그 인물을 택했는지 대화를 나누죠. 전 아이가 고르지 않은 인물 편에 서서 변호인 역할을 맡고요."

김 국장이 추천한 토론 학습법은 'TV 토론 프로그램 시청'이다. 가장 먼저 할 일은 프로그램 공식 홈페이지에 공개된 주제를 검색한 후 본인의 입장을 정하는 것. 이후 그 주장의 근거를 조사해 실제 방송을 시청하며 본인이 정리한 내용을 패널의 주장과 비교하면 된다. 이때 중요한 건 TV 토론과 실생활 토론의 차이점을 명백히 이해하는 태도다. "TV 토론에 대해 '결론 없는 싸움에 불과하다'며 비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지만 상대 의견에 쉬이 수긍할 주제를 다룰 거라면 방송사가 굳이 전파를 낭비해가며 프로그램을 제작할 필요가 없어요. 게다가 양측 패널은 각자의 이익(단체)을 대변하기 위해 참석한 이들입니다. 합일점 찾기가 그만큼 어렵죠. 반면, 일상의 토론엔 반드시 합의 지점이 존재합니다. 짬뽕과 짜장 중 어떤 걸 먹든 '점심 끼니 해결'이란 목적은 하나인 것처럼요."
TV 토론 사회자가 귀띔하는 ‘토론할 땐 이렇게’①두괄식이 효과적이다. 중간에 상대가 발언을 끊더라도 요지는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②타인의 발언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 자기 말에만 신경 쓰다 자칫 토론의 ‘맥’을 놓칠 수 있다.
③음색은 ‘솔’ 음계 정도를 유지해 상대에게 약간 높은 듯 들리게 한다.
④논객으로 이름난 명사의 방송분은 되도록 챙겨 본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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