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 12일 일요일

식물에서 발견한 또 하나의 언어



좋은 말을 해준 고구마는 발육이 매우 잘 된 반면, 나쁜 말을 해준 고구마는 발육 상태가 나빴던 것이다. 이처럼 긍정적인 말의 효과를 직접 확인한 선수들은 서로에게 감사의 말을 나누기 시작했고, 팀 분위기는 몰라보게 달라졌다. 결국 포항 스틸러스는 긍정의 힘으로 그해 FA컵 우승까지 차지했다.
최근에 식물들이 의사소통을 하는 데 사용하는 새로운 언어가 하나 더 발견됐다. ⓒ morgueFile free photo
최근에 식물들이 의사소통을 하는 데 사용하는 새로운 언어가 하나 더 발견됐다. ⓒ morgueFile free photo
식물들은 눈과 귀가 없고 뇌도 없다. 또 고착생활을 하므로 급한 일이 있어도 외출을 하거나 친구를 만나러 갈 수도 없다.
동물의 경우 움직일 수 있기 때문에 근육의 수축 운동을 위해 신경이라는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이 신경들이 모여 있는 곳이 바로 뇌다. 그에 비해 식물은 움직이지 않아도 되므로 신경이 필요 없다. 즉, 신경의 있고 없음의 차이는 움직이는 것과 움직이지 않는 것의 차이에 있는 셈이다.
우리가 흔히 대뇌의 손상으로 의식과 운동기능은 상실되었으나 호흡과 소화, 순환 따위의 기능은 유지되고 있는 환자를 일컬어 ‘식물인간’이라고 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신경이 없으니 식물들은 당연히 사람이 하는 말을 듣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포항 스틸러스 축구단의 경우처럼 식물에게 긍정의 말과 부정의 말을 들려주며 성장 속도를 비교한 실험은 매우 흔하며, 그때마다 식물들은 놀라울 만큼 사람의 말을 잘 알아듣는 것으로 드러났다.
식물은 소리 듣고 냄새로 의사소통해
게다가 지난해 부산대 인문사회의학교실 김성수 교수팀이 애기장대를 대상으로 진행한 실험결과에 의하면, 식물은 긍정적인 말과 부정적인 말의 구별뿐만 아니라 그 말에 얼마만큼 진정성이 담겨 있는가도 파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 교수팀은 식물 배양기에서 키우는 애기장대에 매일 2회마다 10번씩 긍정의 말과 부정의 말을 사람이 읽어주었다. 그리고 또 다른 애기장대에는 기계음으로 일정 텍스트를 재생해서 들려주었다.
그 결과 기존에 행해졌던 실험에서처럼 긍정의 말이 부정의 말보다 뿌리와 줄기를 튼튼하고 건강하게 자라게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기계음으로 진정성 없이 긍정의 말을 전달한 경우보다 사람이 들려줬을 때 식물의 성장에 2배 더 높은 효과를 내는 것으로 밝혀졌다. 눈과 귀도 없는 식물이 사람처럼 눈치가 뻔한 셈이다.
식물이 청력을 지녔다는 사실은 실제 실험에서도 밝혀진 바 있다. 호주 웨스턴대학의 갈리아노 교수팀이 수경재배하는 옥수수에 한쪽 방향으로만 소리를 들려준 결과, 옥수수의 뿌리가 소리 나는 방향을 굽어 자라는 현상을 확인한 것이다.
소리만 듣는 것이 아니라 식물들은 냄새로써 서로 간의 의사소통도 한다. 곤충의 공격 등 외부로부터 위협을 받으면 특이한 휘발성 물질을 발산해 냄새를 풍김으로써 주위에 경보를 발령하는 것이다.
실제로 아카시아 나무는 염소 등의 동물이 자신을 뜯어먹으면 즉각 타닌 성분을 내뿜어 주위 동료들에게 알린다. 이 타닌 향을 맡은 다른 아카시아 나무들은 곧바로 나뭇잎의 타닌 성분과 단백질을 결합시켜 염소가 소화시키기 어려운 성분으로 바꿔 버린다.
과학자들은 흙 속에 감춰진 뿌리를 통해서도 식물들이 서로 대화를 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뿌리를 통해서 식물들이 내뱉는 단어들은 페놀이나 플라보노이드, 당, 유기산, 아미노산, 단백질 등과 같은 수용성 화합물로 구성된 암호다. 이를 통해 뿌리 끝끼리 서로 정보를 교환하거나 흙 속에 있는 수많은 박테리아 및 균류들과 소통한다.
우리가 볼 수 없는 토양 속에 식물들의 네트워크망이 설치되어 있는 셈이다. 이처럼 식물들은 인간의 상상보다 훨씬 복잡하고 정교한 의사소통 능력을 지니고 있다. 이 같은 식물들의 의사소통 능력은 친인척을 돕는 데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되었다.
미국과 일본의 공동 연구팀이 야생에서 서식하는 산쑥의 포기를 나눠서 어느 개체는 부모 곁에, 또 어느 개체는 서로 관련이 없는 산쑥 옆에 자라게 했다. 그리고 모든 포기에 마치 메뚜기가 뜯어 먹은 것과 같은 상처를 냈다.
그로부터 1년 후 관찰한 결과, 유전적으로 똑같은 포기 옆에 자라는 산쑥은 서로 혈연관계가 전혀 없는 포기 옆에서 자라는 산쑥에 비해 동물의 피해를 40% 이상 적게 입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새로운 식물 언어로 지목된 전령 RNA
그런데 최근에 식물들이 의사소통을 하는 데 사용하는 새로운 언어가 하나 더 발견됐다. 식물이 단백질을 만들 때 DNA에서 필요한 염기서열을 그대로 복사해 생기는 물질인 전령 RNA(messenger RNA)가 바로 그것이다.
미국 버지니아공대의 식물병리학자 짐 웨스트우드를 비롯한 연구진은 다른 식물의 줄기를 휘감으며 사는 기생식물인 새삼을 두 가지 숙주식물인 토마토 및 애기장대에서 자라게 한 뒤 전령 RNA의 염기서열 관계를 분석했다. 그 결과 숙주식물과 기생식물 사이에서 서로 간에 전령 RNA를 주고받는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
전령 RNA의 경우 단백질이 만들어지고 난 후 바로 없어지며 매우 파괴되기 쉽기 때문에 그간 식물이 사용하는 언어의 후보로 전혀 꼽히지 않았었다. 이에 대해 연구진은 기생식물인 새삼이 숙주식물들의 전령 RNA를 얻어 숙주의 방어 시스템을 확인하는 것 같다는 견해를 밝혔다.
사이언스 지에 발표된 이 연구결과는 기생식물이 사용하는 전령 RNA 정보를 파괴하는 새로운 통제 전략을 개발하는 데 유용하게 사용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전령 RNA가 역으로 기생식물의 아킬레스건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지구상의 모든 동물들을 먹여 살리는 식물에 이 정도의 의사소통 능력도 없을 거라고 여겼던 예전의 믿음 자체가 이상했던 것 같다.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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