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 12일 일요일

알고 이해하고 가르치며, 깨달음에 이르기 위해’

어떤 사물에 대해 알고 이해하며 가르치는 것은 인간의 지적 활동의 바탕으로서 후대에 지식을 전수하는 방편이기도 하다. 장회익 교수는 본인이 알아낸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주는 것을 천직으로 알고, 어떻게 하면 듣는 이가 핵심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고심해 온 타고난 교사이기도 하다.

잘 가르치기 위해서는 먼저 가르치는 사람이 가르쳐야 할 대상을 정확히 알고 핵심적인 이해에 도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흔히 ‘물리가 트였다’고도 말하는 ‘깨달음’을 얻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무의식에서 만들어진 관념에서 벗어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나 물리학을 통해 잘못된 관념에서 벗어나는 것이 가능하고,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깨달음입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에게 가장 위험한 것은 본 것을 잘못 해석하는 일입니다. 올바른 깨달음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옛날에는 벼락을 맞는 것은 큰 죄를 지어 천벌을 받는 것이라 생각한 적이 있지요.

불행을 당한 것도 서러운 일인데, 이런 오해까지 받게 만들었으니 얼마나 잔혹한 일입니까? 더 중요한 것은 생명의 모습을 바로 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의식적으로 만들어진 생명의 관점에서 보면 생명의 질서가 마치도 생존경쟁이나 약육강식의 세계로 보이기도 하는데, 이것 역시 깨달음의 부족에서 오는 것이라고 봅니다.”

장 교수는 ‘현대문명의 위기는 바로 깨달음의 위기이기도 하다’고 진단한다. 과학이 주는 깨달음을 외면하고 과학이 제공하는 기술적 능력만을 받아들여 인간의 눈먼 본능만을 끝없이 만족시키려는 데서 오는 필연적인 결과라는 것이다.

“스승의 손가락만 보지 말고 달을 제대로 봐야”
그러면 어떻게 이런 위험에서 벗어나야 할까. 첫 번째는 자신들이 얼마나 어리석을 수 있는지를 아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사실 제대로 안다는 것과 깨닫는다는 것은 그리 간단치 않은 문제다.

 
“우리가 흔히 책이나 강의를 들으면 무엇을 알게 된다고 생각하지만 착각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 착각은 책이나 스승에 대한 신뢰에서부터 옵니다. 책에 쓰인 내용이나 강의를 알아듣고 기억하면 나름대로 그것을 검증해 보지도 않고 옳다고 믿어버리는 경향이 있지요. 이것은 바로 달을 보지 않고 달을 가리키는 스승의 손가락만 보는 경우에 해당합니다.”

실제로 스승(혹은 책)이 가리키는 손가락의 방향만 기억하면서 마치 달을 본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는 게 장 교수의 지적이다. 이런 점은 특히 학생들을 가르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주의해야 할 일이다.

“스승의 손가락 방향만 기억하고 있다가 막상 자신이 가르치는 자리에 서보면 진정한 앎에 이르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학문도 어떤 사실을 처음 발견한 사람이 가장 잘 아는 것은 아닙니다. 첫 발견자는 여러 험난한 과정을 거쳐 그 길에 도달했겠지만 그 내용을 알고 보면 훨씬 쉽고 가깝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수 있습니다.

교사는 바로 이 길을 찾아내 학생들에게 안내하는 사람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내용을 입체적으로 훤히 꿰뚫어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렇게 알아낸 지식은 첫 발견자가 우연히 알고 찾아낸 것을 훨씬 능가할 수 있으며, 또 그렇게 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장 교수는 “가르칠 수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보상은 자기 자신이 깨달음에 다가갈 좋은 여건에 놓인다는 점”이라고 말한다.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를 30년 정도 하면서 비교적 양보를 많이 하고 살아왔어요. 유학하고 돌아온 젊은 교수들이 전공과목들을 탐내면 선뜻 내주곤 했지요. 그리고는 일반물리를 10년 가까이 가르쳤는데, 이것마저 내가 독점하는 것으로 비쳐 못마땅해 하는 교수들이 있는 듯해서 다시 내주고 그 다음에는 교양과목을 가르쳤어요.

‘물리학의 개념과 역사’라는 과목을 새로 설정해서 물리학 전공자가 아닌 학생들에게 교양과목 수준으로 가르치려다 보니 눈높이를 훨씬 낮춰서 교재를 준비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놀란 것은 그 과정에서 내가 몰랐던 것을 알게 되고, 당연하게 알았던 것을 다시 보게 되면서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더라는 거지요. 마지막 10년 간은 주로 교양과목 강의를 했는데, 이것은 또 나 아니면 할 사람이 없어서 오히려 중요한 존재가 됐지요.”

가르치는 일에 큰 정성을 기울였던 장 교수는 대학에서 공식적인 강의 평가를 도입하기 훨씬 이전부터 자신의 강의에 대해 학생들로부터 평가를 받았다.

“학생들의 평가를 받을 때마다 거의 모든 항목에서 매우 좋은 성적을 받았으나 오직 ‘난이도’ 항목에서만은 상당히 엇갈린 평가가 나오곤 했어요. 소수의 학생, 아마 ‘깨달음’에 도달한 학생들은 당연히 여기에도 좋은 점수를 주었지만 그렇지 못한 많은 학생들은 너무 어렵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지요.

이것이 바로 내가 학생들을 깨우치는 일에 절반의 성공밖에 거두지 못했다는 말의 의미인데, 학생들에게 ‘진짜’ 학문의 정수를 맛보이자는 욕심에서 나 자신도 어제까지 이해하지 못했던 것을 오늘 이들에게 이해시키겠다는 욕심이 작용했고, 끝낸 이런 욕심을 버리지 못했던 거지요.”

‘아는 것’과 ‘이해하는 것’의 차이
이해한다, 깨닫는다는 말은 사실 장 교수의 평생의 화두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물리를 이해하고 나아가 생명과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 지금도 공부를 계속하고 있는 중이다. 내로라 하는 수재들이 모인 서울대학교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물리학을 깊이 이해하기 위해 애썼다’고 하면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냥 안다는 것과 깊이 이해한다는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있는가를 알기 위해 ‘지구 반대편 사람들은 왜 아래로 떨어지지 않나?’ 하는 물음을 제시해 볼까요. 이때 많은 이들은 ‘나는 잘 모르지만 과학자들이 그럴 이유가 있다고 하더라’고 대답합니다.

알기는 하지만 이해가 없는 전형적인 사례지요.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먼저 허공에 놓인 물체는 그 자리에 가만히 있어야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점에 착안해야 하고, 한걸음 더 나아가 허공에 놓인 물체가 가만히 있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는 말은 또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하는 점까지 생각해 보고 만족할 만한 대답을 마련해야 ‘이해’한다는 말을 할 수가 있습니다.”

지구를 이해하는 것이 누구나 비교적 쉽게 경험해 볼 수 있는 깨달음이라면 상대성이론 이해는 훨씬 힘들고, 양자역학 이해는 가장 높은 수준의 노력이 필요한 깨달음으로 분류할 수 있다. 장 교수 역시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 이해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고, 더 깊은 이해를 위한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나는 첫째 관문은 비교적 쉽게 넘어 물리학에 입문했으나 상대성이론이란 둘째 관문을 넘기 위해 철학의 문을 두드리는 등 상당한 진통을 겪고 나서 몇십년 동안 지속적으로 노력한 끝에야 겨우 만족스런 이해에 이르렀습니다.

양자역학 이해는 아직도 진행 중입니다. 최근에 새로 써 몇 몇 사람들과 함께 검토하고 있는 논문도 바로 ‘How to Understand Quantum Mechanics (양자역학을 어떻게 이해할까)’라는 논문인데, 이 논문이 맞는 내용을 지녔다면, 전 세계에서 이 이해에 가장 가깝게 접근한 사람이 바로 저와 제 주변의 몇 몇 사람이 될 것입니다.”

장 교수는 물리학을 이해하기 위해 학문의 구조에 관심을 가졌고, 고전 역학이나 양자역학에 모두 적용될 수 있는 인식론적인 틀을 짠 다음 인식 주체와 대상, 그 사이의 정보 흐름과 이론의 생성을 상정해 그 틀에서 양자역학을 재규정했다.

장 교수와 제자들은 이 작업을 통해 양자역학에 대한 코펜하겐 해석(하이젠베르크와 보어가 주축)을 비판하고 속칭 ‘서울 해석’이라 불리는 새로운 해석을 내놓고 있다.

“양자역학에선 주체와 대상이 불분명해진다고 했는데, 이건 전형적인 코펜하겐 해석이고, 저는 그게 아니고 주체와 대상 사이에 명확한 선을 긋고 관계를 맺게 해야 한다는 새로운 해석을 제안했습니다.”

장 교수는 최근 양자역학의 이해에 대해 개인적으로 매우 흡족한 영문논문을 하나 썼다. 주부, 대학교수, 중학생까지 모이는 한 공부 모임의 요청에 따라 양자역학을 파워포인트로 설명한 내용을 논문화한 것이다.

“주부나 중학생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도식을 활용해 양자역학의 내용을 설명했어요. 지금까지 어디서 본 일이 없는 새로운 방식이면서 가장 좋은 설명방법이라고 생각돼 영문논문으로 만들었지요. 내가 쓴 논문 중에서 가장 만족스런 작품이라고 할까요.”

이 논문은 일반적인 논문형식이 아니어서 다른 학자가 보면 이게 논문인가 할 수도 있으나 장 교수로서는 ‘50년 걸려서 나름대로 양자역학을 이해한 결과물’이다.

“뉴턴은 이런 말을 했어요. ‘내가 이런 업적을 내게 된 것은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가서 봤기 때문에 거인보다 더 멀리 볼 수 있었다’고. 그 거인은 바로 데카르트예요. 나는 내 어깨 위에 올라서서 봤다고 말하고 싶어요.

내가 지금까지 해 온 것을 놓고 그 위에서 다시 바라보고 또 쌓고 하는 반복작업이지요. 남의 의견을 바탕으로 하지 않기 때문에 굳이 남의 논문을 보려고 애쓸 필요도 없지요. 양자역학 논문도 다른 사람 논문의 인용이 거의 없어요. 내가 쓴 것을 발표해서 독창적이라는 평가를 받으면 기여하는 것이 되고, 안되면 내가 아는 것으로 만족하면 되니까요.”

“한 이론의 창시자라도 그 이론을 완전히 파악 못할 수 있어”
과학에서 어떤 이론의 발견과 그에 대한 완전한 이해는 약간 다른 문제일 수 있다.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어떤 이론의 발견자가 그 내용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 할 수도 있으며, 아인슈타인과 상대성이론에서도 그런 점을 일부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수상대성이론은 시간과 공간이 합쳐 특정한 형태의 4차원을 이룬다는 말로 요약되는데,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는 두 가지 가정에서 출발했다. 하나는 ‘등속도로 움직이는 모든 기준계에서 자연의 법칙은 동일한 형태로 표현된다’는 것으로 비교적 받아들이기 쉬운 가정인데 비해, 두 번쨰는 ‘광속도는 어떤 관측자에게도 동일한 값을 취한다’는 것으로 상식에서 크게 벗어난 가정이라는 것.

“광속도가 관측자 자체의 속도에 상관 없이 모두 동일하게 나타난다는 것은 4차원 구조 속에서는 별도로 가정을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도출되는데 아인슈타인은 이런 4차원 구조의 중요성을 파악하지 못 하고 남 보기에 매우 어렵게 자신의 방식대로 이론을 전개한 것처럼 보입니다.

기존 개념과의 차이는 시간변수를 공간변수에 무관한 독립변수로 보았는지 혹은 공간변수와 합해 4차원을 구성하는 성분변수로 보았는지에 달려 있거든요. 만약 아인슈타인이 시간 공간의 4차원 구조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면 한 이론의 창시자가 그 이론을 가장 잘 이해한다는 생각이 옳지 않다는 것을 말해주는 뚜렷한 사례가 됩니다.”

장 교수는 바로 이런 점에 과학이 지니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본다. 즉, 과학이론은 창시자의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것이며, 서로의 노력을 이어가며 이를 점점 더 깊고 간명하게 이해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장 교수는 고체물리분야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나 과학적 인식의 틀과 지적 호기심을 철학과 생명분야에로 돌려 독창적인 ‘온생명론’을 제창했다. 이를 통해 위기에 봉착한 현대문명의 전환을 촉구해온 그는 70대 중반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요즘도 저술과 강연 등 활발한 대외활동을 펴고 있다.

과학과 생명론 및 공부에 대한 생각을 담은 저서로 ‘과학과 메타과학’(1990, 2012 개정판), ‘물질, 생명, 인간’(2009), ‘온생명과 환경 공동체적 삶’(2008), ‘공부도둑’(2008), ‘공부의 즐거움’(2011), ‘삶과 온생명’(1998), 대담 형식의 공저인 ‘이분법을 넘어서’(2007) 등의 저서가 있다. 그리고 곧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2014)라는 책이 출간될 예정이다.

그는 과학을 하는 후학들에게 자기가 하는 연구를 연구 그 자체에만 국한시키지 말고 인문학적인 맥락으로 생각을 넓혀보기를 권한다.

“과학자라도 동시에 생활인인 만큼 어떻게 하면 자기 삶을 더 의미있고 풍부하게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정년 후에도 자신의 전공분야를 계속 연구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한다면 좋은 일이지만, 평생을 학문에 몸담았다면 인류문화의 넓은 틀 안에서 기여할 수 있는 재능과 능력이 있으므로 마음을 열고 그런 기회를 찾아보라고 당부하고 싶습니다.” (끝)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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